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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 의해서만 내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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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 의해서만 내가 존재한다

팔레스타인과의 대화 <44>

형제여, 우선 그대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이는 당신을 잘 알아서가 아니라 당신이라는 존재를 내 존재와 동등한 무게로 받아들이고 싶고 또한 당신 현재의 삶 자체와 팔레스타인의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소중하게 받아들이기 위해서입니다. 아니 본질적으로는 내가 그대에 의해 존재하고 그대 또한 나에 의해 존재한다는 철학적 사유의 바탕에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21세기 지구촌은 소유와 힘의 논리, 경쟁과 지배의 논리로 가득 차 있는 세상입니다. 이 논리는 우리의 자본주의적 삶의 구체적 일상에서 펼쳐지고 있는 현실 그 자체입니다. 이미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큰 흐름 속에 휘둘린 우리의 삶은 총체적으로 '자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을 포함하여 세계의 크고 작은 분쟁들이나 내 주변의 크고 작은 일상의 문제들도 사실은 이런 소유와 힘의 논리, 경쟁과 지배의 논리에 의해 진행되는 것을 봅니다.
  
  미국과 열강들, 그리고 다국적 기업들에 의해서 새롭게 구축되는 현재 세계의 질서 재편은 철저한 '자본'의 질서입니다. 그 '자본'의 가치는 사실 인류사 속에서 무수한 피를 흘리며 얻어낸 '평등'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지요. 현재 진행되고 있는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아랍민족의 미국에 대한 저항은 사실은 이런 '평등'의 가치를 사수하는 데 복무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며 이런 소유와 힘의 논리, 경쟁과 지배의 논리에 맞서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형제여, 이런 문제의식을 나의 구체적인 삶의 문제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인식을 바꿔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 있는 것처럼 나의 문제는 나만의 문제가 아니고 너의 문제는 너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 말입니다. 다시 말해 그대와 그대의 조국과 민족이 처한 현실은 나의 당면한 삶의 현실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해야 하고, 마찬가지로 나와 내 민족의 현실 또한 당신의 구체적 삶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다르다면 다만 당신이 해야 할 일과 내가 해야 할 일이 다르다는 것뿐이지요. 나는 이런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수만리 떨어진 중동에서 아프리카에서 또는 어딘가에서 집이 불타고 총에 맞고 굶주리고 병들어 있는 사람들의 죽음과 절망의 상황을 우리는 우리의 것으로, 또는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나는 이런 물리적, 심리적 거리감을 먼저 극복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팔레스타인에 내리는 비와 한국에 내리는 비는 서로 다를 바 없습니다. 그것이 어쩌면 우리 모두의 문제를 푸는 첫 열쇠이며 결국은 나의 삶의 본질적 문제를 푸는 길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 존재의 본질적 문제와 세상의 문제가 결국은 하나의 같은 문제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형제여, 이는 진정한 내 안의 평화를 찾아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나를 잘 가꾸는 일이기도 하며 나의 껍질을 벗는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이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압니다. 하늘의 해와 숲과 나무가 그리고 들판의 강물이 없으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 우리의 구체적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구체적 생활세계를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것은 하나의 관념처럼 존재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이 관념 아닌 관념을 깨는 것부터가 인식의 전환이요, '자본'의 관성, '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에덴의 동쪽
  
  늘 푸른 숲그늘의 나라,
  촉촉한 물빛 맨몸으로 하루를 걸어
  사과 하나를 베어 물던 태초의 나라에서도
  사람들은 끝도 없는 꿈을 꾸었나보다.
  꿈이 있는 곳에 살육도 있어
  가인은 에덴의 동쪽으로 떠나고
  아담의 부족들은 유프라테스를 따라 내려왔다.
  생각해 보면 인간의 꿈은,
  인간의 욕망은,
  늘 사막을 향한 꿈이었다.
  
  우리가 아메리카의 꿈을 키우는 동안
  아메리카는 사막을 향한 꿈을 키우고 있었고
  그 꿈들이 무르익어 떠나는 곳은 언제나
  가인이 숙명처럼 밞아야 했던 에덴의 동쪽이었다.
  아, 이제 이 사막의 끝에서 죽음의 모래바람을 벗어나려면
  살육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라, 아메리카의 평화를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라, 아메리카의 자유를
  그 모든 아메리카式 꿈을 우리의 머릿속에서 지워야 하리.
  고사리 손이 꼭 쥐고 있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담겨진
  요람 속 아가의 꿈마저도 지워야 하리.
  그렇게 아무런, 아무런 꿈도 없는 사막의 적막 속에도
  달이 뜨고, 별이 빛나는 것을
  보아야 하리
  
  
팔레스타인과 아랍의 현실이, 그대들의 현실이 내 개인의 현실적 문제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했습니다. 1년 가까이 이 공간을 통해 진행된 팔레스타인 작가들과 한국 작가들의 간절한 마음들도, 그러한 눈물겨운 소통도 사실은 이런 벽을 깨자는 것 아니었던가요? 릴레이의 종점에 이른 지금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리고 이 지구에 존재하는 생명 모두가 가장 절실하게 바라는 것은 옛 성현들이 말하던 "너에 의해서만 내가 존재한다"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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