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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도 없어, 월급도 없어, 여권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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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도 없어, 월급도 없어, 여권도 없어"

가자의 곤경..."하마스 물러나면 알카에다 들어설 것"

이스라엘과 미국은 팔레스타인을 갈라놓기로 작정한 듯하다. 이스라엘을 인정하는 온건 파타당과 마무드 압바스 자치정부 수반을 품는 대신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하마스 정권은 내치기로 한 것이다.

1일 이스라엘 정부가 전달을 보류하고 있던 팔레스타인 세금을 압바스 수반이 이끄는 비상내각에 전달한 것은 그 신호탄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이 돌려준 5000만 달러는 파타당 통제력 아래 있는 서안지구의 회생을 위해서 쓰일 예정이다.

반면, 팔레스타인의 또 다른 반쪽, 가자지구는 더 극심한 제재에 시달리고 있다. 이미 물자 공급로가 끊긴 가자지구에서는 각종 생필품난이 시작됐고 압바스 정부는 가자지구에서 발급된 여권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몽니를 부리며 가자지구 주민들의 발을 묶어버렸다.

하마스가 장악하고 있는 지역의 숨통을 죄고 죄다 보면 민생고에 시달린 주민들이 하마스에 저항을 하고 나올 것이란 계산에서 가자지구 제재 강도를 높이는데 이스라엘과 파타당이 협력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지난 달 26일 발행된 이집트 주간 <알 아흐람 위클리>는 이스라엘과 파타당이 오판을 하고 있다는 팔레스타인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경제적·군사적 제재가 오히려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하마스에 대한 지지를 강화할 것이란 이유에서다.

가자지구를 극단의 상황으로 몰아가면 하마스가 물러나기는커녕 반 이스라엘 감정을 둥지삼아 알카에다와 같은 과격 세력들이 움을 틀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다음은 <알 아흐람 위클리>의 르포기사 "파타의 죽음의 키스?(Kiss of Death for Fatah?)"를 전문 번역한 것이다.
(☞원문보기)

가자지구, 다시 '장작의 생활'로

여덟 살배기 무흐나드는 확실히 긴장해 있었다. 마치 아궁이 위에 앉혀 놓은 것 마냥 안절부절 못했다. 그의 아버지는 솥 아래에 지펴놓은 불에 땔감을 던져 넣었다. 아이들은 제 아비 입에서 옥수수 알갱이가 다 익었다는 말이 떨어질 때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아이들의 아버지 압둘 라흐만 빈 아위데흐(44)는 가축 매매업자다. 아위데흐 가족은 가자지구 한 중간에 마련된 알 마가지 난민촌 중에서도 서쪽지역인 피르켓 알 위즈에 살고 있다. 이 가족은 하루에 한 번, 점심때만 가스를 사용해 요리를 한다. 공급받은 가스가 11명 가족이 사용하기에 턱 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가자지구에 거주하고 있는 압도적 다수의 주민이 압둘 가족과 같은 형편에 놓여 있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점령하고 있는 하마스에 대한 화풀이로 가자지구에 연료 공급을 중단할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교외건 난민촌이건 대도시건 할 것 없이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땔감으로 요리를 하는 가구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앞으로 언제 가스 공급이 끊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만은 아니다. 이미 대다수 가구가 가스를 구입할 형편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누적된 민생고의 결과다.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점령하고 난 뒤부터 이 지역에 대한 경제 제재는 심화됐다. 심지어 최근 몇 달 동안에는 공무원들도 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다.

▲ 이스라엘과 파타군의 공격으로 집을 잃은 가자지구의 어린이들. ⓒ로이터=뉴시스

공무원도 월급 못 받은 지 여러 달


니달 아부 사메하(26)는 택시 운전사다. 가자지구를 돌아다니며 승객들을 실어 날라 돈을 벌었다. 23일 아침 그의 얼굴에는 짜증이 배어있었다. 가자지구 중심지인 데어 알 바라흐에서 가자시티까지 들어가는 손님이 나 하나뿐이었던 것이다. 손님을 모으기 위해 난민촌 두 곳을 둘러 왔지만 상황은 같았다. 아부 사메하는 그의 길고 덥수룩한 머리를 매만지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이 일로 먹고살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경제상황이 어려워지고 공무원들까지 급여를 못 받게 되면서 사람들이 움직이지를 않다보니 손님을 찾을 수가 없다. 죽을 지경이다."

주민들의 구매력 저하는 가자지구 경제 상황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다. 이브라힘 알 아시(52)와 자말 아비드(49)는 가자시티에서 가장 큰 시장인 알 자위야 시장 근처 상점 주인들이다.

알 아시와 아비드는 요즘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장악한 이후 예상되는 시나리오 얘기를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가뭄에 콩 나듯 들르는 손님과 근처 모스크에서 기도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그들의 대화를 방해할 뿐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손님들이 넘쳐서 움직이기도 힘들 만큼 번잡했던 곳이다.

의료 서비스 무력화

경제사정 악화는 가자지구의 의료 부문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알 마가지 난민촌 내 알 티비 병원연맹 국장인 자말 칸딜은 이 지역에서 환자들이 줄고 있다고 말했다. 어려워진 경제 때문에 성형수술이나 치과치료 등 병원비가 비싼 항목부터 치료횟수가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가자지구에서는 부자도 별 소용이 없다.

모하메드 엔샤스(43)는 가자지구 내에서도 부촌으로 이름난 알 리말 알 자누비에 살고 있다. 그런 엔샤스가 23일 오후 동네 과일 가게를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왔다. 사려고 했던 수박과 멜론이 없었던 것이다. 다른 과일들은 이미 오래 전에 진열대에서 사라졌고 마지막까지 살 수 있었던 과일이 수박과 멜론이었다. 이스라엘이 카르니 국경 검무소를 봉쇄하고 난 뒤부터 가자지구엔 과일 공급이 끊겼다.

가자지구 내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위협하는 것은 경제적 압박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북동부 가자 지구로 이스라엘인들이 곧잘 침입해 들어온다.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을 암살하기 위해서다.

아흐메드 알 마스리(59)는 최근 일생일대의 결단을 내렸다. 30년이나 외지 생활을 했으니 고향인 가자지구로 돌아가 여생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평화롭고 조용한 생활을 꿈꾸며 그는 가자지구 동편 국경지대인 알 카라라에 5두남(유대인 측량단위) 가량의 땅을 샀고 경관이 뛰어난 곳에 대저택을 지었다.

그런데 알 마스리는 꿈에 그리던 평화로운 생활을 하긴 커녕 단 하루도 조용히 지낼 수가 없었다. 점령군이 계속해서 침입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는 점령군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의 벽에는 하마스 정권의 이스마엘 하니야 총리가 카피에(아랍 남성두건)를 두르고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가자지구 발행 여권 인정 안 돼

가자지구 내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마무드 압바스가 구성한 비상정부와 하니야 총리가 이끄는 실제 통치하는 정부 간 알륵에 희생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가장 경악하게 만든 것은 가자지구에서 발행한 여권을 비상정부가 인정하지 않기로 한 일이다. 처음부터 가자지구에서 발행된 여권이든, 가자지구에서 연장한 여권이든 간에 하마스 정부의 도장이 찍힌 여권은 무조건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이내 가자지구 내 이슬라믹 대학 학생인 모하메드 알 나이미(24)는 곤경에 빠졌다. 가족과 함께 잠시 사우디아라비아에 머물고 있는 동안 이집트에서 가자지구로 들어가는 라파 국경 검문소가 봉쇄된 상태에서 여권이 만료돼 더 이상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머물 수도 없게 된 것이다.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이 청년의 사정보다 더 복잡한 일이 있으랴.

"하마스 죽이려던 이스라엘, 알카에다 부를 수도"
▲ 가자지구에서 하마스 군과 총격전을 준비 중인 파타군.ⓒ로이터=뉴시스

하마스가 가자지구 통제권을 거머쥔 이후부터 이스라엘 미디어는 하마스 정권을 뒤집고 압바스에게 정권을 되찾아주자는 데 압바스부터 미국 정부, 이스라엘까지 모두가 동의했다고 주장해 왔다. 이스라엘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압바스가 이끄는 비상정부는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 대해 각각 다른 경제 환경과 안보 환경을 제공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전달을 보류하고 있던 팔레스타인 세금 5000만 달러를 모조리 압바스의 비상내각에 전달할 예정이다. 압바스는 이 돈을 서안지역 경제 회생에만 쓸 것이 분명하다. 반면, 가자지구에 대한 경제적 압박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민생고에 시달린 대중들이 하마스 리더십에 저항하며 압바스와 대화에 나설 것을 압박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비상내각의 청소년·체육부 장관인 아쉬라프 알 아그라미는 <알 아흐람 위클리>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계획이 실제로도 존재하고 있다고 확인한 바 있다. 에브라임 스네흐 이스라엘 국방부 차관 역시 지난달 17일 한 라디오 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주민들이 하마스에 저항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로 압바스와 약조했다고 밝혔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이스라엘 미디어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장시간 토론을 벌이곤 했다. 그리고 결론은 압바스가 이스라엘과 미국의 주장을 정면 돌파할 능력이 없다는 쪽으로 모였다.

의견을 받는 팔레스타인 지역 라디오 방송에서 한 청취자는 "압바스는 우리에게 갖은 압제를 가해놓고선 자신을 지지하고 자신을 중심으로 뭉치자고 하는데 스스로 부모를 죽여놓고 자신이 고아가 됐으니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청하는 패륜아와 다를 게 뭐냐"며 비상정부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의 군과 정보기관의 엘리트들은 가지지역 주민들에게 경제적·군사적 압제를 가하는 정책이 실패할 것임에 분명하다고 강조한다. 이스라엘 군 정보기관의 전직 수장이었던 슈로모 가지트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하마스를 외면토록 할 요량으로 압박을 가하면 가할수록 정 반대 결과를 얻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압제가 심할수록 하마스를 향한 지지가 강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가지트는 지난 25일 한 일간지에 실린 칼럼을 통해서 "역사는 압바스와 파타당의 편"이라는 압바스의 호언을 비웃었다. 이스라엘 정부도 팔레스타인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는 하마스와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스라엘 TV 방송 <채널10>의 특파원 슈로모 일더는 "팔레스타인 대중들은 하마스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며 압바스를 감싸고도는 이스라엘과 미국 정부의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일더는 또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최근 이스라엘과 미국의 시도를 합법적으로 집권한 하마스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에 팔레스타인 문제 관련 자문을 맡고 있는 데니 루빈스타인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경제적·군사적 압력은 이스라엘과 서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큰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루빈스타인은 "만약 우리가 하마스를 몰아내는 데 성공한다면 우리는 그 자리를 알카에다가 메우는 꼴을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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