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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 그리고 일본 동경대 전공투를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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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 그리고 일본 동경대 전공투를 돌아보며

김민웅의 세상읽기 <256〉

오늘날 일본의 우경화는 어쩌면 1960~70년대 학생운동의 실패에 대한 반동적 결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반전과 반제, 그리고 민주적 변화를 내걸고 시작했던 학생운동이 점차 내부의 분파적 투쟁과 폭력의 연속에 의해 자멸적 과정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역설적이게도 우익의 정당성이 확보된 셈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전국적 규모의 학생운동이 좌절하면서 일본 시민사회는 과거에 대한 철저한 부정과 반성, 그리고 미래에 대한 행동력 있는 전망 제시의 능력을 상당부분 상실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전국적 변혁 운동은 정치적 기대를 접고 소시민화하거나 지역운동으로 자신의 위상을 바꾸어 나갑니다.
  
  그러나 60년대와 70년대 초반 일본의 학생운동은 그렇게 가볍게 처리하고 나갈만한 역사는 결코 아닙니다. 이 격동의 시기를 통과하면서 일본의 좌와 우는 자신의 역사적 진로선택에 있어서 매우 단단한 논리적 구조를 마련해나갔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유산은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 대 동경대 전공투(全共鬪) 1969-2000>는 그 치열했던 철학적 논쟁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우익 지식인으로서 뛰어난 문필력을 공인받았던 미시마 유키오는 일본 동경대학 야스다(安田) 강당에서 학생들과 일대 논전을 벌입니다.
  
  이 녹취기록은 당대의 40대 중반의 문필가와 20대의 학생들이 벌였던 철학논쟁이라고는 쉽게 믿어지기 어려운 수준의 충격과 종횡무진의 열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설의 격론'이라고 이름 붙은 이 현장의 대결은 자아와 육체라는 주제에서부터 천황의 역사적 존재에 이르기까지 화려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30년이 지난 뒤, 이 운동의 중심에 있던 인물들의 회고 토론도 가볍지 않았습니다.
  
  일본사회의 양심과 우경화된 군사주의의 대결은 그 역사가 깊고, 철학적 주제에 대한 섬세한 논의가 돋보입니다. 그에 더하여 이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일본 자신에 대한 이야기 말입니다.
  
  미시마 유키오는 야스다 강당에서의 논쟁 이후 1년 뒤인 1970년 일본 자위대의 각성을 외치며 할복자살을 하고 맙니다. 충격이었습니다.
  
  일본정신에 충실한 국가의 기틀을 바로 잡아나가지 못하면 일본의 미래는 없다는 경고였습니다. 그가 말한 일본정신에 대한 논란도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미국에 굴복하지 않는 당당한 일본 우익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우익이 미국의 지배를 갈망하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결국, 일본은 어떤 자아 정체성을 가져야 하는가의 문제로 압축되는 이 논쟁은 좌우의 이론적, 논리적 대결이 적어도 어느 수준에 이르러야 하는가를 일깨우고 있습니다.
  
  오늘날 역사논쟁에 뛰어든 일본 우익은, 그 논점에 대한 평가를 떠나서, 적어도 자기주장을 치열하게 내세우고 있으며, 진보세력은 소수파로 몰리고 있음에도 지치지 않고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를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들 좌우의 일본 지식인들이 내는 책들은 감당키 어려울 정도의 규모와 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 대세는 과거 일본의 구체제를 복원하려는 일본 우익이 쥐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보진영의 노력도 만만치 않습니다. 태평양전쟁에 대한 역사적 성찰을 비롯, 패전 후 미국의 점령시기에 대한 논쟁, 제국주의의 재편성과정에 대한 논전 등은 그 수준과 질, 그리고 양이 놀라울 정도입니다.
  
  이러한 현실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돌아보게 합니다. 진보적인 잡지 "세까이" 이번 호는 "동아시아 외교의 재구축"과 관련한 논의를 실었습니다.
  
  우린 그런 논의를 언론 매체와 잡지에 얼마나 담아내고 있는지요?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 우리 과거에 대한 논쟁, 우리의 미래적 지표에 대한 담론, 우리의 현실적 역량에 대한 점검 등 다시 깊게 따져볼 일이 하나둘이 아닙니다.
  
  '우리는 과연 지금 어떤 미래가 태어나게 하려는 것인가?' 이것이 우리에게 최대의 과제 아닙니까?
  
  진정한 논쟁이 없는 사회는 소모적인 입 싸움에 지쳐, 더 이상 참된 논쟁의 욕망을 잃어버리게 되지나 않을까, 그것이 걱정입니다. 30여 년 전의 동경대학 야스다 강당, 그 변혁의 물결은 우여곡절과 함께 과거지사가 되고 말았다 해도 당대를 걸머지고 가려 했던 열정만큼은 새삼 주목됩니다.
  
  이 시대를 좌우할 깊이있고 거침없는 논쟁 한번 보았으면 하는데, 우리의 좌와 우는 지금 너무 조잘해지고 만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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