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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모리 前 페루 대통령, 日 참의원 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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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모리 前 페루 대통령, 日 참의원 출마

현재 칠레 억류 중...페루 송환 피하기 위한 '꼼수'

일본계 이민자로 1990년부터 2000년까지 페루 대통령을 지낸 알베르토 후지모리(68)가 오는 7월 29일 실시되는 일본 참의원 선거에 비례대표로 입후보하기로 결심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27일 보도했다.

그러나 페루 정부 관리들은 후지모리의 선거 출마는 부패혐의로 페루 법정의 심판을 받아야 할 그가 페루 송환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고 비난하고 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군소야당인 국민신당의 출마요청을 받고 입후보를 결심했고, 조만간 정식 발표할 예정이다. 외국의 전직 국가원수가 일본 국정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일본 역사상 그가 처음이다.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일본 <NTV>와의 인터뷰에서 "비례대표 후보가 돼 달라는 '국민신당'의 제의를 수락했다"면서 "10년간 대통령으로서 일한 경험을 일본과 세계를 위해 활용하길 원한다"고 말한 것으로 <NTV>는 전했다.
▲ 2000년 페루 대통령 재임 시절의 후지모리 ⓒ로이터=뉴시스

현재 칠레 산티야고에 가택연금 상태에 있는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일본 국적도 보유하고 있어 일본의 공직선거법상 연금 상태에서도 입후보가 가능하다. 또 당선 후 등원하지 않더라도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는 2000년 후지모리가 페루 국민들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나 일본으로 도망 왔을 때 그에게 일본 국적을 부여했다.

그는 페루 법원에 의해 1990∼2000년 대통령 재임중 25명의 시민 학살과 공금 유용, 도청 등의 혐의로 형사소추돼 있는 상태이며 앞으로 수 개월내 칠레 대법원의 신병 인도 결정을 앞두고 있다. 그런 그가 모국인 일본에서 참의원에 출마해 당선될 경우 그의 송환 여부 등을 놓고 일본과 페루 양국 관계 악화 등 적지않은 파문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부패 스캔들로 대통령에서 쫓겨난 후 5년간 일본에 체류하다 페루 대통령 출마 등을 겨냥해 2005년 11월 칠레에 도착했다. 그러나 칠레 당국에 체포된 뒤 보석으로 풀려났다가 지난 8일부터 국외 도피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가택연금 상태에 있다. 칠레 대법원은 이르면 수 주일 내에 그의 페루 송환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페루 국민들은 후지모리 재임시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해 반드시 심판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편 후지모리는 자신이 일본의 참의원이 된다면 북한의 핵 프로그램 포기를 설득하고 일본인 납치 문제를 해결하는 운동을 하는 '아시아 외교'에 중점을 둘 것으로 전해졌다. <NTV>는 그가 "(북핵 및 납치 관련 정치는) 내 바람이다. 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교도> 통신은 후지모리 전 대통령이 우정 민영화 문제로 자민당에서 나온 의원들로 구성된 국민신당의 강력한 요청을 받은 데다, 당선을 통해 정치가로서의 신뢰를 회복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국민신당은 현재 10명의 현역의원이 소속돼있다.

후지모리는 1996년 페루 주재 일본 대사관 인질 사태 당시 단호한 자세를 보여 24명의 일본인 인질을 구출해낸 것이 일본인들에게 각인돼 있다.

이에 후지모리는 일본 내에서의 비교적 좋은 평판을 활용해 선거에 출마함으로써 페루 송환을 정치적으로 막아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이 외신들의 분석이다. 북핵과 납치 문제에 힘쓰겠다는 말도 일본인들의 환심을 사 정치적 보호막을 만들어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후지모리는 누구인가

1938년 페루 출생의 일본계 이민 2세로 리마국립농업대학과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등에서 농업학을 전공했다. 농업기사로 사회에 진출해 페루국립대학교와 리마국립농업대학 총장을 지낸 뒤 1989년 정치초년생들의 개혁운동단체인 '캄비오(Cambio: 변혁) 90운동'을 조직하면서 정치에 뛰어들었다. 이어 1990년 6월 대통령 후보로 출마해 작가인 바르가스 료사와 결선 투표 끝에 압승함으로써 라틴아메리카 사상 동양계로는 최초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해 7월 28일 대통령에 취임한 후 인플레이션 억제와 재정 적자 해소에 중점을 두고 신자유주의적 경제 개혁을 추진했다. 그러나 의회와의 대립 끝에 1992년 4월 군부 친위 쿠데타를 통해 의회를 강제 해산하는 한편, 1993년 12월에는 국민투표를 통해 신헌법을 공포함으로써 재선의 발판을 마련했다.

1995년 4월 유휴표의 64.2%를 얻어 재선에 성공한 뒤에도 계속 초긴축정책과 외자 유치로 8000%까지 치솟던 인플레이션을 안정시키는 한편, 30년 넘게 활동하던 게릴라 조직을 완전 진압해 정치적인 토대를 굳혔다. 그러나 자리에 너무 연연해 1996년 8월에는 후지모리 자신이 2000년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할 수 있는 헌법 해석법을 국회에서 가결시켜 대통령 3선을 막는 제도적 장치를 제거했고, 이후 숱한 부정을 저지르면서 정권 연장에 전념하였다.

2000년 4월 3선에 도전해 1차 투표에서 49.89%의 지지를 얻었으나 과반수에 실패한 뒤 재투표에서 51.2%의 득표로 3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7월 28일 취임식 당일 대규모 시위로 인해 국립은행 경비원 6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이어 11월에는 당시 국가정보부장이던 몬테시노(Vladimiro Montesinos)가 야당 의원을 돈으로 매수하는 장면이 담긴 비디오 테이프가 공개되면서 실각한뒤 일본으로 도주하였다.

이후 그의 집권 기간에 일어났던 각종 비리와 약점들이 속속 드러나기 시작해 사법·언론 장악, 의회 강제해산, 1995년 재선 과정에서의 야당 후보 도청, 3선 연임을 위한 변칙적인 법률 승인, 2000년 2월에 행해진 유권자 수천 명의 명부 조작, 국고 유용, 헌법상 투표권이 없는 군인과 경찰의 신분증 위조 발급 등 부정비리로 인해 집권 10년 만에 권좌에서 물러났다.

2000년 부터 5년 동안 일본에서 도피생활을 하다가 2005년 페루로 들어가기 위하여 칠레로 우회 입국을 시도하다가 칠레경찰에게 체포되었다. (네이버 백과사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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