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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철을 죽이는 것은 나를 다시 한번 죽이는 것"

[사형제도, 이젠 폐지돼야 한다·9] 연쇄살인범 유영철 피해자

'2003년 10월 9일'
내 삶은 한동안 이 시간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바로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내, 4대 독자 아들까지 온 가족이 한꺼번에 내 곁을 떠난 날이기 때문이다.

잊으려 해도 아비규환과 같던 사건 현장이 수시로 떠올라 세상 모든 것과 절연케 했다. 친척도, 친구도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아니, 만날 수가 없었다. 누가 우리 가족에게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지도 모르는 가운데 생전 경험해보지 못했던 엄청난 두려움과 슬픔이 내 삶을 무너뜨려갔다. 눈을 감아도, 이승에서의 마지막 날 출근하던 나를 배웅하던 가족들의 얼굴이 너무나 생생하게 떠올라 꿈속에서도 눈물을 흘리며 깨어나곤 했다.

'내가 왜 살아야 하나? 이렇게 목숨을 부지해야 하나?'

가장으로서 가족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은 몇 번이고 가족들의 뒤를 따라야겠다는 유혹에 시달리게 했다. 그렇게 죽음이라는 유혹과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사형수들의 대모라는 조성애 수녀님이 어떻게 알고 찾아오셨다. 그 때까지 아무도 만나지 않고 죽음보다 더한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나는 비로소 새 삶과 조우하게 된 것이

다. 6개월간의 교리를 받고 2004년 7월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이 태어났다. 그런데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영세 후 일주일이 지나던 날 우리 가족뿐 아니라 수많은 이들을 상상치 못할 고통으로 내몬 범인이 잡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유영철'. 처음 들어본, 나와는 전혀 무관한 누군가가 이토록 엄청난 고통을 안겨줄 수 있다는데 다시 한번 쓰러질 듯한 절망과 슬픔, 분노에 치를 떨어야 했다.

'이런 세상이라면 살아서 무엇하리.' 내 몸은 저도 모르게 다시 한강을 내려다보며 다리 위에 서있었다.

그런데 이를 기적이라고 해야 할까. '이왕 죽는 것, 유영철을 용서하고 죽자'는 목소리가 내 몸 어디선가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해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길로 발길을 돌렸다.

이후 나는 정말 모든 게 생소한 딴 세상으로 건너왔다. 60년 넘게 살아오며 한번도 생각조차 않았던 세상을 살기 시작한 것이다. 유영철을 살려달라는 탄원서를 쓰다니…. 꿈에도 상상치 못할 일이었다. 누가 시키지 않은 일인데도 내 몸은 내 속 어디선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저도 모르게 이끌려가고 있었다. 그렇게 새로운 걸음을 떼기 시작하자 죽음에 대한 욕망(?)이 일순간 사라지는 것이었다. '내 주위의 누군가가 바로 유영철일 수 있다'는 생각에 도저히 떨쳐버릴 수 없었던 새로운 만남에 대한 두려움도 사그라져 갔다.

나는 지금 스스로를 '생일 없는 소년, 이름 없는 소년, 집 없는 소년'으로 부른다. 태어날 때의 생일은 이미 무의미해져 내 본명 축일이자 죽은 아들의 생일을 새로 난 날로 삼았다. 이름을 가진다는 것도 허망해 세례명으로 불리길 원하고, 가족과 살던 집을 떠나 홀로 지낸 지 오래다.

이렇게 새 삶으로 접어들기까지 나는 사형제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아니, '사형'이란 말조차 뇌리에 떠올려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왜냐면 그런 일은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우리의 삶과는 별개의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형이란 문제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셈이다. 유영철로 인해 60여년이라는 과거의 삶을 마감한 나는 새로운 길을 걷고 있다. 유영철을 양자로 받아들이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무 죄 없는 그의 자식들도 거두고 싶은 마음이다. 이런 나를 두고 여기저기서 '상상치 못할 용서'를 베푼 이로 추켜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단연코 말하고 싶다. 그것은 상상하기 싫어서 하지 않는 것뿐이지 사람이 하지 못할 일은 아니라고.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났으면 생명에 관한 모든 권한 또한 하느님께 있음에도 인간은 너무나 쉽게 망각하고 때로는 의도적으로 무시하려 드는 것 같다.

죽음과 같은 고통을 건너온 나는 누구에게 칭찬을 들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생명을 주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 그리고 그 생명이 주는 기쁨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 죽고자 했지만 주님께서 나를 새로운 삶으로 이끄신 것처럼 아무리 나쁜 일을 저지른 이라고 해도 그의 생명을 거두는 일은 사람의 일이 아님을 확신한다.

유영철, 그를 죽이는 것은 나를 다시 한번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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