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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에서 잡은 희망은 '더디지만 할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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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히말라야에서 잡은 희망은 '더디지만 할 수 있다는 것'"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5/03] 2007 KBS 희망원정대 가수 박일준씨와 절단장애인협회 김진희 회장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때로는 불가능 하다고 여겼던 것을 가능한 것으로 바꿀 수 있는 힘,바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도전의식인데요. 'KBS 2007 희망원정대'가 히말라야 등반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산악인 김세준 씨를 대장으로 장애인과 혼혈인, 일반인 멘토 등 총 38명으로 구성된 대원들이 희말라야 랑탕의 칸진리봉을 등정했는데요. 무엇보다 이들은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배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KBS 2007 희망원정대원 가수 박일준씨와 절단장애인협회 김진희 회장을 초대해 갑갑한 현실에서 벗어나 히말라야 정상에서 느낄 수 있었던 삶의 희망에 대해 얘기 나눠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희망원정대원 가수 박일준씨와 김진희 회장입니다. 오늘은 KBS 2007 희망원정대원으로 히말라야 칸진리봉에 오른 가수 박일준씨와 김진희 절단장애인협회 회장을 모셨습니다.

박인규 : 박일준씨 안녕하십니까?

박일준 : 안녕하십니까?

박인규 : 김진희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김진희 : 안녕하세요?

박인규 : 지난 일요일 들어오셨죠? 박일준씨는 한동안 몸이 안 좋으셔서 고생을 많이 했을 거란 얘기가 있었는데 이번 등반 괜찮았습니까?

박일준 : 고생 많이 했어요. 사실 제가 못 가리라고 생각했거든요. 가서 첫날 꼴찌를 했어요. 일정이 빡빡해서 꼴찌를 했는데 다음날 자고 일어났는데 의사분과 감독님이 그래요. 올라가지 않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제가 몸이 안 좋았으니까,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오기가 생기고 또 제 밑으로 혼혈인들이 아랫사람들이 많은데 뭔가 보여줘야 되는데, 큰 탈 났더라구요. 그래서 전 올라갈 수 있습니다. 만약에 못 올라가면 다시 내려오겠다는 언약을 하고 올라갔는데 다행히 그날 1등 했습니다.

박인규 : 어쨌든 정상까지 올라가신 거죠?

박일준 : 어떻게든 올라갔죠.

박인규 : 김진희 회장님은 절단장애인협회 회장이신데, 제가 알기론 다리가 불편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김진희 : 저는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를 무릎 아래로 다리를 절단했고, 의족을 차고 있는 장애인입니다.

박인규 : 제가 아까 스튜디오 밖에서 봤을 때는 전혀 비장애인인 줄 알았습니다.

김진희 : 재활을 많이 했죠. 걷는 연습도 많이 하고

박인규 : 의족을 하셨다고 해도 산에 오르는 게 상당히 힘들었을 것 같은데
▲ ⓒ프레시안

김진희 :
정말 어렵죠. 의족 착용하신 분들은, 저같이 무릎 밑이 있는 분은 괜찮은데 무릎 이상일 경우는 10분 이상 걷기가 정말 힘들어요. 특히 산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길이 정말 많잖아요. 자갈도 많고,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절단장애인, 의족장애인들이 산에? 이렇게 걱정을 많이 하시는데요, 저도 갈 때 사람들이, 못하면 그냥 올라가는 척 하고 내려오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까 정말 너무 좋았고, 많이 힘들긴 했어요. 왜냐면 너무 더워서 의족이 빠져 버리는 경우도 있었고 위에 정상으로 올라갈수록 날씨가 추워지니까 다리가 수축이 돼서 의족이 굉장히 크게 느껴지는 바람에 거의 질질 끌다시피 올라갔습니다.

박인규 : 지금 전국에 절단장애인이 얼마나 되죠?

김진희 : 통계조사에 의하면 한 13만 정도, 회원은 한 9천 명 정도 됩니다.

박인규 : 어쨌든 전국 13만 절단장애인을 대표해서 히말라야에 다녀오셨군요.

김진희 : 네.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됐으면 좋겠어요

박인규 : 이번에 갔다 오신 데가 랑탕에 있는 칸진리봉이라고 하던데 박일준씨가 어떤 산인지 좀 설명해 주시죠.

박일준 : 트래킹 하는 분들이 많이 가는 곳이에요. 정상이 4700미터정도 됩니다. 저희들이 칸진리봉이라고 해서 별 거 아닌 줄 알았는데 바로 눈앞에 두고 저는 중도하차했었어요 사실은. 발에 물집이 막 생기고, 그런데 대장님이 오시더니 막 따시더라구요. 따더니 올라가십시오. 혼혈인들이 와서 형님이 안 가시면 저희들이 뭐가 되겠습니까, 좀 보여주십시오. 그래서 오케이, 가자. 여기까지 왔는데 못 올라갈 일 뭐 있겠느냐.


박인규 : 만약에 혼자 가셨으면 못 올라갈 수도 있었겠군요.

박일준 : 안 갔죠 아예.

박인규 : 이번에 희망원정대원이 전부 38명인 걸로 알고 있는데, 절단장애인

김진희 : 절단장애를 가지신 분들이 7명 정도 되고 혼혈우 분들이 7분, 또 사랑의 밥차라고 연예인 봉사단 7분, 스태프 분들 해서 총 38명이 갔거든요. 개중에는 암연을 부르신 고한우씨, 탤런트 이일화씨도 계시고 절단장애인뿐만 아니라 방일준 선생님도 계시고, 너무 많은 분들이 같이 가주셔서, 서로서로 멘토가 돼 줘서 끌어주고 이끌어 주고 서로 격려도 해주셔서 올라가지 않았나 싶어요.

박인규 : 칸진리봉이 4700미터면 한라산에 비교하면

김진희 : 거의 세 배 가까이 되죠.

박인규 : 두 분은 일단 정상에 오르셨습니까?

박일준 : 다 올랐습니다.

김진희 : 올랐죠.

박일준 : 한 사람만 낙오가 됐는데, 제이미라는 혼혈인인데 복통이 왔어요. 거의 봉 다 보고 저것만 올라가면 된다 했는데, 거기가 제일 힘든 코스였는데 그때 그분만 .또 우리 김회장님은 잉크의 이만복씨가, 혼혈인인데 많이 도움을 줬어요. 맨 뒤에 서서. 그런데 이번에 굉장히 고마운 게 멘토 분들 중에서 직업이 다른 분들이 왜 그렇게 도와주셨는지, 정말 너무 고마워서 잊어버려지지 않을 것 같아요.

김진희 : 아마 각자 나름대로 목표가 도전을 가지고 오신 것 같은데 하나하나 이루고, 느낀 게 너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유명 가수분들 탤런트도 계시고 그런 분들이 시간을 할애하면서 서로 장애, 비장애, 혼혈에 대한 사회적 편견도 서로 같이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동참하는 모습이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박인규 : 지금 두 분이서 4700미터 정상에 올랐다고 웃으면서 말씀하시지만 아마 등반 당시에는 상당히 어려운 일도 많았을 것 같은데 어떤 게 가장 힘들었습니까 김진희 회장님?

김진희 : 많이 걸어보질 못했고 사실 산을 별로 좋아하진 않았는데 의족 속에 물집 생기고 이랬을 때 너무 힘들었고, 하루 7시간 10시간씩 걸을 때마다 너무 많이 힘들었어요. 그런데 다른 분들이 올라가는 모습 보면서 제가 안 올라가면 안 되잖아요. 저는 업혀서도 올라가고 그랬거든요. 근데 저 선생님이 처음에는 꼴찌였는데 나중에 그 다음날 보면요, 저는 가다 쉬고 가다 쉬고 하는데 보폭을 그대로 유지하시면서 예쁘게 걸으시더라구요. 그 모습 보고 아이고 우리도 해야 되는구나...

박인규 : 박일준씨 같은 경우는 첫날이 가장 힘들고 그 다음에는 괜찮았나요? 어려웠나요?
▲ ⓒ프레시안

박일준 :
그게요, 물론 고산증도 있지만 사람이 산에 올라갈 땐 보폭이 굉장히 중요하더라구요. 페이스가 중요하면서, 거기는 고산이 있어서 쉬면 안 된대요. 5분 10분 쉬면 바로 숨차더라구요.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서 계속 그걸 유지하면서 올라가니까 되더라구요.

김진희 : 같이 올라가신 분들 중에는 구토하시는 분들, 머리 두통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분들 굉장히 많았어요. 다리에 물집이 너무 많이 생기니까 그걸 따고 올라가시는 분들. 솔직히 비장애 가지신 분들도 올라가기 힘든 곳이었는데 장애 가지신 분들은 정말 너무 많이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같이 올라가는 분들 중 한 분이 몸무게가 굉장히 무거우세요. 한 85kg 정도 되다 보니 그분은 어떻게 도와줄 수가 없더라구요.

박인규 : 한국사람들이 히말라야를 많이 간다고 합니다. 속세를 떠나는 기분도 있고, 어떤 분들은 히말라야를 보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던데 정상에 딱 오르는 순간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박일준씨

박일준 :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내가 여길 왜 올라왔어야 되나. 그리고 우리 장애인들하고 저희들, 남들 보는 시선이 첫날엔 굉장히 어려웠어요. 서먹서먹하고 그랬는데 같이 자면서부터 이 기분에서 아, 우리 무사히 올라왔으니까 무사히 내려가서 이 기분 이대로의 대한민국에 돌아가면 참 진짜 대한민국이 좋은 나라, 더 발전하는 나라가 될 것이고, 한마음 돼 버렸으니까요. 올라가서 진짜 거짓말이 아니고 욕 한번 하자고 했어요. 얼마나 힘이 든지. 나름대로 은어를 좀 썼고. 올라가니까 눈물이 나요. 혼자 저는 저쪽으로 가서 따로 눈물을 흘렸는데, 여기서 대한민국이 좋다는 걸 정말 느꼈어요.

고맙다는 걸 느끼고 참 우리가 태어난 조국이 이렇게 좋구나. 이 사람들 산 하나 가지고 이렇게 까부는데 저희는 모든 게 다 갖춰져 있고 살기도 편하잖아요. 그 나라가 또 보니까 세계에서 공기가 2위로 안 좋대요. 카트만두 자체가 2위래요. 안 좋은 공기.. 자동차 오염에다가. 하여튼 올라가서 정상에서 보니까 사람들을 쳐다보니까 카메라 기자분이 울어요. 자기가 사진을 찍으면서 막 울더라구요. 전체적인 면이, 야 이제 됐다. 어떤 것이 닥쳐도 정말 다 할 수 있겠다, 이런 걸 느꼈습니다.

박인규 : 대한민국이 좋다는 걸 느끼면서 약간 욕도 하시면서 배설도 하시구요.

박일준 : 배설물이 많아요 거기 가면

박인규 : 탁 더러운 걸 버리고 오시는 게 좋으셨나요?

박일준 : 아니 거기 소 배설물이 많아서 밟고 미끄러지는 사람들도 있고

김진희 : 저 같은 경우는 산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나름대로 땅만 보고 가게 되거든요. 그리고 앞에 분들이 밟은 길을 그대로 밟고 올라가기 때문에 그러다보면 어느새 정상에 와 있고 어느새 아름다운 환경을 보게 되는데, 인내심, 끈기 이런 것들을 산행을 하면서 배울 수 있었던 것 같구요, 정상에 올랐을 땐 진짜 너무 감격에 눈물 먼저 흘리긴 했는데, 그런 거 있잖아요. 장애가 있어서 못하는 게 아니라, 좀 더디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자부심이 생겼어요. 앞으로도 더한 어려움이나 고통이 와도 헤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박인규 : 여행이란 게 사실은 평소에 못 가봤던 데를 가는 맛도 있지만 사람을 만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이번에 장애인과 혼혈인이 만나는 경우는 처음 아닙니까? 여행하시다 보면 사람들에 대해서 느낀 것도 많았을 텐데, 8박 9일 동안 다니시면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잊을 수 없는 일이랄까 그런 게 있었다면.

김진희 : 처음에는 박일준 선생님이야 워낙 유명하신 분이니까 저분이 가실까 그런 것도 있었는데 막상 만나니까 너무 좋았고. 가면서도 다 모르는 분들이잖아요. 혼혈이신 분들이, 그런데 거기 가장 나이가 어린 친구가 있었어요. 9살 먹은 친구가 처음엔 말을 잘 안 듣고 어떻게 해야 될까 그랬는데 하루하루 지나면서 그 아이도 어른이 돼 가는 듯한, 그런 것도 볼 수 있었고, 또 서로에 대한 이야기, 배려 이런 얘기들을 들으면서 정말 같이 가야된다는 걸 느꼈어요. 정말 너무 좋았어요.

박인규 : 박일준씨는 어땠습니까?

박일준 : 저는 다시 가라면 안 갈 겁니다. 지금 감기에다가 상태가 말이 아닌데, 그건 농담이구요, 김진희 회장님과 그런 약속을 또 했어요. 이런 마음에서 우리가 뭉칠 수 있다면 다음에 또 무신 일 있으시면 산 말고 다른 데를 또 쫓아가겠습니다, 하고 약속했고. 사실 또 우리 혼혈인들도 배회된 데에서 하다가 같이 뭉쳐서 하다 보니까 서로가 형님, 언니, 누나, 동생 다 됐어요.

우리 말썽꾸러기 꼬마도 회사에서 멘토로 나오신 분이 아빠 역할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아빠에 대한 그리움을 완전히 걔가 느낀 것 같아요. 아빠가 없거든요. 아빠 역할을 해주면서 그 애를 그렇게 8박 9일 동안, 그 애만 가지고 하니까 이 애가 달라졌어요. 막 정신없이 하다가 얘가 딱 들어오더니 아빠 간다 어쩌고 하더니 서로가 막 울려고 하고.

김진희 : 자연스럽게 몸으로 보여주는 예절이라든가 자아라든가 삶에 대해서 본인 스스로 느끼는 것 같더라구요. 그리고 저희 장애인들 보면서도 처음엔 아저씨들 다리가 왜 이래요? 뭐예요, 왜 팔이 없어요? 이러다가 다음에는 자기도 장애인 아저씨들이나 할아버지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할 때는, 정말 교과서나 이런 걸 보고 느끼는 게 아니라 진짜 몸으로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알아가는구나,이런 생각을 했어요.

박인규 : 자기와 다른 사람을 접하면서, 사실은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느끼는, 그런 거였군요.

김진희 : 그렇죠.

박인규 : 갔다 오신 원정대 이름이 희망원정대.. 희망을 잡으러 가신 건데, 희망을 좀 잡아 오셨습니까?

김진희 : 잡아 왔죠. 저 같은 경우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정말 이제는 못할 게 없다.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저희 절단장애인뿐만 아니라 장애를 가진 모든 분들한테 많은 희망과 도전을 좀 주고 싶어요. 더디지만 할 수 있다는 것.

박인규 : 박일준씨는 어떻습니까?
▲ ⓒ프레시안

박일준 :
저 같은 경우는 기를 받은 것 같아요. 정기를 받아서, 저는 제가 제일 먼저 올라갔는데 거기 종처럼 막 돌아가는 게 있더라구요. 그 앞에서 제가 빌었어요. 제발 이 원정대만큼은 무사히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그런데 눈물이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둘이 같이 울었어요. 그런데 정기를 받은 게, 와서 보니까 모든 걸 다 할 수 있고 일이 좀 잘 된 것 같아요.

박인규 : 효험을 보셨네

김진희 : 갔다 오신 분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산이 허락한, 히말라야에서 우릴 허락했다. 우린 그곳에 가서 도장을 찍고 왔다. 이렇게 얘길 하시구요, 갔다 오신 한 분은 그 자리에서 바지 벗고 의족을 빼셔서 거기다 다 사인을 받으시면서 대대로 가보로 남기도 싶다고 얘기하는 회원도 계시고 너무 좋았어요.

박인규 : 두 분은 혼혈인이시고 장애인이신데, 말하자면 이 사회에 있는 대다수 분들과는 조금 다르다고 해서 알게 모르게 차별을 많이 당하지 않았습니까? 박일준씨. 제가 어떤 언론을 보니까 혼혈인도 일종의 장애인이다. 마음의 고통이 있다.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50년 이상 살아오시면서 어떤 게 가장 힘드셨습니까?

박일준 : 실은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장애인입니다. 솔직한 얘기가. 피부색 때문에 그 시선이라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계속 받아서 자라왔기 때문에, 마음의 장애라는 것은 굉장히 큽니다. 그래서 우리 김진희씨도, 예를 들어서 우리가 어렸을 때 누가 다리를 절면 절름발이라고 하듯이 저희들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돼 있어요. 김진희씨한테도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발 좀 관심 좀 가져주십시오.

관심 중에 세상에서 제일 나쁜 게 무관심입니다. 관심 좀 가져 주시고 앞으로는 다문화 다민족이 될 거고 지금 돼 있는 상태인데 거기에 대한 절제를 좀 해주시고, 장애인들뿐만 아니라 저희들도 모든 대한민국 사람들이 그냥 한마음으로 봐주셨으면. 한 번 쳐다볼 거 두 번 쳐다보지 마시고, 저 사람이 왜 태어났을까를 생각해 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박인규 : 요즘 농촌 가보면 부부7쌍 중 한 쌍은 국제결혼이고, 시골 어린아이 중 3,40%가 코시안이라고, 혼혈인데 그런 아이들 보시면 박일준씨는 마음이 남다르시겠어요.

박일준 : 남다른 게 아니라 굉장히 귀여워요. 막 예쁘고 그런데 제가 볼 때는 주위에서 아이들은 솔직한 얘기가 머릿속이 공테이프나 마찬가지, 비어 있거든요. 거기다 입력을 시켜주는데 어떻게 입력시켜 주느냐에 따라서, 선생님이든 부모든 입력을 시켜 주시면, 만약 장애인이면 저 사람이 왜 다쳤겠느냐, 길을 건너다 다쳤다. 좋은 일 하다 다쳤다. 이렇게 하면 입력이 되거든요.

그런데 그런 입력이 아니고 부모가, 너 쟤하고 상대하지 마. 나쁜 짓 하면 무조건 그쪽으로 손가락이 가는 그런 것 말고 저 친구는 이렇게 이렇게 태어났기 때문에 너 저 친구 만나면 영어 잘 해, 배우면 좋아. 이런 식으로 해서 관심 좀 가져 주셨으면 좋겠어요.

박인규 : 하인즈 워드. 말하자면 출세한 혼혈인이 생기면서 많이 좀 달라졌습니까, 어떻습니까? 혼혈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랄까

박일준 : 갑자기 좋아졌다 갑자기 사라졌는데, 하인즈 워드라는 분이 한국에 있었으면 그렇게 되지 못했고 미국이라는 큰 나라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고. 사실 혼혈인들이나 장애인들이 재주 많아요. 무지 많아요.

박인규 : 박일준씨도 계시고

박일준 : 아니 저뿐만이 아니고. 그런데 왜 그러냐면, 이분들이 포기를 많이 해요. 빨리 포기해 버려요. 사회에서 알아주지 않고, 나는 안 될 것이다. 그걸 포기를 많이 하기 때문에 보는 사람마다 그렇게 좀 얘기했으면 좋겠어요. 포기하지 마라. 제가 이번에도 꼭대기까지 올라간 게 포기를 안 한 겁니다 사실은. 제가 포기하면 밑에 혼혈인들이 다 포기할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끝까지 올라갔어요. 포기하지 않는 훌륭한 장애인들과 혼혈인들이 좀 됐으면 좋겠어요.

박인규 : 절단장애인협회. 절단장애인이 굉장히 많을 것 같은데 협회가 생긴 건 얼마 안 됐어요.

김진희 : 예. 협회가 생긴 건 지난해구요, 실질적 활동은 한 2003년도부터 시작했습니다. 통계조사에 의하면 하루에 25명씩 절단장애인이 생기고 있다고 해요.

박인규 : 한 시간에 한 명씩 생기는 거네요.

김진희 : 예. 한달이면 한 750명이고, 1년이면 9천 명 가량 되는데도, 많은 분들이 그 장애라는 것 때문에 진짜 장애를 받을까봐, 어떤 일을 하거나 취업을 할 때 불이익을 당할까봐 신고를 안 하는 경우가

박인규 : 장애인인데도 장애라고 하면 사회에서 이상하게 보니까.
▲ ⓒ프레시안

김진희 :
그렇죠. 그리고 저희 절단장애 같은 경우는 거의 73% 정도가 후천적 장애다 보니까 교통사고뿐만 아니라 산재사고도 있고 전기에 의한, 고압선에 의한 것, 또는 질병, 당뇨나 이런 것들로 인해서 신체의 일부를 상실하는데도 떳떳하게 밖으로 나와서 하는 경우가 드물어요. 그 기간이 재활기간이 5년에서 한 10년 걸리다 보니까 나중에 나이 먹고 보면, 어 뭐하지? 이렇게 돼 버리거든요. 그런 편견도 많고, 예전에 6.25사변이나 월남전 파병을 해서 신체의 일부를 상실한 분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인규 : 상이용사

김진희 : 예.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보가 제대로 안 돼 있고. 또 의수, 의족.. 솔직히 몸에 맞는 보장구만 있다면 굳이 못할 게 없는데도 많은 분들이 그런 정보를 접하지 못하니까 많이 힘든 게 많습니다.

박인규 : 어려움 중에 절단장애인 중에 다리나 팔이 절단되신 분이 계신데, 의수, 의족을 해야 되는데 그걸 구입할 수 있는 데 대한 지원이 상당히 부족하다.

김진희 : 99년도에 법이 좀 개정되면서 정해져 있는 가격, 220만원에 80% 정도는 지원하는데 실질적으로 의수족 가격은 500만원에서 4,5천만원까지 하거든요. 자동차에 비교하긴 뭐하지만 티코에서부터 에쿠스까지 있다, 심지어는 외제차까지 끌고 다닌다고 얘기하는데, 이게 죽을 때까지 착용하는 게 아니라 3년에서 5년에 한 번씩 교체해야 돼요. 그러다 보니 많은 분들이 굉장히 힘들어하고 금전적으로 어려워하고. 그래서 제때 교체를 못해서 또 다른 합병증이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박인규 : 두 분이 갔다 오시면서 박일준씨가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포기하면 안 된다. 장애인이나 혼혈인이나 우선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게 중요합니다만 또 사회에서 얼만큼 그분들을 도와주느냐가 중요할 것 같은데, 차제에 방송에 나오셨으니까 혼혈인의 입장에서, 물질적인 지원이 아니더라도 사회에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 그런 얘기를 간단하게 해주시죠.

박일준 : 글쎄요. 혼혈인들은 제가 볼 때는 교육을 따로 시켰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외국말이나 이렇게 해서 정책적으로 외국을 좀 많이 보내서. 아무래도 얼굴색이 아시아 사람과 다르니까, 그래서 정책적으로 좀 보내주셔서 좋은 일을 할 수 있게끔.

박인규 : 혼혈인의 특성에 맞는 일을 할 수 있게끔.

박일준 : 예. 할 수 있게끔 해주시고. 아까 김진희 회장님 말씀대로 밖에 안 나온 사람들이 많아요. 자기에 대한 얼굴이라든가 이런 걸 보여주기 싫기 때문에, 산 속에 있는 사람도 있고. 이런 쪽에서 조금은 배려를 해주시면, 가르쳐 주는 걸 배려해달라는 거지 다른 건 없습니다. 가르쳐 놓으면 자기가 알아서 하는 거니까... 같이 가는 것도 좋지만, 그렇게 따로따로 해서. 외국 같은 데는, 아마 다른 나라는 그런 걸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박인규 : 김진희씨는 어떤 말씀

김진희 : 방송을 통해서 정말 말하고 싶은 건, 의료보험 수가를 좀 조절했으면 좋겠다는 얘기 드리고 싶구요. 부담이 너무 크니까 수가를 좀 높여 줬으면 하는 거, 그래서 의수족 구입하는 분들에게 부담이 덜 갔으면 하는 거구요. 또 하나는 말씀하신 것처럼 저희는 취업에 대한 게 굉장히 많이 크거든요. 장애 때문에 못할 거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저희 절단장애인 같은 경우는 후천장애인이다 보니까 어느 정도 다 사회생활과 직장생활 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그러다 보니까, 기자분도 계시고 여러 방면에 계신 분이 많이 계신데 있던 사고 후에는 있던 직장마저 잃어버리게 되고, 이런 경우가 많으니까 그런 분들의 직업의 폭이 좀 넓었으면 좋겠다는 얘길 하고 싶습니다.

박인규 : 이번에 희망원정대. 지난 일요일에 오셨지만 아마 KBS 라디오, TV를 통해 방송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일정이 어떻게 되죠? 잠깐 소개해 주시죠.

김진희 : KBS 제1TV 세상의 아침에서 5부작으로 나갈 거고, 라디오에서 특별방송으로 50분 해주기로 하셨습니다.

박인규 : 어쨌든 두 분이 여러 혼혈인, 장애인들과 히말라야까지 가서 히말라야 정기를 받아오셨기 때문에 그 정기를 혼자만 가지시면 안 될 것 같고 같은 혼혈인, 장애인들에게 전해주셔야 될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앞으로 히말라야 정기를 받아온 힘으로 뭘 하겠다, 그런 말씀을 좀 해주시죠. 박일준씨부터.

박일준 : 저는 사실 계획을 물어보면 없다고 말씀드렸는데, 제가 이번에 갔다 오면서 계획을 좀 세웠습니다. 세운 게 뭐냐면 나름대로 여기서 활동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 김진희 회장님과 약속했어요. 여기 혼혈인들도 혼혈인이지만 다른 나라에 혼혈인들이 많이 있다. 한국 혼혈입니다 순수하게.

박인규 : 예를 들어 베트남

박일준 : 예. 그런 데를 제가 한 내년쯤 김진희 회장님과 그걸 좀 보충해서 제가 좀 바쁘더라도 같이 할 계획을 갖고 있고. 이 해 안에 연말쯤 제 무대 한 번 갖는 게 꿈입니다.

박인규 : 김진희씨는 어떠십니까?

김진희 : 저는 다달이 좀 계속 행사가 잡혀 있는데요 가장 큰 행사는 절단장애인뿐 아니라 모든 장애인이 함께하는 장애인웨딩페스티벌을 9월에 계획하고 있고, 10월에는 지난해에 이어서 제 2기 캄보디아 희망원정대 해가지고 또 한 번 다녀올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어쨌든 히말라야에서 좋은 정기를 받으셨으니까 그걸 많이 나눠주셔서 우리나라의 혼혈인, 장애인들 모두 힘차게 살 수 있도록 많은 역할 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KBS 2007 희망원정대는 5월 18일 오전 11시 5분부터 KBS 1라디오에서 '2007 희망원정대, 혼혈인, 장애인 히말라야 랑탕에 오르다'를 통해서 방송됩니다. 많은 청취바라겠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오늘은 KBS 2007 희망원정대원 박일준씨와 김진희씨를 만나 갑갑한 현실에서 벗어나 히말라야 정상에서 느낄 수 있었던 삶의 희망에 대해 얘기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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