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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표 '매운 김치외교', 이스라엘엔 "달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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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표 '매운 김치외교', 이스라엘엔 "달콤"

"미국과 거리 유지 조언, 조용히 무시"

지난 24일 한국 언론들은 일제히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민감한 외교현안의 당사자들에게 '쓴 소리'를 주저하지 않는 '김치외교'를 펼치고 있다"는 평가를 전했다. <워싱턴포스트> 주말 판 <퍼레이드>의 23일자 커버스토리를 인용한 것이다.

<퍼레이드>는 "반 총장이 정말 유엔을 구한 사무총장이 될지 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며 반 총장의 성공 여부에 대해서 단정을 미뤘지만, '김치외교' 부분을 중점적으로 인용한 한국 언론들은 이미 반 총장의 반년 행적에 후한 점수를 준 뉘앙스였다.

특히 반 총장이 이스라엘의 분리장벽 설치와 팔레스타인의 대 이스라엘 로켓 공격을 싸잡아 비난한 점이나 이란에 "북한의 핵 프로그램 폐기 약속을 배우라"고 지적한 것을 '매운 김치 외교의 대표 사례'로 들어, 반 총장 취임 이후 구현된 유엔의 중동정책이 사뭇 객관적이고 공정하다는 메시지로 전달될 공산이 크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뉴욕에서 진보적인 유대인들이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포워드>는 "취임 일 년도 채 되지 않은 반 총장이 이스라엘의 이해에 노골적으로 편중된 입장을 보여서 많은 이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인 유엔사무총장'에 대한 한국 언론의 평가와 '세계인 반기문'에 대한 국제 사회의 평가 간에는 온도차가 다분한 것이다.

"미국과 거리 유지" 고언 한 중동특사 밀어내고 친 이스라엘 인사 배치
▲ 시사 만평가 존 콕스가 그린 반기문 사무총장.

ⓒhttp://www.coxandforkum.com



반 총장의 중동 관련 행보에 대한 <포워드> 최신호의 평가는 한 마디로 "조지 부시 미 행정부의 정책을 추종하는 기류가 확연하다"는 것이다.

미국과 '안전거리'를 확보해야 한다는 내부자의 조언은 조용히 무시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 러시아, 유럽연합, 유엔이 구성한 '쿼르텟(Quartet)'의 유엔 특사가 교체된 것이 그 대표적 예로 꼽혔다.

코피 아난 전 총장 시절 임명됐지만 반 총장 체제에서도 당연히 유임될 것으로 여겨졌던 페루 외교관 출신 알바로 데 소토 특사가 지난 5월 돌연 사임하고, 그 자리를 영국 출신 마이클 윌리엄스 중동 담당 특별 보좌관이 채운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데 소토 전 특사가 스스로 사의를 밝힌 것으로 돼 있지만 사실상 미국과 이스라엘의 압력에 밀려났다는 게 유엔 내부의 일반적인 평가다. 새로 임명된 윌리엄스 특사는 특보시절부터 이스라엘에 우호적이기로 정평이 나 있는 인물이다.

데 소토 전 특사는 올 1월 반 총장에게 "미국 외교 리더십의 쇠퇴가 새로운 전략 환경의 주요 특징"이라고 주장하는 내부 보고서를 올려 미국과 이스라엘의 눈 밖에 났다. 미국이 팔레스타인 평화 정착과 관련한 노력을 강조하고 나선 것에 대해서도 "눈속임에 불과해 보인다"고 혹평했다.

"신임 총장은 2007년 1월 부시 행정부가 발표한 중동 정책 방향에 편승하는 무언가를 구상하는 일에 개입돼선 안 된다. 부시 정부는 어쨌든 바뀔 것이지만 반 총장은 향후 5년 혹은 10년 간 사무총장직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세계의 화약고라 불리는 중동에서 반 총장은 독립적인 입지를 유지해야지 2년 후면 물러날 미국 특정 정권의 정책에 맞춰선 안 된다. 우리의 정책은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나 치피 리브니 이스라엘 외무장관과는 달라야 한다."

중동 정책을 둘러싼 반 총장과 데 소토 특사 간의 시각차는 데 소토 특사가 사임 직전에 제출한 53페이지짜리 대외비 문건이 지난 13일 영국 일간 <가디언>에 의해 공개되면서 전 세계로 알려졌다.

데 소토 특사는 전임 코피 아난 총장 밑에서 2005년 6월부터 지난 5월초까지 약 2년간 유엔 중동 특사를 역임한 인물. 그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대한 유엔 사무총장 개인특사'라는 직함도 갖고 있었지만 하마스 소속의 하니야 총리를 직접 만나 적은 단 한 번도 없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의 접촉도 2차례의 전화연락에 불과했다고 이 문건에서 고백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자신과 팔레스타인측과의 접촉을 가로막았다는 얘기다.

아난 전 총장은 재임 당시 '이라크전쟁은 불법'이라는 발언 등으로 나름대로 유엔의 독립성을 유지하려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아난 총장 재임 시절에도 유엔 특사와 팔레스타인과의 접촉이 이처럼 극도로 제한됐다면 반 총장 휘하의 유엔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는 불을 보듯이 뻔한 일이다.

"유엔이 미국과 이스라엘에 아첨하느라 중동 정책을 망치고 있다"는 데 소토 전 특사의 맹 비난을 반 총장 측은 "개인적 의견"으로 일축하며 정면 대응을 피하고 있다.

반 총장과 유대인 그룹 간의 연락책을 맡고 있는 스테판 뒤자릭 전 유엔 대변인은 "반 총장은 자신의 최우선 해결 과제가 중동 문제임을 수차례 강조해 왔으며 중동문제와 관련된 모든 당사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이 외에 반 총장이 최근 정무담당 사무차장에 인도네시아 주재 미국 대사 출신 린 파스코를 임명한 것도 노골적인 친미 행보로 여겨진다.

미국 현직 외교관이 유엔 고위직으로 채용된 것은 전례에 없는 일이었을 뿐더러, 정무담당 사무차장은 주요 외교 문서들을 검토하고 데 소토와 같은 특사들을 관장하는 요직이다.

가령, "민주적 선거를 거친 하마스를 팔레스타인 대표 세력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데 소토 전 특사의 보고서가 파스코 차장의 손을 거치게 된다고 가정하면, 반 총장에게 원문대로 전달되리라 기대키도 난망해 진 것이다.

'친미 사무총장'의 미국식 중동정책에 유대계 환호

반 총장이 부시 행정부와 다를 바 없는 중동 정책을 펼치리라는 기대감이 퍼지면서 유대인 조직 내에서 반 총장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치솟는 것은 당연지사다.

'브네이 브리스'의 시빌 케슬러 유엔담당 국장은 "새로운 인물과 새로운 발상에 대한 기대가 있다"며 반 총장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협상을 이스라엘에 유리하게 풀어 나갈 것이란 바람을 감추지 않았다. '약속의 자손'이란 뜻의 '브네이 브리스'는 유대인만이 가입할 수 있는 조직원탁회의체다.

이와 더불어 반 총장이 지난 14일 타계한 쿠르트 발트하임 전 유엔사무총장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유대인 이권 관련 최대 로비 조직인 '미국 유대인 조직 회장 회의'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발트하임 전 총장은 2차 대전 당시 나치 친위대에 복무했고 그가 소속됐던 부대가 유대인 학살 사건을 주도했음이 드러나면서 이스라엘과 불편한 관계를 지속해 왔다.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뒤 오스트리아 대통령 자리에 오르자 이스라엘은 항의의 표시로 자국 대사를 소환하기도 했으며 발트하임 정권 내내 오스트리아는 전 세계 유대인 단체와 미국 정부로부터 '찬밥' 취급을 당했다.

이에 반 초장은 선배 사무총장의 장례식에 불참하는 결례를 무릅쓰고서라도 유대인 세력과 불편한 관계를 만들지 않겠다는 '성의'를 보임으로써 '국제사회의 실세'인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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