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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포로가 된 美 반전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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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민주당의 포로가 된 美 반전운동

반전 '여론'은 높은데 반전 '운동'은 시들, 왜 그럴까?

미국의 반전운동이 침체의 늪에 빠져있다.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는 여론이 3분의 2를 넘고,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야당인 민주당이 승리한 것은 반전여론에 힘입은 바 크지만 정작 반전운동 자체는 시들하다.

이라크 전장에서 아들을 잃은 '반전 엄마' 신디 시핸의 눈물겨운 투쟁과 '코드 핑크' 등 일부 반전단체의 활동, 군대 지원 반대 운동 등이 주목을 받는 반전 움직임이 있긴 하다. 하지만 대중적인 운동으로 확산되지는 못하고 있다.

전쟁을 반대하는 논객들이 활동하는 진보적 웹사이트에는 시위의 개최와 참여를 독려하는 글 대신 '반전운동, 이래서는 안 된다' 류(類)의 글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왜 그렇게 됐을까? 베트남전을 종식시켰던 이유 중 하나였고, 1980년대 말 레이건 행정부의 중남미 군사개입을 반대하며 건재를 과시했던 미국의 반전운동은 왜 이토록 맥을 못 추고 있나?

미국의 진보적 웹사이트인 카운터펀치(www.counterpunch.org)를 운영자 중 하나인 독립 언론인 알렉산더 콕번은 최근 발간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서 "미국의 반전운동이 죽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활기를 잃은 것은 분명하다"며 그 이유를 분석했다.
▲ 2003년 이라크 전쟁 직전 워싱턴에서 벌어진 반전시위 장면. 들끓던 미국의 반전시위는 왜 잠잠해진 것일까? ⓒ연합뉴스

반전운동가들이 통탄할 이유 한 가지

첫 번째 원인은 징병제 폐지 때문이다. 쉽게 말해 '군대에 끌려가지 않아도 되니 전쟁을 반대해야 할 직접적인 이유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베트남전 당시 18세 이상의 미국 젊은이들은 언제 징집돼 전쟁에 투입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잠을 설쳤다. 그들은 매우 짧은 군사훈련만 받은 채 총알이 빗발치던 전쟁터로 끌려갔는데, 그같은 상황은 징집 대상인 젊은이들과 그 가족들이 반전집회로 발길을 향하게 했던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1973년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를 택했다. 따라서 현재 이라크에 있는 미군들은 명목상 모두 자원병이다. 거액의 연봉과 인기를 포기하고 군입대를 자원했다가 사망한 풋볼스타 팻 틸먼 같은 이들도 있고, 감옥 대신 전장을 택하는 범죄자들, 미국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받기 위해 이라크 복무를 요청하는 불법 체류자들, 전투수당을 받아 가난을 이겨보고자 하는 하류층 청년들이 대부분이다.

오직 평화와 정의를 위해 반전운동에 투신했던 이들이 듣는다면 실로 개탄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지만, 징병제 폐지가 반전운동을 약화시켰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진실이라는 게 콕번의 주장이다.

그는 "가까운 시일 내에 모병제를 채택하는 정치적인 모험을 감행할 미 행정부는 없어 보인다"라며 이같은 추세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예견했다.

부시에게 도움 된 민주당의 의회 장악

그러나 이같은 분석에는 반론이 가능하다. 모병제가 없어진지 한참 후였던 1980년대 말에도 반전운동이 다시 타올랐던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레이건 행정부는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반군이나 엘살바도르의 국민해방전선(FMLN) 등 중남미 좌파 무장세력을 깨뜨리려는 다양한 공작을 폈다. 이에 반전단체들은 대대적인 시위를 벌여 레이건 행정부의 발목을 잡았다.

그렇다면 20년 전까지만 해도 건재했던 미국의 반전운동이 이라크전 발발 직전 반짝 타올랐다가 꺼져버린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민주당의 역할 때문이다. 겉으로는 전쟁을 반대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부시 대통령과 한통속이 되어 전쟁을 뒷받침했던 민주당이 반전여론을 희석시키고 완충시켰기 때문이라는 게 콕번의 분석이다.

하원 의장으로 지난 3월 23일 이라크 철군 시한이 포함된 전쟁비용법을 통과시켰던 낸시 펠로시 민주당 의원의 홈페이지에 실린 글을 보자.

펠로시는 전비법에 명시된 대로 2008년 9월 이라크 미군을 철수하고 이동시킬 경우 미군이 할 일에 대해 "이라크에 남은 미군은 미국인 보호, 반테러 작전, 이라크 보안군 훈련 등에 활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라크에서 나오는 미군을 본토로 철수시키자는 것도 아니다. 펠로시는 그 병력을 아프가니스탄에 보내 알카에다와 싸우도록 하자고 말한다.

콕번은 펠로시의 이같은 계획이 이라크에 병력을 더 보내자는 부시 대통령의 구상과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르냐고 묻는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끝내 파기됐지만 전비법에 있었던 '2008년 9월 철군'도 엄밀한 의미의 철군시한은 아니었다. 단지 그 후로도 미군을 계속 주둔시키려면 전쟁 예산은 철군 목적에만 쓸 수 있도록 '제한될 수 있다'는 모호한 조항에 불과했다. 뒤이어 상원을 통과한 전비법도 철군을 요구하고는 있지만 구속력이 없었고, 오히려 부시 대통령의 요청보다 더 많은 전쟁예산을 승인했다.
▲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 낸시 펠로시 미 하원 의장은 전쟁 연합인가? ⓒ로이터=뉴시스

나아가 펠로시 의장은 하원이 가진 '지갑(예산)의 힘'을 무기로 '반전 의원'들의 입을 막는 수완까지 발휘했다.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하던 시절 진보적인 지역구 여론을 등에 업고 활발한 반전 활동을 했던 민주당의 샘 파 의원은 선거구인 캘리포니아 산타크루즈에 농업 보조금을 확충해 주겠다는 펠로시의 제안에 '매수'됐다. 또 다른 반전의원인 피터 드파지오 의원 역시 선거구인 오레곤 유진에 학교와 도서관을 확충하는 대가로 펠로시의 전비법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렇게 해서 반전여론을 타고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이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 한 일은 하나도 없다. 대통령이 여론을 돌리기 위해 이라크 사령관을 바꾸겠다면 대단한 명분을 얻은 양 만장일치로 추인해주어 반전여론을 억제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네이더가 반전시위에 나타나지 않은 까닭은?

민주당의 이같은 활동은 비단 의회 무대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은 반전운동 진영에 로비를 하는 것은 물론, 반전운동 단체를 직접 장악·운영하며 반전운동의 정치적 독립성을 약화시켰다.

이를 통해 민주당은 여론의 화살이 자신들을 포함한 정치권 전반이 아닌 부시 대통령에게만 집중되도록 유도함으로써 반전표를 민주당에 대한 지지표로 변환시켰다.

반전운동에 민주당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단적인 증거는 지난 1월 27일 워싱턴에서 있었던 반전시위였다. 전쟁 전과 비교할 때 턱없이 부족한 4만명의 시민들이 '운집'했던 이날 시위에는 이런 자리라면 반드시 있을 법한 사람 한 명이 보이지 않았다. 미국의 유명한 소비자운동가이자 녹색당 당수인 랄프 네이더다.

이라크전 반대 활동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네이더가 이날 시위에 나오지 못한 것은 시위를 주도한 미국 평화정의연합(UPFJ)이 그를 초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당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UPFJ는 네이더를 싫어하고 있다. 그가 2000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였던 앨 고어의 표를 가져가지만 않았다면 민주당 행정부가 들어설 수 있었다는 '앙심'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떤 정치세력으로부터도 독립적이어야 할 반전운동에 민주당의 정파적인 시각이 강하게 작용하는 상황에서 운동의 순수성은 손상될 수밖에 없었다.

'반전 엄마' 신디 시핸은 지난 8일 "민주당의 리더십에 배신감을 느꼈다"며 2008년 의회 선거에 출마해 펠로시 의장과 같은 지역구에서 맞대결을 펼치겠다고 선언했다.

그가 부시 대통령을 비난하면서도 정작 정치무대에서는 펠로시 의장의 '저격수'를 자처한 것은 들끓는 반전여론이 권력자들을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3년여 동안의 '밑바닥 반전운동'은 시핸에게 모순의 핵심을 볼 수 있는 눈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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