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성급한 예상이지만 북미관계가 진전된다면 주변국들에게 미묘한 새로운 문제를 발생시킬 것이다. 이미 일본은 이에 대한 불안감과 불만을 감추지 않고 있다. 그리고 중국은 공식적으로는 북미관계의 진전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역시 매우 복잡한 계산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의 북한에 대한 불신?
이와 관련해 15일 흥미로운 기사가 나왔다. 조엘 위트 전 미국 국무부 북한담당관이 서울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북한은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지난 시기 북한 외교의 변천을 보면 이러한 추측이 근거가 없지는 않다. 냉전 시기 북한이 중국과 소련이라는 두 사회주의 대국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추구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에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지만 정치·군사적으로는 이러한 의존도를 상쇄하기 위한 시도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2000년 이후 북한은 대중국 외교와 대러시아 외교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집착하였던 것에는 미국만이 아니라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미도 있다.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용적 태도를 취했던 중국이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서만은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는데, 여기에는 이러한 요인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
중국 입장에서 볼 때 더 미묘한 문제는 그동안 북한이 미국과의 양자회담을 집요하게 요구했던 것도 북미 사이의 적대관계가 청산되어야 핵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표면적인 이유 외에도 북한이 중국을 제외하고 미국과만 논의해야 하는 숨겨진 의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추측에서 비롯된다. 주한미군 지위 문제가 그러한 예에 해당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주한미군을 용인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그렇다고 주한미군과 관련된 문제가 해결됐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앞으로 북미관계 개선과정에서 주된 이슈로 제기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군사전략과 주한미군 용산기지 이전 등을 통해 주한미군이 미국의 지구적 군사전략의 한 부분으로 편입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주한미군의 지위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지는 중국에게 매우 민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주한미군의 임무에서 북한의 위협에 대비하는 역할의 비중이 감소한다면 중국의 성장에 대한 견제가 주한미군의 중요 임무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이 북미관계의 진전을 반길 수만은 없을 것이다.
중국은 북미관계 진전에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그러나 아직까지는 북미관계의 진전에 대한 중국의 경계심이 6자회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어렵다. 무엇보다도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에서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강력한 지렛대를 가지고 있다.
물론 북핵문제를 둘러싼 지난 논란 과정을 돌아볼 때 중국이 식량, 에너지 지원 중단과 같은 압력을 실제로 북한에 행사하는 것은 어렵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중국은 북한이 불안정해지는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중국의 영향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행동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즉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에서 중국에 대한 견제라는 카드를 미국의 적극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한 미끼의 하나로 활용할 수는 있지만 노골적으로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중국에 대한 견제로 보이도록 상황을 만들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중국은 미국이 북한을 중국에 대한 견제 카드로 이용할 가능성을 아직은 낮게 평가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 특히 조지 부시 행정부의 최근 대중정책을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중국과의 협력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의지는 다음 두 가지 사실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우선 부시 행정부는 1월 중국이 인공위성을 미사실로 파괴하는 실험을 단행해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MD)에 심각한 위협을 제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공격적인 반응을 자제했다. 그리고 무역역조를 축소시키기 위해 인민폐의 평가절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미국 내에서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 제재보다는 중국과의 협의를 통한 문제해결이라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북핵문제와 관련해서도 미국은 그 동안 미국이 6자회담이라는 다자틀 내에서 북한과 대화를 하겠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이는 북한이 중국과 미국을 분리해 대응하면서 이익을 최대화시키려는 시도를 차단하는 동시에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과 공동보조를 취하겠다는 의지를 중국에게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6자회담은 중국에게 중요한 외교적 성과다. 6자회담은 북핵문제가 최악의 상황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고 협상을 통한 해결을 위한 동력을 유지하는 역할만이 아니라, 북미관계 진전을 다자틀 내에서 관리할 수 있는 효과도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으로서는 이러한 틀을 전제로 이뤄지는 북미관계의 진전에 대해 그리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앞으로 북미관계의 진전 속도에 따라서는 6자회담과 북미관계의 진전이 반드시 균형 있게 진행된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에 중국으로서도 경계심을 완전히 지우지는 않을 것이다.
북미관계와 6자회담
중국 이외의 경우, 북미관계의 진전에 대한 경계심은 정도와 이유는 다르지만 일본과 남한에게도 전혀 없지는 않다. 따라서 앞으로 북미관계 진전과 6자회담의 진전 사이에 불균형이 발생할 경우 다른 국가들은 북미관계의 진전을 견제하거나 아니면 북미관계의 진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북한과의 양자관계 개선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북핵 문제를 지체시킬 전자의 시나리오는 물론이고 후자의 시나리오도 관련 국가들 사이에 지나친 주도권 다툼을 유발할 경우에는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한 안정적 환경을 만드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앞으로 북미관계와 6자회담 사이에 선순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새로운 과제로 제기될 것이다.
이 과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 문제에 대한 공감대를 확대시킬 필요가 있다. 우선 북미관계의 정상화가 북핵문제 해결에 가장 핵심적 문제라는 점을 관련 국가들이 인정하고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막연한 다자협력이 아니라 북미 사이의 양자 관계를 통해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정하고 6자회담과 같은 다자협력은 이러한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지원, 동북아 평화협력, 비핵지대화 등이 다자협력을 필요로 하는 문제들에 해당될 것이다.
즉 북핵문제의 해결, 한반도 평화체제의 수립, 동북아 평화협력을 진전시키는 데 있어 북미대화, 남북대화를 비롯한 다양한 양자대화, 그리고 다자간 협력 사이의 역할을 더욱 세밀하고 분명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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