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젊은 농부에 청정 환경, 전쟁의 아픔만 없다면..."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젊은 농부에 청정 환경, 전쟁의 아픔만 없다면..."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6/26] 민통선 마을을 취재하는 <파주저널> 한성희 기자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6.25 전쟁이 일어난 지 올해로 57년이 됐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는 오래됐지만, 아직도 일반인들은 통행증이 있어야 출입이 가능하고 행정력보다는 군부대의 영향력이 우선인 곳이 있는데요. 바로 민간인통제선 안에 있는 마을들입니다. 이곳에선 아직도 인근 산과 들에 묻혀있는 지뢰를 조심해야 하고 군의 통제로 인해 여러 가지 제약을 받고 있지만 청정한 자연을 누릴 수 있는 이점도 있다고 하는데요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민통선 마을을 취재하는 파주저널 한성희 차장을 초대해 국토 분단의 한 단면을 잘 보여주는 민통선 마을 사람들의 삶과 그들이 고향을 버리지 않는 이유에 대해 얘기 나눠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파주저널 한성희 기자입니다. 한성희 기자는 1958년 경기도 파주 출생으로 1997년 파주지역신무인 파주저널에 입사해 현재 편집부 차장을 맡고 있습니다. 민통선 마을 등 파주지역에 대한 기사들을 각종 언론에 연재하고 있으며 2006년 '여기자가 파헤친 조선왕릉의 비밀'을 출간했습니다. 파주시 공순영릉에서 문화관광해설사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어제가 6.25였는데 저희가 6.25 특집을 하다 보니까 민통선 마을을 한 번 알아보자. 알아보니 한성희 기자께서 가장 전문가로 정평이 나서 이렇게 모시게 됐습니다.

한성희 : 전문가는 아니고요 그곳에서 태어나 살다 보니, 또 언론 쪽에 종사하다 보니까 좀 관심도 많고 아무래도 다른 분들보다는 조금 많이 알겠지요.

박인규 : 우리가 보통 민통선 하면 일반인들이 쉽게 못 들어가는데 정도로 알고 있는데 정확하게 민간인통제선이라는 게 어떤 겁니까?

한성희 : 민간인통제선은 국토분단, 남과 북 동서로 155마일 휴전선을 중심으로 남쪽으로 2km, 북쪽으로 2km, 이 지역을 DMZ... 비무장지대 그 아래, 거기서부터 밑으로 군대에서 군사작전상 민간인을 통제하는 선을 민통선이라고 하죠.

박인규 : 일정한 거리가 돼 있지 않은 모양이죠?

한성희 : 그렇죠. 거리가 돼 있지 않고 지역마다 다르죠.

박인규 : 민통선 안이라는 건 일반인들은 들어가기 쉽지 않은데 거기 마을이 있다는 말이잖아요. 그게 파주지역에만 있는 겁니까, 다른 데도 다 있습니까?

한성희 : 전국적으로 다 있죠. 휴전선 부근엔 다 있죠.

박인규 : 혹시 민통선 안에 있는 마을이 몇 개나 있고 몇 명이 사시는지는

한성희 : 그것까진 잘 모르겠지만 파주시 같은 경우는 시 면적이 서울시와 안양시를 합친 크기에요. 그런데 약 23% 정도가 민통선 면적이죠. 굉장히 넓어요. 그 면적은 대충 안산시 정도로 보면 될 겁니다. 파주시 민통선 안에 네 개 면이 있어요. 두 면, 진서면, 장단면은 민간인이 거주하지 않고, 할 수 없죠. 또 진동면에 해마루촌이라는 마을이 하나 있고 군내면에 통일촌과 잘 아시는 대성동 자유의 마을이 있죠. 이렇게 세 개 마을입니다.

박인규 : 대성동 자유의 마을은 저희들이 초등학교 때도 많이 들은 것 같은데

한성희 : 세계적으로도 관심받고 있는 동네죠.

박인규 : 거기가 민통선 안에 있으면서도 더 DMZ 안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성희 : DMZ 안에 있는 유일한 마을이죠.

박인규 : 비무장지대 안에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한성희 : 들어갈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는 곳이죠. 개념으로는. 휴전협정을 하면서 남과 북.. 두 마을에 가장 가까운 데 상징적인 마을 두 개를 합의 봤어요. 북한에 기정동 마을, 남한에 대성동 마을. 대성동 마을 같은 경우에는 원래 장단군 조산리였는데 원래 조산리 살던 토박이 분들이 전쟁 끝나고 돌아와서 거기서 계속 살게 된 거죠.

박인규 : 대성동 자유의 마을 계시는 분들은 토박이 분들이시네요. 지금 몇 분이나 살고 계세요?

한성희 : 한 180 분 정도

박인규 : 거기 사시는 분들은 병역의 의무도 조세의 의무도 없다던데, 좀 희한하더라구요.

한성희 : 유엔사 특수법률이 적용되는 마을이죠. 세계에서 관심을 받는 이유가 바로 그건데요 파주시 행정구역이긴 하지만 유엔사 특수법률이 적용되기 때문에 그 마을 사람들은 유엔사 법률에서 벗어날 수 없죠. 병역의무 없고 납세의무가 면제되고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전국에 있는 어느 중학교든지 본인이 원하면 다 갈 수 있고.

박인규 : 한성희 기자는 거기 들어가 보셨겠죠? 거기서 개성공단이 바로 보인다면서요?

한성희 : 그렇죠. 거기 마을회관 2층에 올라가면 그냥 맨눈으로도 다 보여요. 바로 앞에. 그렇게 멀지가 않거든요. 물론 기정동 마을은 더 훤히 보이고.

박인규 : 자유의 마을은 원래 거기 있던 걸 살려 둔 거고 통일촌인가는 나중에 생긴 걸로 아는데

한성희 : 통일촌은 통일대교 아시죠? 현대 정주영 회장님께서 소를 몰고 갔다는 걸로 유명한데 그 다리를 지나자마자 있어요. 물론 통일대교 앞은 군인들이 지키고 있어서 통행증 없는 사람들은 들어갈 수 없죠.

박인규 : 저도 한 번 가봤습니다. 통행증 내고 주민등록증 맡기고 들어가더라구요.
▲ ⓒ프레시안

한성희 : 네. 미리 또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돼요. 통일촌 같은 경우는 대성동 마을보다는 좀 들어가기 쉬워요. 대성동 마을은 보름 전에 미리 신청해서... 그 마을사람이 초대하는 경우는 좀 쉬워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지금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하루 40명 정도가 딱 관광객으로 있는데 그나마도 날마다 갈 수 있는 게 아니고

박인규 : 그럼 대성동 사시는 분들이 나오는 건 별 문제가 없나요?

한성희 : 나오는 건 문제가 없죠. 그런데 거기 있는 분들이 안 나오려고 하시죠. 비교적 연 5천 이상 수입을 올리고 있으니까 농촌 마을 치고 잘 사는 축에 속하죠.

박인규 : 통일촌은 언제 어떻게 생겨난 겁니까?

한성희 : 1973년도에, 거기가 1사단 관할인데요 그쪽에 제대군인들, 또 파월 갔다 왔다가... 장병은 아니고 주로 하사관 제대하신 분들, 또 영관급 장교들, 이런 분들 또 그 당시 마지막 화전민들, 이 분들한테 신청을 받았어요. 그쪽 40세대, 또 실향민들 화전민들 40세대 해서, 4만 5천 평 놀고 있던 땅을 분할해 줬어요.

박인규 : 1인당 4만 5천 평이요?

한성희 : 한 가구당.

박인규 : 굉장히 많이 준 거네요.

한성희 : 그렇죠. 그런데 원래 거기가 공동묘지를 밀고 조성한, 그리고 73년도니까 거의 한 20년 동안 버려진 땅이었잖아요. 그러니까 말도 못했죠. 잡목이 우거지고, 그걸 개간하다시피 한 거죠.

박인규 : 통일촌에는 몇 분이나 살고 계세요?

한성희 : 통일촌에는 한 150가구가 있고 한 470분 정도.

박인규 : 좀 크군요. 마지막으로 해마루촌은 생긴 지가 얼마 안 된다고 들었습니다.

한성희 : 그렇죠. 거기는 신생마을이고 전국 행정단위 면 단위 중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곳이에요.

박인규 : 거기가 면입니까?

한성희 : 네. 진동면

박인규 : 몇 분이 사시기에..

한성희 : 151명이요.

박인규 : 굉장히 작은 곳이네요. 서울로 치면 아파트 하나도 안 되는데,

한성희 : 그렇죠. 지난 5월 통계자료에 의하면 151명인데, 거기 계신 분들도 역시 전쟁 전에는, 지금 현재 민통선 지역이 거의 경기도 장단군 장단면이었어요. 그랬다가 전쟁 끝나고 파주시로 행정구역이 편입된 거죠. 그런데 거기 살던 분들은 있잖아요. 그런데 이 분들이 못 들어갔죠. 거기가 민통선으로 막혀 있었고 출입영농도 못했으니까. 그러다가 출입영농을 허락하기 시작했어요.

박인규 : 출입영농이라는 건 살기는 바깥쪽에 살면서 농사지을 때만 들어가고.

한성희 : 아침에 농사지으러 들어갔다가 저녁 6시 되면 나와야 되죠. 그쪽도 역시 자기 땅을 도로 찾아서 한다지만 전쟁터여서 지뢰가 많아요. 지금도 70년대에서 90년대 사이에 지뢰를 매설한 게 많아서 민통선 안에 산다는 건 어떻게 보면 지뢰하고의 싸움일 수도 있어요.

박인규 : 지뢰 얘긴 나중에 쫌 여쭤보기로 하고, 해마루촌은 문을 연 게 2000년입니까?

한성희 : 2000년도에 파주시에서 장단군 실향민들을 대상으로, 출입영농자들이 왔다갔다 하면서 농사짓기 힘드시다고 해서 인위적으로 거기다 마을을 조성했어요. 가구당 200평씩 분할을 했죠. 그래서 거기 사시던 분들이 거의 다 장단군 실향민들이에요.

박인규 : 거기 사시다가 남쪽에 살다가 다시 들어가신 거군요.

한성희 : 서울에 계시던 분도 있지만 대부분 다 파주시 인근에 사셨어요.

박인규 : 대략 해마루촌에는 몇 분이나 사십니까?

한성희 : 151명, 51가구.

박인규 : 저도 한 3년 전인가 해마루촌에 한 번 가봤어요.

한성희 : 2001년도에 입주를 시작했으니까 이제 생긴 지 한 6년?

박인규 : 집들이 아주 훌륭하던데요? 별장 같던데요..

한성희 : 외국의 훌륭한 별장촌에 온 것 같죠? 공기 깨끗하고 맑고. 대부분 어르신들이 많죠.

박인규 : 한 기자께서는 자유의 마을이나 해마루촌, 통일촌을 다 다녀보실 텐데 거기 사시는 분들은 주로 농사를 지으시겠네요?

한성희 : 다 농사죠. 농사 외에는 공장 같은 게 없어요. 들어올 수도 없고, 100% 농사를 짓는다고 봐야지요.

박인규 : 아까 말씀하시면서 자유의 마을 같은 경우는 연간 수입이 한 4천, 5천 돼서 다 그 정도로 소득수준이 높으신가 보죠?

한성희 : 예. 그쪽에 계신 분들은 좀 고소득 작물들.. 장단콩 있죠. 유명하죠 품질하고. 소비자들한테 인정받았고. 그리고 파주개성인삼. 사실 장단군과 개성은 경계지점이었거든요. 거기가 옛날에 개성인삼이 나오던 곳이었어요. 그 인삼의 우수성으로 해서 인삼축제를 하면서 파주인삼축제 할 때 굉장히 많은 분들이 오셔서 그 우수한 품질을 인정받았죠.

박인규 : 일단 농사를 지으시지만 특수작물을 하시고 단위면적을 넓게 하시니까 소득은 괜찮은데.. 요즘 한미FTA다 뭐다 해서 농촌들이 걱정이 많은데 거기까진 영향력이 없나요?

한성희 : 그분들한테 제가 얼마 전에 들어가서 물어봤더니 걱정이 많이 된다고 하시죠. 또 지금은 옛날처럼 손으로 농사짓는 시대가 아니라 다 갖춰야 되거든요. 트랙터니 이양기니, 그런 걸 갖추는 데 농기계 값이 한두 푼 아니죠. 사람 구할 길 없고 그런 걸 다 들여오다 보니까 빚을 지게 되죠. 그 영농빚이 가구당 한 1억씩이라고 해요. 그런데 통일촌에 계신 분들은 중간에 떠난 분들도 더러 있고, 그때 교차해서 들어오신 분들도 있는데 아마 그 시기에는 그게 좀 가능했던 것 같아요. 지금 계신 분들은 대부분 20년 이상 된 분들이고. 대부분 초기에 분할받은 땅들을 그대로 다 지니고 계세요.

박인규 : 아까 잠깐 지뢰 말씀을 하셨는데 지뢰피해가 지금도 발생하고 있는 겁니까?

한성희 : 그건 우리나라 지뢰 지금 알려진 것만 해도 여의도 면적이 80만 평이라고 하죠? 그것의 30배가 우리나라의 지뢰밭으로 돼 있어요. 그런데 미확인 지뢰밭.

박인규 : 정확하게 위치를 모른다는 거죠?

한성희 : 그렇죠. 어디에 묻혔는지 모르죠. 그건 여의도의 한 23배 정도. 그게 지금 민통선 안에 다 깔려 있죠.

박인규 : 그 민통선 안에 마을 근처에도 있다는 얘깁니까?

한성희 : 그렇죠. 길 옆에만 들어가도 안 돼요.

박인규 : 실제로 주민들이 피해를 입으신 사례가 많나요?

한성희 : 많이 입었죠. 민통선 안에 있는 마을.. 통일촌이라든가 혹은 출입영농자들, 대성동 자유의 마을 이런 분들은 농사를 지으면서도 지뢰와의 싸움을 벌이고 살았다고 봐야 되죠.

박인규 : 지금이라도 마을 근처의 지뢰밭을 정비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한성희 : 그 마을에서 농사짓거나 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어요. 농지나 길 다니는 건 문제가 없는데 그 길 위를 벗어나서 산에 함부로 들어가거나, 지금 민통선 출입이 많이 완화됐기 때문에 일반인들도 많이 들어오거든요. 방문하러 들어오고 하는데, 이 분들이 도토리나 산나물 캐러 들어갔다가 경고를 주의를 주는데 안 들으세요. 그래서 지뢰사고가 나는 경우가 있고. 또 장마 지고 나면 쓸려 내려오는 지뢰들, 그런 건 부지기수죠.

박인규 : 지금이라도 적어도 마을 근처는 정비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까 말씀하신 중에, 자유의 마을이나 통일촌.. 큰 데가 400명 남짓이고 한데, 그렇다면 예를 들어 학교라든가 병원이나 하다못해 시장, 그런 여러 가지 생활편의시설이 돼 있습니까?

한성희 : 민통선 안에는 식당도 없구요. 외부에서 많이 들어오니까, 마을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식당은 있어요. 그런데 통일촌 같은 경우는 가게도 있는데 마을에서 공동으로 운영하는 정도인데 대성동은 없어요. 거기도 외부에서 손님이 올 경우에는 부녀회원들이 해줘야 되고. 없고. 그리고 파주시에서 군내 출장소를 두고 세 마을 통틀어 일을 보고 있거든요. 그렇지만 병원 같은 건 물론 없구요. 인구 800명에 병원이 되겠어요?

박인규 : 학교는 있습니까?

한성희 : 학교는 두 군데가 있어요. 통일촌의 군내 초등학교, 대성동 마을의 대성동 초등학교, 이렇게 두 군데가 있죠.

▲ ⓒ프레시안

박인규 :
안에서 생활하시는 분들은 그럼 장보거나 이런 부분에서 불편하다고 안 하세요?

한성희 : 불편하시죠. 지금 보건소가 그 안에 거주하고 있고, 갑자기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사실 그 민통선 자유의 마을, 대성동, 이렇게 하면 보통 국민들이 느끼시기에는 굉장히 멀고 외따로 떨어진 곳으로 보이지만 사실 멀지가 않아요.

박인규 : 금방이더라구요.

한성희 : 예. 사실 문산에서 통일대교까지 10분 15분 정도밖에 안 걸리거든요. 그러니까 그렇게 의료혜택의 부족은 못 느끼죠. 사실 거기는 차는 필수에요.

박인규 : 그렇겠네요.

한성희 : 가구당 보통 두세 대는 갖고 계시죠.

박인규 : 해마루촌이나 통일촌이나 자유의 마을, 이런 분들이 살기 불편해서 민통선 밖으로 나가서 살고 싶다는 분들은 안 계세요?

한성희 : 그런 분들도 있고. 그러니까 밖으로 나와서 살면 다시는 못 들어가시는 거죠 일단. 다시 들어가실 수 있는 자격은 박탈되죠.

박인규 : 그래도 그분들이 그 안에 사실 때는 나름대로 그 안에 사시는 재미랄까 멋이랄까 그런 게 있을 텐데.. 힘들긴 하지만, 어떤 게 있을까요?

한성희 : 현재는, 그 안에 들어가 보시면 알겠지만 청정지역이고 일단 조용해요. 도로도 잘 닦여 있지만 지나가는 차가 거의 없어요. 그쪽 사시던 분들은 원래 거기서 대대로 오랫동안 살아 왔던 분들이 많고, 그런 데에 익숙해져서 별다른 불편을 못 느끼시는 것 같구요. 그리고 첨단시설은 우선지원이 다 돼 있거든요. 컴퓨터라든가, 물론 핸드폰은 민통선이라는 이유로 좀 늦게 개통됐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죠 사는 건. 그리고 자녀들 같은 경우도 자유의 마을이나 통일촌 같은 경우에는 젊은이들이 많잖아요. 젊은 농부들이 많은 편이에요.

박인규 : 그건 왜 그렇죠?

한성희 : 아무래도 수입이 보장되고 편리한 생활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요? 거기 가보면 우리나라 농촌의 모델이 참 이랬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마을이거든요. 민통선 안에 있는 마을이 굉장히 아름다워요. 집집마다 주택도 시설이 좋고. 평균 한 2.5대 정도 차를 갖고 있죠. 그렇게 생활하기에 불편함은 못 느끼죠.

박인규 : 전쟁의 상처도 많이 남아 있지만 어떤 미래 농촌의 모습이랄까.. 그런 부분도 있고, 만약에 통일까진 안 가더라도 남북 화해가 되면 상당히 미래 농촌의 모델이 될 수도 있겠네요.

한성희 : 그렇죠. 대성동 마을 같은 경우에는 거기는 거의 전쟁을 치르면서 산 데에요. 아무리 휴전이 됐다고 해도 그때 당시에 굉장했었죠. 밤이면 총 들고 지키고 그랬다고 하더라구요 그쪽은.

박인규 : 한 마흔 살에 기자생활을 시작하신 건데, 요즘은 아줌마라는 말을 별로 안 좋아하십니다만 아줌마 기자신데, 어떻게 민통선 마을을 자꾸만 취재를 가시게 됐는지..

한성희 : 일단 제가 살고 있던 곳이고, 제 고향이잖아요. 파주시가. 그런데 사실 저도 아버지가 미군부대를 다니셨고 어려서부터 보고 자란 게 탱크, 군인들 지나가는 거, 이런 게 일상으로, 하도 일상적으로 보고 자라서 그걸 저는 당연시하는데 가끔 가다 학교 다닐 때도 서울에서 친구를 집에 데리고 오면 기절하면서 놀라요. 이런 데는 집을 거저 줘도 못 산다고. 당장 전쟁이 나면 도망갈 데도 없다고. 그런 지역이 바로 파주시였는데, 접전지역이죠. 그런데 파주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있는 민통선 지역의 마을은 아마 다 비슷한 저와 같은 경험이 있을 거고. 그건 또 제가 객관적으로 보니까 저로서는 당연한 기억이지만 일반 국민들은 참 모르고 있는 기억인 것 같아요.

박인규 : 안 가보시면 알 수가 없죠.

한성희 : 예. 그리고 민통선에 대해 잘 모르시고. 그래서 제가 그것에 대해선 계속 관심을 갖고 취재를... 사실 저도 기자생활 하기 전까지는 민통선 안에 들어가본 적이 없거든요.

박인규 : 요즘 듣자 하니 민통선 안에도 토지투기바람이 분다는 얘기가 있어요.

한성희 : 그렇죠. 파주시가 신도시 때문에 참 이상한 방향으로 전국에서 투기바람이 불어서 투기고시지역으로 지금 묶여 있는데, 민통선 지역이라고 예외는 아니에요. 일단 그쪽에 먼저 땅을 갖고 있던 분도 있고. 땅 사고 파는 건 자유롭거든요. 그런데 투기 하시는 분들이 땅에다 투자하다 보니 민통선 지역 안에 있는 땅들도 벌써 매매되는 현상이 꽤 오래 전부터거든요.

박인규 : 우선 그렇다면... 예를 들면 해마루촌이라고 치면 거기 사시는 분들이 갖고 있는 땅이 있을 테고, 외지인이 가진 땅이 있을 텐데 그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이 됩니까?

한성희 : 외지인이 갖고 있는 땅들이 더 많죠. 그런데 외지인이라고 해도 옛날부터 그 마을에 살면서 출입영농을 하시던 분들은 원래 본 소유자들인데 이 분들은 제외를 해야 되겠죠. 갖고 있는 거니까. 본인들의 땅을 그냥 갖고 있는 거니까.

박인규 : 그런데 민통선 안의 땅은 개발도 안 될 텐데 통일을 바라보고 투기를 하는 건가요?

한성희 : 네. 그래서 거기 계시는 군내면 출장소장님이 하시는 얘기가 참 터무니없이 땅이 올랐다.

박인규 : 터무니없다면 대략 얼마에서 얼마로...

한성희 : 사실 그게 무슨 발전가능성이 지금 전혀 없고 개발가능성이 없는데 그 땅을 사재기하고 팔고 또 팔고 사고 되풀이하다 보니 땅값이 올라가고. 땅의 가치에 비해서는 터무니없는 값으로 올랐고. 그게 지금 또 대부분 농토다 보니까 그걸 임대해서 농사를 짓게 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고요. 원래 거기 살고 계신 주민들한테는 인삼농사를 많이 지어도 그렇게 큰 이득은 못 본다는 얘기를 하시더라구요.

박인규 : 그냥 먹고 살 만한 정도지... 땅을 사신다는 건 남북화해가 되니까 통일을 바라보고 하시는 건가 하는 느낌도 들구요. 그런데 말씀 듣다 보니 민통선 마을이란 데가 지뢰위험도 있고 어떻게 보면 살벌할 수도 있는데 뭔가 좀 조용하게 살고 싶다, 이런 분들은 민통선 마을 안에 가서 한 번 살아볼까 하는 생각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한성희 : 그건 당분간 불가능할 것 같은데요. 민통선 관련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이구요.

박인규 : 말하자면 연고가 있거나 뭐... 특별히 거기 사시던 분이거나.

한성희 : 예. 아들 딸이라든가. 또 거기 계신 분과 결혼한다든가, 이러면 가능하죠.

박인규 : 거기 계신 분과 인연을 맺지 않고 스스로 민통선 마을 안에 들어가서 살고 싶다, 이런 건 안 되는 모양이죠? 아니면, 예를 들면 대성동 자유의 마을이나 그런 데에 전쟁의 위험성... 또 북한을 가까이서 보고 싶어서 민통선 마을을 한 번 방문해 보고 싶다. 이런 분들은 어떻게 해야 되나요?

한성희 :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대성동 마을은 들어가기 굉장히 힘든 곳이구요.

박인규 : 거기에 아는 분이 있어야 되는 군요.

한성희 : 만약에 거기 아는 분이 초대를 해주면, 그것도 보름 전에 신원.. 주소와 주민번호, 차 갖고 들어가면 차량번호까지 일단 제출을 해야 돼요. 거기 민정부대에다가. 그럼 거기 있는 분이 다 신분조사를 하죠. 최소한 보름 전이에요. 그러면 들어갈 수가 있는데, 들어가는 절차가 복잡하죠.

박인규 : 친구들이 파주에 와서 탱크 보고 놀란다고 말씀하셨는데 민통선 마을에 관한 기사들을 인터넷 같은 데에 쓰신 걸로 알고 있는데 독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나요?

한성희 : 참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됐다. 그리고 저 같은 경우는 제가 어려서부터 보고 자란 거잖아요. 그러니까 더 잘 알 수가 있는데 일반 분들 같은 경우는 사실 DMZ와 민통선의 개념조차 잘 구분 못하시죠. 그리고 DMZ같은 경우는 일반적으로 아마 군대 갔다와서 거기서 근무해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거기가 한 50년 동안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곳이라고 상상하지만 사실 전혀 안 그렇거든요. 남과 북 양쪽으로 2, 300미터씩 다 잘라내 버려요. 시야확보를 위해서, 그래서 거기는 사실 그런 지역이 아닌데 그런 식으로 좀 오해하는 경우도 있고. 사실은 민통선 안이 오히려 자연이 그대로 많이 보존돼 있는 곳이 많죠.

박인규 : 그동안 민통선 마을의 실상이랄까, 사는 모습을 일반에 알리는 데 많은 노력을 해오셨는데 앞으로 혹시 그것과 관련해서 책이라든가 계획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죠.

한성희 : 제가 파주시 문화관광해설사 일을 하면서 파주시의 역사, 민통선 안에 많은 역사유물들이 있어요. 허준 선생 묘도 있고 고려 고분벽화도 있고, 아직도 어떤 게 더 발굴될지는 모르죠. 군관할지역에 일반인이 들어가서 학술조사를 할 수가 없죠. 그런 것 좀 한 번 조사를 해서, 파주시뿐 아니라 연천 같은 경우도 거기는 전국에서 발목 잘린 사람이 가장 많은 곳이고, 이 정도로 발목지뢰에 희생된 분들이 많은데 연천 같은 경우도 그 안에 유적들이 많고. 그래서 그런 데의 유적조사를 한 번 해봤으면 하는...

박인규 : 민통선이라는 게 사실 민간인을 통제하는 선인데, 제 나름대로는 남북의 민간인들이 좀 통하는 선이 됐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앞으로 민통선 마을의 여러 가지 모습들 전달하는 데 많은 역할 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한성희 :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파주저널 한성희 차장을 초대해 국토분단의 한 단면을 잘 보여주는 민통선 마을 사람들의 삶과 그들이 고향을 버리지 않는 이유에 대해 얘기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