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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사ㆍ실종 군인 15만 7천명 중 현충원 안치 2만 7천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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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6.25 전사ㆍ실종 군인 15만 7천명 중 현충원 안치 2만 7천 구"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6/25]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박신한 단장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휴전 반세기가 지나고 남북간에 열차가 오가도 아직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6.25 한국전쟁 당시 전장에서 싸우다 실종돼 아직 유해를 찾지 못한 국군전사자들인데요. 무엇보다 유해가 묻힌 곳을 알기 힘들어 유해찾기에 어려움이 따르고 있답니다. 한편, 최근 한 설문 조사 결과.. 서울시내 초등학생의 38%가 '6.25를 조선시대 전쟁'으로 알고 있고 20대의 절반 이상이 6·25가 몇 년도에 일어났는지를 모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6.25 전쟁이 아이들은 물론 국민들의 뇌리에서 서서히 잊혀지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한데요.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6.25 57주년을 맞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박신한 단장과 함께 유해발굴의 과정과 의미를 비롯해 유해찾기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뭔지 얘기 나눠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박신한 단장입니다! 박신한 단장은 1980년 ROTC 18기로 임관해 31사단 96연대 제1대대장과 9공수특전여단 참모장 그리고, 36사단 107연대장을 역임했습니다. 이후 육군본부 전사자유해발굴과장을 맡았고 올해부터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초대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오늘이 6.25 57주년인데 유해발굴감식단이라는 게 육군본부의 전사자 유해발굴과였다가 올해 국방부 산하 유해감식단으로 확대됐다고 들었습니다. 확대한 이유는 뭘까요? 본격적으로 작업한다는 건가요?

박신한 : 이 사업은 지난 2000년 6.25 50주년 기념사업으로 최초는 한시적으로 약 3년간 계획했습니다. 그런데 해를 거듭하면서 많은 유해가 발굴되면서 국민적으로 관심이 집중되게 되고 또 2003년에 이 중요성을 깨달은 정부에서 사업 지속을 결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육군본부에 이 사업을 전담하는 1개 과를 편성하고 예하 부대에 9명씩 2개 반, 총 18명으로 구성된 유해발굴반을 잠정 편성하게 됩니다. 그래서 2005년도 6월에, 이렇게 해선 이 사업이 언제까지 13만에 달하는 분들을 찾겠는가 하는 문제가 대두돼서, 이 사업을 국가영구사업으로 하기 위해서 조직보강을 해야겠다. 그래서 통상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의 제이팩이란 부대와 유사한 전담부대를 만들게 된 것이죠.

박인규 : 지금 확대됐다면 대략 인원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박신한 : 무엇보다 먼저 인력확대가 가능했는데요, 최초 육군에서 한 20여 명에서 85명, 그래서 그 인원 가지고 저희들이 5개 과, 4개 발굴반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래서 조사에서부터 발굴, 신원확인, 안장에 이르는 전 과정을 저희들이 독자적으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말하자면 이 부대는 전투하는 부대가 아니라 돌아가신 국군 전사자를 찾아서 이분이 어떤 분인가를 알아내는 작업이기 때문에 그 방면의 전문가들이어야 될 것 같은데 그런 분들이 많이 계십니까?

박신한 : 그렇습니다. 발굴이 단순한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데 발굴에 임하는 요원들은 입대 전에 고고학이라든가 인류학 관련학과를 수료한 사람 중에서 개인이 자원입대해서 선발해서 활용하고 있구요. 보다 전문성이 필요한 감식 분야는 충북대와 용역을 통해서 유해발굴센터와 전문인력이 같이 일하고. DNA 감식도 마찬가지.

박인규 : 그 분들은 발굴감식단 소속은 아니지만 도와주시는 분들...

박신한 : 예. 용역으로 저희들이 예산을 투입해서 같이 하고, DNA 감식도 마찬가지로 연세대나 서울대 법의학교실과 연결해서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치신 분들의 유해를 찾는다니 반갑긴 한데 6.25가 난 지 50년 만에 그 작업이 시작됐다. 너무 늦은 게 아니냐는 생각이 좀 들어요.

박신한 :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당연한 지적이시구요. 6.25 아침에... 그 날 6.25도 비가 왔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어서 오늘 아침부터가 좀 착잡하고 더욱 책임감이 드는데, 이웃 간에 빗자루를 빌려도 깨끗이 씻어서 돌려주는 거거든요. 하물며 국민의 하나 밖에 없는 생명을 국가가 빌려놓고 그걸 책임을 못 졌거든요. 국가가 국민에게 국방의무만 부과해 놓고 국가적 책임은 다하지 못했다. 그러면 혹자들, 여러 분들은 국가의 존재가치가 없다. 그런 말씀을 하는데 우린 그동안 전후복구, 경제개발, 먹고 사는 데 전력한 관계로 이 분야에 관심을 쏟을 만한 국가적인 여유가 없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 사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는 나라는 또 세계적으로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른바 선진국, 국가적 여유, 또 정신적인 문제까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나라만이 가능했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도 이제는 이렇게 국가적 역량이 이런 데 관심가질 수 있다. 가장 늦었다 할 때 가장 빠르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여기에 또 비유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박인규 : 하긴 지금이라도 찾아 나섰으니까. 그런데 6.25 전쟁 당시에 돌아가신, 희생당한 국군 전사자가 몇 분이나 되고 그 중에 유해를 찾지 못한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박신한 : 국방부 공식 기록에 의하면 6.25 당시 국군 전사자가 약 13만 7천 8백여 분 됩니다. 그 중 실종자 2만여 명을 합해서 15만 7천여 명이 전사 또는 실종자, 희생되신 분인데 지금 이 중 2만 7천 9백 구가 현충원 묘역에 잠들어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약 13만 명이 아직도 이름 모를 산야 어딘가에서 조국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박인규 : 그럼 6.25때 돌아가신 국군 전사자의 대부분이 가족을 못 찾고 있다는 얘기네요. 국군 전사자 유해발굴작업이 2000년부터 시작됐는데 지금까지 약 6년 반. 그동안의 실적이랄까요? 몇 분이나 찾아내셨습니까?

박신한 : 지금까지 총 1837구를 발굴했는데 그 중에 국군은 1439구, 유엔군 한 8구, 북한군 중공군 합해서 적군이 한 390구 정도 발굴했습니다.

박인규 : 그럼 1439구가 국군 전사자들인데 이 분이 어떤 분이고 신원이 확인되고 가족을 찾아간 분들은 얼마나 됩니까?

박신한 : 신원이 확인된 분은 약 54구, 유가족까지 확인된 분은 26분 정도..

박인규 : 신원확인이 어려운가보죠?

▲ ⓒ프레시안

박신한 :
그렇습니다. 전투 중 생사의 기로에서, 불확실상황에서 그때그때 발생되는 전사자를 처리하기란 상당히 어렵습니다. 통상 신원확인을 할 수 있는 기록 및 표시를 해서 임시매장했다가 전투가 종료되면 발굴하게 되는데, 그 당시 우리는 아시다시피 준비가... 창군된 지 2년 밖에 안 된 상태애서 원하지 않는 전쟁을 치르다 보니 이런 준비에 대해서 전혀 노하우가 없었죠.

박인규 : 일반적으로는 군번줄로 확인한다는데 그것만 있으면 금방 찾는 거 아닙니까? 없는 분이 많았던 모양이죠?

박신한 : 그렇습니다. 초전에... 군번은 국방경비대 시절부터 있었으나 초전에 많은 군인 사상자가 생기고 대거 50년 7월부터 9월 이후까지는 많은 분들의 군에 편입이 있었습니다. 그분들한테 국가가 제대로 군번줄을 해줄 수 있는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해 발굴되면서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군번이라든가 유품이 극히 제한된다는 것이죠.

박인규 : 26명이면 1439명 중에 2% 됩니까? 이 분들은 가족을 찾으셨어요. 혹시 가족을 찾는 자리에 참석해 보셨습니까? 그분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시는지 궁금하기도 하구요.

박신한 : 지금 50여 년 간 눈물이 메말라 있죠. 메말라 있고. 그게 어떤 자기 아들이라든가 남편으로서, 또 아버지로서의 간절히 바라던 분인데, 그건 저는 현장에 있었지만 그분들의 당사자 입장에서의 기쁨이랄까, 그런 건 이루 제가 여기서 다 표현할 수 없죠.

박인규 : 가족을 찾은 26구의 국군 전사자들은 대개 현충원에 묻히시나요?

박신한 : 현충원에 정식 묘역을 가지고 묻혀 있습니다.

박인규 : 일단 13만 명의 국군 전사자가 아직 유해를 못 찾았는데 찾은 게 1400구 남짓. 유해를 찾는 게 굉장히 어려운 모양이죠?

박신한 : 유해라는 게 통상 전투현장에 그대로 남아 있고 또 두 번째는 마을 주변에 전사자가 너부러져서 자기 생존의 현장에 전사자가 있기 때문에 주민들이 수습을 한 두 가지 형태로 나눠집니다. 그런데 55년이 지나다 보니 자료가 없습니다. 전사자 유해 소재에 대한 자료가.. 그래서 통상 저희들이 여러 가지 제보를 듣고 전사를 분석해서 이 산 저 산 계곡을 헤매는데 통상 한 80개 정도를 굴토해야 평균 1구가 나오는 게 지금까지 한 결과로 통계로 알 수 있습니다.

박인규 : 80군데를 발굴하시면 그 중에 한 구가 나온다. 한 구가 아니라 여럿일 수도 있습니까?

박신한 : 그렇죠. 그런데 저희들은 작업이란 표현을 잘 안 쓰거든요. 작업에는 정신이 안 달렸고 단순하기 때문에 이건 호국의 얼울 거둔다는 의미에서 그 표현을 잘 안 쓰는데, 저희들한테는 10cm의 아쉬움이란 말이 있습니다. 10cm만 좀 더 파면, 좀 더 나가면 나올 수 있을 텐데, 여기서 멈추면 혹 이 근처에 또 있을 텐데, 그런 아쉬움 때문에 일이 더 많아지는데 통상 전사자들은 4,500.. 때론 6,700 고지에서 나오기 때문에 그걸 발굴하면서 점심 먹으러 내려왔을 때는 하루 두세 시간을 잃어버리거든요. 통상 저희들이 주먹밥을 휴대한다든가 그런 많은 노력이 있죠. 그러나 그분들의 희생에비하면 저희들의 노력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박인규 : 유해찾기를 위해서 우선 어느 장소에 있을 것이다... 는 주로 제보에 의존하시는 건가요?

박신한 : 그렇습니다. 저희들이 전사를 통해서 6.25 전투전사라고 해서 주요 격전지를 에리어는 알고 있는데 정확히 어디어디 있을 것인가... 그건 제보와 현장에 저희들이 어떤 전술적 상황에 입각한 분석을 통해서, 쉽진 않습니다.

박인규 : 기본적으로 제보가 많이 들어와야 될 것 같은데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까?

박신한 : 작년 KBS에서 반 세기만의 귀환이라는 현충일 특집방송이 있었습니다. 그게 이 사업의 상당한 전환기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전에는 연간 한 50여 건의 제보가 오다가 방송 나간 뒤로는 한 200여 건... 그래서 많은 제보가 들어오고 있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하죠.

박인규 : 이 방송이 나가면 또 제보가 들어올 수도 있겠네요. 일단 제보가 들어오면 어떤 식으로 작업하시는지 간단히 설명해 주시죠.

박신한 : 제보 들어오면 정확한 현장의 가능성을 저희들이 여러 가지 다각도 분석을 통해서 평가하게 됩니다. 발굴이 결정되면 연간 계획을 수립하고 현장을 금속탐지기라든가 여러 가지를 가지고 중요한 포인트를 정한 다음, 고도의 전문화된 전문요원에 의해서 문화재 발굴기법과 똑같은 기록과 수습을 하고. 그야 말로 정성과 예를 다해서.. 어떤 때는 포크레인도 투입하고 싶은데 유해가 있기 때문에 그건 못하고 순수하게 호미나...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그걸 한 다음 발굴된 유해에 대해선 적군인가 아군인가를 식별합니다.

그 유품 가지고, 또 기록을 통해서, 현재 정황을 보면 대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군 전사자 같은 경우는 신원확인이 어렵기 때문에 유가족, 전사자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저희들이 채혈을 받습니다. 전국 군병원에 항시 가시면 채혈을 무료로 받는데요, 그렇게 그걸 축적해 놓고 계속 발굴된 유해에서 DNA를 추출해서 계속 맞춰나가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게 확인되면 신원이 확인된 분은 현충원 정식묘역에 안장되고 신원이 미확인된 분들은 확인할 때까지 현충원 무명용사탑에 있다가 확인되면 다시 모셔지고. 적군 같은 경우는 저희들이 매년 군사정전위를 통해서 송환의사를 타진하는데 아직까진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인도적 입장에서 별도 적군묘지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이 장소에 국군전사자 유해가 있을 것 같다는 제보가 들어와서 말하자면 발굴하고 신원이 확인되고, 진짜 전사자가 있구나.... 대략 시간이 얼마나 걸립니까?

박신한 : 케이스 바이 케이스인데요, 어떤 때는 확인이 되면 1주 만에도 되고, 저희들은 연간계획을 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유해가 노출돼 버리면 한시라도 기동발굴팀이 있어서 해오지만, 그 전 해에 연간 해야 될 것은 지역별로 다 정리합니다. 통상 한 달, 1주.. 대중없습니다.

박인규 : 말하자면 본인이 6.25 전사자 가족인데 유해를 못 찾았다, 그럼 감식단에 와서 채혈을 하는 게 우선순서겠네요.

박신한 : 그렇습니다. 전국에 19개 국군병원이 있거든요. 서울부터 전국 대도시에는 다 있는데 거길 찾아가셔서 신청서를 쓰고 채혈하시면 일단 찾는 건 등록되는 겁니다.

박인규 : 그렇게 해서 신청하시는 분이 많이 있습니까?

박신한 : 한 2500분 밖에 안 되기 때문에 이것도 홍보가 안 됐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런 걸 통해서 많은 분이 알고 참여하시게 됩니다.

박인규 : 아까 말씀하신 중에 1434구의 국군 전사자 유해를 찾았고 그 중의 54분의 신원확인을 했는데 가족을 찾은 건 26명이다. 그럼 28명은 가족을 못 찾은 건데 혹시 방송 듣는 분들 중에 28명 중에 우리 가족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분들은 어디다가 알아봐야 됩니까?

박신한 : 저희 전사자 유해발굴, 또는 국방부 유해발굴... 그런 걸 인터넷에 치시면 저희 사이트가 나옵니다. 거기 보면 못 찾은 분들 이름, 그동안 찾았던 분들의 상황, 모든 유해발굴 사업에 대한 모든 걸 보실 수 있습니다 .혹시 그 중에서 자기 친구였다든가 함께 싸운 전우였다든가 자기 친척이 있는 분들은 저희들한테 연락 주시면 그분들이 정말 가족의 품에 빨리 돌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인규 : 올해 80여 명 규모의 발굴감식단으로 확대해서 일을 시작하셨는데 올해 목표랄까요? 어떻게 잡고 계신지요?

박신한 : 이 사업은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지금 이 전사자 유해 소재를 알고 계시는 분들이 대개 6.25 세대로 70대 후반, 80대... 오늘도 나날이 기억이 혼미해져 가고 세상을 떠나고 계시거든요. 이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유해 소재를 찾는 게 급선무거든요. 그래서 저희들은 향후 한 3~5년의 노력 정도가 이 사업의 성패를 좌우한다. 우리가 그 사이 게을리 했을 때는 영원이 호국의 얼을 땅 속에 묻고 지내는 부끄러운 국민이 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저희들은 이 사업이 물론 7년간 해왔지만 그야 말로 올해가 도약할 수 있는 원년으로 보고 다각도의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데, 먼저 무엇보다도 관련법이 없습니다. 법적 근거가 없고, 그래서 유해가 훼손돼도 어떤 과정이 안 되고, 또 유관기관과의 문제. 또 국가가 영원히... 영구책무라는 게 법정신에 안 담겨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담긴 법이 금년 9월 국회에 제출될 겁니다.

그래서 그걸 토대로 해서 전사자의 13만 되는 유가족까지 그런 걸 전반적인 데이터베이스를 하고, 발굴조직과 예산이 더 늘어나야겠죠. 정부 차원에서 뭔가 변화가 있을 겁니다. 그런 노력. 또 남한 쪽만 아니라 비무장지대와 북한 쪽에도 적지 않은 유해가 있는데 그걸 찾기 위한 노력, 그에 대한 자료수집, 언젠가는 함께할 것이 있을 것이다. 오늘 아침 모 일간지를 보면 북핵이 해결돼서 향후 정전에서 동전까지 평화세대까지 갔을 때 진정한 평화는 이 당사국들이 가시적인, 서로의 유해를 함께 발굴하는 것 이상은 없을 것 같습니다. 진정한 평화와 화해의 상징. 그래서 기대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말씀 듣고 보니 국군 전사자 유해찾기는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박 대장님은 작년부터 국군 전사자 유해찾기작업을 해오셨는데, 한 1년 반쯤 하셨으니까 아마 하시면서 보람도 느끼셨을 것 같고 애로사항도 있었을 것 같은데, 우선 이 전사자 유해찾기의 의미랄까? 보람을 느끼셨던 게 있다면 어떤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박신한 : 저뿐 아니라 참여하는 모든 장병들은 마찬가지겠습니다만 저희 군생활 중 가장 의미있는, 남들이 다 하는 거.. 누군가 해야 되는 거지만. 그래서 항상 보람있고. 책임감에 항상. 저희들이 어떤 때는 일주일 내내 유해가 안 나올 때도 있습니다. 그럼 저희들은 혹시 우리가 뭔가 세상을 좀 잘못 살지 않았나 그런 것도 있고. 함께 술도 한 번 안 먹을 때도 있고, 그런 노력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사업이 국민이 함께해야 될 사업이거든요. 어느 특정 부서나 국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국민들과 함께하는 공감대 형성이 중요한데, 6월만 되면 여기에 대한 관심이 막 고조됩니다. 그러다가

박인규 : 보훈의 달이니까

박신한 : 그렇습니다. 그러다가 6월이 지나면 1년 뒤에 다시 언론화가 되는데, 그간 KBS를 포함한 많은 언론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왔을 겁니다.

박인규 : 6월 한 달에만 관심가질 게 아니라 1년 내내 가졌으면 좋겠다. 아까 말씀하시길, 국민들의 몫으로는 말하자면 격전지가 있는 데를 아시는 분은 많이 제보해 주시고, 가족들은 채혈을 해서 찾을 수 있는 그런 국민들의 몫도 있을 것 같고, 관련법에 대해 몇 가지 말씀해 주셨어요. 궁금한 건 아무래도 이게 예산 부분도 중요할 것 같은데, 예산지원은 충분합니까?

박신한 : 정부 예산이 지금 저희들이 2000년부터 작년까지 육군의 모습으로.. 그땐 연간 하 3, 4억 썼습니다.

박인규 : 너무 적은 것 같은데요

박신한 : 예. 그래서 올해 국방부로 오면서 한 8억.. 순수 발굴비만. 그런데 저희들이 연 평균 각 지역별, 부대별로 한 12000명이 사업에 참여합니다. 그 인건비까지 계산하면 그래도 적지 않은 수준이겠죠. 그러나 순수발굴비를 지금 현재 8억 쓰고 있는데 아주 많이 부족하죠. 내년엔 좀 더 변화가 있을 겁니다. 이게 법적인 뒷받침이 없다 보니 협조하는 것.. 공감은 느끼면서.... 애로사항이 많았습니다. 법이 되면, 지자체와 국가가 함께하면 뭔가 더 가시적인 성과가 있을 겁니다.

박인규 : 법은 지금 제정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거죠?

박신한 : 입법예고가 끝났고 국무회의에서 통과되면 국회에 제출돼서 9월 정기국회에서 통과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여러 가지 애로사항도 있겠지만 정말 유해찾기가 필요하다.. 랄까 일한 보람이 있다고 느끼신 특별한 사례가 좀 있나요?

▲ ⓒ프레시안

박신한 :
이 한 가지 한 가지가 정말 감동적이고 그 연속인데요, 57년간 비바람 속에 묻혀 계시던 그 13만의 분들, 어쩌면 그분들이 아직까지 땅 속에 전사해서 나라에 기여하셨고 결정적으로. 또 57년간 땅속에 계시기 때문에 또 국가에 기여한다고 봅니다. 어떤 면에서냐. 6.25라는 것이 계속, 서두에서도 말씀하셨지만 계속 잊혀져 가고 있는데 이러한 실체를 통해서 이렇게 나와 주심을 통해서 6.25를 잊지 않게 되는, 또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또 어떤 역할을 하고 계시거든요. 그런 사안인데 저는 작년에 수통이 홍천지구에서 발굴됐는데 거기 함자로 장복동이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찍혀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박인규 : 돌아가신 군인의 이름인가보죠?

박신한 : 그렇습니다. 그분은 그걸 계기로 해서 유가족까지 현충원에 계신데 물론 수통의 케이스는 불과 며칠 전 6월 15일에도 또 홍천지구에서 확인이 돼서 민태식 일병이라는 분이, 근데 손죽도라는 장복동씨 출신인데 전남 여수에서도 엄청나게 많이 들어가는 낙도입니다. 그 과정을 확인해 보니 한 400호가 되지 않은 데서 한 60여 명의 젊은이들이 한날 한시에 군입대를 했습니다. 한 부대를 가서 반이 고향으로 못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아... 나라를 지킨다는 게 대단한 사람들의 희생이 아니라, 정말 평범하고 정말 국가가 뭘 해주지도 않았던 그런 필부의 자식들의 희생으로 오늘의 우리가 있다는 걸 저는 새삼 느꼈고 이걸 국민들도 정말 알아야 됩니다.

박인규 : 6.25 전사자 중에 유해를 찾지 못하신 분들이 13만여 명이라고 하셨는데 찾은 건 1400여 명. 물론 신원확인까지 하면 얼마 안 되지만 상당히 어려운 일일 것 같아요. 물론 다 찾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목표 같은 걸 갖고 계십니까?

박신한 : 이 사업은 말입니다. 저희들이 과거를 물론 그 분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넋을 위로하지만 미래를 위한 사업입니다. 그래서 온갖 어려움이 있더라도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계속돼야 할 사업입니다. 저희들은 지금 매년 한 400구를 발굴해서 언제까지 할 것이냐, 이 6.25 1세대들... 형제들이 계시는 동안 뭔가 가시적인 성과가 달성돼야 한다. 가시성과는 그냥 만 대 이상의 수치인데,

박인규 : 적어도 가까운 장래에...

박신한 : 그렇습니다. 그래서 향후 5 내지 10년 이내에 정말 가시적으로 신원확인이 되는 사람들이 또 쉽게 나올 수 있는, 그런 노력을 위해서 여러 가지 대책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박 대장님 말씀하신 것 중에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치신 분들에 대해서는 국가가 무한책임을 저야 한다. 중요한 일인 것 같고요. 물론 국군 전사자 유해찾기가 감식단이 주체가 돼서 찾겠지만 여러 가지 국민이나 정부의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단장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당부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말씀 간단하게 해주시죠.

박신한 : 아까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미국을 얘기를 많이 합니다. 미국은 이 사업을 남북전쟁 당시부터 시작했어요. 한 30만의 전사자를 처리하면서 중요성을 느끼고 오늘날까지 이 분야에 아낌없는 예산을 투입하고 있는데요, 이를 통해서 국가와 국민 간의 끈끈한 신뢰감 이것이 평시 애국심으로 나타납니다. 우리도 이제 국가적 역량이 이 사업을 하게 됐으니까 정부만이 아니라 국민이 함께 동참하셔서 유해의 소재를 알고 계신 분은 언제라도 제보해 주시고, 올해부턴 저희들이 또 20에서 50만원 제보비를 드리고 있거든요. 그 한 가지의 사소한 제보가 저희들한테는 큰, 한 분의 전사자가 가족의 품으로 온다는 거 잊지 마시고, 저희들에게 힘 주시고 용기를 주시면 저희들은 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이 사업을 끝까지 해낼 것입니다.

박인규 :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나라를 위해서 국군 전사자들을 유해를 한 구라도 더 가족을 찾아갈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박신한 :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6.25 57주년을 맞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박신한 단장과 함께 국군 전사자 유해찾기에 관해 말씀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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