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언론에 의해서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이라크에서 '암약'하고 있는 용병들은 부시 대통령의 전쟁 정책을 뒷받침하는 숨은 주역으로 설령 미군의 철수가 시작되더라도 그 빈자리를 메워 미국의 이라크 점령 정책이 지속될 수 있게 해줄 전망이다.
그러나 이 민간인 용병들은 면책특권을 앞세워 이라크 민간인들에 대한 무차별 살상을 자행하는 등 이라크를 죽음과 공포의 땅으로 만드는 주역이기도 하다. 민주당은 이같은 사실을 외면한 채 정규병력의 철군만을 주장하고 있어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점령 정책을 사실상 묵인하고 있다.
이라크 주둔 미군 사령관도 용병이 경호
미국의 군사 전문가인 제레미 스카힐이 지난달 30일 정치평론 웹사이트 <톰디스패치>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현재 이라크에서 활동하고 있는 계약직 용병의 수는 총 12만6000명에 이른다. 이라크 주둔 미 정규군 14만5000명과 맞먹는 숫자다.
미국의 유명한 민간군사회사인 블랙워터(Blackwater USA), 딕 체니 미 부통령이 최고경영자로 있었던 핼리버튼의 자회사였던 켈로그 브라운 앤 루츠(KBR) 등에 소속된 이 용병들은 주로 세탁, 우편수발, 요리 등 현혁 미군들을 위한 지원업무를 맡는다.
그러나 그 중 수만명의 용병들은 이라크 저항세력과 싸우거나 미군이 수행하기 곤란한 민간인 대상 군사 작전 등에 투입되어 직접 전투에 참가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 2004년 3월 이라크 수니파의 저항 근거지인 팔루자에서 전투 중 사망한 미국 민간인들은 바로 블랙워터 소속의 용병들이었다.
특수부대원이나 경찰 등 다양한 직업 경력을 가진 이들 용병들은 국적이 수십여개로 다양하다. 미군이 미 행정부의 고위급 외교관이나 의회 대표단이 이라크를 방문할 때에도 용병들에게 경호를 맡긴다는 사실은 이들에 대한 의존도가 얼마나 높은지를 보여준다. 심지어 이라크 주둔 미군 사령관까지도 용병들의 경호를 받는다.
이라크 전쟁비용의 40%가 용병들에게
용병들에 대한 용역비는 미국 의회가 승인한 이라크 전쟁비용에 의해 충당된다. 블랙워터나 KBR은 부시 대통령 및 공화당 인사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거나 정치자금 조달원이어서 계약과 활동에 있어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하원 세출위원회 국방소위 위원장인 존 머서 의원은 "이라크에는 12만6000여명의 용병들이 있고, 그들 중 일부는 미국 국방장관보다 더 많은 일을 한다"고 말했다.
헨리 왁스만 미 하원 정부개혁위원장은 이라크에 있는 블랙워터 같은 보안회사들에 현재까지 40억 달러 가량의 세금이 들어간다고 밝혔다. 하원 정보위원회의 재니스 사코스키 의원은 40% 가량의 이라크 전쟁비용이 이들 용병들에게 지출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민간군사기업들은 자신들의 활동 영역을 좁히기는커녕 이라크 철군이 가시화될 경우 활동 범위를 넓혀 보다 많은 이익을 챙기기 위해 노력하려 하고 있다.
올 초 이라크 주둔 미군사령관에 임명된 데이빗 패트래우스 중장은 지난 1월 미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용병들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며 용병들이 미군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주고 있다고 증언했다. 패트래우스는 자신 역시 이라크에 가면 미군이 아닌 용병들에 의해 경호를 받는다고 시인하기도 했다.
부시 행정부가 이처럼 용병들을 선호하는 까닭은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다. 미군 정규 병력의 희생자가 늘어나면 반전여론이 거세지기 때문에 위험한 임무를 용병에게 맡김으로써 희생자 규모를 적게 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은 현역병들의 사망자수는 어쩔 수 없이 밝히고 있지만 용병들이 얼마나 사망했는지는 정확히 공개하고 있지 않다. 제레미 스카힐은 현재까지 최소 770명의 용병이 사망하고 7700명이 부상당했다고 주장했다. 이 숫자는 이라크전에 따른 공식 사망·부상자수에 포함되지 않는다.
면책특권 누리며 서부영화 주인공들처럼 활개
용병 사용에서 발생하는 문제중 가장 심각한 것은 그들을 관리하고 책임질 시스템이나 법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용병들은 전투중 민간인을 학살하는 등 잘못을 저질러도 미국의 군사재판에 회부되기는커녕 민간재판에도 기소되지 않는다. 물론 이라크 법정에도 서지 않는다. 폴 브레머 전 이라크 최고행정관이 재임 시절 내린 '포고령17'에 용병들의 면책특권이 명시됐기 때문이다.
면책특권은 용병들이 수많은 무법활동을 저지를 수 있는 토대가 됐다. 그간 용병에 의해 발생한 사고가 수없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범죄 행위로 기소된 용병은 단 두 명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이를 방증한다. 한 사람은 동료 병사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고, 다른 한 사람은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에서 아동 포르노 사진들을 소유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그 밖의 범죄 사건에 연루된 용병들은 소속 회사에 의해 아무런 문제없이 이라크 밖으로 인도된다.
과거 무장 용병으로 활동했던 한 사람은 최근 <워싱턴 포스트>에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 이라크 사람들이 우리를 기소하려 한다면 회사는 우리를 차 트렁크에 태우고 어둠을 틈타 이라크 밖으로 빠져나가게 할 것이라는 얘기를 활동 초기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대책은 사실상 '무대책'
용병의 활동이 확대되는 것에 대해 민주당의 일부 의원들은 그간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했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는 용병과 민간군사회사들의 활동을 저지하는 것에 대해 뾰족한 대응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에 따라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와 군사기업들은 마음놓고 과거와 같은 활동을 벌이고 있다.
용병에 대한 법적 책임과 비용 문제에 있어 민주당이 해법을 제시하지 않은 건 아니다. 민주당의 일부 의원들은 바그다드에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을 보내 용병들의 활동 상황을 감시하고, 사고가 벌어질 경우 증거를 모아 미국의 민간법정에 기소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그러나 그같은 계획이 실행된다면 심각한 역효과만을 가져온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FBI 요원들은 누가 보호할 것인가, 증언 확보를 위한 이라크인 인터뷰는 어떻게 할 것인가, 위험천만한 이라크에서 어떻게 증거를 수집할 것인가, 미국 정부조차 용병의 수를 파악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무슨 감시를 할 것인가, 정부 고위급 인사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블랙워터나 핼리버튼 등의 활동에 대해 적절한 조사를 할 수 있을 것인가 등 수많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비용 문제에서 민주당은 최근 민간군사회사에 들어가는 돈을 15% 삭감하자는 안을 내놨다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의 설득에 의해 스스로 철회했다.
이처럼 민주당은 민간군사기업을 계속 활용하겠다는 부시 행정부의 계획을 묵인함으로써 이라크에서의 '그림자 전쟁'이 더욱 악화될 수 있는 문을 열어둔 셈이 됐다.
미국 민간군사기업의 실상 : 블랙워터의 경우 블랙워터는 2004년 중반 이후부터 현재까지 총 7억5000만 달러 상당의 계약을 미 국무부와 체결했다. 이를 통해 블랙워터는 이라크를 방문하는 미국 외교관들이나 고위 관리, 의회 대표들을 경호한다. 또 아프가니스탄 보안부대를 훈련시키기도 하고 석유자원이 풍부한 카스피해 지역에 배치되어 있기도 하다. 이 회사는 허리케인 카트리나 당시에도 미 연방재난관리청(FEMA)의 활동을 보조하는 명목으로 용병 1인당 일당 950달러, 하루 총 24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9.11 테러 이후 각광을 받아 총 9개국에 용병을 주둔시키고 있는 블랙워터는 현재 2만1000명의 예비 병력을 갖추고 있고 군사용 항공기도 20대 이상 보유하고 있다. 미 노스캐롤라이나 주에는 7000에이커(여의도 면적의 약 3.4배)에 달하는 군사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민간 군사 시설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블랙워터는 또 일리노이와 캘리포니아에 제2, 제3의 군사 시설을 건설중이고 전차와 정찰기 등 군사장비를 직접 제작하기도 한다. 이 회사의 실질적인 주인인 에릭 프린스는 네이비실 출신의 백만장자로 부시 대통령을 위시로 한 일부 정치인들에게 주요 정치자금원이 되고 있다. 미 중앙정보국(CIA)의 대테러담당국장이었던 코퍼 블랙, CIA의 작전부국장이었던 로버트 리처, 국방부의 감찰감이었던 조지프 슈미츠 등 군과 정보기관에서 고위직에 있었던 사람들이 현재 이 회사의 이사로 활약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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