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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는 왜 미국 기업인들을 훈계하지 않았나

[한미FTA 뜯어보기 427]한반도브리핑 <46> 한미FTA 협상의 억지 논리들

지난 주 외신들에 따르면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한미 FTA와 관련해 미 철강업계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 비록 법 개정을 요하는 무역구제조치는 이번 협상에서 배제됐지만 기업인들이 반덤핑과 같은 구제조치에 의존하지 말고 생산성을 제고해 국제시장에서 정정당당하게 경쟁할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이에 한 기업인이 신흥공업국의 가격경쟁력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고 하자, 부시 대통령은 '철강왕 카네기의 후예로서 자신감을 가지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한편 한미 FTA와 관련해 미 의회에서 열린 공청회에서는 미시건주의 샌디 레빈 하원의원이 한국은 미국에 자동차를 연간 70만 대나 판매한 반면 미국은 한국에 4000대밖에 팔지 못했다고 지적하며 이의 시정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자 카란 바티아 미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는 무역 불균형을 품목 단위로 계산하는 것은 비교우위의 원리에 어긋난다면서 그런 논리대로라면 미국이 한국을 상대로 농산물 분야에서 올리고 있는 막대한 무역흑자도 시정되어야 하는 것이냐고 반박했다고 한다.

바티아 부대표는 또 자동차와 관련된 한국의 세제가 개편된다고 해도 한국시장 내 미국 자동차 판매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미국의 자동차 업계가 한국인이 선호하는 유럽 및 일본 브랜드와 맞설 수 있는 모델을 개발하지 않는 한 계속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한다.

산업구조의 고도화, 개방이 능사인가

미안하지만 지금까지의 진술은 모두 농담이다. 부시 대통령이나 바티아 부대표는 이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

사실 한미 FTA와 같은 통상협상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자국 기업을 겨냥하여 이런 훈계조의 발언을 할 것이라고 상상하기도 힘들다. 그들은 한국의 정치인이나 관료들보다 경제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일까? 자유무역으로 수입품의 가격이 싸지면 혜택을 받을 소비자의 후생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관세와 무역장벽으로 보호받고 있는 생산자의 이익만 챙기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아니다. 미국의 정치인이나 관료들의 경제지식 수준이 한국보다 낮다고 보기는 어렵고, 미국의 무역정책과 경쟁정책, 그리고 소비자보호정책이 한국보다 못하다고 보기는 더더욱 힘들다.

하지만 일단 외국과의 통상협상이 시작되면 미국의 정치인과 관료들은 대치전선이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인식하고 국익을 위해 힘을 모은다. 미 의회가 수출업자들을 공청회에 초청해 협상 상대국의 관세와 무역장벽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도록 하면, 무역대표부는 협상에서 국익을 철저히 관철하겠다고 다짐하고, 의회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무역대표부에 힘을 실어 준다.

통상협상은 협상 상대국과 벌이는 게임이지, 국내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게임은 아니라고 이들은 믿는다. 자유무역이 좋다고 해도 국내 생산자와 노동자가 구조조정으로 인해 치러야 할 비용을 고려해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한마디로 국적 의식이 있는 것이다.

일례로 한미 FTA 제8차 협상이 개시되기 전인 지난 3월 1일 찰스 랭글 미 하원 세출위원장 등 의원 15명은 부시 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한국의 자동차시장 개방과 관련해 강력한 조치를 취하도록 촉구한 바 있다. ( ☞공개서한 원문보기)

미국의 승용차 관세는 1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반면 한국의 자동차 관세는 즉각 폐지하고, 미국의 대한(對韓) 자동차 수출이 증가하는 만큼만 미국도 한국의 수출물량에 대해 무관세를 적용하며, 미국 자동차에 대한 무역장벽이 없다는 입증책임을 한국이 지도록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방만한 경영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미국의 자동차회사들을 꾸짖으며 FTA를 통해 개방과 구조조정을 촉진하여 경쟁력을 제고하자는 식의 주장과는 정반대의 내용이다. 하지만 이런 내용을 담은 공개서한을 보냈다고 해서 이 의원들이 '세계화 시대에 역행하는 쇄국주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일 FTA타결 관련 대국민담화에서 "선진국은 그냥 열심히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도전해야 한다"라고 '훈계조'의 말을 늘어놨다. ⓒ연합뉴스

상대방이 우리 측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이에 맞장구를 치며 국내 생산자를 나무라는 것이 통상협상인가? 아니다. 상대방이 우리 측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그만큼 상대방의 문제점도 부각시켜 양쪽의 문제점이 균형적으로 시정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 통상협상이다. 상대방으로부터 얻어낼 것이 별로 없고 거의 일방적으로 양보만 해야 한다면 그런 통상협상은 할 필요가 없다. 미국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웬만큼 자리 잡은 나라들은 이같은 점을 신중히 고려해 통상협상에 임한다.

국내 일부에서는 FTA를 통해 경제체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경제체질 개선은 국제무역의 다자틀(multilateral framework)을 존중하면서 독자적인 개방과 구조조정, 그리고 자체 역량 배양을 통해 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다. 양자간 통상협상의 상대방으로부터 별로 얻어낼 것이 없다면 더더욱 그렇다.

개방에 따른 무역의 증가가 경제성장으로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 이른바 '성장 없는 개방'이라는 현상을 놓고 고심하는 멕시코 등 중남미 국가 사례를 볼 때 개방을 통한 충격만으로 산업구조가 고도화될 것으로 믿는 것은 착각이다.

예를 들어 국내 제약회사가 복제약을 만드는 정도에 안주하면 안 되고 신약개발 등 고부가가치 분야로 진출해야 한다는 지적은 옳지만, 개방을 확대하고 지적재산권을 강화하는 것으로 그런 혁신역량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다. 구체적으로 가치사슬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파악하고, 연구개발 및 교육훈련 등과 관련해 민간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하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실제로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을 보아도 무역정책과 산업정책, 그리고 교육정책이 조율되어 함께 추진되었을 때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쇄국주의자'와 '매국노'를 없애기 위해

아울러 국내 이해집단의 저항을 극복하고 개방과 구조조정을 추진하기 위해 외압이 필요하다는, 이른바 '차도살인(借刀殺人)'의 논리는 국내 정치과정의 중요성을 간과할 뿐 아니라 미국이 통상협상에서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려 하지 않고 칼만 빌려줄 것이라고 믿는 순진한 발상이다.

독자적인 개방과 구조조정을 통해 경제체질을 개선하려고 노력했으나 이익집단의 저항에 밀려 개혁이 좌절됐다면 어느 정도 이해라도 되겠지만, 그런 사전 노력도 없었던 상황에서 '차도살인'의 논리를 내세우는 것은 무리다.

더구나 그런 논리는 협상 상대국에게 역이용되어 협상결과의 불균형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시장을 추가 개방하도록 한국에 압박을 가하는 것 자체가 '차도살인' 하도록 도와주는 것인데, 왜 미국의 관세나 무역장벽과 관련해 한국에 양보를 해야 하느냐는 논리를 펼 수 있기 때문이다.

한미 FTA 타결안에 대해서는 각자의 평가기준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수도 있고 미 의회가 30일 이내에 한국 정부의 추가적인 양보를 요구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그러나 최소한 통상협상 절차에 대해서는 이번 기회에 체계적인 개선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FTA에 반대하는 사람은 '쇄국주의자'로, 찬성하는 사람은 '매국노'로 매도하는 소모적인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사실과 논리에 근거하지 않고 극도로 감성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개방과 구조조정, 그리고 자체 역량 배양에 대해 다양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아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또 일단 통상협상이 시작되면 전략적인 차원에서라도 대치전선이 어디에 있는지 명확히 인식하고 협상력이 제고되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회 주도 하에 국내업체와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고, 통상협상 과정 및 결과를 검증하는 절차가 마련되어야 한다. 관세나 무역장벽과 관련된 협상에 대해서는 통상교섭본부에 기본적으로 재량을 부여하더라도 조세체계나 국내 법률의 개정이 필요한 부분 등에 대해서는 국회가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이번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는 투자자-국가 분쟁이나 개성공단 제품의 국내산 인정 등 시민사회에서 문제를 제기했던 부분이 그나마 어느 정도 타결안에 반영되었는데, 앞으로는 제도화된 절차를 거쳐 이같은 의견이 수렴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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