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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스가 BBC 기자 석방에 '올인'한 속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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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스가 BBC 기자 석방에 '올인'한 속내는?

'과격무장세력' 아닌 '정치세력'으로 국제신뢰 얻으려는 듯

지난 3월 12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납치됐던 <BBC> 특파원 앨런 존스톤 기자가 4일 석방됐다. 납치된 지 114일 만이다. 이번 석방은 지난 달 파타의 무력투쟁 끝에 가자지구를 장악한 하마스의 적극적인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 하마스는 또 존스톤 기자 석방 직후, 지난해 6월 팔레스타인 과격단체에 의해 납치된 이스라엘 병사의 석방 문제를 논의하자고 이스라엘측에 제안했다. 미국 등 서방 측에 의해 테러단체로 낙인 찍혀 국제 왕따가 된 하마스의 이같은 행보는 무엇을 노린 것일까?

납치는 가자지구 내 과격 무장단체인 '이슬람 군대'의 소행이었다. 존스톤 기자는 가자지구 내 지하드 조직인 '도그무시'의 한 분파인 이 조직이 "팔레스타인-이스라엘 갈등에는 관심이 없고 알카에다의 반미주의에 자극을 받은 듯 보였다"고 전했다.

지난달 24일엔 존스톤 기자의 허리에 자살폭탄벨트가 둘러진 사진이 '이슬람 군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공개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기도 했다.

존스톤 기자를 사지에서 건져낸 것은 지난달 가자지구를 장악한 하마스 군이었다. 하마스 병사들은 2일 저녁 가자 지구 내 '도그무시' 본부 지붕으로 올라가 건물의 전기선을 모조리 끊은 다음 총을 들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이슬람 군대'의 대장을 비롯한 일부 세력을 체포했다.

대장이 체포됐다는 소식에 '이슬람 군대' 측은 일단 포로로 잡고 있던 친 하마스 계열 학생 9명을 먼저 석방한 다음 존스톤 기자의 신병도 하마스 측에 넘겼다. 4일 새벽 하마스의 이스마엘 하니야 총리 공관으로 옮겨진 존스톤 기자는 하니야 총리와 아침 식사를 함께한 다음 날 이스라엘 영국 대사관으로 인도됐다.

존스톤 기자는 석방 후 기자회견에서 "하마스가 은신처를 급습하지 않았다면 내가 인간방패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절반"이란 말로 하마스의 구출 노력에 감사를 표했다.

하마스가 이렇게 온건할 수가…
▲ 가자지구에서 지하드 조직에 납치됐다가 하마스의 구출작전으로 114일 만에 석방된 앨런 존스톤(왼쪽) BBC 특파원이 이스마엘 하니야 총리 손을 잡고 기쁨을 나누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이 일련의 과정에서 '급진' 하마스의 '온건한 태도'가 눈길을 끄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난 달 가자지구에서 친미 온건파인 파타당 세력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일주일 여간 총격전을 벌이며 수십 명의 사상자를 냈던 하마스가 영국 출신 기자 석방에 더없이 각별한 정성을 기울인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테러 단체'로 규정한 하마스가 맞나, 어리둥절할 정도다.

이에 <타임> 인터넷 판은 "하마스가 존스톤 석방을 통해 가자지구에서의 장악력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려 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하마스가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미국의 동맹 영국계 기자 구출을 위해 구출작전을 펼친 노림수가 여기에 있다는 얘기다.

서구의 주장과 달리 하마스는 민주적 정당성을 갖춘 팔레스타인의 정치세력이다. 작년 1월에는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서 공히 치러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승리해 정권을 잡기도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비롯한 서구 국가들은 하마스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오히려 지난 달 총선에서 패배한 파타당의 마무드 압바스 자치수반이 꾸린 임시내각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하마스를 팔레스타인 정치에서 배제시켜버렸다.

이에 반발한 하마스는 자신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던 가자지구에서 파타당을 아예 쫒아내 버렸다. 그리고선 군소 지하드 조직 정도는 쉽게 무력화시킬 수 있는 치안 능력을 대내외에 과시하며 서구의 오랜 고민거리를 해결해 줬다. 압바스 수반이 이끄는 임시내각에 대한 지지세가 팔레스타인의 다른 반 쪽인 서안지구에서조차 흔들리고 있는 것과 대조를 이루는 모습이다.

이 뿐만 아니라 하마스는 이번 사건을 통해 반미감정으로 납치를 일삼는 과격조직과는 '급이 다른' 조직임을 국제사회에 알릴 수 있게 됐다. 서구의 색안경을 벗기고 역내 안정을 '해치는' 세력이 아닌 안정을 '유지하는' 세력으로 정치적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든 것이다.

이스라엘 병사 석방까지 성사된다면?

물론 이 한 가지 사건만으로 하마스를 적대시 해 온 서구의 태도가 급변하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유럽연합 외교위원회의 크리스티나 갈라츠 대변인은 "이번 사건이 유럽연합과 하마스 간의 관계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리라 기대하기는 이르다"며 "하마스에 대한 근본 정책이 바뀔 것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단 연신 하마스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존스톤 기자의 모습을 보는 서구인들의 눈빛이 달라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

게다가 하마스에는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카드를 한 장 더 쥐고 있다. 역시 '이슬람 군대'가 작년 6월에 납치해 간 것으로 추정되는 질라드 샬리트 이스라엘 상병을 석방시키는 일이다. 샬리트 상병 납치 사건은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간 갈등으로 번져 작년 7월 레바논 전쟁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실제로 하마스 소속의 하니야 총리는 존스톤 기자가 석방된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이스라엘에 대해 샬리트 상병 석방을 위한 협상을 시작하자고 촉구했다. 이스라엘에 잡혀 있는 팔레스타인 포로와의 교환협상을 하자는 것이다.

이에 데이비드 베이커 이스라엘 정부 대변인은 "하마스는 여전히 샬리트 상병을 납치해 간 테러조직"이라면서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고 샬리트 상병을 석방하느냐가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샬리트 상병의 납치범으로 '이슬람 군대'가 아닌 하마스를 지목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샬리트의 일방적 석방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아직은 협상 의지가 없음을 내비친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샬리트 상병의 석방을 원한다면 결국은 하마스와의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스라엘도 하마스에 대한 적대정책만을 고집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지하드 조직에 납치된 인질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하마스를 계속 '테러단체'로 규정하는 일은 국제 사회의 공감을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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