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은 27일 블레어 총리의 의회 마지막 연설이 끝나기가 무섭게 "블레어 전 총리를 중동평화특사로 임명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콰르텟은 중동평화를 중재하기 위해 미국, 러시아, 유럽연합, 유엔의 대표들이 모여 만든 회의체다. 블레어 특사는 이 쿼르텟 전체의 대표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평화협상을 진전시켜야할 임무를 맡은 것이다.
그러나 블레어가 특사로 임명된 데 대해서는 기대보다 우려가 큰 것이 사실이다. '부시의 푸들'이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노골적인 친미인사인 데다 이스라엘에 편향적인 블레어에게 공정하고 객관적인 중재자 역할을 기대하는 자체가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두 나라 해법'으로 이-팔 갈등 풀겠다"
블레어 특사는 이날 10년 간 지켜왔던 런던 다우닝가 총리관저를 고든 브라운 신임 총리에게 물려줬다.
하원에서 행한 마지막 연설에서 블레어는 이미 '총리'가 아닌 '특사'였다.
"중동지역에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두 나라 해법'이라는 국제사회의 공감대가 효력을 갖도록 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라며 팔레스타인 문제를 '두 나라 해법'으로 풀어가겠다는 구상을 밝힌 것이다.
'두 나라 해법'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자의 영토와 주권을 갖고 살 수 있도록 하자는 아이디어로, 블레어 특사는 "나는 이것이 가능하다고 믿지만 이를 위해서는 막대한 집중과 수고가 요구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반대, 블레어 직접 담판으로 해결
블레어의 특사 기용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던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블레어가 특사 자리를 수용하자 "유능한 사람이 중동 평화를 위한 일을 맡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고 환영했다.
부시 대통령은 "팔레스타인은 국민들이 평화로이 살 수 있고 이스라엘로부터 안보를 보장받는 주권국가를 필요로 하고 있다"며 "토니는 팔레스타인의 정치·경제 제도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친미인사가 특사 자리에 앉는 것은 이스라엘에서도 원했던 바다. 마크 레지프 이스라엘 외무성 대변인은 "토니 블레어는 이스라엘의 친구이자 팔레스타인의 친구이고 무엇보다 평화의 친구"며 "그와 함께 일하게 돼 매우 기쁘다"고 밝혔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지지를 받고 있는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수반 역시 "두 나라가 평화로운 결론에 도달할 수 있도록 블레어와 함께 노력할 것"이라며 만족감을 표했다.
당초 쿼르텟 당사자 중 러시아는 블레어가 특사로 임명되는 데 부정적이었지만 돌연 지지 쪽으로 돌아섬으로써 순조로운 일 처리에 한 몫을 했다.
블레어는 26일 저녁 블라드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러시아의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러시아가 블레어를 반대한 주된 이유는 영국과 러시아 간 불화에 있었다. 작년 연말 영국으로 망명한 옛 소련의 KGB 출신 전직 정보요원 알렉산더 르트비넨코가 독극물에 중독돼 치료를 받다 숨진 사건을 계기로 양국 간 갈등의 골이 깊어져 왔던 것이다.
이날 통화에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는 알 수 없으나 27일 세르게이 라프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러시아 정부가 블레어 특사를 지지한다"고 밝힌 만큼 블레어의 설득 노력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유엔-쿼르텟, 친미 라인이 장악
블레어가 쿼르텟 특사 자리를 꿰참으로써 국제사회가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용하는 두 가지 창구, 즉 쿼르텟과 유엔을 모두 친미인사가 장악하게 됐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최근 유엔의 중동정책을 미국 국무부 정책과 같은 기조로 끌어가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라크 문제를 국제화 하려는 부시 행정부의 의도에 맞춰 이라크 내 유엔의 역할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세우는가 하면, 쿼르텟에 참여하는 유엔 대표를 페루 출신에서 이스라엘에 우호적이기로 정평이 난 영국 출신 외교관으로 교체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반기문표 '매운 김치외교', 이스라엘엔 "달콤" )
이에 <알자지라> 인터넷 판은 "미국의 중동정책을 노골적으로 추종하는 블레어가 아랍세계로부터 진정한 대표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유럽연합 외교 담당 집행위원인 하비에르 솔라나도 같은 이유로 블레어 특사 임명에 반대한 바 있다.
지난 2월 아랍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부시 대통령,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 등과 함께 아랍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인사로 꼽힌 블레어가 아랍세계를 상대로 진지한 평화협상을 이뤄나가기도 어려워 보인다.
팔레스타인 상황은 이전보다 더욱 꼬였다. 제임스 울펜슨 전 특사 때에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는 지리적으로 분리돼 있는 것에 불과했다면, 이제는 정치적으로도 완전히 갈라서 버렸기 때문이다.
2주 전 압바스 수반이 하마스와 파타당의 공동 내각을 해산시키고 파타당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정부 출범을 예고함으로써 가자지구를 차지한 하마스와 서안지구의 주류인 파타당이 정면충돌하는 지형이 만들어 졌다.
이에 부시 행정부는 쿼르텟과 유엔을 조정해 하마스를 배제한 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평화협상을 추진해 나갈 심산인 듯하지만, 엄연한 정치세력이자 작년 총선에서 집권까지 했던 하마스를 빼고서 진행하는 협상이 팔레스타인 평화로 귀결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전망이 많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