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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전쟁론'에 비춰 본 이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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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전쟁론'에 비춰 본 이라크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 <42> "국가안보냐 인간안보냐"

2003년4월9일 이라크 바그다드가 함락되고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지도 어느덧 4년이 지났다. 그 4년 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주요전투가 끝났다. 우리가 이겼다"고 선언했지만, 이라크 혼란 상황은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가 없다. "도대체 이 전쟁의 끝은 어디쯤일까. 앞으로 얼마나 많은 생목숨들이 희생돼야 끝날까"라는 한탄 말고는 달리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라크 현지취재과정에서 만난 이라크인들이 "후세인 시절이 더 나았다"라는 말들을 입버릇처럼 주고받았다. 그런 자조 섞인 말들을 듣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 이라크의 상황은 "더 이상 나빠질 것이 없다"는 표현이 딱 맞다. 미군 대 반미 도시게릴라의 싸움,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종파싸움, 여기에다 이라크의 혼란이 이어지길 바라는 이웃나라들의 은밀한 개입으로 말미암아 이라크는 불바다나 다름없다.

이런저런 유혈사태로 말미암아 평균 잡아 하루에 100명, 한 달에 3000명쯤의 이라크 사람들이 생목숨을 잃는 상황이다. 미국 언론들과 의회에서는 한 달에 100억 달러쯤 지출되는 전쟁비용과 3300명에 이르는 미군 전사자 규모를 떠올리며 "미국이 이라크 수렁에 빠졌다"고 걱정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라크라는 끓는 가마솥 안에 갇힌 현지 이라크 민초들의 고통이다.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지 4년이 지나도록 이라크 국민들이 혼란과 죽음의 공포 속에 지나야 한다는 것은 뭔가 잘못 돼도 한참 잘못됐다.

테러와의 전쟁? 정의로운 전쟁?

미국은 이라크 침공에 따른 혼란의 책임을 이라크 반미 저항세력과 수니-시아 갈등에 돌린다. 미국이 선의를 갖고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고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심으려 해도 '테러분자들의 극렬한 준동' 탓에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미군 최고 통수권자인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은 따라서 "우리 미군은 테러와의 전쟁을 이라크에서 벌인다"는 주장을 되풀이해 왔다.
▲ 미국의 이라크침공 4년, 계속되는 혼란 속에 이라크 민초들의 반미감정은 악화된 상황이다. 이라크 나자프에서 벌어진 한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신발을 벗어 미국 성조기를 때리며 그들의 반미감정을 드러냈다.ⓒ프레시안

미국이 전선을 아프간에서 이라크로 넓힌 것은 (의심받은 바대로 석유 때문이 아니라) 후세인 독재를 뒤엎고 이라크 사람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우긴다. 그래서 이라크 침공은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주장을 편다. 4년 전 4월 미국은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린 뒤 그에 충성하는 '이라크 테러리스트들'과 전쟁을 벌이게 됐다. 따라서 그동안 미국이 이라크에서 벌여 온 전쟁은 '테러와의 전쟁'이자 '정의로운 전쟁'(just war)이라는 묘한 어법을 쓰고 있다.

과연 그럴까.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합리화하고 석유 야욕을 은폐하는 이데올로기가 다름 아닌 테러전쟁론과 정의전쟁론이 아닐까.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정의의 전쟁'이란 과연 어떠한 것인가를 곰곰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적어도 이라크의 경우, 정의의 전쟁론은 21세기 세계질서 재편과 패권확장 야욕에 얽힌 음모와 위선을 파헤치는 일종의 화두나 다름없다.

"의전(義戰)이란 없었다"

정의의 전쟁을 말할 때는 일반적으로 세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첫째, 전쟁을 벌일만한 충분한 근거와 명분이 있는가(전쟁선포의 정당성). 둘째, 일단 전쟁이 벌어졌다면 그 전쟁에서 지나친 폭력을 삼가는 등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고 올바로 전쟁을 벌이고 있는가(전쟁행위의 정당성). 셋째, 전쟁 마무리 단계에서 전쟁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짐으로써 다음 전쟁의 불씨를 만들지 않도록 노력하는가(전쟁종식의 정당성)이다.

"그 전쟁은 정의의 전쟁이었다고 할 만하다"는 전쟁이 역사상 과연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안타깝게도 궁색하다. 중국 주나라의 왕권이 시들해진 뒤 맞은 춘추시대(BC 770-403년)와 진나라로 통일되기까지의 전국시대(BC 403-221년)엔 지역마다 똬리를 튼 제후들이 한 평이라도 땅을 더 차지하겠다며 온갖 수단으로 전쟁을 벌였다. 맹자는 "춘추 기록 가운데는 의전(義戰)이 없었다. 다만 저쪽이 이쪽보다 (상대적으로) 나을 수는 있었다"고 한탄했다.

20세기와 21세기에 지구상에서 벌어져 온 수많은 전쟁들도 마찬가지다. 정의의 전쟁론이 요구하는 세 기준에 비춰보면, 안타깝게도 하나같이 정의의 전쟁에 못 미친다. 정의의 전쟁의 첫째 기준인 전쟁 선포의 정당성 요건을 갖춘 전쟁이었다 해도 둘째 기준(전쟁 행위의 정당성)과 셋째 기준(전쟁종식의 정당성)을 갖추지 못했으니 정의의 전쟁이라 보기 어렵다. 전쟁은 철학과 문화를 사랑한다는 우리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묘한 속성을 지녔기 때문일까? 아니면 결과(전쟁승리)가 중요하지 과정(국제법 준수)은 무시해도 좋다는 편리한 생각 때문일까?

왜 제3기준이 중요한가

21세기 유일 패권국가 미국에서 정의의 전쟁론을 말하는 사람들은 정치인이나 전쟁연구자들 가릴 것 없이 전쟁 선포의 정당성에 매달리는 경향이다. 전쟁의 명분만 갖춰졌다면(이를테면, 9.11 테러와 같은 일을 당했다면) 정의의 전쟁이라고 강변한다.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하거나 마구잡이 공습으로 민간인들이 희생되는 전쟁범죄에 대한 공정한 처벌이라든가 전쟁 뒤 패전국의 재건 따위는 부차적인 관심사일 뿐이다.

2001년 9.11테러 뒤 벌어진 아프간전쟁의 경우는 그나마 명분이라도 있었지, 그 2년 뒤 벌어진 이라크 침공의 경우는 유엔안보리의 결의조차 없기에 국제법을 어긴 침략행위다. 정의의 전쟁의 기본적인 준칙들인 정당한 이유, 올바른 의도(세계3위의 석유매장량을 지닌 이라크를 침공함으로써 안정적인 석유자원을 확보하려는 것이 올바른 의도라 말할 수 있을까?), 적절한 권위(유엔 안보리 결의), 마지막 수단(전쟁은 외교를 비롯한 모든 다른 수단을 동원한 뒤에 벌여야 한다) 등 어느 것 하나 정의의 전쟁론이 요구하는 기준을 제대로 충족하지 못했다.

정의의 전쟁이 요구하는 제1기준과 제2기준을 지키지 못한 바로 그런 까닭에 미국이 이라크에서 정의의 전쟁론의 제3기준인 전쟁 종식의 정당성을 엄격히 지켜나갈 당위성이 요구된다. 미국의 정치학자 진 베스키 엘스테인(시카고대학)은 "점령국은 (패전국의)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을 막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이 져야 할 책임은 전쟁윤리적인 성격을 지닌다. 이라크 국민들의 안전에 미국은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

올해 2월 시리아에 갔다가, 이라크 혼란을 피해 국경을 넘어온 난민들을 여럿 만났다. 그들은 "지금의 혼란에 미국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청을 높엿다.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뒤에 벌어져 온 혼란상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든, 후세인 정권을 대신하는 이라크의 현실적인 힘의 주체이자 점령자인 미국에 상당부분 책임이 돌아간다. 사담 후세인 독재정권의 붕괴를 몰고 온 결정적인 물리력이 미국에게서 나왔기 때문이다.

'강자의 평화'냐 '정의로운 평화'냐

전쟁을 정당하고도 합리적인 방법으로 잘 마무리하느냐 아니냐는, 그 전쟁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겪었던 군인들과 민간인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여기서 인간안보의 개념이 중요해진다. 무엇보다 승전국(점령국)은 패전국의 안보를 책임져야 한다. 안보란 흔히 국가안보를 떠올리지만, 인간안보 개념도 매우 중요하다. 안정된 삶을 위협하는 어떤 세력으로부터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지켜주는 기본조건이 다름 아닌 인간안보다.

미국은 후세인 독재에 신음하는 이라크 국민들을 위한 인권 차원의 개입을 이라크 침공 명분의 하나로 꼽았다. 그렇다면 전쟁 뒤 이라크 국민들이 지난날 후세인 정권 때보다 더 큰 행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전쟁 마무리 단계에서 생겨나는 정치사회적 혼란을 막음으로써 패전국의 국민들이 안심하고 시민생활을 꾸려나가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미국은 이라크 국민들에게 안정과 평화를 가져다 주었는가. 대답은 부정적이다. 미국의 국가안보도 중요하겠지만 이라크 민초들의 인간안보가 무시돼선 곤란하다. 미국의 평화(팍스 아메리카나)도 챙겨야겠지만, '이라크의 평화'도 챙겨야 한다. 그래야 '힘센 자의 평화'만이 아닌, '정의로운 평화'가 자리 잡는다. 4년이 넘도록 이라크가 혼란 상황을 거듭하는 현실은 전쟁종식의 정당성과 인간안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글은 <한겨레신문> 4월13일에 실린 필자의 칼럼을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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