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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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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 사망

"러시아 민주주의의 아버지" 푸틴 애도

'공산주의 소련'의 몰락을 촉진하고 '민주 러시아'를 출범시킨 보리스 옐친 러시아 초대 대통령이 23일 76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인테르팍스 통신에 따르면 옐친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45분(현지시각) 관상혈관계 이상으로 모스크바 중앙병원에서 사망했다. 그는 오랫동안 심장질환을 앓아 왔다.
  
  옐친 전 대통령은 1991년 러시아 역사상 처음으로 국민들의 투표에 의해 대통령에 당선됐으며 그 직후 발생한 강경 보수 군부 및 공산주의자 세력의 쿠데타에 맞서 쿠데타군의 탱크 위에 직접 뛰어올라가 온몸으로 이들의 권력장악 시도를 저지함으로써 러시아 민주주의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러시아 정부는 옐친의 장례식이 오는 25일 치러질 것이며 이 날을 '국가 애도의 날'로 선포한다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현 러시아 대통령은 옐친의 사망에 대해 그는 '러시아 민주주의의 아버지'라면서 "러시아에 전혀 새로운 시대를 연 인물이 별세했다. 그로 인해 새롭고 민주적인 러시아가 탄생했으며, 세계에 개방되고 진정으로 국민들이 권력을 갖는 새로운 국가가 출범했다"고 애도했다.
  
  옛 소련의 마지막 대통령이자 옐친 전 대통령의 정치적 경쟁자이기도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이날 "조국의 위대한 공과를 함께한 옐친 전 대통령의 가족들에게 가장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조의를 나타냈다.
  
  미 백악관도 옐친 전 대통령을 "러시아 역사에 있어 격변과 도전의 시기에 활약한 역사적 인물"이라고 치하하고 옐친 전대통령의 미망인과 가족, 러시아 국민에게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도 "러시아 역사에 있어 중요한 시기에 활약한 탁월한 인물"이라고 치하하고 옐친 전 대통령의 타계에 슬픔을 나타냈다.
  
  1931년 우랄산맥 근처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출생한 옐친 전 대통령은 건설엔지니어를 거쳐 공산당에 입당해 정치에 입문했으며 1989년 3월 모스크바에서 90% 가까운 압도적 지지로 소련 인민대의원에 당선, 정계에 화려하게 복귀한 후 1991년6월 러시아 공화국 최초의 직선 대통령이 됐다.
  
  그는 역사적 격변기에 소련의 주축인 러시아 대통령에 선출된 후 공산당 보수파의 쿠데타를 무산시키면서 결국 소련을 붕괴시키는 데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러시아에 시장경제와 복수정당제, 언론자유, 사유재산, 여행자유화 등 민주제도를 도입하고 외국투자 자유화 등 서구식 시장경제를 지향했다.
  
  옐친 전 대통령은 그러나 소련 붕괴와 민주 러시아 출범의 공로에도 불구하고 시장경제로의 전환과정에서 국유산업을 헐값에 민영화했다는 비판을 받아 왔으며 대외적으로도 체첸 전쟁의 실패 등으로 러시아의 위상을 추락시켰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특히 1993년 의사당을 점거한 반대파의 무장봉기를 탱크를 앞세워 무력진압하고 1994년에는 체첸전쟁을 시작하는 등 반대파에 대한 강경진압으로 국내외의 비난을 초래했다.
  
  러시아는 그의 재임시절 시장경제로의 체제변화에도 불구하고 국민소득이 75%나 하락하고 영양상태 부족으로 인구가 200만이나 줄어드는 등 무능과 실정을 지적받아 왔다.
  
  옐친 전 대통령은 과도한 음주로 재임기간에도 심장질환을 앓는 등 건강 악화와 개혁작업의 부진, 94-96년 체첸공화국과의 전쟁 패배, 98년 러시아 루블화 폭락에 따른 국채 모라토리엄 선언 등 경제위기로 통솔력을 급격히 상실했다.
  
  그는 대외적으로도 미국의 일방주의에 맞서 국제질서의 '다극화'를 외치면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팽창에 맞서는 한편 이란, 이라크 등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는 임기를 수개월 앞둔 지난 1999년 12월 31일 전격사임을 선언하고 당시 후계자로 지목됐던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현 대통령)에게 권한을 이양했다.
  
  옐친 전 대통령은 퇴임후 모스크바 근교 바르비하 별장에서 사냥과 운동, 독서 등으로 소일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부인 나이나 여사와 사이에 두 자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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