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 간 심화되는 '경제밀월'을 의식해 정부가 나서 외교 긴장 완화를 도모하는 모양새지만, 과거사를 둘러싼 갈등과 일본을 중국 견제의 기점으로 삼으로는 미국의 동북아 구상 등을 고려할 때 '완전한 해빙'을 기대키란 어려우리란 전망이다.
원자바오 "일본 정부가 중국의 현대화 도와줘"
원 총리는 방일 이틀째인 12일 오전 일본 중의원 본회의장 연단에 올랐다. 중국 총리의 방일은 2000년 10월 주룽지 전 총리 이후 6년 반 만이지만 중국 지도부 인사의 일본 국회 연설은 20년 만에 처음이었다. 1985년 펑전 전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의회연설을 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원 총리는 이 자리에서 1937년 중일전쟁에 대해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인해 중국 인민은 중대한 재난을 당했다"면서도 "그러나 침략전쟁의 책임은 소수의 군국주의자가 져야 한다. 일본 국민도 전쟁의 피해자다"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와 국민은 중국의 개혁, 개방, 현대화를 도왔고 중국 국민들은 이를 잊지 않을 것"이라며 일본의 공적을 평가하기도 했다.
번번이 양국 간 갈등을 초래했던 숙원(宿怨)에 대해 중국 정부가 이토록 유연한 자세를 보인데 대해 서구 외신들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AFP> 통신은 "원 총리가 수년 간 양국 관계를 가로막고 있었던 전쟁사와 관련해 '놀랄 만큼 회유적인 톤(striking a conciliatory tone)'으로 얘기했다"고 전했고, <파이낸셜타임스>도 "중국이 일본 관료들을 적대시하며 과거사에 관해 '가르치려들던 자세(lecturing tone)'을 버렸다"고 평가했다.
원 총리는 그간 수차례 이번 방일을 "(양국 간) 얼음을 녹이는 여행"이라면서 "우정과 협력"이 목적이라고 강조해왔고, 실제로 경제 부문에서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다.
11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회담에선 2003년 중단됐던 일본의 대중국 쌀 수출을 오는 7월부터 재개키로 했고 중국 상하이와 도쿄 하네다 공항 간 직항 노선도 개설키로 했다. 양국 고위급 경제 대화로 불리는 경제 각료회의 창설은 원 총리 이번 방일의 최대 성과 중 하나로 꼽힌다.
일본의 대중국 이미지 개선에도 최선을 다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의회 연설을 앞둔 12일 아침 원 총리는 왕이 주일 중국대사 등과 도쿄시내 요요기 공원을 조깅을 하며 시민들과 인사를 나눴다.
한 시민에게 직업을 묻고 "아이 엠 어 바버(barber:이발사)"란 답이 돌아오자 "아이 엠 원자바오"라며 익살스럽게 받아쳤다는 에피소드가 일본 신문을 통해 알려지면서 덩달아 '평민의 총리'로서 원 총리 개인의 이미지도 부각되고 있다.
과거사·군사대국화 등 두꺼운 '얼음'
이처럼 표면적으로는 원 총리의 이번 방일이 양국 외교관계를 개선하는 중대한 전기를 마련한 것처럼 보인다.
사실 일본과의 화해·협력 무드를 조성하려는 중국 정부의 노력은 작년 10월 아베 총리의 방중 직후부터 시작됐다.
취임 직후 한국과 중국을 연쇄 방문한 아베 총리가 다녀간 뒤 중국은 반일감정을 자극하는 TV 프로그램의 편성을 자제시키는 것으로 화답했다. 최근 아베 총리가 종군 위안부 강제성을 부인하는 발언으로 중국 내 반일여론이 고개를 들었지만 중국 정부는 침묵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일관계에 획기적인 진전은 어려우리란 전망도 적지 않다.
<뉴욕타임스>는 고이즈미 정권 시절 양국 관계를 경색시켰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관련해 아베 총리는 유연한 자세를 보이고 있으나 취임 직전 비공식적으로 신사참배를 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만큼 "언제라도 재발할 수 있는 문제"로 내다봤다.
이와 관련해 양국 총리는 "쌍방은 역사를 직시하며 미래로 나아가고 양국 관계의 아름다운 미래를 함께 개척하기로 했다"고 밝혔지만, 원 총리는 의회 연설에서 역사문제와 관련해 일본 측이 표명해 온 "깊은 반성과 사죄"에 근거해 실제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해 신사참배에 대한 일본 정부의 확실한 입장을 요구했다.
난징 대학살 70주년을 맞아 중국 정부가 이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 표명을 요구할 경우에도 역사를 둘러싼 갈등은 충분히 재발할 수 있다. 오는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둔 아베 총리는 극우파 '표몰이'를 노리고 외교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발언을 할 수도 있다.
일본의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지원 요청에 대해서도 원 총리는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한층 건설적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지만 이를 중국 정부의 지원 약속으로 받아들이기는 무리란 분석이다. 무엇보다도 중국 여론이 일본의 안보리 진출을 완강히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과 호주가 방위조약을 맺으면서 동북아 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일-호 3각 안보동맹의 틀이 형성된 것도 중일 관계 개선을 낙관할 수 없도록 하는 요소다. 미국과 일본은 수시로 중국의 군사 대국화 경향을 비판하고 있다.
이에 원 총리는 "중국의 방위력은 국가 안전과 통일 유지를 위해서만 사용될 것"이라며 중국의 국방비 증액이 타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원 총리의 말 한 마디로 미국과 일본의 경계가 완화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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