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 정부의 이런 주장이야 매년 이맘때가 되면 의례히 나오는 연례적인 행사지만 올해에는 말비나스 전쟁 당시 아르헨티나군이 획득했던 포클랜드 기(旗)가 공개되면서 그 주장에 실리는 무게가 약간 다르게 느껴지고 있다.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군사적인 대결에서는 비록 아르헨이 패했지만 진정한 포클랜드 전쟁의 트로피는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982년 4월 2일 포클랜드 군도의 스텐리항을 급습한 아르헨티나군은 영국령 포클랜드 총독부(총독 랙스 헌트 경)를 접수하고 총독부 청사에 게양돼 있던 포클랜드의 상징인 유니언 잭(영국 국기)에 양(羊)의 문양이 그려진 '포클랜드 기'를 접수했다.
그 후 73일이 지난 6월 14일 영국군 총사령관 제레미 무어 장군은 아르헨티나군의 마리오 메넨데스 장군으로부터 상호 공격을 중지하자는 조건부의 항복을 받아 냈지만 아르헨티나 군이 습득한 포클랜드기는 회수하지 못했다.
따라서 양국 정부는 종적을 감춘 포클랜드기의 행방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25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포클랜드의 상징인 이 깃발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당시 포클랜드 총독부 건물과 노획품을 관리하던 아르헨 주둔군 부사령관 뻬드로 지아치니가 혼전 중에 전사함에 따라 포클랜드 정부 깃발의 행방은 오리무중이 된 것이다.
그러던 와중에 최근 아르헨의 뉴스전문 TV 채널 PD 출신의 한 언론인이 이 깃발을 소유하고 있다고 밝히고 일부 현지 언론인들을 초대해 조심스럽게 공개했다.
아르헨 군부가 포클랜드전의 승리 홍보에 열을 올리던 1982년 6월초 끄로니까 TV의 까를로스 가르시아 PD는 포클랜드 현지에서 아르헨군의 전투상황을 현장 중계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 아르헨 측 종군기자들의 대표자 역할을 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르시아는 말비나스 전쟁에서 아르헨 군의 승리의 상징이 된 포클랜드 정부 깃발에 눈독을 들이고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몰래 가지고 갈 채비를 차렸다. 그는 일단 이 깃발의 소재부터 확인에 나섰다. 현지 주둔군 사령관에게 말비나스 총독부 건물에 게양돼있던 영국 기를 보여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아르헨 군부는 '극비사항'이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하지만 가르시는 포기하지 않고 "그렇다면 우리 종군기자단은 아르헨군의 유리한 전황을 일체 방영하지 않겠다"고 버텨 가까스로 총독부 주방의 찬장 속에 감춰져 있던 포클랜드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1982년 6월 10일경 영국군의 본격적인 반격으로 아르헨 주둔군 사령부가 어수선해진 틈을 타 포클랜드 총독부 건물로 잠입한 가르시아는 자신의 옷 속에 포클랜드의 상징인 깃발을 몰래 숨기고 포클랜드 탈출에 성공한다.
가르시아가 아르헨 최남단도시인 꼬모도르 리바다비아를 거쳐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한 것은 전쟁이 끝난 뒤인 1982년 6월 20일이었다.
"나는 전쟁의 상징인 이 깃발을 지키기 위해 상당한 위험을 감수했다. 우리 군의 승리를 상징하는 이 깃발은 영국의 SAS(특수부대)나 MI5, MI6(정보기관)도 찾을 수 없을 만큼 아주 은밀한 곳에 숨겨져 있다. 내가 이 깃발을 소유하고 있는 한 말비나스 전쟁은 우리가 승리한 것임을 증명할 것이다."
이에 대해 현지 언론들은 '말비나스 전쟁 영웅들'로 불리는 참전용사들은 대다수가 패배감에 젖어 있고 절반에 가까운 숫자가 자살을 생각할 만큼 심각한 전쟁 후유증을 지금까지 앓고 있다면서 명분 없는 전쟁에 동원된 이들 참전용사들이 최소한 자신들이 목숨을 걸고 탈취한 포클랜드의 깃발이 아르헨티나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상당한 위안이 될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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