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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와 룰라, 중남미통합 놓고 '포뮬라1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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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와 룰라, 중남미통합 놓고 '포뮬라1 경주'

김영길의 '남미리포트' <252> 브라질-아르헨, 이상한 정상회담

중남미통합을 놓고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주도권을 다퉈 온 루이스 이냐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의 칠레와 아르헨티나 방문이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26~27일 양일에 걸쳐 룰라가 방문한 두 나라는 지난 3월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방문을 완곡하게 희망했으나 성사되지 않은 국가들이라는 점에서 남미 언론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방문보따리 속에 무엇이 들어 있나 하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브라질 정부 관계자들은 칠레와 교육 및 바이오에너지 협력 등 9개에 달하는 협정을 맺은 것에 특히 의미를 부여했다. 또한 칠레 정부로부터 브라질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을 적극 지지한다는 약속도 받아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에서는 일체의 협정이나 공개적인 성명서 한 장도 없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양국 정상의 만남은 정상회담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친목을 도모하자는 성격이 컸다.

양국 정상이 서로 대면한 곳도 까사로사다(아르헨 대통령궁)가 아닌 대통령 관저였다. 이곳에서 아르헨 정부가 마련한 오찬 역시 공식이 아닌 개인적인 접대형식을 빌렸다. 이에 따라 룰라와 키르츠네르 대통령은 정장이 아닌 평상복 차림으로 오찬을 함께 했다. 정치적인 현안보다는 친목을 다지자는 의도에서다.
▲ 브라질 룰라와 아르헨티나 키르츠네르 대통령 ⓒ아르헨 대통령궁 공보실

이는 한때 중남미 3인방의 핵으로 꼽혀 온 두 정상의 기존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따라서 통상적으로 국가 정상들의 만남 이후 있었던 공동선언문 발표나 간단한 기자회견마저 생략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정상간의 만남은 남미 언론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양국 정상이 점심 식사를 함께 했던 27일 아르헨 대통령 관저(올리보스 별장) 입구에는 100여 명이 넘는 내외신 기자단이 이른 아침부터 진을 쳤다. 양국정상이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르헨 정부는 일체의 공식행사나 발표할 만한 중요 사안은 하나도 없다며 일부 제한된 사진기자단만 입장시켰다. 더욱이 양국정상들은 사전에 정해진 의제도 없이 '열린 대화'를 한다는 데 합의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오전 11시 룰라를 비롯한 양국의 주요 각료들이 속속 올리보스 별장에 입장했지만 여전히 기자단 출입문은 굳게 닫쳐 있었다. 이때 현장에 나와 있던 기자단은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지나치게 차베스를 의식한 게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렇지 않고서야 역사적으로 아르헨티나 최대의 맹방인 브라질 국가원수의 방문에 내외신 기자단의 접근을 이토록 철저하게 차단할 수 있느냐"는 볼멘소리였다.

물론 현장에는 베네수엘라의 <텔레수르>와 쿠바언론들도 룰라의 아르헨티나 방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긴 했다.

룰라 역시 이 점을 염두에 둔 듯 26일 "브라질과 베네수엘라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아주 가까운 맹방이며 동업자 관계"라고 차베스와의 갈등설을 부인했다. 룰라는 이어 자신의 정책도 차베스와 같이 빈곤추방과 문맹자 퇴치를 국정의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며 다만 추진 속도에나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룰라는 또 최근 차베스와 만나 주고받은 농담 하나를 소개했다. 자신이 차베스를 향해 "당신의 정책추진속도는 마치 '포뮬라1'(자동차경주) 같다"고 했다는 것이다. 차베스는 시속 300Km를 넘게 달리고 있으며 자신은 시속 280Km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말했다는 것으로 이 역시 정책 추진의 속도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 이견은 없다는 뜻이었다.

이날 오후 4시 하루 종일 올리보스 별장 정문 주위에 진을 치고 있던 현지기자단은 회담장을 빠져 나오는 아르헨티나 각료들을 향해 질문공세를 폈지만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가 손사래를 치면서 황급히 회담장을 빠져나갔다. 이와는 반대로 브라질 각료들은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재 브라질 언론사 기자들에게 회담성과를 알리는 분주한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다.

룰라의 아르헨 방문을 근접 취재했던 기자단이 룰라를 붙잡은(?) 것은 공항의 출국장이었다. 사방에서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질문공세에 룰라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관계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고 있다"며 "나의 이번 방문은 에탄올을 비롯한 일반 에너지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졌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까사로다사(아르헨 대통령궁) 공보실의 한 관계자는 "아르헨과 브라질 양국정상들은 이번 올리보스 회담에서 바이오에너지 공동생산과 남미은행 창설, 남미공동시장 협력확대 등에 대한 원론적인 대화수준에 그쳤다"고 설명했다.

룰라가 언급했듯이 차베스와 룰라는 현재 중남미통합이라는 명제를 놓고 포뮬라 경기를 하고 있는 양상이다. 다만 차베스가 넘치는 오일달러를 활용해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면 룰라는 바이오에너지를 내세워 그 뒤를 맹렬하게 추격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들의 보이지 않은 경쟁관계는 지난 16일 베네수엘라에서 개최된 제1회 중남미 에너지정상회담장에서도 확인됐다.

이 자리에서 룰라는 자신과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에탄올 대량생산 프로젝트가 중남미 전체국가들로 확산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차세대 대안 에너지로 떠오른 바이오에너지 산업을 중남미 국가들이 주도하자는 주장이었다.

이에 맞서 차베스는 오는 2021년까지 원유생산을 하루 1100만 배럴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려 중남미 전체국가들에 값싸게 공급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차베스는 또 베네수엘라는 천연가스 생산도 배가시켜 중남미 전역에 공급하겠다며 중남미 대륙을 관통하는 가스관 공사를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너지 문제는 베네수엘라가 책임을 질 터이니 중남미 국가들은 에탄올보다는 굶주린 민중들을 위한 식량생산에 주력해야 된다고 맞받아친 것이다.

중남미 국가 정상 어느 누구도 차베스의 이런 제안을 거절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하지만 룰라로서는 재임기간 동안 차베스에게 끌려 다닌다는 비난을 면하기 위해서도 중남미통합의 주도권이라는 명분은 포기하기 힘든 정치적인 유혹이다.

이처럼 차베스와 룰라는 경제와 에너지협력이라는 틀 속에서 서로 협력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지만 중남미통합이라는 대의명분을 선점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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