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 폐기를 끌어내기 위해 미국과 일본이 경제제재 등의 압박 수준을 높여도, 북한이 백기를 들 가능성은 매우 낮다. 국제위기감시기구(International Crisis Group: ICG)는 최근 '북 미사일 발사 뒤: 6자회담은 막을 내렸나?'(After North Korea's Missile Launch: Are the Nuclear Talks Dead?)라는 보고서에서 "6자회담을 다시 열리도록 만들기 위해선 미국이 새로운 접근방식을 취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미국은 협상 태도 바꿔야"
ICG는 전세계 분쟁지역에 초점을 맞춰, 현지상황에 바탕한 분석과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국제적인 민간 싱크탱크다. 벨기에 브뤼셀에 본부를, 워싱턴, 뉴욕, 런던, 모스크바에 각각 정책추진사무실을 두고 있다. ICG는 'Crisis Watch' 라는 이름의 12페이지 월례보고서를 통해 지구촌 분쟁지역 또는 분쟁 가능성이 큰 지역에 대한 기본정보들을 매달 업데이트한다. 이런 자료는 웹사이트를 통해 볼 수 있다.
ICG 동북아 프로젝트 책임자 피터 벡은 별도로 보고서 발표와 더불어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미국 조지 부시 행정부의 협상 접근 태도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북한과의 협상은 쉽지 않고 좌절감을 안겨주기 십상이다. 그렇지만 부시행정부의 성의 없고 내키지 않는듯한(halfhearted) 투의 태도는 6자회담의 진전을 가로막았다."
따라서 피터 벡은 앞으로라도 미국이 협상 접근태도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미국은 북한을 포용하기 위해(to engage the North) 진지하게 협상에 임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꿔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만이 북한이 진실로 (핵 폐기를 둘러싼) 협상을 할 뜻이 있는지를 알아낼 수 있다. 그 다음에는 (북한이 핵 폐기 협상에 전혀 성의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밝혀진 다음에는) 미국은 다른 6자회담 참여국들과 더불어 보다 강경한 대북 정책을 펴나갈 수 있다."
"인도적 대북지원, 핵-미사일에다 연결 말라"
ICG 아시아 프로그램 책임자 로버트 템플러는 외교적 협상통로가 막힌 상황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을 걱정한다. "한국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사이에 보다 융통성 있는 대화와 (북핵 폐기라는) 공동목표를 향한 전략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북한은 지금의 위험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쪽으로 몰리게 될 것이다. 외교적인 선택사항들은 아직도 남아 있지만, 갈수록 시간이 모자란다."
ICG 보고서는 6자회담 재개를 위해 한미 양국 정부에게 몇 가지 주문을 내놓았다. 미국 정부에게는 △중국 마카오 은행에 있는 북한 자금 동결을 풀어주고 △6자회담 돌파구 마련을 위해 재량권을 지닌 고위급 인사가 평양을 방문하고 △은밀한 대북 위협과 특정인에 대한 비난을 삼갈 것을 주문했다.
아울러 이 보고서는 한국 정부에게는 △대북 경협 확대로써 6자회담 재개에 도움이 되도록 하고 △인도적 대북지원을 핵-미사일에다 연결시키지 말고 △7월 홍수로 피해를 본 북한에게 구호물자를 보내고 △미국과 일본에 대한 비난을 삼가라고 권유한다.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를 풀고 평양방문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한 ICG 보고서는 결론적으로, 미국이 단호한 대북 압박정책을 펴나가려면 한국과 중국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음은 보고서의 주요내용이다.(본문보기)
미국, 북한과 직접 대화에 나서야
북핵 폐기를 위한 국제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앞으로의 회담 전망도 불투명하다. 그런 속에서도 북한은 무기급 플로투늄의 비축량을 늘려나가고 있다. 이미 12개쯤의 핵무기를 만들기에 충분할 만큼의 분량을 비축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대북문제를 놓고 한국이 미국-일본과 긴장관계에 있던 지난 7월5일 북한이 국제사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7개의 미사일을 발사하자, 한국은 안보문제에서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에 놓였다.
이런 긴장국면을 헤쳐 나갈 유일한 길은 미국이 새로운 접근방식으로 북한을 대하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과 직접 대화에 나서면서 수사학적인 신랄한 비판을 되도록 삼가는 것도 새 접근방식에 포함된다. 그 목적은 북한이 6자회담에 돌아올 뜻이 있는지, 그래서 핵문제를 둘러싼 협상을 하겠다는 자세가 돼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다.
가장 고립된 처지에 놓인 북한
북한과의 협상은 쉽지 않고 좌절감을 안겨주기 십상이다. 그렇지만 성의 없이 미적지근하게(half-hearted)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라는 식의 부시행정부의 회담접근 자세는 회담의 진전을 막았다. 6자회담이 이제 막 열매를 맺으려고 할 무렵에 미국은 북한의 항복이나 붕괴를 노려 금융제재라는 압박정책을 폈다. 그리고는 6자회담 바깥에서 북한과의 대화를 거부하면서 북한 인권문제를 거론함으로써 6자회담 자체를 산송장(dead man walking)이나 다름없도록 만들었다.
한국과 중국도 그들의 대북 포용(engagement) 정책이 북한으로 하여금 한국과 중국이 바라는 행동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음을 점차 깨닫고 있다. 1998년 북한이 지금보다 훨씬 더 멀리 미사일을 쏘아 올렸을 대 유엔 안보리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미사일발사 비난과 부분적인 무기금수(arms embargo) 규정을 담은 안보리 결의안 1695를 채택했다. 중국은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북한이 탈퇴할 때 비판을 삼갔다. 북한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인 중국이 2006년 안보리 결의안에 찬표를 던진 것은 더 이상 참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국과 일본처럼 대북 제재에 나서길 망설이면서도, 북한 미사일 위기가 풀릴 때까지 인도적 차원의 대북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럼으로써 북한은 최근 10년 사이에 가장 고립된 상황을 맞이했다. 북한에게 체면을 살릴 어떤 계기가 주어지지 않을 경우 북한은 또다른 미사일 발사 시험을 하거나 나아가 핵실험을 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더욱 비난이 쏟아지고 더 가혹한 제재조치들이 따를 것이다. 미국과 북한이 서로 융통성을 보여 회담을 다시 시작하지 않는 한 두 나라는 충돌하게 될 것이고, 한국은 그 틈바구니에 끼게 된다.
금융제재 풀고 평양 방문 추진해야
본 ICG 보고서는 미국에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하길 권한다.
- 중국 마카오 은행의 북한 자금 동결을 풀어줘야 한다(미 재무부는 북한 계좌가 들어있는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에 대한 금융제재가 북한에게 상당한 압박을 거두었다는 판단에 바탕을 두고 싱가포르, 호주 등의 은행에 있는 북한 계좌를 파악하고 추가조치를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역자 주).
- 6자회담 돌파구 마련을 위해 고위급 인사에게 보다 큰 재량권을 주고, 비공식 양자접촉을 위해 평양을 방문하도록 한다.
- 은밀한 대북 위협과 특정인에 대한 비난을 삼간다.
한국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말미암아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하고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그렇지만 상황을 헤쳐 나갈 몇 가지 수순을 밟아야 한다.
- 대북 경협 확대로써 6자회담 재개에 도움이 되도록 한다.
- 북한에의 인도적 지원을 핵과 미사일 의제에다 연결시키지 말고, 7월 홍수로 피해를 본 북한에게 구호물자를 보내도록 한다.
- 다른 6자회담 참가국, 특히 (대북제재를 서두르는) 미국과 일본에 대한 비난을 삼간다.
6자회담의 모든 당사국들은 저마다 외교적 해법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로서는 6자회담만이 위기를 푸는 해결책이다. 막판에 북한은 어떤 희생을 치르고도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겠다며 고집을 부릴 수도 있다. 그런 상황이 오기 전까지 미국이 단호한 대북 압박을 이어나가려면 한국과 중국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미국은 알아야 한다.
kims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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