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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세계, 공부할 수록 재밌어... 사명감 불어 넣으려 책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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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세계, 공부할 수록 재밌어... 사명감 불어 넣으려 책 집필"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5/04] 천문학자 조경철 박사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우리는 흔히 과학하면 매우 전문적이고 어려운 분야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국내에서 평생을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서온 과학자가 있습니다. 바로 아폴로 박사로 유명한 천문학자 조경철 박산데요. 최근 조경철 박사가 자신의 삶과 별에 대한 사랑을 담담하게 풀어낸 자서전을 출간했습니다. 특히 조경철 박사는 대중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호흡할 수 있어야 과학이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하며 저술활동을 비롯해 왕성한 활동들을 펼쳐왔는데요.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조경철 박사를 초대해 국내에서 천문학자 1세대로 살아온 인생 역정과 우리나라 우주 산업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 얘기 나눠봅니다.

조경철 박사는 1929년 평안북도 선천 출생으로 연희대학교 물리기상학과를 졸업했고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천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미국 해군천문대와 미항공우주국(NASA)에 근무했고 귀국 후 한국에서는 연세대와 경희대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과학기술정보센터 사무총장과 한국우주과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한국우주환경과학연구소 소장으로 활동중입니다. 80여 편의 논문과 우주물리학, 전파천문학 등에 관련된 책 170여권을 퍼냈습니다.

박인규 : 벌써 내일모레면 연세가 여든 되시네요.

조경철 : 네. 1년만 지나면 80입니다.

박인규 : 연세에 비해서는 훨씬 젊어 보이십니다.

조경철 : 그런 것이 아니고 그냥 살다 보니 이렇게 나이를 다 먹었네요.

박인규 : 강의라든가 활동을 아직도 하고 계시죠?

조경철 : 아직도 경희대학교 대학원에 강의를 나가고 있고, 지금은 여러 군데서 강연요청이 있어서 강연 나가고 책도 매년 한 서너 권 씁니다.

박인규 : 말씀하셨습니다만 170권이면 거의 1년에 세 권 어떻게 이렇게 많은 책을 쓰실 수 있었나요?

조경철 : 그건 간단해요. 하루에 원고지를 10장 채운다. 이런 신조를 세워서 어떤 일이 있어도 하루 10장의 원고지를 채우면 그것이 365 곱하기 10장이면 3600매 원고지가 됩니다. 그럼 이것이 서너 권의 책이 되죠. 그런데 쓰는 요령이 어떻게 매일매일 하루 열장 되는 원고지를 쓰느냐,오늘 밤에 모임, 술자리가 있다고 하면 그 전날 악착같이 스무 장을 쓰고, 그 다음에 마음 놓고 즐기고. 그러다 보니 그렇게 돼요. 그냥 부지런하면 되죠.

박인규 : 이번에 나온 책이 '과학자 조경철 별과 살아온 인생'이라는 자서전인데요, 그게 혹시 몇 번째 저서인지 아십니까?

조경철 :174권째입니다.

박인규 : 물론 연세가 드셨으니 정리를 하셔야겠다고 생각은 하셨겠지만 어떻게 자서전을 쓰실 생각을 하셨어요?

조경철 : 정리한다는 것보다도 저는 불우한 사람, 사회적으로나 자기 자신의 출신상으로나 불우하다 생각하고 낙담만 하고 계시지 말고, 불우한 사람에게도 노력만 하면 기회가 있다는 걸 알리고 싶고. 또 두 번째로는 요새 젊은이들이 너무나 자극적인 연예인, 재미, 스포츠, 그것에 자극을 받다 보니까 나라, 애국심에 대한 사명감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명감을 좀 불어넣고 싶고요. 그리고 과학의 세계도 참 미지의 세계지만 한 번 공부하면 재밌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박인규 : 책 말미에 보면 나는 큰 감투도 쓰지 못했고 돈도 많이 벌지 못했지만 남다른 자부심이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 ⓒ프레시안

조경철 :
자부심이래야, 제가 뭐 대인관계에서 아부를 좀 못하는 성격이고 사람을 찾아다니는 걸 좀 싫아하는 성격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감투도 못 쓰고 돈도 못 벌었습니다만, 그러나 나름대로 노력한 결과로 국민들의 사랑은 내가 누구보다 많이 받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박인규 : 책을 읽어 보니까 조경철 박사님 연배 되시는 분들이 많이 겪었을 법한 파란만장한 삶을 사셨는데 그걸 다 여기서 풀 순 없고. 거길 보니까 동생분과 어머니는 이북에 남아 계시고 아버지와 조 박사님은 내려오셔서 52년만인가 동생분을 만나셨다고 하셨어요.

조경철 : 저뿐이겠어요? 이남에 약 600만 명의 이산가족이 있습니다. 그 분들이 다 저와 똑같은 처우로 이북을 바라보고 애태우고 있고, 그래서 요새 길이 좀 뚫려서 이산가족도 만나고 하지만 그것도 몇만 분의 1밖엔 안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참 다행으로 생각합니다만, 50년이라는 반세기 이산의 고통이라는 것은 제가 아버님 돌아가실 때도 임종을 못 지켰고, 어머니 돌아가실 때도 임종을 못했고 저 같은 불효자가 없는 것 같아요. 이건 전 세계의 정치흐름의 결과가 아닐까. 그래서 어떻게든지 하루 빨리 통일이 되는 것을 기원할 뿐입니다.

박인규 : 정치흐름 때문에 이산가족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사실 조경철 박사님은 천문학자로 알고 있는데 이번에 책을 보니까 미국 가셔서는 처음에 정치를 공부하셨더라구요.

조경철 : 왜 그렇게 됐냐 하면, 여기서는 사실 물리학과를 나왔습니다. 그런데 6.25 사변이 터지면서 정말 고생했어요. 군인 생활을 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왜 이렇게 이북 사람들한테 밀리면서 허약한 남한의 실태가 됐었느냐... 너무나도 한탄스러워요. 그래서 이거 모두가 정치를 잘못해서가 아닌가 생각해서, 아... 그러면 나는 이것을 한 번 바로잡아보는 일을 해봐야겠다.

그래서 제대를 하면서 미국 갈 기회가 있어서 그 계기로 정치학으로 전환했죠. 말하자면 구국정신, 사명감, 그런 것이 제게는 있었는데 요새 사람들. 요새 친구들은 그냥 스포츠, 연예인, 오늘 아침에도 어떤 방송을 보니까 초등학교 가서 질문해 보니까 한 70%가 다 연예인 이 되고 싶답니다. 그게 뭡니까

박인규 : 계속 하셨으면 정치가가 되실 수도 있었는데 어떻게 다시 또 천문학을 하시게 됐나요?

조경철 : 거기서 대학을 정치학 전공하고 나오고 대학원도 펜실베니아에서 정치학 전공을 하고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우리나라에 이원철 박사님이라고 이 분이 이학박사 제1호인데요, 1926년에 미시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셨는데 우리나라 이학박사 제1호는 천문학으로 받으셨습니다. 분야가 수학, 물리학, 화학 많이 있는데 이 분이 해방되면서 관상대 대장으로 일하시면서 연희대학교에 강좌를 하나 갖고 계셨는데, 거기 학생 중에 아마 제가 눈에 띄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8년 만에 그분이 제 주소를 어떻게 미국에 있는 걸 아셔서 이놈아 정치학으로 외도를 하고 있는 모양인데 내가 천문학을 공부했으니까 네가 천문학을 하는 게 어떻겠느냐, 그래서 미시건 대학교 입학허가증과 장학증을 보내왔어요. 물론 장학증만 보내왔지 돈은 한 푼도 못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 스승이, 8년 전의 스승이 이렇게까지 나를 기억하시고 나에게 후계자가 돼 달라는 간곡한 부탁과 미시건 대학교 입학증까지 보내오셔서, 스승의 말은 그땐 또 절대적이었거든요. 그래서 180도 전환한 겁니다.

박인규 : 뭐니뭐니 해도 조 박사님은 아폴로 박사라는 별명으로 유명한데 그런 애칭을 받게 된 계기가 뭡니까?
▲ ⓒ프레시안

조경철 :
고마운 애칭인데, 1969년 7월에 아폴로 11호가 달나라에 처음 가지 않았습니까? 그때 KBS 방송국에서 저를 아예 한 주일 동안 꽉 붙잡고 24시간. 그때 당시는 우리가 특파원을 못 보냈고 AFKN 영어로 방송하는 걸 그냥 빌려서 알려줬거든요. 특히나 달 착륙하는 날에는 남의 나라 일에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공휴일로 정해서, 그 순간을 지켜보라고.

그래서 아주 엄청나게 한 주일 동안 큰 역사적인 순간을 KBS에서 방영해 줬는데요, 제가 거기 해설위원으로 나가서 통역도 하면서 해설도 하면서, 그러다 보니까 바로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하면서 제가 하도 흥분을 해서 의자에서 나가떨어졌거든요. 그것을 각 코미디언들이 널리 이용을 했는데요. 그래도 한 주일 동안의 제 노력이 일반 대중에게 참으로 사랑을 받아서 아폴로 박사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겁니다.

박인규 : 그 당시에 집에도 못 가시고 계속 KBS에 계셨다고.

조경철 : 그렇죠. 그냥 24시간, 정말 KBS에서는 역사적인 방송을 한 것 같이 생각합니다. 대단했었어요. 남의 나라 일에 우리나라가 공휴일로 정할 만큼.

박인규 : 또 하나는 미국에서 천문학을 공부하시고 해군천문대 미군 나사에서 일하셨는데 미국에 계시면 사실 60년대에 미국에 계셨으면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한국에 들어오시기가 참 뭐했을 것 같은데요

조경철 : 60년 말에 우리나라에도 과학기술처라는 게 창설됐습니다. 그래서 우선, 우리나라 박정희 대통령이 그래도 그거 하나는 참 잘하셨어요. 그것뿐만 아니라 딴 것도 잘 하셨지만, 그래서 과학립국을 해야겠다. 그래서 정보, 교육, 연구. 이 세 가지의 기둥을 세운다 치고 과학기술처를 만들어서, 그렇다면 첫 번째로 해외에 흩어져 있는 과학자를 유치해야겠다. 그래서 그때 제가 유치과학자 제 1호로 불려왔습니다. 그때 11명이 왔는데 다 돌아가시고, 왜냐면 여기서 대접할 수 있는 지반, 지위를 그 과학자들한테 다 줄 수가 없어서, 그래서 다 돌아가시도 저 혼자 남았네요.

박인규 : 그래서 들어오셔서 과학기술정보센터 사무총장도 하시고

조경철 : 그래서 그때 이후락씨가 비서실장을 하셨는데, 하루는 연희대학 교수를 하고 계셨는데 하루는 전화를 해서 청와대로 좀 들어오라. 그래서 들어갔더니, 아까도 말씀드린 대로 우리 과학립국의 이름으로 과학정보, 교육, 연구, 정보의 일역을 담당해 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제가 연희대학교 교수인데 어떻게 그걸 겸직을 하겠느냐, 그러니까 그때는 마음대로 될 때 아닙니까. 그래서 정부에서 세웠습니다.

박인규 : 이번 책에도 쓰셨습니다만 조경철 박사님이 아폴로 박사라는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되면서 일각에서는 저분은 연구는 안 하시고 대중활동만 하시는 분인가보다.. 그런. 얻은 것도 많고 잃은 것도 많았다던데요.

조경철 : 우리나라의 패탄이, 그런 장벽이 있습니다. 뭔가 대중만을 위해서 노력하면 교수 입장에서는 그런 것을 좀 싫어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 곳에 종사하는 하는 사람을 대개 속된 사람이라고 아주 그냥 패타를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것의 희생자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내가 딴 방면으로 연기, 대중을 위해서 그것만 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책을 쓰기로 한 거죠. 그래서 책을 많이 썼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주 권위있는 뭐 말하는 사람들한테는 할 말이 있죠. 자, 그럼 너희들이 권위가 있다, 그럼 무슨 권위가 있느냐, 책 한 권 제대로 쓴 게 있느냐, 반문할 수 있는 기반이 있지 않습니까. 저는 그런 데 대해서 당당합니다.

박인규 : 혹시 이런 질문 직접 드리기는 뭐합니다만, 천문학자로서 어떤 학술적 업적으로서 나의 업적은 이거다, 라고 내세울 수 있는 게 어떤 게 있습니까?

조경철 : 연구 분야에서도 업적을 남겼다고 생각하는데요, 우리 천문학계에서도 분야가 많습니다. 천문학! 그냥 막연히 말씀을 여러분께서 하시지만 사실 천문학 가운데서도 50개 분야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식변광성 연구가 있거든요. 변광성이라는 건 별의 빛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하는데요, 이것이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만 한 가지 종류는 쌍별이 서갖고 빙빙 돌면서 마치 일식, 월식 식으로 빛이 한 별이 가리울 때 빛이 줄어들고 늘어나고 하는데, 이것을 연구하면서 광도곡선하고 빛의 변화를 측정하는 광도곡선을 얻어서 분석하면 여기서부터만이 별에 대한 질량, 크기, 궤도의 크기를 구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그런 연구 분야에 제가 씨를 한국에 내렸다고 봅니다. 그래서 식변광성 연구에 있어서는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 자랑스럽게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천문학 하면, 잘 모르시는 분들은 별 볼일이 있지만 또 별 볼일 없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고, 천문학의 매력이랄까 어떤 걸까요?
▲ ⓒ프레시안

조경철 :
없다고 하면서도 가만 보면 다 별 볼일 있다고 생각하셔야 되는 이유가 일본서도 그렇고 미국서도 그렇고, 너희들이 과연 책을 읽는다든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의 첫 번째는 무엇을 꼽는가 물으면, 일본 아사히신문에서 앙케이트를 구해 보니까 우주입니다. 우주에 관심이 있는 모양이에요. 미국도 우주로 돼 있어요. 이렇게 우주에 대한 관심이 많으면서도 천문학 하면 돈벌이가 안 된다고 생각하시겠지요.

그러나 관점은 많아요. 그래서 여러분께서는 일반 가정에서도 천문학에 관한 아름다운 사진 같은 것들을 소개한 책 같은 걸 아마 안 갖고 계신 분이 없을 것 같아요. 그렇게 일반 사람들이 친근하게 상대하는 천문학인데도 이것을 내 일생에 밥을 벌어주는 하나의 직업으로는 삼기가 힘들다, 안 하겠다. 그런 경향이겠죠.

박인규 : 지금 우주환경과학연구소를 운영하고 계신데 어떤 일을 하고 계십니까?

조경철 : 운영보다도, 제가 일선에서 물러나고 난 뒤에 할 일이라곤 과학 홍보, 또 제자 관리, 책 계속 쓰는 것. 과학 홍보도 각 강연을 의뢰받아서 하는 거니까.

박인규 : 화천에다가 조경철 천문과학관을 지을 예정이시라구요.

조경철 : 나름대로 제가 오래 살아왔습니다만 그러다 보니 일반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아서, 화천에서 아주 근사한 천문대를 세우기로 돼 있습니다. 한 60억 들여서 세우는데, 이왕이면 조경철 이름을 붙이고 싶다는 제의가 왔어요. 그래서 그건 영광이죠 저로서는. 그래서 제가 갖고 있는 장소, 도구, 모든 것을 다 집에 남기지 말고 거기다 다 기부하기로 하고, 또 한 영광으로 생각하는 것은 하늘에 소행성이라는 별들이 또 있는데 거기에 참 일반 세계 사람 가운데서 복지사회니 연구니 그밖에 공이 있었던 사람의 이름을 붙여 주는데, 제가 거기에 이름이 하나 붙여졌습니다.

그래서 천문학을 했다고 해도 결국 이렇게 제 이름이 붙는 연구소가 생기고 과학관이 생기고 별까지도 제가 비록 몸은 얼마 있다가 지하에 들어가겠지만 내 이름이 붙은 별이 하늘에 항상 영원히 떠 있다는 것은 제가 천문학을 했기 때문이지, 사업을 했다든가 정치학을 했다면 모든 것이 돌아가면 하나의 물거품으로 되고 마는데 천문학을 한 까닭에 내 이름은 영원히 남는다. 보람있지 않습니까?

박인규 : 그러네요. 조경철 천문과학관은 언제쯤 완공됩니까?

조경철 : 내년 말쯤 계획을 세우고 진행중입니다. 망원경도 발족하고

박인규 : 어떻습니까, 사시면서 후회스럽달까 그런 일은

조경철 : 후회스럽다는 것보다도, 안타깝다. 남북이 갈라져서 지금 몇십 년 동안 이산가족이 생기면서 그 비극이야 말로 어떻게 말할 수가 없어요. 이 때문에 우리 국가가 좀 더 발전을 못했어요. 그 일본은 얼마나 잘 되고 있습니까. 통일국가가 되면 정말 잘 될 소지가 많이 있는 이 나라가 이것 때문에 잘 안 된 것이 한이 되고. 아울러 그것의 영향을 받아서 제가 좀 고생을 했다는 것. 그것 뿐이지만 나름대로 저는 멋진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아마 지금 잘 하고 계시니까 조경철 박사님 살아계실 때 남북통일이 되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해봅니다.

조경철 : 통일을 기원합니다. 간절합니다.

박인규 : 조 박사님이 천문학 공부하실 때는 천문학이 상업적으로 별 볼일 없는 학문이었지만 요즘에는 우주산업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내년에는 아마 우주인이

조경철 : 그런데 그 우주인 우주인 하는데. 이 기회에 이걸 말씀 좀 드리고 싶어요. 우주인이라고 하면 외계인을 말하거든요. 우주인은 우주에 사는 사람이란 말씀. 그래서 우주비행사라고 표현해야 될 텐데 어떻게 방송국도 그렇고 신문도 그렇고 다 우주인 우주인 하는데 이거 정말 불만입니다.

박인규 : 알겠습니다. 우주비행사가 정확하겠네요.

조경철 : 그렇죠. 잠깐 갔다가 내려오는 건데.

박인규 : 그동안 우리나라 우주산업의 발전양상이랄까요, 어떻게 보세요?

조경철 : 시간이 좀 걸리는 과정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제가 정말 우리별이라는 인공위성을 처음 날렸고 그래서 너무 감격해서 그것에 관련된 만화책도 제가 하나 그려서 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은 다 시간이 해결해 주고 국력의 뒷받침이 있으면 참여도 가능한데, 요새 우리 주변 국가들이 너무나도 통일국가였기 때문에 발전속도가 우리나라보다 빠른 것 같아요. 그래서 중국도 저력을 발휘해서 벌써 유인우주비행을 했고, 또 2012년에 일본도 달나라 탐사를 한다고 하고 그러다 보니 우리도 쫓아가야겠지요. 그래서 우주기지도 만들고 그것도 다 제가 시작했다고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씨를 뿌려서 결국 그렇게까지 발전된 것 아니겠냐. 좀 더 우리가 부강해지는 나라가 되면 또 우리도 달나라에 보내는 로켓도 발사되고

박인규 : 문제는 대략 한 90년대를 경계로 해서 천문학 같은 기초학문도 학생들이 잘 진학을 안 하고 특히 이공계는 거의 안 가는 세태가 됐어요.
▲ ⓒ프레시안

조경철 :
과거 20년 동안 이공계 대학에 진출하는 학생 수가 27%가줄었다고 합니다. 그건 왜냐 하면, 우선 이공계통을 전공하려면 기초부터 닦아야 되거든요. 말하자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 착실히 수학공부 같은 것도 하고 해야 되는데 그렇게 귀찮은 걸 요새 젊은 애들은 하려고 안 해요. 왜냐, 골프선수를 하면 일확천금에 이름이 날리는데, 연예인, TV에서 밤낮 방송하는 것이 이런 것들 뿐이니까 그것에 현혹돼서 이름이 팔려서 좋다, 돈 벌고 고생 안 해서 좋다, 노래만 부르면 되니까.

이렇게 머리 쓰는 걸 싫어하니까 그렇게 되는데 연예인들, 스포츠맨을 향해서 말씀드리면 미안한 말씀이지만 그래도 그분들은 반짝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그 동안 돈 많이 벌어서 노후에 잘 살면 되겠지만 반짝인생보다도 자기가 대학에서 이공계를 공부하면 자신감이 생깁니다. 무엇이든지 와도 나는 그 역경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 또 이공계를 함으로써 이 나라에 내가 이바지 할 수 있다는 사명감이 생기고. 얼마나 귀중한 것입니까. 그런데 머리 쓰기 쉽지 않기 때문에 연예인, 스포츠, 난 참 한심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요새 영재과학교육을 많이 거론하고 있고 하려고 하고 있어요.

그러나 전체적으로 봐서 역시 국가가 과학자 우대정책을 좀 더 강력히 홍보하고. 또 하나는 매스컴이 너무나 스포츠맨, 연예인에 관한 프로그램만 만들지 말고 과학의 날 앞서서 일 년에 한 번 행사 치르고 그런 거 말고 좀 빈도 높게 홍보에 힘써 주시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대정책, 과학의 홍보.

박인규 : 이렇게 뵙니까 워낙 활기차셔서 앞으로 100살까지도 계속 활동하실 것 같은데요. 앞으로, 연세가 있으시지만 활동계획 같은 걸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시죠.

조경철 : 지금도 활약을 하고 있거든요. 대학강의 나가고 있고 책은 한 200권까지 쓰려고 하고 있고. 이제는 어린이들, 청소년들을 위해서 좀 더 알기 쉬운 내용의 책을 써서 좀 더 과학계몽, 보급에 힘쓰려고 하고 있고. 또 나름대로 노후의 멋있는 인생을 지내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과학자로서 50년 이상 살아오신 경험과 지혜를 섞어서 우리 국민들이 과학을 사랑하고 발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조경철 : 하여튼 저는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자부심은 있으니까, 역시 뿌린 씨는 거두리라 생각하고 자부심을 느낍니다.

박인규 : 앞으로도 좋은 책 만드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조경철 :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인규 :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오늘은 조경철 박사를 초대해 국내에서 천문학자 1세대로 살아온 인생 역정과 우리나라 우주 산업의 발전 가능성에 대한 얘기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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