386 세대 의원들의 맏형 격인 김부겸 의원이 손 전 지사의 특보단장을 맡았다. 김근태 전 의장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정봉주 의원은 일찌감치 손학규 지지를 밝혔고, 이기우 의원도 조만간 손학규 캠프로 들어갈 예정이다. 무엇보다 386 그룹의 주력부대인 임종석, 우상호, 오영식, 송영길, 김영춘 의원 등이 조만간 손학규 지지를 선언할 예정이라는 얘기도 파다하다.
범여권에서 태동한 '줄서기'와 '세몰이' 논란의 진앙은 바로 386 의원들이 '손학규 쏠림'으로 기울어지면서 시작됐다. 범여권에서 386 세대가 갖는 정치적 함의 때문이다. 이들은 열린우리당 출범부터 범여권의 개혁성을 상징하는 초재선 그룹의 핵심이었다. 일부 의원들은 최고위원, 사무총장, 대변인 등 당의 요직을 맡았을 정도로 정치적 감각도 인정받는다.
그러나 외양에 비해 실체가 초라했다는 비판도 있다. 주요한 정치적 국면에서 한 목소리를 내는 데 실패했을 뿐더러 내용도 그리 개혁적이지 않았다는 평가가 요체다. 정치권 안팎에서 이들에게 '기회주의자'라는 눈총이 쏟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범여권의 386세대가 대선 국면에서 다시 기로에 섰다. 선택지는 분명히 '손학규 지지'로 굳어진 분위기이나 좀처럼 이를 드러내기 주저한다.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고 있는 손 전 지사의 정체성이 과연 386 세대의 정체성에 맞느냐는 논란과 손 전 지사의 당선 가능성 사이에서 오는 갈등이다.
'정치세력' 386의 '얼굴' 손학규
386 세대 의원들은 하나같이 "누구를 지지할지 아직 확정하지 않았다"며 분명한 입장 표명을 꺼렸다. 하지만 대부분 '손학규 지지' 쪽으로 기운 속내가 역력했다.
우상호 의원은 "(타 후보 진영이) 손 전 지사에 대한 검증이나 한나라당 경력에 대한 소명을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본다"며 "이는 정체성과 개혁성을 따져 묻는 전통적 지지층을 끌어들이기 위해 필요하고, 손 전 지사는 이러한 물음에 대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10월 중순쯤 당 경선이 끝나고 대선 후보가 된 뒤에 지지하면 편하겠지만 그 때도 '우리당 후보로 손 전 지사가 적합하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고 그러한 방어적 태도로는 주변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다"며 조만간 공개적인 지지 입장을 표명할 가능성을 크게 열어뒀다.
열린우리당 창당 당시 한나라당을 탈당했던 김영춘 의원은 "현재 누군가를 지지하거나 할 생각은 없지만 가장 중요하게 보는 요소는 시대에 대한 준비된 비전이 있느냐, 정책을 갖고 있느냐는 것"이라며 "과거 당적 문제 등은 부차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천정배 의원 등이 '한나라당 탈당 경력 때문에 본선 경쟁력에서 뒤쳐진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는 태도다. 김 의원은 "그 문제는 국민이나 당원이 판단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며 "후보가 나서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고 비판했다.
우 의원도 "본선경쟁력 문제는 상대 후보가 누가 나오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며 "지역에서도 손 전 지사를 범여권에 불러다 놓자마자 천정배 의원 등이 날선 비판을 하는 데 대해 탐탁치 않아하는 시각이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정치 컨설턴트 폴컴의 이경헌 이사는 "손 전 지사는 한나라당에서 범여권으로 건너와 뚜렷한 계보가 없기 때문에 지지 세력이 다양화 될 수 있다"며 "386의원들의 선택은 물론 '당선 가능성'에 가장 큰 비중이 있지만 캠프 참여 혹은 이른 지지 선언을 통해 내년 총선을 기약하는 물적 토대를 쌓는다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 총선에서 이들이 당선되면 이제 재선, 3선을 달게 된다"며 "이들의 손 전 지사 지지는 하나의 정치세력의 지도자로서의 '얼굴'을 손 전 지사로 낙점한 것"이라고 봤다. 범여권에 물적 토대가 없는 손 전 지사를 내세워 주도권을 장악하고 내년 총선 등을 통해 범여권의 주류로 등장하려는 386세대의 정치적 전망이 '손학규 쏠림'의 배경에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우린 누굴 지지해도 욕 먹을 것"
이로 인해 386 의원들의 '손학규 쏠림'은 단연 후보로서의 경쟁력에 주목한 것일 수밖에 없다. 조심스럽게나마 범여권에 '손학규 대세론'이 저변을 넓히고 있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
우상호 의원은 "손 전 지사가 (정체성 측면에서) 내키지 않는다는 것과 그를 비토할 것이냐는 다른 문제"라며 "어떻게 해야 대선에서 승리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우 의원은 "우리가 손 전 지사를 지지한다는 보도가 나가고 나서 함께 운동을 했던 386 세대들이 전화를 해 '왜 손학규냐'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며 "그러나 사실 우리는 어느 누구를 지지해도 욕을 먹을 수밖에 없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우 의원은 "정동영 전 의장을 지지한다면 '내년 총선을 겨냥해 호남민심을 얻으려 하는 것 아니냐'고 할 것이고 이해찬 전 총리를 지지한다면 '아직도 노무현의 그늘에서 못 벗어났다'고 할 것 아니냐"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민주개혁진영의 고민은 선명한 개혁노선을 가진 사람 중에 유력한 대선주자를 내놓지 못한 데 따른 딜레마"라며 "왜 민주개혁진영은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지나면서 대를 잇는 유력한 후보를 만들어내지 못했는지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재성 의원도 "이번 대선에서 386세대가 후보가 되지 못했고 우리시대를 대변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며 "새로운 정치적 담론을 어느 후보가 잘 구현할지를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경헌 이사는 "이들 의원들은 정계개편 과정에서 차기 정치 지도자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모델링도 하지 못했고 정계개편 노선에 관한 논쟁을 이끌어 내지도 못했다"며 "그런 면에서 손 전 지사에 대한 지지가 일관성 없어 보인다는 비판은 달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386의 개혁과 손학규의 중도는 일치"
386 세대 의원들은 손 전 지사의 정책이나 노선 등에 대해서도 '동질성'을 강조했다. 최재성 의원은 "행정복합도시 문제나 몇몇 현안에서 이질적인 모습을 보였을 뿐 민주주의 수호나 지방 분권 등 정치적 사안이나 복지 정책에서 우리와 차이가 거의 없다"며 "손 전 지사가 한미 FTA를 찬성했다고 하지만 정동영 전 의장이나 이해찬 전 총리 등도 그 점에서는 차이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김영춘 의원도 "현재 대선 예비후보인 정동영 전 의장이나 이해찬 전 총리 등도 결국 중도주의"라며 "보수와 진보 사이에 있는 것이 중도이지 386의 개혁적 이미지와 중도주의는 배치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상호 의원도 "손 전 지사의 복지정책이나 인권,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신념 등은 인정할 부분이 있고 한나라당과의 정책적 차별성을 형성할 지점은 남북 정책과 서민, 중산층에 대한 경제정책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이같은 주장에는 386 의원들의 '본래 색깔'에 대한 자기 방어적 의미가 가미돼 있다. 우 의원은 "우리는 개혁정당을 표방했지만 급진적 진보노선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386은 인권이나 과거 청산 등의 문제에서 개혁적 색채를 갖고 있지만 한미 FTA 등 경제의 문제로 가면 입장이 단일하지 않다. 신자유주의나 개방의 문제에서 입장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손학규측 반색 "민주화 경력의 뿌리가 같다"
한편 386 의원들의 지지에 대해 손 전 지사 측은 반색했다. 손 전 지사의 민주화 정통성 논란을 차단함에 있어 386 의원들의 지지는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손 전 지사 캠프의 배종호 대변인은 "본선 경쟁력을 포함해 당선 가능성이 가장 큰 후보라고 판단한 것 아니겠느냐"며 "386 의원들은 손 전 지사가 과거 민주화 투쟁을 했던 경력을 보아 뿌리가 같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배 대변인은 "손 전 지사는 여타 열린우리당 출신 후보에게 부족한 선진, 미래, 첨단의 이미지를 갖추고 있다"며 "지금 중요한 것은 열린우리당 정통성이 아니라 민심의 정통성 아니냐"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지나친 '쏠림'이 '역풍'을 부를지도 모른다는 전략적 경계의 시각도 나왔다. 386 의원들 내부적으로도 이 점을 고민하고 있는 분위기다. 오영식 의원은 "현재 대통합 작업을 마무리 짓고 있는 마당에 특정 후보에 대한 발언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최 의원도 "지나친 쏠림은 맞지 않다고 본다"며 "몇몇 후보들이 벌써부터 디스카운트 되는 경향이 있는데 시작부터 너무 쏠리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 의원은 "타후 보 디스카운트 문제도 (386 의원들 간에) 이야기를 하고 있기는 하나 우리끼리 나눠서 '누구는 어디로 가'라고 할 수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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