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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도 지긋지긋한데 이번엔 미국이냐"

체코 국민 61%가 MD 기지 반대…정부만 "환영"

4일 미사일방어(MD) 기지 설치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체코 프라하에 발을 디딘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을 맞은 것은 '반미의 함성'이었다.

체코 <CTK> 통신은 2000명 규모의 시위대가 체코 외교부 청사와 미국 대사관을 에워쌌다고 전했다. 이 중 100명은 대사관 진입을 시도하다가 경찰에 의해 저지되기도 했다. 이날 시위를 예상한 체코 정부는 프라하 시내에 경찰 1500명을 미리 배치해 두었다.

이날 '환영 인파'가 아닌 '시위 인파'가 몰렸다는 소식에 부시 대통령은 고개를 갸웃거렸을지도 모른다. 체코 정부는 분명 "북한과 이란의 위협에서 유럽을 방어하려는" MD망 구축에 공개적인 지지 의사를 밝혀 왔기 때문이다.

보헤미아 주민투표, 90%가 "MD 반대"

미렉 토폴라넥 체코 총리는 최근 체코 영내에 MD 기지를 설치하는 것은 "자유화를 완성하는 과정"이라며 부시 대통령의 계획에 대대적인 찬성을 표한 바 있다.

기지 관련 협상팀의 마틴 포브실 역시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체코 내 미국의 존재는 체코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부시 대통령의 다음 순방지인 폴란드 정부 역시 "MD는 미국과 폴란드 간의 양자 군사협력을 강화할 좋은 기회"라며 환영 의사를 밝혔었다.

이에 이번 순방을 통해 체코에는 레이더 기지를, 폴란드에는 10개의 요격 미사일을 각각 설치한다는 계획을 사실상 마무리 지으려 했던 부시 행정부 앞에 '난 데 없이' 시위대가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에 반대하는 것은 이런 행동파 반미주의자들만이 아니다.

프라하 여론조사기관인 <CVVM>이 지난달 7일부터 14일까지 체코 국민 113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1%가 MD기지 설치계획에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57%는 이 문제를 정부가 국민투표에 붙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지 건설 예정지인 보헤미아 지역 주민들의 반대는 좀 더 격렬했다. 지난 2일에 자예코프 시를 비롯한 3개 시에서 주민투표를 실시한 결과, 투표자의 90% 이상이 반대표를 던졌다. 이보다 먼저 주민투표를 실시한 흐보즈다니, 테네 등 다른 2곳에서도 반대가 압도적이었다.

자치단체의 주민투표 결과는 중앙정부에 구속력을 갖지 못하지만 국회의원들로서는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대 의사를 무시할 수 없는 만큼, 주민들의 이번 투표 결과가 내년 초로 예상되는 의회 승인 표결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4일 프라하 공항에 내린 부시 대통령을 맞은 것은 환영인파가 아닌 시위인파였다. 부시 대통령 분장을 한 프라하의 한 반미 시위자.ⓒ로이터=뉴시스

"소련군 나갈 때 얼마나 기뻐했는데…"


이처럼 친미 우파 성향의 중앙 정부와 일반 여론이 괴리된 것은, 과거 소련군을 겪었던 체코 국민들이 외국군 주둔에 뿌리 깊은 반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예코프 시에서 택시를 운전하는 밀란 씨제크 씨는 "소련군이 물러났을 때 우리가 얼마나 기뻐했는데 그 자리에 다른 군대가 들어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말로 압도적인 주민 반대의 이유를 설명했다.

조셰프 흐루비 자예코프 시장은 1989년 체코 민주화 혁명인 '벨벳혁명'을 통해 선출됐던 바클라프 하벨 전 대통령이 "더 이상 체코 영내 외국군의 주둔은 없다"고 선언했던 것을 거론하며, "정부는 하벨 선언 이후 어떤 상황이 바뀌어 외국군 주둔을 허용하게 됐는지를 국민에게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부시 행정부가 MD 기지 설치의 이유로 내 건 '북한과 이란의 위협'이 정작 체코 주민들의 피부에는 위협으로 와 닿지 않는 것도 반대 여론이 비등한 다른 이유로 보였다.

프라하 미국대사관 앞 시위에 참여했던 학생 마르가레트 요노바 씨는 "우리는 이란으로부터 그 어떤 위협도 느끼지 못한다"며 오히려 부시 행정부를 "비도덕적"이라고 비판했다.

자예코프 시의 회사원인 피터 플레시티 씨는 "내가 보기에 미국은 보호자라기보다는 공격자에 가깝다"며 "체코에 미군 기지가 들어서는 것은 후대를 위해서도 좋은 환경이 못 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반발도 격렬, G8 정상회담에서 미·러 '맞짱'

러시아의 반발이 날로 거세지고 있는 것도 부시 행정부로서는 골칫거리다. 러시아 입장에선 미국이 자신들의 뒷마당까지 치고 들어오는 상황을 반길 리 없는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영국 <더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동유럽에 MD 구축을 강행한다면 핵전쟁을 촉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쪽(미국)은 미사일에 대한 방어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다른 한쪽(러시아)은 그런 능력을 갖고 있지 않은 상황은 핵전쟁이 발생할 가능성을 높인다"는 주장이었다.

푸틴 대통령은 "보복조치 가능성"을 언급하며 "탄도미사일 혹은 크루즈미사일을 이용해 유럽에 배치된 MD 시설 타격에 나설 수도 있다"는 구체적인 방법론까지 거론하며 경고의 수위를 높였다. 러시아는 일주일 전 MD에 걸리지 않도록 고안된 신형 다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한 바도 있다.

이에 6일부터 열리는 선진8개국(G8) 정상회담은 MD 문제를 둘러싼 미·러 간 격돌의 장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MD를 두고는 양측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만큼,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들먹이고, 이에 러시아는 미국의 관타나모기지 인권유린과 서구의 이중 잣대 등을 거론하는 '신경전'이 벌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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