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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유색인종을 졸리가 재연하다니"

<마이티 하트>로 '할리우드 인종차별' 논란 불붙나

흑인 인권운동을 위한 매체인 <블랙 아젠다 리포트>의 마가렛 킴벌리 국장은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한 영화 <마이티 하트>를 보는 내내 속이 쓰렸다.

<마이티 하트>의 주인공은 파키스탄에서 취재 중 테러리스트들에게 참수당한 <월스트리트 저널>의 다니엘 펄 기자의 아내인 마리앤 펄이다. 그런데 쿠바계 흑인인 어머니와 독일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마리앤의 피부색은 어두운 갈색에 가깝다.

졸리는 마리앤과 흡사해 보이기 위해 피부에 스프레이를 뿌리고 꼬불거리는 가발을 써 분장을 해야 했고 '유색인종인 척하는 백인'을 보며 속이 쓰렸던 관객은 킴벌리 국장만이 아닌 듯하다.

지난 주 <마이티 하트>의 미국 개봉을 즈음해 미국 네티즌들 사이에선 할리우드의 인종차별에 대한 논쟁이 불붙은 것이다.

굳이 분장을 하지 않아도 되는 유색인종 여배우들을 마다하고 유독 백인인 졸리에게 실존하는 흑인 역할을 맡긴데 대한 불만은 <마이티 하트> 한 작품을 넘어 '주인공=백인'이란 공식을 관행처럼 받아들인 할리우드의 인종차별 역사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흑인 배우 썼으면 분장 안 해도 될 텐데…"
▲ 유색인종을 연기하기 위해 피부를 검게 그을리고 곱슬머리 가발을 쓴 안젤리나 졸리.ⓒ로이터=뉴시스

미국 최대 UCC사이트인 <유튜브>에는 실제 마리앤의 모습과 졸리의 연기를 비교해 놓은 동영상이 게시돼 있다.

게시자의 "졸리의 연기는 훌륭했지만 검은 분장을 한 것까지 잘한 일이라 할 수 있을까?"란 반문 아래 댓글 수백 개가 달렸다.

"일부러 피부를 태우지 않고, 머리를 파마하지 않아도 되는 배우들이 할리우드에 1톤은 될 텐데 굳이 졸리를 쓴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ID: Rachel)

"제작진은 졸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사실에 입각한 재연보다는 흥행과 홍보에 치중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ID: Meredith)

"내가 감독이었다면 잠비아 출신인 탠디 뉴턴을 주인공으로 썼을 것이다. 졸리만큼의 시장성을 기대할 순 없겠지만 실제 인물과 보다 흡사할 뿐 아니라 누구도 비난할 수 없을 테니." (ID: Brown)


반론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요컨대, "마리앤이 완벽한 흑인이 아니고 졸리도 모계 쪽으로 인디언의 피가 섞여 있는 만큼 인종 차별적 캐스팅은 아니라"는 주장이었지만 상대적으로 그 숫자가 매우 적었다.

"배우가 꼭 실존인물 닮아야 하나"
▲ 마리앤 펄.

이 같은 논란에 대한 제작진의 대답은 명료했다. "배우가 실제 인물을 닮을 필요는 없다"는 것.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은 아예 "쿠바 혈통을 반만 이어받고 그 피의 4분의 1쯤에는 중국 피도 섞여 있으며 게다가 독일계통이기도 한 영어를 할 줄 아는 프랑스 여배우가 있었다면 한결 나았을 수도 있다"며 논란 자체를 비웃기도 했다.

마리앤은 역시 최근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피부색 문제로 귀결될 사안이 아니다"고 말했다.

"나는 졸리를 신뢰했고 졸리가 내 역할을 맡아주길 바랬다. 졸리가 나를 닮아 졸리를 선택한 것이 아니란 얘기다. 우리 그냥 이 문제를 지나갈 수 없을까?"

그러나 "그냥 넘어가자"는 마리앤의 대응은 오히려 관객들의 화를 돋운 격이었다.

킴벌리 국장은 <블랙 아젠다 리포트>에 기고한 글을 통해 "마리앤이 말하는 '우리'가 누구냐"며 발끈했다.

"백인과 백인 이미지를 끊임없이 홍보하는 할리우드가 마리앤이 말하는 '우리'인가. 백인들에게만 아름답고 고귀한 역할을 맡기는 그들의 세계가 변화되지 않는 한, 우리 유색인종들도 우리에게 적합한 역할을 달라는 요구를 멈출 수가 없다. 살아있는 사람을 재연하는 역에서만이라도 그 인물에 맞는 인종을 캐스팅해야 하는 것 아닌가."

백인 주인공은 할리우드의 전통

킴벌리 국장의 반론처럼 할리우드는 그간 유색인종을 묘사하거나 유색인종 배우를 기용하는데 지극히 인색한 모습을 보여 왔고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만만치 않음에도 여전히 별다른 자성의 노력을 보이고 있지 않는 게 현실이다.

멀게는 1915년 제작된 흑백무성영화 <국가의 탄생>에서부터 흑인 배우를 기피하는 할리우드의 습성을 엿볼 수 있다. 이 영화에 흑인 배역은 모두 검은 화장을 한 백인 배우들로 채워졌다.

지난 해 개봉한 올리버 스톤 감독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흑인 배역을 백인 배우가 맡아 실존 인물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무너진 건물에 갇힌 맨해튼 항만관리위원회 소속 경찰관 두 명을 구해내는 미 해병대 제이슨 토마스 하사관은 실제로는 흑인이지만 '영웅은 백인이 맡는다'는 관행을 확인하려는 듯 백인 배우가 배역을 맡았다. 이에 토마스 하사관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실화를 얘기하려면 가능한 한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이 처럼 관행이 돼 버린 편견을 뚫고 연기력을 인정받은 유색인종 여배우가 백인 배역을 맡은 영화가 내년 께에 개봉을 앞두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현재 촬영 중인 영화 <클래스 액트>에서 할 베리는 제자들의 도움으로 2000년 선거에 출마, 의회 진출을 시도했던 백인 교사 티에니 카힐을 연기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23일자는 "<클래스 액트>가 개봉된 뒤 헐리우드의 기존 공식을 깬 캐스팅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을 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면서도 "그래도 조만간 안젤리나 바셋(흑인 중견 여배우)이 힐러리 클린턴 역을 맡는 식의 파격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할리우드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 '전통'을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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