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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샤라프의 '위험한 양다리', 공멸을 부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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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무샤라프의 '위험한 양다리', 공멸을 부르나

[분석] '붉은 사원' 사태와 무샤라프 정권의 운명

'붉은 사원'을 둘러싼 파키스탄 정부군과 이슬람 강경세력간의 대치가 결국 유혈참변으로 끝나면서 파키스탄 무샤라프 정권의 향방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동안 국내 탈레반 세력의 암약을 눈감아 오면서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유지해 왔던 무샤라프 정권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내 이슬람 강경세력과 정면대결로 치달을 수밖에 없게 됐기 때문이다.

붉은 벽돌로 지어져 '붉은 사원'이라 별칭이 붙은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랄 마스지드 사원이 피로 물들고 있다. 10일 파키스탄 정부가 이슬람주의자 수백여 명이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는 사원 안에 진압군을 투입해 정부군 3명과 40명이 넘는 무장대원이 사망한 것이다. 랄 마스지드 사원은 1만 여명이 넘는 탈레반 대원들로 구성된 랄 마스지드 여단의 근거지로 사용돼 왔다.

문제는 정부군의 진압이 랄 마스지드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페레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은 최근 아프가니스탄 접경의 준자치 지역인 북서변경주(NWFP) 인근에 1만 여명 규모의 정부군을 배치해 대규모 진압작전을 예고하고 있다. 여기에선 급진 이슬람 단체 테흐리크-니파즈-이-샤리아트-모하마디(TNSM)가 정부군의 표적이다. TNSM는 랄 마스지드와 동맹관계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북부 와지리스탄 인근에서도 정부군이 대규모 군사 작전을 준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파키스탄 정부가 일부 이슬람 무장단체를 향해 총구를 들이대고 나서자 파키스탄 전역의 이슬람 세력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바자르 북서부 지역는 복면을 하고 소총을 든 무장대원만 2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들은 정부군 4명을 인질로 잡고 랄 마스지드에 대한 진압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붉은 사원' 사태를 계기로 정부군 대 이슬람 단체 간의 전선이 형성된 것이다. 이 살벌한 대치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대테러 활동을 벌이고 있는 미군 주도 NATO 연합군이 파키스탄에 배치될 수도 있다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한 손엔 탈레반을, 한 손엔 부시를
▲ 무샤라프 정권의 탈레반 진압이 파키스탄 전역에서 유혈충돌을 낳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일 파키스탄 정부군이 사원 인근에서 랄 마스지드 여단의 대원들을 연행하는 모습. ⓒ로이터=뉴시스

사실 파키스탄 내에서 친 탈레반 조직은 파키스탄이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980년대 미국은 아프간을 점령한 소련군을 몰아내기 위해 이슬람 전사(무자헤딘)을 대대적으로 지원했으며 이 과정에서 파키스탄은 정보기구를 앞세워 탈레반세력을 양성해 왔던 것이다. 이를 통해 파키스탄은 탈레반의 후원세력으로, 탈레반은 정권 지지세력으로 공생관계를 유지해 왔다. 사실 이슬람 인구가 1억6000명에 달하는 이 나라에서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은 '건드리기 겁나는' 집단이기도 했다.

다른 한편 무샤라프 대통령은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대 테러 전쟁'의 동반자이기도 하다. 9.11사태 이후 미국이 대대적인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하면서 무샤라프는 미국의 긴요한 동맹세력이 된 것이다. 친미 성향으로 파키스탄 내에서는 '부샤라프'란 별명도 붙기까지 했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정권 유지를 위해 한 손은 미국을 적대시 하는 탈레반 세력의 손을, 다른 한 손은 탈레반 진압을 원하는 부시 행정부의 손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뻔한 눈속임에 넘어갈 부시 행정부가 아니었다. 올해 초부터 부시 행정부는 탈레반 세력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고 알카에다와 탈레반 잔당 진압을 본격화하라는 압박이 시작됐다. 지난 2월 딕 체니 부통령이 파키스탄을 방문해 무샤라프 대통령의 미온적인 자세를 질타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무샤라프 대통령도 미국의 압력에 버티고만 있을 처지가 못 됐다. 파키스탄은 미국의 동맹국이면서 동시에 자국 내에 상당수 이슬람 과격세력이 있다는 점에서 사우디와 유사하다. 예컨대 9.11 테러범 19명 중 15명이 사우디 국적이라는 점에서 9.11테러 직후 미국과 사우디 관계는 한때 경색됐었다. 하지만 세계 1위 석유 매장량을 갖고 있는 사우디에 대해 미국이 이래라 저래라 하기는 어려운 입장이다. 반면 파키스탄은 미국의 원조에 대단히 크게 의존하고 있다. 미국이 이슬람 강경세력을 진압하라고 압력을 가하면 거부하기 어려운 처지라는 얘기다.

돈줄을 대던 미국마저 잃을 경우 권좌에서 내려와야 할 처지가 된 무샤라프 대통령은 탈레반의 손을 놓는 편을 택했다. 이슬라마바드 도심의 사원을 차지하고 파키스탄 정부청사 일부까지 버젓이 사용하고 있던 랄 마스지드 여단에 총부리를 겨눈 것은 그 시작이었다.

이에 파키스탄 정보기구(ISI)의 전 국장인 하미드 굴 씨는 최근 <아시아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랄 마스지드와 관련된 모든 상황은 파키스탄 정부가 두 이해가 상충하는 두 그룹, 즉 지하드와 워싱턴과의 동시에 관계해 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굴 씨는 ISI 국장으로 재직하면서 파키스탄, 카슈미르,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지하드 운동을 조직한 '기획자' 역할을 맡기도 했다.

탈레반 진압 계속할 경우 '정부 대 이슬람' 싸움 될 수도

무샤라프 대통령은 자신이 '키워준' 탈레반 세력이니 만큼 통제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리라 가볍게 여기고 진압작전에 들어간 모양이지만 문제는 상황이 녹록치 않으리라는 데 있다.

이슬람교도들에게 랄 마스지드 사원에 대한 공격은 '탈레반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이슬람 사원에 대한 공격'으로 여겨지고 있다. 자칫 정부가 종교가 전쟁을 벌이는 판국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전선은 걷잡을 없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파키스탄 내에는 이슬람 사원이 25만 개에서 27만5000 개 정도로 추정된다. 이슬라마바드 내에만 신학교가 88개고, 여기서 공부하는 신학도가 1만 6000명이다. 신학교와 다른 개념의 종교학교까지 합치면 그 수는 두세 배로 늘어난다.

<뉴욕타임스>는 종교적 열기를 드러내는 예로 최근 이슬라마바드의 데오반디 지역에서 치러진 이슬람 종교 시험을 들었다. 작년에 이맘때 치러진 시험에 랄 마스지드와 연관된 두 곳의 신학교 응시생은 3000명이었다. 그런데 지난 7일 치러진 시험에는 1만 700명이 응시했다. 현지신문조차 "갑자기 학생들이 몰려든 이유를 모르겠다"고 반문했을 정도의 급증이었다.

랄 마스지드 사원 안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여단의 대장 압둘 라시드 가지는 8일 개인적으로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언론 매체에 핸드폰 문자 메시지를 보내 "우리는 우리 몸에 폭탄을 묶고 있고 끝까지 싸울 것"이라며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탈레반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울라나 사미 울 하크는 "랄 마스지드가 사원이 파괴되면 자살폭탄 테러가 파키스탄 전역을 휩쓸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파키스탄 정부군이 파키스탄 내 이슬람교도 전체를 공격하게 되는 최악의 수를 면하는 길은 랄 마스지드를 비롯한 탈레반 세력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고 이들의 요구대로 안전한 퇴로를 보장해 주는 것뿐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테러와의 전쟁에 미온적"이란 부시 행정부의 질책을 피하기 어렵다. 무샤라프 정권에 대한 신뢰를 버린 미국 정부가 파키스탄 내 대 테러 전쟁의 동반자로 '새로운 세력'을 낙점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무샤라프 대통령이 정권유지를 위한 묘책으로 여겨졌던 '양다리'가 벗어날 수 없는 '덫'이 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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