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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쌀 지원 안하면 2.13합의가 이행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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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쌀 지원 안하면 2.13합의가 이행될까

남북장관급 회담 성과 없이 끝나…차기 일정도 못 잡아

제21차 남북장관급회담이 차기 회담일정도 잡지 못한 채 사실상 결렬됐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31일 오전 청와대를 급거 방문해 노무현 대통령에게 대북 쌀 차관 제공에 대한 모종의 결단을 '읍소'했지만 북핵 2.13합의의 진전이 없는 한 쌀 차관을 유보한다는 대통령의 뜻을 넘지 못한 데 따른 것이다.

회담 둘째날인 지난달 30일부터 쌀 지원 불이행을 문제 삼아 다른 의제에 대한 논의를 거부한 북측 대표단은 끝까지 그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빈손으로 돌아갔다.

남북 양측은 1일 오후 3시 20분 경 회담장인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종결회의를 열어 알맹이 없는 공동보도문을 발표하고 돌아섰다. 3박 4일 동안 실무대표접촉 2회, 수석대표접촉 3회밖에 하지 않은 '껍데기' 회담이었다.
▲ 손은 잡고 있지만…. 권호웅 북측 단장 환송하는 이재정 통일부 장관 ⓒ뉴시스

노무현 대통령 '남북관계 철학 부재'의 산물

회담 결렬의 표면적인 이유는 북한이 쌀 차관 문제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북측은 지난달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추위) 제13차 회의에서 쌀 40만 톤을 5월말부터 제공하기로 한 남측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것에 대해 강력히 반발했다. 북한의 이같은 태도는 회담 전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그러나 회담 결렬의 실질적인 이유는 남측이 그처럼 약속을 지키지 않게 된 배경 때문이란 게 전문가들의 압도적인 견해다. 그 배경이란 북핵문제와 남북관계의 연계, 구체적으로는 2.13합의와 쌀 지원을 연계한다는 남측의 방침이다.

정부는 경추위에서 "북한의 2.13합의 이행 여부에 따라 쌀 차관의 제공시기와 속도를 조정할 수 있다"고 '구두조건'을 걸었고,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자금 송금이 지연되어 2.13합의 이행이 이뤄지지 않자 쌀 지원을 유보했다.

이같은 연계 방침은 북핵 해결을 우선해야 한다는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 등의 의견과 북핵-남북관계 분리를 주장하는 이재정 통일부 장관 등의 의견 중 노무현 대통령이 전자를 선택했기 때문이라는 게 정부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이 장관은 이날 종결회의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쌀 제공 유보가 북한 핵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국민 여론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강조하면서도 "남북관계라는 틀은 6자회담보다 훨씬 더 많은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대통령의 결정에 아쉬움을 내비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 장관은 "북측은 (쌀 차관 제공) 합의 이행이 남북간의 신뢰 구축에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고 이 점은 우려 역시 공감한다"고도 말했다.

"2.13합의 불이행이 북한 때문인가?"

지난 2월 제20차 장관급회담 이후 경추위, 이산가족상봉, 열차시험운행 등이 이어지며 나타난 남북관계의 회복세가 남측의 연계 방침에 의해 꺾일 위기에 처하자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한독학술회의 주제발표에서 "'선(先) 핵문제 해결, 후(後) 남북관계 개선' 정책이 통미봉남(通美封南)을 자초했던 문민정부 시기의 전철을 다시 밟아서는 안 된다"면서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와 대북 쌀 지원을 연계시킨 최근 우리 정부의 선택은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 큰 후회를 남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남북관계연구실장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2.13합의 이행과 쌀 제공 연계는 억지이자 미스매치"라며 "2.13 이행이 BDA 문제 때문이고, BDA 문제가 안 풀리는 것은 미국 내 강경파들의 때문인데 그걸 남북관계에 연계시키는 것은 국민들을 오도하는 것으로 역사적인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력 비판했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2.13합의가 잘 이행되도록 남북관계가 분위기를 촉진해야 하는데 쌀을 연계해 무리수를 뒀고 결국 소탐대실 할 수도 있게 됐다"면서 "쌀 제공에 대한 일종의 대가로 북측이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합의했는데 외부 상황에 모든 걸 걸어두어 명분도 실리도 다 잃었다"고 말했다.

현 정부에서 외교안보 문제를 담당하기도 했던 한 전문가는 "지난해 쌀 차관 제공을 중단했을 때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면 쌀 지원을 재개하겠다'고 했는데,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했고 2.13합의까지 했는데도 쌀을 안 주는 건 모순"이라며 "2.13합의가 북한 때문에 이행되지 않는 것도 아닌데 그것 때문에 쌀을 안 준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향후 남북관계 일정>

- 남북 군사실무회담 = 6월 8일(판문점)
- 6.15 민족통일대축전 = 6월 14∼17일(평양)
- 경공업 원자재 제공 개시 = 6월 27일
- 북측 지하자원 개발대상 광산 남북공동조사 = 6월 25일∼7월 6일
- 제1차 제3국 공동진출 실무접촉 = 6월중(개성)
- 제1차 자연재해공동방지 실무접촉 = 6월중(개성)
- 제1차 과학기술협력 실무접촉 = 6월중(개성)
- 남북경제협력위원회 14차 회의 = 7월중(남측지역)
- 남북 이산가족 화상상봉 = 광복절, 추석(9월25일) 전후
- 제16차 이산가족 대면상봉 = 추석(9월25일) 전후

BDA 장기화 되면 연계 계속할지 다시 선택해야

이번 회담 결렬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다시 냉각될지는 미지수다. BDA 문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지만 미국과 북한 모두 2.13합의 이행 의지를 확인하고 있고, 2.13합의가 행동 국면으로 접어들 경우 남북관계에도 돌파구가 마련될 것이기 때문이다.

쌀과 경공업 원자재 지원 등을 받아야 하는 북한 입장에서도 남북관계를 과도하게 경색시킬 필요는 없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제19차 장관급회담에서 쌀 차관 중단에 항의해 이산가족상봉을 중단하겠다는 성명서를 뿌리며 강력히 반발했던 것과는 달리 조용히 평양으로 떠난 북측 대표단의 태도는 이같은 전망을 뒷받침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북한 전문가는 "미국의 정책이 갑자기 바뀌어 북미가 장기적인 경색 국면에 돌입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2.13합의는 결국 이행될 것"이라며 "북핵-남북관계 연계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북미간의 분위기가 유지되는 한 남북관계가 심각하게 경색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향후 남북관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풍향계는 보름 앞으로 다가온 6.15 남북공동행사다. 이 행사는 2005년부터 정부 대표단이 참여하고 있고 올해는 평양에서 열린다.

정부는 북측의 거부 등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올 6.15행사에도 대표단을 파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장관급회담 결렬의 여파로 형식적인 참여에만 그칠 뿐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는 힘들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북한 전문가는 "2005년 6.15 평양행사 때 남측 정부와 정당, 사회단체가 참가한 것은 북한이 대외적으로 나설 수 있는 근거가 됐고 김정일-정동영 면담, 6자회담 복귀, 9.19공동성명도 그런 배경 속에서 나온 것"이라며 "남북관계의 회복에 가속도가 붙을 수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쌀 문제를 2.13합의에 연계시켜 6.15행사를 통해 도약할 기회를 놓치게 됐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그러나 BDA 문제가 장기화하고 남측이 '연계의 끈'을 놓지 않을 경우 남북관계가 장기적으로 경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4월 27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나 BDA 문제와 관련해 미국이 북한의 행동을 충분히 읽어내지 못했다며 불만을 털어놓았다는 보도는 이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이 보도를 언급하며 "BDA 문제가 장기화할 가능성을 보여준 것으로 남북관계 역시 장기적으로 어려워질 수 있다"며 "여기서 우리 정부가 북핵-남북관계 연계를 계속할지 말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가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공동보도문>

제21차 남북장관급회담이 2007년 5월29일부터 6월1일까지 서울에서 진행되었다.

회담에서 쌍방은 지난 20차례의 남북장관급회담을 통해 이룩된 성과와 교훈을 평가하고 앞으로 남북관계를 우리 민족끼리의 정신에 부합되게 보다 높은 단계에서 발전시켜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회담에서 쌍방은 남북관계 발전과 관련해 제기되는 원칙적이며 실천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제기하고 진지하게 협의하였다.

쌍방은 6.15 공동선언의 기본정신에 따라 한반도 평화와 남북 사이의 화해와 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문제들을 더 연구해 나가기로 하였다.

2007년 6월 1일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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