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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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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280>

민주화 20 년, 외환위기 10년의 오늘

황금돼지의 해라면서 부산스럽던 연말연초가 지난 지도 어언 다섯 달이다. 며칠간 초여름 비가 몇 차례 내리더니, 어느덧 녹음(綠陰)이 반가운 시절이다.
  
  정해(丁亥)년, 절정의 호시절을 보내고 있는 중국인들에게는 황금돼지의 해가 맞는 얘기겠지만, 우리는 사정이 다르다.
  
  금년으로서 1998년부터 시작된 9년간의 화기(火氣)가 종적을 감추고 서늘한 냉기(冷氣)가 시작되었기에, 중국인들에게는 풍성한 수확의 한 철이지만 우리는 겨울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서늘한 기운의 징표는 도처에서 쉽게 감지된다.
  
  태어난 날이 불의 날, 그러니까 정사(丁巳)일인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물러난 것, 정해(丁亥)일인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것도 모두 불의 기운이 힘을 잃었기 때문이다.
  
  화기(火氣)를 발판으로 집권한 블레어 총리가 그 화운(火運)이 끝나자 견디지 못하고 물러났다.
  
  엘친의 서거(逝去) 역시 1991년 소련 붕괴로부터 15년(이는 60년 한 갑자의 4분의 1이다)이 지났으니 러시아는 이제 봄을 지나 여름으로 들어섰다. 엘친은 이에 따라 타고 난 쓰임을 다 하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유용즉유생 무용즉무생(有用則有生, 無用則無生), 쓸모가 있으면 삶이 있는 것이고, 쓸모가 없으면 삶도 없는 것이다.
  
  천하 나쁜 놈이라도 어느 구석엔가는 쓰임이 있기에 살아있는 것이며,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쓰임이 끝나면 데려가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 것이다. 술 잘 먹던 호한(好漢) 옐친은 러시아의 발전에 크게 쓰임이 있었던 인물이었다.
  
  프랑스 역시 제2차 대전 이후 최초의 우파 정권이 들어섰으니 이 또한 예삿일이 아니다. 작년에 있었던 아랍계 젊은이들의 난동사태는 프랑스 내부의 각박함을 알려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나라 안에 소수의 이질적인 민족이나 집단이 있을 경우, 국운의 쇠퇴로 전체 사람들의 삶이 각박해지면 그 원인을 소수집단으로 전가하여 정치적인 이득을 보려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프랑스의 이번 사르코지 당선 역시 그런 맥락이다. 이 역시 화기 퇴조와 수기 득세의 영향이다.
  
  또 과거 일본의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사건도 바로 그런 맥락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건강하지 못한 배타적 민족주의의 나쁜 측면이다. "다 저 놈들 때문이야" 하는 감정, 이는 인간의 마음속에 깃들어있는 극단적 이기주의의 발로로서 늘 경계해야 할 성질의 것이다.
  
  조승희 사건 역시 우울증을 지닌 청년이 수기(水氣)로 인해 증세가 심해지면서 일어난 불행한 사건이었다.
  
  산업 측면에서도 화기(火氣)의 퇴조, 수기(水氣)의 득세로 인한 많은 변화가 일고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제약 산업이다. 제약은 화기(火氣)의 대표 격인데 목하 전 세계 제약업계는 몸살을 앓고 있다.
  
  영화 산업도 마찬가지. 특히 국운이 기울고 있는 우리의 경우 영화도 심한 구조조정의 변화가 불어 닥치고 있다.
  
  그러나 우리로선 뭐니 해도 IT분야가 힘을 잃고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로고가 붉은 색, 다시 말해 불의 기운을 지닌 LG 그룹은 전체가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삼성전자도 힘을 잃기 시작했다.
  
  반면 중국은 여름의 절정에 있다. 모든 것이 무성하고 화려한 시절이다. 그 여름 축제에 해당되는 것이 내년의 북경 올림픽인 것이다. 그 엄청난 기세를 보고 두려움을 느낀 미국은 갖은 수를 다 쓰고 있지만, 당분간은 별무신통일 것이다.
  
  중국의 급격한 경제발전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은 2011, 신묘(辛卯)년에나 급격한 조정국면을 맞이할 것이다.
  
  이로서 정해(丁亥)년 들어 변화하고 있는 세상을 대충 둘러보았다.
  
  그러면 이쯤에서 지난 20년간 우리 정치와 경제를 압축적으로 말해주는 사건들, 1987년의 민주화와 1997년 외환위기가 던져주었던 일들은 앞으로 어떤 진행을 보일지 얘기하기로 하자.
  
  1998년부터 우리 정치 지형은 진보 내지는 좌파적 경향이 강했다면 이제는 우파적 흐름이 다시 등장할 때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우파적 흐름이라기보다는 화기 퇴조, 수기 득세의 변화에서 조정 국면일 뿐이다. 다시 말해 치열한 기운이 퇴조하고 좀 더 차분한 흐름이 나온다는 얘기이다. 선동적 정치가 힘을 잃을 것이고 나아가서 정치 자체가 선동적이기에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 많이 줄어들 것이다.
  
  금년 들어 특히 여권의 후보 선출 과정이 지지부진하고 열기가 없는 것도 그런 기류의 영향이다.
  
  그렇기에 조정 흐름이 군사정권으로의 회귀라든지 극우적 흐름으로 가는 것이라고 지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미 우리의 민주주의는 상당히 높은 단계로까지 발전했다. 다만 종합의 단계이기에 좌로 좀 나아갔다가 가운데로 수렴되는 것이다.
  
  본질은 차분한 정치의 흐름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니 이런 현상은 지금껏 없던 유형의 기류인 것이다. 선동보다는 좀 더 이성적인 정치 스타일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치를 이끌던 구호가 1980년까지는 4.19 정신이었다면, 그 이후로는 5.18 광주항쟁이었다.
  
  사물은 30년이 지나면 퇴색하는 법이다. 1980년 광주항쟁이란 역사적 사건도 30년이 지나 2010년이 되면 본격적으로 퇴색하기 마련인 것이다.
  
  광주항쟁은 군부독재를 종식시켰고 김대중 정권을 등장시켰기에 이제 그 역사적 소명의 큰 줄기는 2010년이면 사실상 다한 것이다.
  
  4.19 기념탑을 보라, 연례행사가 있을 뿐 이제는 연인들의 산책 코스일 뿐이다. 광주항쟁의 묘역들도 조만간, 그러니까 2010년부터는 그렇게 되어갈 것이다. 이것이 역사의 흐름이다.
  
  회한과 증오, 그리고 잘잘못, 이런 모든 감정의 영역들은 지운다고 지워지지도 않지만 세월을 통해 씻겨나가는 것이다. 새 봄이 와서 새 풀이 자라면 새로운 벌과 나비가 날아드는 것이다.
  
  지난 해 같은 장소에 있었던 풀의 기억은 그것을 경험한 자들에게만 공유되는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을 뿐이다. 잊혀져야만 용서되는 것이다. 그리고 30년이면 잊혀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처럼 망각(忘却)도 때론 좋은 것이다.
  
  그러면 외환위기 이후의 새로운 경제풍토에 대해 얘기하자.
  
  그 사건으로서 우리가 지녔던 상승(常勝)의 정신은 꺾어졌고 하나이던 마음도 흩어져버렸다.
  
  옛날의 '우리도 함께 잘 살아보세'에 들어있던 그 '함께'의 정신은 외환위기로 인해 실종되고 말았다.
  
  거품이 가시고 나니 내가 잘 살기 위해서 너는 이전의 상태보다 좀 못해져도 된다는 생각이 일반화되었다.
  
  종신고용, 얼마나 좋은 말인가! 필자는 이를 직장사회주의라고 부른다. 조직에 대충 충성하면 직장은 나를 평생 보장해주는 그 제도가 얼마나 낙원이었는가!
  
  이제 직장사회주의가 남아있는 곳은 이제 공조직과 공기업밖에 없다. 그러니 젊은이들은 한사코 그런 직장을 원한다. 고시 전성시대가 열린 것이다.
  
  도전정신 운운 하면서 젊은이를 힐난하는 이른바 지도자급 인사는 제발 잘난 체 좀 그만 하기를.
  
  이 세상에서 호환과 마마보다 더 무서운 말이 있다면 바로 '생산성'이란 어휘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대단히 중요한 말이기도 하다.
  
  우리도 일본과 같이 급여의 차이가 크지 않고 고등학교만 마치면 누구나 먹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충 준비해도 대충 먹고는 살 수 있는 세상 같은 거 말이다.
  
  그러면 머리 좋은 죄로 의사나 변호사가 될 필요가 없을 것이니 소외된 학문과 예능분야도 꽃을 피울 것이다. 또 그 저주의 꼬부랑말 '잉글리쉬'를 익히지 않아도 되고 이역만리를 헤매이지 않아도 될 것이다.
  
  보통의 학생들은 자정이 넘도록 학원을 들락거리지 않아도 되고, 좀 뒤쳐지는 학생은 단순 노동으로도 먹고 살 수 있는 그런 사회 말이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일지라도 약간 적은 보수를 받긴 하겠지만 사회의 일원으로서 먹고살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왜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지옥을 만들고 있는 것일까?
  
  그 지옥은 앞으로도 꽤나 오래 이어지겠지만, 이윽고 때가 되면 더 성숙된 '함께' 하는 사회가 열릴 것이다.
  
  (전화:02-534-7250, E-mail :1tgkim@hanmail.net)
  김태규의 명리학 카페 : cafe.daum.net/8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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