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6자회담의 2·13합의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이다. 미국의 달라진 태도에 대해 한국은 물론 북한 당국자들조차 그 진의를 파악하려고 분주하다. 과연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변화는 전술적인 것인가 전략적인 것인가, 아니면 보다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인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근본적인 대북인식의 변화라고 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전략적 차원에서 변했다고 볼 수는 있다.
부시행정부 1기 때는 북핵문제를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선제 핵공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으며, 2003년 4월의 '럼즈펠드 메모'가 보여주듯이 '북한 정권교체'까지 검토한 바 있다. 하지만 아프간전쟁과 이라크전쟁에 발이 묶인 미국은 정작 북핵문제를 나서서 풀기보다 중국에 책임을 떠넘기는 '무시정책'을 계속해왔다.
미국의 대북정책 전환은 전술인가 전략인가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는 부시행정부 2기에 들어와서부터 조짐이 나타났다. 라이스 국무장관은 국가안보보좌관 시절에 구상했던 '대범한 접근법'에 따라 대북정책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바로 2005년의 9·19공동성명이다.
미국은 대북정책뿐 아니라 한국과의 관계도 재정립하고자 했다. 2005년 11월 17일 '경주공동선언'을 계기로 한미관계는 냉전형 군사동맹에서 21세기형 포괄적 동맹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후 한미 양국은 외무장관급 전략대화(SCAP)를 개최해 오랜 쟁점이던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타결짓고, 한미FTA 협상을 마무리했다.
미 행정부 내 네오콘들이 '북한불신론'을 내세우며 북핵 이외의 이슈들을 들고 나와 9·19공동성명의 이행에 제동을 거는 탓에 상당기간 6자회담이 열리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북한의 동시다발적 탄도미사일 발사실험과 핵실험이 이루어졌다. 이처럼 미 행정부 내 강경파가 득세하는 가운데, 백악관과 국무부를 중심으로 대북전략의 기조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2006년 5월에 젤리코 전 국무부 자문관이 작성한 보고서가 완성되었다. 때마침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움직임이 포착되는 바람에 공식 발표되지는 못했으나, 한미간 고위급대화를 통해 결국 '공동의 포괄적 접근'이라는 이름으로 빛을 보았다. 미 중간선거로 행정부 내 네오콘의 입지가 약해지면서 부시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과 북미 양자접촉이 가능했고, 마침내 2·13합의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남북관계를 얽매는 연계론의 사슬
현재 BDA해법을 둘러싼 이견 때문에 2·13합의에 따른 초기단계 이행조치가 자꾸 늦어지고 있다. 미국은 BDA 내 북한자금은 돌려주되 그 불법성을 부각시켜 향후 언제라도 북한의 국제금융거래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하려는 반면, 북한은 자유로운 국제금융씨스템의 이용권을 요구하고 있다.
이같은 북미 양측의 속셈 때문에 2·13합의의 이행이 지연되고 있지만, 최소한 그에 따른 초기단계 조치는 이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다음단계의 '불능화 로드맵'에 합의하여 핵문제 해결에서 '실질적 진전'이 이루어질 경우 연내에 평양과 워싱턴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등 북미관계가 급진전할 수도 있다.
하지만 2·13합의의 완전한 이행이 늦어지면서 그 불똥이 남북관계에까지 튀고 있다. 지난 20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우리측은 북측의 조기개최 주장을 물리치고 제13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협위) 회의를 초기단계 조치가 끝난 뒤인 4월 18~21일에 열자고 고집하여 관철시켰다. 경협위 회의의 핵심의제가 대북 쌀지원 문제이기 때문에, 북측의 2·13합의 이행 여부를 봐가며 대북지원의 재개여부를 결정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BDA문제로 2·13합의의 완전이행이 지연되면서 우리 정부는 딜레마에 빠졌다. 엄밀히 말해 BDA문제가 지연된 책임이 북측에 있지 않고, 따라서 2·13합의의 미이행 책임도 북측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북측 책임이 아닌 사안을 놓고, 경협위에서 북한의 책임을 물어 대북 쌀지원을 거부하거나 늦출 수는 없는 일이다.
현재 정부 내에서는 북한의 초기단계 조치 없이는 대북 쌀제공이 불가능한만큼 경협위를 연기하자는 주장과, 일단 경협위를 열고 마지막 날인 21일쯤에 지원여부를 결정하자는 주장으로 갈려 있다. 어찌 보면 북한의 식량난에 따른 순수한 인도적 지원의 성격을 띠고 있는 대북 쌀지원 문제가 북측의 2·13합의 이행 여부와 연동짓게 된 것은 2006년에 들어와서부터이다.
남북관계를 6자회담 신뢰구축의 장으로 활용해야
남북대화가 시작된 이래, 우리 정부에서는 대북 접근방식을 놓고 크게 '연계론'과 '병행론' 간에 일종의 노선투쟁이 전개되어왔다. 마침내 김대중정부에 들어와 연계론에서 병행론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햇볕정책'으로 불리던 김대중정부의 대북정책은 서해교전에도 불구하고 금강산관광을 지속함으로써 병행론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참여정부에 들어와 대북 포용정책은 평화ㆍ번영정책의 이름으로 계승되었다. 하지만 부시행정부의 일방주의와 북한 핵개발이라는 새로운 상황을 맞아 정책추진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6자회담이 장기 교착상태에 빠지고 군사현안이 잘 풀리지 않자 정부 내에서는 연계론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2006년 5월 25일 북측이 일방적으로 '철도연결시범'(남측 용어는 철도연결 시험운행)을 취소하자, 6월에 열린 제12차 경협위 회의에서 정부는 '경공업 및 지하자원 개발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하면서 열차 시험운행과 연계시켰다. 미사일위기가 불거진 지난 5월 이후 정부는 세차례나 북한에 미사일발사 자제를 촉구하면서, 미사일발사와 쌀·비료의 대북 추가지원과 연계시켰다.
그렇지만 우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남북철도 연결사업의 시범운행을 계속 미루었고 탄도미사일의 발사를 감행했다. 그러자 제19차 장관급회담에서 우리측은 당초 공언한 대로 쌀과 비료의 추가지원을 '유예'한다고 통보했다. 이에 맞서 북측도 적십자사를 통해 남북이산가족상봉을 중단하겠다고 알려왔다. 이로써 남북관계는 또다시 중단되고 말았다.
이처럼 참여정부 후반기에 들어와 병행론이라는 대북 포용정책의 전략적 기조마저 흔들리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차 장관급회담에서 2·13합의와 연계하여 경협위 회의일정을 잡은 것도 이러한 연계론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대북 포용정책을 운용하는 데 연계론이 옳은지 병행론이 옳은지 단언하기는 어렵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하는 데 마땅한 대응수단이 없는 우리 정부로서는 연계론의 유혹을 떨쳐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동안 미국의 대북 강경론자들도 한국정부에 줄곧 연계론을 요구해왔다는 점에서 국제공조 차원의 필요성도 제기됐을 것이다.
대담한 대북접근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은 단기적인 정책효과가 아니라 중장기적인 전략의 관점이다. 북한주민들을 인질로 삼아 핵카드를 사용하는 김정일정권도 문제지만, 대북 쌀지원 같은 인도적 문제를 2·13합의와 연계시키려는 발상도 결코 북한당국의 태도와 별반 다르다고 하기 어렵다.
중장기적인 민족통합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러한 연계론이 얼마나 근시안적이고 민족분열적인 정책인지 알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6자회담에 반발짝 뒤처져 남북회담을 이끌어가려는 이른바 '출구론'적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내외 정세에 무관하게 북한주민의 생존권을 보장해줄 수 있는 인도적 지원법을 당장 제정하지 못할지언정, '먹을 것'을 가지고 같은 민족끼리 거래를 해서는 안된다. 그보다는 남북회담이 6자회담의 신뢰구축자 기능을 할 수 있는 대담한 대북접근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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