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보리스-빌 쇼'의 주인공 한 명이 퇴장하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보리스-빌 쇼'의 주인공 한 명이 퇴장하다"

'酒黨' 옐친과 '일벌레' 클린턴의 1990년대

검색엔진에 'Yeltsin'과 'Clinton'을 함께 넣고 이미지를 검색하면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함께 있는 사진들이 정렬된다.

미-러 정상회담을 마치고 공동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이 대부분인데 두 정상이 박장대소하고 있는 사진이 그 어떤 정상회담보다 많아 보인다는 게 흥미롭다.

기자회견에서 옐친이 보여줬던 유머와 촌철살인, 그걸 보고 웃음을 참을 수 없었던 클린턴. 그래서 언론들은 그들의 기자회견을 '보리스-빌 쇼'라고 이름붙였다.

<로이터>는 옐친의 사망으로 '보리스-빌 쇼'의 한 주인공이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하고 다른 주인공인 클린턴만 남게 됐다며 1990년대 세계무대를 주름잡았던 두 사람의 우정을 소개했다.

클린턴은 23일 옐친의 사망 소식을 접한 후 발표한 성명서에서 "운명은 그에게 국가를 통치하는 혹독한 시기를 맡겼지만 그가 평화, 자유, 진보 등의 커다란 문제에서 용기있고 흔들리지 않은 자세를 보였기 때문에 역사는 그에게 동정을 베풀 것"이라고 애도했다.

성장배경, 성격에 덩치까지 비슷

두 정치지도자들은 모두 기골이 장대하고 감정 표현에 솔직했으며 시골 작은 마을의 별볼일 없는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성장배경 때문인지 만나자마자 금방 친해졌다.

클린턴의 백악관은 소련 붕괴 후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러시아를 도왔고 이를 위해 두 사람은 수차례의 정상회담을 가졌다.

1993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처음 만난 클린턴과 옐친은 2000년 클린턴이 대통령으로서 마지막으로 모스크바를 방문해 옐친의 후계자인 푸틴 현 대통령을 만났을 때까지 15차례가 넘는 정상회담을 가졌다.

옐친은 클린턴을 비롯한 서방 지도자들이 추진하고 있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확장계획 등을 강하게 비난하는 등 두 사람은 종종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옐친은 소비에트연방의 해체를 관장했지만 '초강대국 러시아'의 지위를 지키고 싶어 했다.
▲ 1995년 뉴욕에서 열린 미-러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 장면 ⓒ로이터=뉴시스

그러나 옐친은 클린턴과의 공동기자회견에서 전형적인 일벌레인 클린턴이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는 농담을 자주 던졌었다.

클린턴은 애도성명에서 "우리에게 유쾌한, 그리고 잊을 수 없는 기억을 갖게 해 준" 한 친구를 잃어 슬프다고 말했다.

클린턴은 "우리가 늘 뜻을 같이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옐친이 하고 있는 일을 도와주려고 노력했다. 그와 얘기할 때마다 나는 국가와 국민들에 대한 그의 헌신, 그리고 진실을 보려 하는 태도, 러시아의 장기적인 이익에 부응하는 과감한 결정을 하려 하는 의지에 대해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도 말했다.

클린턴 "술먹은 옐친이 멀쩡할 때보다 낫다"

클린턴의 참모들은 클린턴의 등을 두드려주던 사람 좋은 옐친과 술에 취해 불콰해진 얼굴로 화를 내던 옐친의 두 모습을 보며 정상회담에 임하는 옐친의 상태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옐친의 두 얼굴은 주로 한꺼번에 나타났고 클린턴의 참모들은 주당 옐친이 이번엔 또 얼마나 많은 술을 먹었나 하며 그의 눈을 주시했었다. 옐친은 대개 대취한 상태였다.

스트롭 탈봇 전 국무부 부장관이 클린턴의 대외정책에 대해 쓴 책 <러시아 핸드>에서 클린턴은 "옐친이 주사를 부리는 상태가 멀쩡할 때보다 더 낫다는 것을 우리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탈봇은 "클린턴은 옐친이 본격적인 대화에 들어가기 전에는 거의 언제나 우격다짐식의 요구를 한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며 클린턴은 "으르렁거리는 곰, 아빠 곰, 골목대장, 낭만주의자, 일을 망치는 사람 혹은 일을 되게 하는 사람 등" 다양한 모습의 옐친을 보았다고 썼다.
▲ 옐친과 클린턴이 1995년 뉴욕 하이드파크에서 허드슨강을 바라보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2002년 5월 <워싱턴포스트 매거진>에도 나왔지만, 탈봇은 모스크바에서 있었던 옐친과 클린턴의 마지막 정상회담을 생생히 소개했다. 옐친은 러시아에게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미국의 정책을 순순히 따르라고 한다면 저항하겠다고 클린턴에게 협박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이 클린턴은 옐친의 신랄한 얘기를 사람 좋게 받아넘기며 기분을 맞춰줬다. 그러면서 푸틴에 대한 충고를 던지며 회담을 마쳤다.

"보리스"

클린턴은 손을 잡으며 몸을 굽히는 러시아식 악수를 하며 옐친에게 말했다.

"당신은 마음속에 민주주의를 품고 있어요. 국민들에 대한 신뢰도 뼈 속 깊이 있어요. 진정한 민주주의자와 개혁가로서의 영감도 갖고 있어요. 그런데 푸틴도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아마도 그러겠지만 난 잘 모르겠어요. 당신은 앞으로도 푸틴을 주시해야 하고 그가 올바른 길을 걷도록 신경을 써야 해요. 푸틴은 당신을 필요로 합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