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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오십에 처음 탄 자전거, 이렇게 재미있는 걸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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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오십에 처음 탄 자전거, 이렇게 재미있는 걸 모르고..."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5/10] 작가 김훈이 말하는 '자전거타기의 즐거움'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최근 문화관광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사람들의 여가활동 중 스포츠에 쏟는 시간이 가장 많아서 처음으로 텔레비전 시청을 앞질렀다고 합니다. 사실 요즘 들어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등 자전거 타기가 큰 인기를 얻고 있는데요.

실제로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구르며 세상을 바라보면 자동차 여행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자전거 광으로 잘 알려진 작가 김훈씨도 자전거 한 대로 우리땅 곳곳을 누비며 자전거 여행의 색다른 맛을 두 권의 책을 펴내기도 했는데요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어제에 이어 작가 김훈씨를 초대해 자전거 타기의 즐거움과 그의 일상생활에 대해 얘기 나눠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작가 김훈씨입니다.

박인규 : 김훈씨께서 자전거 타기를 즐긴다는 건 이미 만천하가 다 아는데, 그렇지만 속된 말로 자전거에 미치신 게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

김훈 : 한 10년 됐어요. 제가 지금 나이가 60살인데 50살부터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어요.

박인규 : 어떻게 해서 자전거에 확 빠져들게 되신 거예요?

김훈 : 제가 10년 전에 일산으로 이사왔는데, 이 마을은 아주 도로가 잘 돼 있어서 처음 자전거를 타봤어요. 자전거를 처음 타고 깜짝 놀랐어요. 세상에 이렇게 좋은 게 있구나.

박인규 : 처음 타보신 거네요? 젊었을 땐 안 타셨고...

김훈 : 안 탔습니다. 벼락을 맞은 것처럼 깜짝 놀랐어요. 이렇게 재밌는 걸 평생 모르고 살았구나, 앞으론 자전거만 타고 살아야겠다. 계속 자전거만 탔어요.

박인규 : 제가 알기로는 자전거를 타기 위해서 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 오셔서 자전거를 타신 거군요?

김훈 : 일산 와서, 와보니까 도로가 좋고 이 좋은 도로들이 임진강까지 다 연결돼 있어서 아주 편안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어서 시작했죠.

박인규 : 혹시 그 전에 자동차 운전은 하셨습니까?

김훈 : 지금도 자동차 운전은 못해요.

박인규 : 원래 안 하셨습니까?

김훈 : 원래 아무 기계를 안 만져요. 컴퓨터라든지 카메라, 비디오기계 이런 거 안 만져요.

박인규 : 그럼 말하자면 세상에 태어나서 기계에 미친 건 자전거가 처음이시군요?

김훈 : 자전거만을 내가 만질 수 있고, 다른 건 전혀. 내가 만지면 또 고장이 나요. 우리 집사람이 못 만지게 해요.

박인규 : 저도 사실 대학교 2학년 때 자전거 타고 부산까지 7박 8일 동안 가본 적이 있는데...

김훈 : 서울서 7박 8일이면 좀 오래 가셨네요.

박인규 : 좀 오래 걸렸습니다. 한 5박 6일에 가려고 하다가, 굉장히 힘들더라구요.

김훈 : 엄청 힘들어요.

박인규 : 그 뒤에 한 번 가보고, 그 뒤로는 못 해봤는데, 저는 자전거와 인연이 많지는 않고..

김훈 : 7박 8일에 서울서 부산까지 가셨으면 꽤... 그래도 중간 정도 수준은 되네요.

박인규 : 중간에 한 번 친구 집에서 놀았고 그 뒤로는 못해봤습니다. 김훈씨가 타시는 자전거가 굉장히 비싼 거라고 들었는데

김훈 : 저는 그냥 중저가에요. 소형 자동차 한 대 값 정도 되는 중저가 자전거입니다.

박인규 : 그게 중저가가 천만원이 넘는다고 하더라구요.

김훈 : 훨씬 더 비싼 자전거도 많이 나와 있어요.

박인규 : 잘 모르시는 분들은 뭔 자전거가 그렇게 비싸냐고 할 텐데...

김훈 : 그런데, 내 자전거를 사람들이 너무 비싸다고 하는데, 너무 비싸다고 나를 야유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난 그 사람들이 너무 답답해요. 내가 나이가 60이 돼서, 평생 야근을 하고 날밤을 새고 살아서 60이 다 되고 머리가 허얘서 저 정도 사치를 누린다고 해서... 그렇게 할 수 있는 거 아니잖아요. 좀 봐주면 안 되나. 내가 저걸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안다면 그렇게 함부로 얘기할 수 없을 거예요. 저건 나한테 싼 거예요.

▲ ⓒ프레시안

박인규 :
말하자면 시가 1500만원짜리 김훈씨의 자가용인데 이름이 풍륜이라고

김훈 : 자전거는 원래 풍륜이죠. 바람의 바퀴.

박인규 : 특별하게 붙이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김훈 : 자전거를 타면 우선 바람이 온 몸에 들어오니까 내 몸이 완전히 바람에 젖는 것이죠. 뼛속까지 바람에 젖고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니까 그것이 풍륜인 거죠.

박인규 : 처음 타보시니까 이렇게 좋은 게 있구나 하고 느꼈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게 좋다 설명이 가능할까요?

김훈 : 이게 내 몸으로.... 엔진이 없는 게 좋은 거죠. 자전거는 엔진이 없기 때문에 내 몸으로, 내 힘으로 바퀴를 굴려서 앞으로 나가는 것은 참 기가 막히게 행복한 느낌을 받거든요.

박인규 : 대개 사람들이 한 50 넘으면 점잖아지고 싶어 하기도 하고, 또 체력적으로 달리기도 하고. 그런데 50대의 나이로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누비셨는데 좀 힘들지 않으셨어요?

김훈 : 처음 자전거를 타면서 점점 실력을 길러가지고 처음엔 임진강까지 갔다가 나중엔 멀리 갔죠. 난 체력이 남보다 튼튼한 사람은 아니에요. 그러나 내가 무슨 큰 병도 없고 중간 정도 체력을 가진 사람인데, 힘들면 천천히 가고 컨디션이 좋은 날은 빨리 가고... 그러면서 다 가는 것이죠.

박인규 : 보통, 아주 많이 갔다. 그러면 하루에 몇 킬로미터나 가십니까?

김훈 : 하루에 200 킬로 이상도 가요. 250킬로도 갔어요. 그런 날은 아무 날이나 되는 게 아니고 날씨가 좋은 날. 너무 덥거나 춥지 않은 날 해야지요. 봄 가을에. 그런 날은 새벽에 일찍 나가야 돼요. 깜깜할 때 나가서

박인규 : 200킬로미터 달리려면 하루에 10시간 이상 달려야 되나요?

김훈 : 10시간 정도죠. 자전거가 대개 20킬로 이상 나오잖아요. 계속 20킬로를 유지할 순 없고 가다가 밥도 먹고 그래야 되니까 한 12시간 정도 걸리는 것 같아요.

박인규 : 2000년도, 2004년도에 자전거 여행이라는 책을 두 권 내셨는데, 혹시 책을 써야겠다 하고 여행을 다니신 겁니까? 아니면 다니다 보니까 책이 나오게 된 건가요?

김훈 : 1권은 내가 회사를 그만 두고, 때려치우고 자전거를 탔는데

박인규 : 그때가 1999년 가을인가 그렇죠?

김훈 : 그 무렵일 거예요. 자전거를 타서 밥을 벌어먹고 살아야 되잖아요. 자전거를 타서 어떻게 밥을 벌겠어요.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돈 만들어서 밥 먹어야 되니까, 글을 써서 밥을 벌어 먹자. 그래서 자전거 타고 다니면서 자전거여행이라는 책을 썼죠. 그래서 그걸로 한 2,3년 살았어요. 그 책을 팔아서 밥을 벌어 먹고 산 거죠.

박인규 : 김훈씨 책 중에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책이 있는데 그땐 별로 지겹지 않게 밥벌이를 하셨네요...

김훈 : 그때도 자전거 타고 갈 때는 좋았는데 밥벌이 하려고 쓰려면 지겹죠.

박인규 : 2004년도에 나온 책은 주로 경기도 일원을 다니셨다고 해요?

김훈 : 그때는 꾀가 나서, 저희 집이 일산이니까 멀리 갈 거 있냐. 가까운 데 돌아다니자...

박인규 : 2004년도에 나온 책에 따르면 3권이 준비중이라던데...

김훈 : 그런 계획이 있었어요. 그런데 아직 실천을 못 하고 있는데, 아마 그걸 실천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너무 힘들고 시간과 노력이 너무 많이 들어가요. 물론 돌아다니니까 재미는 있죠. 그런데 다른 글 쓸 일도 있는데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면 참.... 누가 스폰서를 해준다면 또 하죠. 지금 그럴 형편이 안 돼요.

박인규 : 자전거여행 다니시는 분들 얘기 들어보면, 자동차나 기차 타고 다니면서 보는 풍경하고 자전거로 보는 풍경하고, 또 걸어서 다니면서 보는 풍경이 다 다르다고 하는데 어떤 느낌인가요?

김훈 : 자전거를 타고 서울서 부산까지 간다면... 비행기를 타고 가면 목적지가 부산이잖아요. 비행기 탄 사람은 서울과 부산 밖에 없는 거죠. 서울에서 타서 부산에서 도착하니까 그 과정이 없잖아요. 서울, 그냥 부산이죠. 그런데 자전거는 모든 과정을 자기 발로 굴려서 가야 되니까 그걸 다 느끼면서 알 수가 있는 것이죠.

박인규 : 약간 우문일 수도 있겠지만 전국을 많이 다니셨으니까, 자전거 타기에 좋기도 하고 경치도 좋고... 혹시 자전거여행을 하려면 여기 한 번 가봐라. 그럴 만한 데가 있나요?

김훈 : 계절마다 다 다른데, 이맘때 봄에는 섬진강을 따라서... 상류면 구례 곡성이죠. 거기서부터 강변도로를 따라서 바닥 하동까지 내려가는 국도가 있어요. 그 길이 좋죠. 그 강변길이 초심자들은 좋아요. 강을 따라가는 길은 오르막이나 내리막이 없어요. 물을 따라가니까 평편한 길로 가고. 옆에 물이 있어서 지루하지가 않아요. 옆에 물이 있으면 훨씬 덜 피곤합니다. 또 거기는 옆에 강이 있어서 먹을 게 많아요. 민물 생선 매운탕, 먹을 것도 있고 은어도 있고 해서 좋아요. 힘들지 않게 할 수가 있죠.

박인규 : 이 프로그램에 한 서울대 학생이 자전거를 타고 쿠바를 한 번 돌았다고 해서 인터뷰를 한 번 한 적이 있는데

김훈 : 쿠바를? 야, 좋았겠다.

박인규 : 자전거를 좀 타시면 국내 웬만한 데는 가셨을 거 아니에요. 그래서 이거 가지고 외국 한 번 가보자는 욕심도 나실 것 같은데..

김훈 : 그런 제안을 받았는데 안 했어요. 외국 가려면 비행기를 타야 되는데 난 비행기를 제일 싫어해요.

박인규 : 왜 싫어하세요?

김훈 : 자리에 매 놓고 밥 갖다 주는데 짐승들 밥 주듯이 하는데 메뉴도 없어. 그냥 주는 대로 먹어야 돼요. 갑갑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요. 나는 그런 게 제일 싫어요. 묶여 있는 게.

박인규 : 그럼 자전거 타고 외국 나가실 일은 없겠군요.

김훈 : 그렇죠. 비행기를 못 타니까

박인규 : 많은 분들은 김훈의 자전거 외국여행을 기대하실 수도 있을 텐데.. 여행이라는 게, 다니면서 산천의 모습을 보거나 감흥을 얻기도 하지만, 사람을 만나는 것도 여행의 한 재미인데, 김훈씨 같은 경우는 여행을 다니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그런 경험이 있으십니까?

김훈 :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관찰하는 것은 매우 행복한 일이에요. 물론 풍경을 보고 풍경에 젖어서 그것을 해석하는 것도 행복한 일이지만 사람을 만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죠. 저는 자전거 타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어요.

박인규 : 혹시 기억 나시는 분들 소개해 주실 만한 분이 한두 분 계실까요?

▲ ⓒ프레시안

김훈 :
특별한 사람은 없고, 우리나라 시골 가보면 아직도 한글을 모르는 노인들이 많아요. 학교를 안 다니셔서 문맹들이세요. 그분들은 대개 농업이나 어업에 종사하시는... 약초를 캐거나 뱀을 삶거나 옹기를 굽는다든지 이런 분들인데, 그분들은 전혀 학교 교육을 받지 않으신 분들인데도 세상의 모든 걸 다 알고 계세요.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어떠해야 되는지, 나와 이웃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며 인간과 가축의 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 인간의 노동하는 태도, 이런 것들을 완전히 다 아시고 알뿐만 아니라 그걸 평생 실천하고 있어요. 그런 분들 보면 참 인간에게는 정말로 희망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주 행복한 느낌이죠.

박인규 : 오히려 글을 모르시는 촌로들에게서 희망을 느낀다.

김훈 : 그분들이 모든 이치를 다 알고 계시니까 인간의 희망인 것이죠.

박인규 : 자전거여행 3권을 안 내신다고 하니까 멀리 여행은 안 가실 것 같고. 요즘도 자전거를 많이 타시나요?

김훈 : 지난 겨울에는 남한산성을 쓰느라 시멘트 속에 처박혀서 꼼짝을 못했어요. 봄이 돼서 이제 좀 타려고 하는데, 또 타려고 하니까 그동안 글 쓰느라 그로기가 돼서, 체력이 떨어져서 조금씩 밖에 못 해요. 몸을 좀 키워야지요.

박인규 : 혹시 이 방송을 듣고, 나이 한 50대 되신 분도 나도 한 번 자전거여행을 시작해 보고 싶다는 분들한테 조언해 주실 만한 게 있을까요? 물론 좋아야겠지만 자전거 타기가.

김훈 : 좋아야 되고, 무리해서 멀리 가려고 하면 안 되고. 항상 돌아올 일을 생각해야 돼요. 갈 땐 신나는데, 아침에 내가 100킬로를 마구 가잖아요. 그럼 그걸 반드시 돌아와야 되니까 자기가 생각한 거리의 반을 가야 돼요. 반은 또 와야 되니까

박인규 : 아직 힘이 남아있을 때 돌아와야 되니까. 자전거 시작하시는 분은 그것도 한 번 고민을 해봐야 되겠습니다.

약간 다른 질문 좀 드려보고 싶은데요, 조금 전에 글을 모르시는 촌로들의 사람에 대한 이해를 보시면서 희망을 느끼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실제로 남한산성에도 보면 지나친 말, 지나친 글에 대한 불신이나 이런 게 보이는데, 김훈씨는 사실 글로 말하자면 먹고 사는 일을 하신단 말이죠. 글쓰기의 아이러니랄까요? 말이나 글보다는 삶이 더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글을 쓰시는데 어떤 느낌인지...

김훈 : 글이 삶으로부터 자꾸 이탈하려고 하는 것이 나는 너무나 두렵죠. 우리가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하잖아요. 독서주간만 되면 책 속에 길이 있다고 전국에 다 써붙이고 난리인데 내가 보니까 책 속엔 길이 없어요. 책 속에는 뭐가 있냐, 글자가 있는 것이죠. 길이라는 것은 이 세상의 땅바닥에 있는 것이 길입니다. 책 속에 무슨 길이 있겠어요. 다만 책 속에 어떤 길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이 세상의 길과 연결되지 않으면 인간에게는 무의미한 길일 거 아닙니까. 책 속의 길은 그런 것이죠. 그 책 속에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책 속에 있다는 그 길이, 그 길과 이 세상의 길을 연결시키는 것이 책을 읽는 자의 몫이고 지식인들의 고통스런 사명이겠죠.

박인규 : 지금은 책 속의 길과 삶 속의 길이 많이 떨어져 가고 있다

김훈 : 그것이 자꾸만 어긋나는 것인데 그건 또 일정 부분 어긋날 수밖에 없는 것이겠죠.

박인규 : 김훈씨는, 아시는 분은 다 아시지만 기자 하실 때도 문학 담당 기자로서 상당히 필명을 날리셨고.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소설가가 되셨어요.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사실 50 넘어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인데 소설을 써야겠다고 결심하시게 된 계기랄까요? 아니면 기자 하시면서도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이 좀 있으셨나요?

김훈 : 나는 전혀 소설가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었어요. 그리고 내가 몇 편의 소설을 더 쓰면 내 생애가 끝나겠죠. 아마 더 이상 일할 수 없는 나이가 되든지, 그럴 거 아니에요. 뻔 한 거죠. 그런데 그런 몇 편의 소설을 내가 남기고 세상을 떠난 후에, 내가 소설가로서 후세에 기억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 나는 아무런 관심이 없어요. 아무런 관심이 없어요. 그러나 내가 쓰고자 하는 몇 편의 소설을 난 기어코 쓰려는 것이죠. 나는 소설가가 되고 싶은 생각은 아예 없었어요. 삶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흘러갔을 뿐이지 내가 의도적으로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박인규 : 사실 기자생활을 거의 30년 가까이 하시다가 소설을 쓰시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특별한 계기는 없으셨나요?

김훈 : 계기는, 칼의 노래를 쓴 것이 발단이 됐는데, 그것은 내가 20대 때 쓰려던 글이었어요. 대학교 2학년, 스물 두세 살 때.

박인규 : 그때부터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대한 관심이 있으셨군요.

김훈 : 그때 나는 우연히 난중일기를 봤는데 그걸 보고 정말 정신이 뒤집히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어요. 그게 22살 무렵인데,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다음에 겨우 쓸 수가 있었죠.

박인규 : 말하자면 그걸 머릿속에 두고 가슴 속에 계속 묵히신 건가요?

김훈 : 마음 속에는 있지만 글로 풀어낼 능력이 아마 안 됐을 거예요. 칼의 노래를 쓴 것은 표현성의 소산이고, 그 후론 자연스럽게 작가의 길로 접어든 것이죠.

박인규 : 명성이 중요한 게 아니고, 본인을 외부에서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많은 분들은 이제는 언론인 김훈보다는 작가 김훈으로 더 많이 평가하는 측면이 있고. 하지만 저도 기자 출신이기 때문에. 30년 가까이 언론 생활을 하셨고 마지막 몸 담았던 시사저널도 어려운 일에 봉착해 있고 그래서. 약간 괴로운 질문일 수 있지만 요즘 우리나라 언론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좀 궁금해요.

김훈 : 우리나라 언론들이 사실에 입각한 객관적 저널리즘으로 존재하기를 이미 포기하고 하나의 사회세력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하나의 세력으로 존재하는, 각자.

박인규 : 냉정하게 전달하거나 관찰하기보다는.

김훈 : 자기의 세력으로. 하나의 세력화 돼 있는 것이죠. 그것이 어느 노선이건 간에.. 그것은 언론이길 포기한 거죠.

박인규 : 어떻게 보면 언론을 떠나신 건데, 그런 것들도 작용했나요? 작가로 전업하게 되신 데에...

김훈 : 아마 언론사를 제가 떠날 때 그런 것에 대한 답답함이 있었어요. 이 언론이 세력으로 존재하니까. 그리고 항상 자기의견을 사실처럼 말하고, 사실은 또 의견처럼 말해버리고. 그러니 뒤죽박죽이 돼 버리는 거 아니에요. 그것은 언론이 아니죠. 그건 언론이 가진 당파성일 뿐이죠. 난 그건 언론 아니라고 생각해요.

박인규 : 김훈씨의 글에 대해서 남성적이고 탐미적이라고 말하시는 분도 있고 글맛 때문에 본다는 분도 있는데, 제가 언론을 보니까 하루 작업을 해서 보통 원고지 두 매를 쓰신다고 해요. 너무 적게 쓰시는 거 아닙니까?

▲ ⓒ프레시안

김훈 :
그러나 한 자도 못 쓰는 날이 더 많죠.

박인규 : 보통 하루에 얼마나 쓰십니까?

김훈 : 잘 되는 날은 한 10장 써요. 그런 날은 그다지 많지는 않아요.

박인규 : 글을 많이 고치시는 모양이죠?

김훈 : 그렇죠. 지우개가 없으면 난 글을 못 쓰는데, 썼던 글은 반드시 지우죠.

박인규 : 연필로 원고를 쓰신다고 알려졌는데 연필을 고집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김훈 : 나는 우선 기계를 못 만지기 때문에, 컴퓨터라든지... 그래서 난 연필밖엔 안 되는데 연필을 쓰면 자전거 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어깨에서부터 손가락 끝까지 모든 몸에 힘이 들어가니까 내 몸이 글을 밀고 나가는 육체성의 느낌이 없이는 난 글을 못 쓰거든요. 그런데 볼펜이나 만년필은 안 돼요. 그건 지울 수가 없으니까, 그건 지워지지가 않잖아요. 연필이 아니면 안 되죠. 연필로 쓴다는 것은 반드시 지우겠다는 뜻이거든요.

박인규 : 하루에 2,3매씩 쓰고 그러면 굉장히 고통스러울 것 같은데요,

김훈 : 그렇죠. 2,3매 쓰려면 원고지는 한 30장 들어가죠. 갖다 버려야지요.

박인규 : 30장을 소비해야.. 그래서 그런 글들이 나오는 거군요.

김훈 : 그런 글인지 하여튼 내 맘에 들 때까지 글을 다잡아 놓는 것이죠.

박인규 : 본인의 문체에 대해서 남성적이다, 탐미적이다, 지나치게 수사적이다.. 이런 평가에 대해서는 동의하세요?

김훈 : 칼의 노래는 수사가 거의 없어요. 주어와 동사만을.. 전혀 수사적 장치가 없는 문장이거든요. 그런데도 그것을 수사학적라고 하대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아무 수사적 장치를 안 했는데도.

박인규 : 굉장히 수식어를 안 쓰시죠. 동사와 주어만 쓰시죠.

김훈 : 나는 가끔 수식어를 쓰는데 수식어를 안 쓰려고해요. 그런데 그 문장이 수사학적이라는 거예요. 그건 왜 그런지를 모르겠어요.

박인규 : 저희 자랄 때만 해도, 중학교 때는 한국대표문학전집, 고등학교 때는 세계명작을 기본적으로 보는 것이 교양이라고 생각하는데 요즘 청소년들은 거의 책을 안 읽는 것 같아요.

김훈 : 우리 자랄 때는 문화를 받아들이는 통로가 책 밖에 없었잖아요. 영화나 음악이나 비디오, 컴퓨터 같은 게 없었으니까 우리가 책을 많이 읽은 것이지, 우리도 그 시대에 모든 그런 것들이 발달됐다면 우리 또한 책 안 읽었을 거예요. 컴퓨터가 더 재밌는데 애들이 책 읽겠습니까? 안 읽는거죠. 애들이 책 안 읽는다고 나무라는 것은 좀 심한 것 같아요. 애들은, 재밌는 걸 하는 게 애들이죠. 그런데 책을, 가령 안 읽는다고 하는데 읽을 책이 없어요. 청소년을 위해서 우리나라 작가들이 아무 책을 써준 적이 없잖아요.

박인규 : 요즘 사실 어린이나 청소년을 위한 작품이 없다는 말들을 하긴 하던데요. 김훈씨가 혹시 청소년을 위한 에세이나 소설이나... 써야겠다는 생각은 해보신 적 없습니까?·

김훈 : 내가 청소년 시절에 제일 좋아했던 책이 '허클베리핀의 모험'이었는데 참 놀라운 책이었죠. 마크 트웨인이 쓴. 그 양반이 '톰소여의 모험'이란 책도 썼는데 톰소여보다 허클베리가 훨씬 재밌어요. 허클베리야 말로 정말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아이였죠. 그렇게 청소년을 매혹시키고 청소년한테 꿈과 모험심을 불러 모으는 작품이 있어야 되는데, 저는 아마 안 될 것 같아요. 저는 그들의 언어로, 나의 언어를 그들의 언어로 바꿀 수가 없어요. 왜냐면 내가 나의 언어에 너무 집착해 있기 때문에 청소년이나 어린이를 위한 그런 완전히 그들의 언어로 새로 써야 되는 것이거든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죠. 나는 못하는데 다른 많은 훌륭한 작가들이 그걸 좀 해줬으면 좋겠어요. 참 미안한 얘긴데

박인규 : 이제 앞으로 약간의 휴지기를 지나치시면.. 자전거도 계속 타실 테고, 작품도 다시 시작하셔야 될 텐데...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 같은 게 있으시면 간단하게 말씀해 주시죠.

김훈 : 금년에 장편을 하나 더 써볼까 하는데 잘 될지 안 될지는 알 수가 없어요.

박인규 : 혹시 어떤 주제인지를 밝히실 수가 있습니까?

김훈 : 글쎄요, 그건... 나 자신도 지금 뭘 쓰려는 건지를 잘 모르는데, 매우 막연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그것이 글로 형상화되고 나타날 수 있는 건지는 잘.. 자신이 없네요.

박인규 : 남한산성 같은 경우는 집필에만 얼마나 걸리셨어요?

김훈 : 한 7개월이나 8개월쯤 걸렸던 것 같아요.

박인규 : 하여튼 자전거 계속 열심히 타시고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좋은 소설 계속 써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김훈 : 고맙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어제에 이어 오늘도 작가 김훈씨와 함께했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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