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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정책 계승 논란으로 시간 낭비할 때 아니다"

한반도브리핑 <59> 美 이라크 전쟁 논란과 한반도

미국에서는 지금 이라크 전쟁에 대한 논란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 지난 5월 조지 부시 행정부가 요청한 추가 전쟁비용 지출 법안에 이라크 미군의 철수 일정을 삽입하려는 민주당의 시도가 좌절되면서 당분간은 추가파병을 통해 안정을 확보하겠다는 '새로운' 이라크 전략이 별다른 저항없이 추진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증파가 시작된 지 이번주로 6개월이 됐지만 뚜렷한 진전이 없는 이라크 상황에 대한 국민의 여론은 극도로 악화되고 있고, 여론의 변화를 반영해 공화당 내에서도 리처드 루가 상원의원 등이 현 이라크 정책을 근본적으로 수정하라고 요구하고 나서면서 이라크 논란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 들었다. 이에 민주당은 철군을 요구하는 새로운 법안 제출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관심을 끈 것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이 백악관에서 열릴 이라크 문제 토론에 참석하기 위해 남미 방문을 취소한 일인데 <뉴욕타임즈> 등 유력 일간지들은 백악관 내에서도 이라크 정책을 수정하고자 하는 논의가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물론 토니 스노 백안관 대변인은 증원전략은 이제 막 출발선에 서 있기 때문에 당장 수정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언론의 추측을 일축했다. 그러나 이라크의 상황이 미국이 이라크에서의 진전을 평가하기 위한 기준(벤치마크, benchmark)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이라크 미군 사령관 페트라에우스 중장이 새로운 전략에 따른 이라크에서의 진전 상황을 의회에 보고하기로 돼 있는 올해 9월 15일을 전후로 부시의 이라크 정책은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게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잡지를 통해서나 활동하게 된 네오콘
▲ 백악관에 남은 몇 안 되는 '네오콘'인 딕 체니 미 부통령(가운데)이 '현실주의자'로 분류되는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안보보좌관(왼쪽)과 존 네그로폰테 국무부 부장관(오른쪽)에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안정을 중시하는 현실주의의 부상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로이터=뉴시스

이라크 전쟁을 둘러싼 논란에 관심이 가는 것은 그것이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는 과연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가 출범한 후부터 미국의 중동정책과 한반도 정책 사이에는 미묘한 연관성이 생기게 됐다. 2006년 가을, 필자가 연구년을 보내고 있는 하버드대학이 개최한 한 세미나에 참석한 부시 행정부의 전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관계자는 이라크 전쟁이 미국의 대 중국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쳤냐는 청중의 질문에 대해 "(대중국정책에는 별 영향이 없었지만)한반도에는 적지 않은 영향이 있었다"라고 답했다. 이라크가 아니었다면 한반도가 미국의 군사행동의 대상이 됐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라크와의 기묘한 인연은 올해 다시 반복되고 있다. 즉 미국이 현재 북한과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은 미국이 이라크에서 심각한 곤경에 빠진 것과 적지 않은 관련이 있다. (필자는 <프레시안>의 지난 1월 17일자 '한반도브리핑'을 통해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부시 행정부와 핵문제 해결을 시도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관련기사 : "북핵문제를 부시 임기 내에 풀어야 하는 까닭")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이라크 민중이 어쩌면 한반도 민중의 짐까지 대신 지고 있는 형국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라크 논란과 관련해서 우리는 이런 표면적인 연관성을 넘어서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즉, 이라크 전쟁 논란에 따른 미국 대외정책의 변화가 한반도와 동북아에는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현재 미국의 새로운 대외정책 노선으로 많은 언급되는 것은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퇴조와 현실주의의 등장이다. 최근 이라크 논란이 가열되면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언급되고 있는 시나리오는 기본적으로 지난해 말 이라크연구그룹(ISG)이 제출한 것과 유사하다.

이는 현재와 같이 미국이 이라크 내전에 개입하는 상황이 계속되는 것과, 그렇다고 미국이 이라크를 공백으로 남기고 철수하는 것 모두를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을 간주한다. 따라서 미군을 이라크 국경을 보호하고 알카에다 등의 테러리즘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재배치(상당한 병력의 철수와 함께)하고, 외교적으로는 이란 및 시리아와의 협상을 추진하며, 이라크에서의 안전을 찾는 것을 새로운 전략의 핵심적 내용으로 삼고 있다.

이는 이라크 정책의 중점을 '레짐 체인지(정권교체)'와 중동에서의 민주주의 확산과 같은 이념적인 것에서 이라크에서 안정 회복으로 제한하고, 정책 수단으로는 일방주의적이고 적극적인 군사행동보다는 외교적 노력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현실주의와 맥이 닿아 있다.

물론 네오콘들은 여전히 레짐 체인지를 보장할 수 있는 충분한 병력을 유지하지 않았고 치안 책임을 이라크 정부에 성급하게 넘기려고 했던 도널드 럼스펠드 전 국방장관의 군사전략에 이라크 실패의 책임을 돌리면서, 올 1월부터 시작된 증원전략이 이라크의 상황을 개선시키고 자신들의 정당성이 재확인받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

현재 높아지는 철군 여론에 네오콘들은 <위클리 스탠더드> 등의 매체를 통해 여론에 굴복하지 말고 효과를 볼 때까지 증원전략을 계속 견지해야 한다며 부시 대통령과 페트라에우스 사령관을 응원하고 있다. 그러나 백악관, 국방부, 국무무에서 대외정책을 주무르던 네오콘들이 이제는 자신들의 매체를 활용한 응원에나 주력하고 있는 상황 자체가 네오콘의 퇴조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네오콘→현실주의 전환의 한계

네오콘의 퇴조와 현실주의 강화는 두 가지 점에서 한반도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네오콘은 기본적으로 전체주의 체제와의 협상은 가능하지 않다는 전제 하에 북한, 이라크, 이란과의 협상에 회의적일 뿐 아니라, 소위 안정(stability)을 주요한 목표로 삼는 키신저식의 현실주의에 강한 혐오감을 표현해왔다.

그러나 네오콘이 밀려난 지금의 상황에서 미국은 한반도정책에서 레짐 체인지라는 목표가 차지하는 비중을 크게 낮출 것이며, 힘의 균형을 통한 역내의 안정을 주요한 목표로 삼게 될 것이다.

또한 네오콘은 미국의 압도적인 힘, 특히 군사적 우위를 전제로 한 더 공격적인 군사행동과 일방주의를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고 미국의 이익을 지키는 근본적인 수단으로 삼았다.

그러나 네오콘의 퇴조는 중국 및 러시아 등 다른 대국의 군사적 대응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동북아 및 한반도에서 군사적 옵션을 사용할 가능성도 크게 낮출 것이다. 이라크의 상황은 미국의 힘의 우위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문제를 일방주의로 해결할 수는 없으며, 소위 '레짐 체인지'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이미 보여주었다.
▲ 미국의 현실주의가 새로운 질서의 형성을 촉진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약하다면 상황의 변화를 촉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동력으로서 남북관계가 갖는 의미는 더욱 커질 것이다. 사진은 지난달 13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매현중학교에서 진행된 '6.15 남북공동선언 7돌 기념 남북 공동수업'에서 학생들이 남과 북을 절대 떨어질 수 없는 김과 밥의 관계로 개사한 가요 '김밥'을 부르고 있는 장면 ⓒ연합뉴스

그러나 과연 현실주의로의 전환이 동북아 및 한반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현실주의는 상황의 변화보다는 기존에 형성된 힘의 관계를 안정화시키는 것을 대외정책의 핵심적 목표로 삼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논리가 현재 동북아와 한반도에 그대로 적용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힘의 균형이라는 논리로 상황을 관리하기는 동북아와 한반도의 내적 역동성이 지나치게 강하기 때문이다.

우선 북핵문제 해결과 북미 관계정상화는 남북관계의 발전, 나아가 한반도 통일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며 그 자체로 동북아 힘의 균형을 크게 변화시킬 것이다.

물론 현실주의자들이 지배했던 아버지 부시의 행정부가 독일 통일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는 점에서 현실주의가 이러한 변화에 반드시 소극적일 것이라고 규정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었던 과거 유럽의 상황과 달리 동북아에서는 중국이 부상하고 동북아에서 미국의 패권을 위협 혹은 약화시키고 있다는 점이 미국의 행동에 커다란 제약을 가하고 있다.

즉 동북아에서는 한반도 통일과 중국의 부상을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그랜드 비전'을 필요로 하고 있다. 미국이 이러한 비전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북미 관계정상화 과정에서 체제 안전에 대한 우려를 씻기 힘든 북한의 전략적 결단에 못지않게 미국의 전략적 결단 역시 어려울 것이다.

네오콘은 민주주의의 확산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에 가까운 단순한 그랜드 비전에 집착했다면 현실주의는 유지되기 힘든 기존 질서의 안정을 넘어서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미국 대외정책의 현실주의로의 전환은 단기적 안정에는 도움을 주지만 새로운 질서를 발전시키는 추진력을 제공하기는 힘들 것이다.

97년 대선과 2007년 대선의 차이

그렇다면 이제는 그 추진력을 어디에서 만들어낼 것인가라는 문제가 우리에게 남는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추진력을 만드는 데에 지나치게 성급해도, 지나치게 소극적이어도 모두 문제라는 사실이다.

당장은 어느 정도 조심스러운 태도가 필요하다. 한반도와 동북아에서는 지금이 네오콘식 대외정책의 부정적인 유산을 해소하고 주요 당사자들 사이에 대화가 가능한 국면으로 막 전환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현실주의의 강화가 갖는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

하지만 성급한 판단과 행동은 이런 변화를 가로 막을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미국이 후퇴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미국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는 방식은 이러한 전환을 가로막고 새로운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 그리고 일본에 대한 비판은 필요하지만 일본을 성급하게 배제시키려는 식의 움직임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관련 당사국의 대화가 안정 국면에 들어서게 되면 문제를 미래지향적으로 해결하는 방향으로 협상을 발전시킬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해질 것이다. 예컨대 6자 외무장관 회담은 이러한 전환을 보여주는 벤치마크(기준잣대)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국면에서는 직접 당사자인 남북관계의 중요성이 높아질 수 있는 기회가 증가할 것이다.

특히 미국이 새로운 질서의 형성을 촉진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약하다면 상황의 변화를 촉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동력원으로서 남북관계가 갖는 의미는 더욱 커질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전환점이 남한의 대통령선거 국면과 겹칠 가능성이 많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립하는 후보들 사이에 햇볕정책의 계승이냐 아니냐 하는 추상적인 논란은 많지만 이러한 전환을 어떤 비전과 전술을 가지고 추진할 것인가라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 않은 것은 매우 우려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올해 대통령선거는 1997년 금융위기 상황에서 모든 대통령 후보가 IMF로부터 협정에 서명을 할 것을 요구받았던 급박한 상황에 이어, 또 다른 역사의 중요한 분수령에서 치러지게 될 것이다. 당시에는 서명이라는 행동이 우리에게 치욕으로 남아 있지만 이번에는 행동하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 치욕과 상처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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