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블레어가 중동특사? 오늘이 만우절인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블레어가 중동특사? 오늘이 만우절인가"

30년차 중동전문기자가 밝힌 '블레어 불가론'

영국의 <인디펜던트> 중동특파원인 로버트 피스크는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블레어 중동 특사설'을 듣고 달력부터 확인했다.

조작된 증거와 거짓말로 아랍 민간인 수천 명을 피 흘리게 한 이라크 전쟁에 일조해 온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에게 특사 노릇을 맡긴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어서 "오늘이 만우절이 아닌가" 했다는 것.

그러나 만 30년을 중동문제만 취재한 최장수 중동 전문기자 피스크를 아연케 한 '블레어 중동 특사설'은 '설(說)'에만 머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정식으로 블레어에게 특사를 맡아줄 것을 요청했고 내일 모레면 총리 자리를 떠나야 하는 블레어 역시 미국의 '콜'을 반기는 표정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조지 부시 미 행정부가 블레어에게 요청한 자리는 '중동평화협상을 위한 쿼르텟'(미국, 러시아, 유럽연합, 유엔)의 특사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있어 서방 국가들을 대표하는 쿼르텟은 지난 2003년 6월 부시 대통령이 발표한 중동평화구상, 이른바 '로드맵'을 집행하기 위해 구성된 것으로 당시 세계은행 총재를 역임한 거물정치인 제임스 울펜슨이 쿼르텟 특사를 맡았었다.

그러나 협상이 지지부진해지자 지난 해 울펜슨이 사임했고 1년 여 가량 공석으로 남아 있던 특사 자리가 블레어의 몫으로 돌아가게 생긴 것이다.

이에 피스크는 23일 기사에서 블레어를 쿼르텟의 특사로 임명하겠다는 부시 대통령의 구상을 "오만의 결정체"라고 혹평했다.

중동에 대한 서구의 횡포로 1차 대전 직후 영국과 프랑스가 중동 국경선을 다시 그린 '사이크스-피코 협정(1916)'이나 영국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나라를 건설하는 것을 용인키로 한 '밸포어 선언(1917)' 등과 비견될 만한 실정이란 것이다.

이라크 책임론에 밀려난 블레어가 중동특사?

▲ 부시 미 행정부는 27일 퇴임하는 블레어 영국 총리를 '중동 특사'로 임명해 팔레스타인 문제를 미국의 입맛대로 풀어 나가려 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피스크가 제기한 '블레어 불가론'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블레어는 부시가 주도한 이라크 전쟁의 '공범'이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대량살상무기를 갖고 있다는 잘못된 정보를 만들어 전쟁을 일으킨 데 대해 아직까지 단 한 차례의 반성이나 사과도 없었다. 실제로 미국과 영국이 중동에서 '선행'을 베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블레어에게 중동에 평화를 짓는 작업을 맡길 수 있겠냐는 게 피스크의 우려다.

게다가 블레어의 중동 정책은 영국 내에서마저 불신 받고 있다. 블레어가 개인 구상보다 일찍 총리 자리를 넘겨주게 된 것도 이라크 침공 이후 하락세를 면치 못한 지지율 탓이다. 중동 정책을 모두 망쳐버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블레어가 팔레스타인 문제를 잘 풀어나가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에 오히려 블레어가 중동의 독재자들과 야합해서 팔레스타인 문제를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갈 소지도 적잖다는 것이 피스크의 전망이다. "그의 오만함과 부정직함을 종합해 본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작년 레바논 전쟁에서 정전을 요구하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를 격파할 때까지 시간을 줘야 한다는 부시 주장을 추종했던 점에서도 블레어가 '어떤 특사가 될 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팔레스타인의 정치무장조직인 하마스가 '부시의 푸들'인 블레어와 협상에 응할 리 만무하고, 블레어 역시 미국이 '테러 세력'으로 지목한 하마스와 한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 또한 낮다.

결국 '특사 블레어'가 협상 가능한 상대는 마무드 압바스 자치정부 수반과 그 참모들 정도로, 선거를 통해 집권한 하마스를 배제하고 만든 논의체에서 이들은 '가상의 정부'를 차려놓고 협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숀 매코맥 미 국무부 대변인은 "임명될 중동 특사에게는 팔레스타인인들과 함께 제대로 된 팔레스타인 정부 시스템을 갖추기 위한 작업을 해 나갈 임무가 주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블레어가 특사가 된다면 여기서 말하는 '제대로 된 팔레스타인 정부 시스템'이란 수많은 테러 관련법과 치안유지법 등을 제정하는 일에 그치고 말 것이다.

블레어가 이스라엘이 선호하는 인물이란 점도 부적격 요소다.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과 말이 통하는 대상을 찾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팔레스타인 쪽 창구는 압바스 수반 쪽으로 쏠릴 공산이 크다.

피스크는 "블레어가 중동특사가 될 경우 압바스와 손을 잡고 하마스를 쫒아내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내다보며 이렇게 일갈했다.

"장담컨대 블레어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설치해 놓은 분리장벽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못할 것이다. '보안 장벽' 혹은 '담장'이라고 할 테지만, 독일 분단 시절 동독 경찰들이 베를린 장벽을 '보안 장벽'으로 불렀던 것과 다를 바가 뭐냐."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