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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 '급물살'…아프간 대통령 '시험대'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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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 '급물살'…아프간 대통령 '시험대' 올라

아프간 정부 안팎서 인질-수감자 교환에 부정적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의 용기가 시험대에 올랐다."

한국인 인질 23명과 탈레반 수감자 맞교환 문제를 두고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고민에 빠져있다. 맞교환을 거부하자니 인질들의 목숨이 위태롭고, 탈레반 수감자를 석방하자니 '테러범과의 협상은 없다'는 미국의 입장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탈레반이 24일 인질 8명과 수감자 8명을 우선 맞교환하자는 구체적인 안을 제시했고, 4번째로 설정했던 시한을 넘겨도 좋으니 협상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임에 따라 아프간 정부의 수용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그러나 지난 3월 이탈리아 기자와 탈레반 수감자 5명을 맞교환하도록 한 뒤 나온 미국과 국제사회 일부의 비판을 떠올린다면 카르자이 정권의 저울질은 이미 한 방향으로 기운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영국의 <더 타임스>는 24일 "카르자이 대통령이 인질을 살리는 조건으로 탈레반 무장대원들을 석방해서는 안 된다는 압력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무언의 압력 넣는 미국

피랍 사건이 발생한 후 미국은 네 차례에 걸쳐 입장을 밝혔다.

"우리는 한국 시민들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상황을 바라지 않는다. 인질구호를 위한 군사작전은 오로지 아프간과 한국 정부의 요청 이후에나 실시할 것이다." ‣ 22일 데이비드 악세타 아프간 주둔 미군 대변인

'피랍사태의 해결을 위해 미국이 적극적으로 협력할 용의가 있다.' ‣ 23일 윌리엄 스탠튼 주한 미국 대리대사(외교부 전언)

"(납치된 한국인들은) 그 누구에게도 위협이 되지 않는 무고한 시민들이다. 그들은 즉각 석방돼야 한다. 이 문제에 긴밀히 대처하고 있는 한국 정부를 지지한다." ‣ 23일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모든 국가에 큰 우려를 안겨주는 사건이다. 우리는 한국 정부와 (사태해결을 위해) 접촉하고 있다. (피랍자들은) 누구에게도 위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즉각 풀어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할 것을 납치자들에게 촉구한다." ‣ 23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여기에는 원론적인 수준의 우려만 담겼을 뿐 '협상'이나 '수감자 석방' 같은 표현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지난 3월 이탈리아 기자 석방 직후 "테러를 보상하고 추가 납치를 부추기는 것"이라던 매코맥 대변인의 비난을 감안한다면 미국의 이같은 반응은 '맞교환 불가'를 무언으로 압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카르자이 정권과 아프간 치안의 버팀목인 미국의 입장이 이렇다보니 아프간 정부가 택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압둘 칼리드 아프간 내무차관이 23일 "법을 어기는 거래는 하지 않을 것"이라며 "아프간 정부는 국가안보나 이익을 해치는 협상을 할 뜻이 없다"고 못 박았다.

납치세력이 한국 정부와의 직접 협상을 원하는 것 역시 아프간 정부 협상단이 수감자 석방이라는 핵심 요구사항에 있어 요지부동한 태도를 보이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아프간 정부 내에도 맞교환에 부정적 시각 우세

이탈리아 기자 석방 과정을 겪으면서 맞교환은 안 된다는 시각은 카르자이 정권 내부에서도 지배적인 흐름으로 굳어진 듯하다.

<더 타임스>는 탈레반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은 탈레반이 앞으로도 계속 인질극을 벌이도록 촉구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는 아프간의 상황이 인질과 탈레반 수감자 맞교환을 어렵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낭가라르 주(州) 출신의 물라비 아티울라 루딘 의원은 "흡사 탈레반은 물론이고 범죄인, 알 카에다 모두에게 (인질과 탈레반 수감자를 맞교환하는) 시장의 문을 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 신문은 또 이런 우려가 한국인 인질 사건이 벌어진 가즈니 주(州) 인근의 와르다크 주(州)에서 겪었던 지난 3월 이후의 경험으로 인해 더 커졌다고 전했다.

이탈리아 기자의 석방을 위해 맞교환된 탈레반 의지도급 인사들은 풀려난 뒤 왕성하게 활동했고, 결국 수도 카불에서 65㎞ 떨어진 와르다크 주를 탈레반의 '미니 거점(mini state)'이 되게 하는 나쁜 선례를 남긴 것으로 아프간 정부에 각인됐다.

이처럼 인질-포로 맞교환에 대한 미국의 눈초리가 매섭고 아프간 내의 반대 기류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카르자이 대통령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결국 돈으로?

한편 이처럼 인질-수감자 맞교환을 부정적으로 보는 게 아프간 정권 안팎의 시각이고, 23명이라는 많은 인질에 위해를 가하기에 부담을 느낄 수 있는 탈레반도 이같은 현실을 받아들인다면 결국 납치세력이 요구할 수 있는 건 돈 밖에 없지 않느냐는 관측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그간 아프간 주둔 한국군 철수와 탈레반 수감자 석방을 요구하던 납치단체가 24일 처음으로 돈 얘기를 꺼낸 것은 그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탈레반과 한국 협상대표단을 중재하고 있는 아프간 협상단의 일원인 코와자 아마드 세데키는 "이날 연락을 취해 온 탈레반측이 한국 정부로 하여금 인질들과 직접 전화통화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으로 10만 달러(약 9000만 원)를 제시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한국 정부 대표단이 피랍 한국인들의 최근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기를 원한다면 같은 액수의 돈을 따로 내야 한다는 탈레반측의 요구가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분쟁 지역에서 외국인이 납치됐을 때 피랍자의 고국 정부나 소속 회사에 천문학적인 몸값을 요구한다는 것은 각국 무장단체에게 일반적인 일이다.

독일 정부는 지난해 1월 이라크에서 납치된 독일인 기술자 2명을 석방하기 위해 1000만 달러(약 90억 원)를 지불했다고 독일 <ARD> 방송이 보도했었다. 아프간 탈레반도 지난해 10월 이탈리아 사진기자 가브리엘레 토르셀로를 납치했다가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200만 달러(약 18억 원)를 받고 풀어준 바 있다. 지난 3월 다른 이탈리아 기자의 석방 때에도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 수감자 5명을 풀어주는 것에 추가해 이탈리아가 탈레반에 200만 달러를 별도로 건넸다는 후문도 있다.

따라서 무장단체가 본격적으로 돈을 요구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 피랍자 구출 가능성은 비교적 높아질 것으로 보이지만, 인질 23명의 석방에 대한 대가로 탈레반이 요구할 금액은 상당한 규모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탈레반이 인질들과 전화통화를 하는 조건으로 10만 달러를 요구했다는 보도에 대해 우리 정부 당국자는 "그런 요구가 전달된 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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