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어떤 대형사고가 발생하면 그 사건의 발생 일자와 시각을 알아내어 그 사고 자체만을 음양오행의 견지에서 알아보려했다.
물론 그것으로서 충분한 공부 자료가 되었지만, 세월이 가면서 좀 더 높은 차원에서 그 사건이나 사고가 말해주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기억하거나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과거 소련 시절인 1986년에 발생한 이 사고는 원전 사고 중 최악이었다. 수 천 명이 죽었고 지금도 그 영향으로 많은 사람들이 악영향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젊은 여성들의 갑상선 암 증가도 그 영향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사고가 난 것은 1986년 4월 26 일 자정을 막 지난 무렵이었다.
년 병인(丙寅)
월 임진(壬辰)
일 경자(庚子)
시 병자(丙子)
복잡한 사고 경위야 있겠지만 결국 원자로 반응 폭주로 인한 것이니 화기(火氣)를 제어하지 못한 결과라 할 것이다.
사고는 4월 21일의 곡우(穀雨)를 지나 본격적으로 양기(陽氣)가 뻗쳐오르는 절기로부터 5일 뒤에 발생했다. 필자는 원자로 폭주가 이미 곡우 무렵부터 위험천만한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고 여긴다.
사고 당시의 사주를 보면 금수(金水)의 기운이 곡우가 지나면서 강해진 목화(木火)의 기운을 제대로 제압하고 있지 못하다.
물론 이 시각에 전 세계의 원자로들도 그런 영향을 받고 있었을 것이지만, 유독 체르노빌의 원자로에서 유독 그런 일이 발생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다. 다른 곳에 비해 뭔가 문제가 더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 순 없지만, 중요한 사실은 그로부터 5년 뒤인 1991년에 소련이 공중분해 되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체르노빌의 사고는 미구(未久)에 다가올 소련 붕괴의 징조이자 해체 과정의 압축판이었다는 것이다.
소련의 경우 붕괴 10년 전부터 핵잠수함의 사고와 침몰이 잦았다. 전체 사고의 40%를 점하고 있으며 그 중에는 대형사고도 많았는데 이 역시 소련 붕괴의 징조였다고 생각한다.
소련은 대단한 공학기술을 지닌 나라였는데 공학적인 면에서 기강의 해이와 사기의 저하가 최악의 핵발전소 사고와 잠수함 사고가 일어난 궁극적 배경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결국 국운의 상승과 하강이라는 사이클과 대형 사고는 어떤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에서도 쓰리마일 핵발전소 사고가 있었고 일본에서도 대형 원전 사고가 있었다. 그 모든 사고들 역시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
간단한 예로 일본에서 발생한 최악의 원전 사고를 보자.
1999년 9월 30일 아침 10시 35분에 일본 토쿄 북방 120 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토카이무라(東海村) 원전에서 일본 원전사고 사상 최악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 사고의 피해 역시 현재 진행형이다.
년 기묘(己卯)
월 계유(癸酉)
일 을유(乙酉)
일 신사(辛巳)
음양오행의 모든 코드들이 상극(相剋)과 상쟁(相爭)을 벌이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일본을 상징하는 기운이 을목(乙木)인데 이 날의 기운들은 을목에게 치명적인 위해를 가하고 있다.
물론 소련의 체르노빌과는 피해 규모에서 비교가 되지 않지만 나름의 함의(含意)를 담고 있으니 바로 흔히 얘기되는 '일본의 잃어버린 10 년'을 예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1999년은 1985년에 시작된 30년 하강(下降)운의 절반 지점에 해당되기에 이 해로서 일본의 국운이 본격 겨울로 접어든다는 징조이자 신호탄이었다. 최근 일본이 살아난다는 얘기도 들려오지만 아직 일본의 겨울은 끝나지 않았다.
징조는 참으로 중요하다. 하지만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특히 좋지 못한 일이 있을 때 무조건 계시로 받아들이라는 것이 아니다. 그 일의 내용과 배경을 성찰함으로써 그 일이 말해주는 의미들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960년 이래 발생한 18건의 대형 사고를 보면 1992년 이전에 발생한 것은 와우 아파트 붕괴, 대연각 호텔 화재, 이리역 폭발사고로 3건에 불과하다.
그러나 국운이 절정에 도달하여 기울기 시작했던 1994년을 전후한 1992년부터 1995년까지 4년간에 무려 11건이 발생하고 있다.
간단히 살펴보면 신행주대교가 공사 중에 붕괴했고, 청주시의 우암 상가아파트 붕괴, 예비군 부대 폭발사고,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 서해 페리 침몰사고가 1994년까지 연발했다.
그러자 결정적인 사건이자 징조인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있었다. 인명 피해 면에서는 최대가 아니지만 그것이 지닌 상징적 의미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이어서 충주호 유람선 화재, 서울 아현동의 도시가스 폭발, 삼풍 백화점 붕괴와 대구 가스 폭발 사고가 1995년까지 이어졌다.
그 대표 격에 해당되는 성수대교 붕괴를 보자.
1994년 10월 21일 아침 7시 40 분이었다.
년 갑술(甲戌)
월 갑술(甲戌)
일 경진(庚辰)
시 경진(庚辰)
두 개의 갑목(甲木)과 두 개의 경금(庚金)이 상극(相剋)하고, 두 개의 술토(戌土)와 두 개의 진토(辰土)가 상충(相衝)하고 있다. 대단히 불길하고 극적(劇的)이다.
그리고 이는 갑목(甲木)의 기운인 우리에게 대단히 해로운 기운들이다. 사실 우리는 이 날로서 1964년부터 상승을 시작한 기운이 하강으로 반전했던 것이다.
이 일로부터 3년 뒤 외환위기가 발생했고, 급기야 세상이 달라져버렸다.
사실 필자가 이런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고 있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그 중 하나는 우리 국운이 겨울로 접어드는 2008-2009년경에 겨울을 알리는 어떤 불상사가 발생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또 하나는 북한에 관한 것이다.
3년 전 북한의 신의주 근처 용천에서 초대형 폭발 사고가 있었다. 기억하시는지.
2004년 4월 22일 오후 2시 경에 석유와 가스를 실은 열차가 충돌하면서 엄청난 폭발이 있었다. 어느 정도의 인명 피해가 있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필자는 그 소식을 접하고 그렇다면 30개월 뒤에 북한에서 또 한 번의 큰 폭발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었다.
그랬더니 30개월이 지난 2006년 10월 9일에 북한은 핵실험을 강행했다. 어쨌든 엄청난 폭발이었다.
두 가지 일은 음양오행의 견지에서 내적 연관성이 있다.
왜 그런지 보기로 하자.
용천 폭발 사고 VS. 북한 핵실험 강행
연 갑신(甲申) 병술(丙戌)
월 무진(戊辰) 무술(戊戌)
일 신미(辛未) 신미(辛未)
시 을미(乙未) 계사(癸巳)
월과 일이 묘한 점을 보여주고 있다.
무진(戊辰)월에서 무술(戊戌)월이 되었다는 것은 30개월이 지난 시점이고 이는 60개월의 절반이다. 그리고 같은 신미(辛未)일이니 정확하게 900일 만에 핵실험이 있었던 것이다.
하나는 사고로 인한 폭발이고 하나는 의도적인 폭발이다. 하지만 이는 동일한 의미를 지닌 사건의 진행과 발전을 의미하고 있다.
얼핏 드는 생각은 핵 실험으로부터 다시 900일 지난 2009년 3월의 신미(辛未)일이나 4월 중에 사건의 최종적 발전과 관련된 극적인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생각은 2004년의 폭발로부터 만 6년, 즉 72개월이 지난 2010년 봄에 북한의 극적인 변화가 예상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것이 남북한의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북한의 명운(命運)은 계산상으로 2008년 무자(戊子)년으로 끝이 난다. 하지만 북한이 그 이후로도 본격적인 개방의 길로 나서지 않으면 거의 필연적으로 앞에서 얘기한 일들이 발생하면서 급격한 붕괴의 길을 걸을 것이다.
북한의 자발적 체제변환과 개방은 남북한 모두에게 축복일 것이고, 붕괴는 우리 모두에게 또 하나의 커다란 시련일 것이다.
(전화:02-534-7250, E-mail :1tg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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