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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한 세계를 걸으면서 불멸의 세계를 바라보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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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한 세계를 걸으면서 불멸의 세계를 바라보는 느낌"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3/22] 히말라야 산행에 흠뻑 빠진 작가 박범신씨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흔히 세계의 지붕이라고 하는 히말라야 산맥, 해마다 이곳에는 무한한 도전정신을 확인하기 위해 전 세계 수많은 산악인들이 찾아들고 있으며 이곳에 청춘을 바친 사람들도 수없이 많은데요, 우리시대 영원한 청년자가로 불리는 박범신씨가 최근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히말라야를 찾아 등반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는 육체의 호사가 아닌 영혼의 안식을 위해 산을 찾는다고 말하는데요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작가 박범신씨를 초대해, 그가 히말라야를 찾는 이유와 최근 맡게 된 서울문화재단 이사장 활동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 나눠 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작가 박범신씨입니다. 박범신씨는 1946년 충남 논산 출생으로 전주 교대와 원광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고려대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67년부터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가 당선되면서 등단했고 주요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죽음보다 깊은 잠', '풀잎처럼 눕다' '불의 나라' '물의 나라'를 비롯해 소설집, '토끼와 잠수함' '덫', 연작소설 '나마스떼' 등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문학상을 비롯해 김동리 문학상과 만해 문학상을 수상했고 현재 명지대 문예창작과 교수와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박범신씨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거의 다 잘 아시는 유명한 소설가신데 산 얘기를 하게 돼서 쑥스럽긴 합니다. 저희 프로그램에 엄홍길씨, 박영석씨, 한왕용씨... 국내에서 진짜 알아준다는 산악인들이 다 나오셨거든요. 박범신씨께서는 이번에 히말라야를 7번째 갔다 오셨다구요... 언제 다녀오신 겁니까?

박범신 : 우선 엄홍길씨나 박영석씨가 올라가는 산을 간 건 아니구요, 산 밑에서 걸어 다니는 여행인데 80년대 말이었나 90년대 초에 처음 갔구요, 한 번 가니까 설산에 좀 매료돼서, 연재소설도 쓰고 할때는 못 갔고 최근 몇 년간은 거의 매년 갔습니다.

박인규 : 도합 7번째인가 된다고 들었습니다.

박범신 : 글쎄 잘 헤아리지는 못하겠는데 거의 7,8번쯤 간 것 같아요.

박인규 : 최근에 갔다 오신 건 언제죠?

박범신 : 2월 초에 가서 말 쯤 왔습니다.

박인규 : 무슨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서 가셨다던데요...

박범신 : 예. KBS에서 일요일 밤에 하는 '다큐 산'이라는 프로가 있습니다. 거기서 2부작을 제작하자고 해서 같이 갔죠.

박인규 : 저도 가끔 그 프로 봅니다. 히말라야라고 해도 14좌, 16좌 해서 봉우리가 많은데 가신 데가 정확하게 어디였나요?

박범신 : 저는 제일 많이 간 게 안나푸르나 트래킹 코스였어요. 그곳이 굉장히 아기자기하고, 8천m 산이 다올라기리, 마나슬로, 안나푸르나 1봉에서 세 개나 있고. 7천, 6천 고봉들은 수없이 많죠. 안나푸르나 트래킹 코스는 아기자기하고 보기 좋고 정답구요. 가령 에베레스트 트래킹 코스는 다이내믹하고 장대하죠. 그래서 가다 보니까 안나푸르나가 좋아서 거길 아마 네 번쯤 간 것 같아요

박인규 : 트래킹이라면 큰 봉우리를 오르기보다는...

박범신 : 산 밑을 걷는 거죠. 원래 히말라야 산에 의지하고 사는 본래의 사람들은 산을 정복한다든가 꼭대기를 올라가야 한다든가 하는 개념이 없습니다. 산에 겸손하게 의지하고 산의 품에서 사는 거니까요. 트래킹도 역시 몇 m를 꼭 올라가야 한다든가, 물론 갈때마다 일정한 스케줄이나 목표는 있지만 그런 개념보다 산에 의지하고 산의 품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여행이죠.

박인규 : 그럼 이번에 박범신씨께서 안나푸르나에 가서... 2부작이면 상당히 많이 찍으셨는데 거기를 쭉 다 다녀 보신 건가요?

박범신 : 이번에 갔던 데가, 안나푸르나에서 가장 대표적인 트래킹코스가 일주 코스에요. 안나푸르나를 한 바퀴 크게 돌죠. 일주 코스를 건강한 사람이 돈다면 한 2주 정도에 마칠 수 있습니다. 좀 천천히 간다면 3주 걸릴 수도 있고. 그 일주 코스 중 가장 올라가기 어렵고 고개를 넘기 어려운 곳이 쏘룽라라는 고개가 있는데 5416m 됩니다. 특히 1,2월엔 눈이 많이 쌓여서 일반적인 트래커들은 위험하니까 거의 넘어가지 않는 것으로 돼 있는데, 이번에 쏘룽라를 넘어가는 코스를 택했습니다.

박인규 : 이번에 안나푸르나 일주 코스를 완주하고 오신 겁니까?

박범신 : 예. 완주한 셈이죠. 전에도 그쪽을 많이 갔었거든요. 그런데 제 경우는 항상 5400m는 너무 높아서 그 밑에 묵티나스라고 있어요. 한 3800... 거기까지 갔다가 돌아오고 돌아오고 처음입니다. 이번에 쏘룽라를 넘어온 건 처음입니다.

박인규 : 저는 백두산 이상은 가 본 적이 없어서. 아무리 트래킹이라고 합니다만 해발 5천 m 이상 되면 고산병 발생할 수 있고..... 일반인도 갈 수 있나요?

▲ ⓒ프레시안

박범신 :
몇 년 전 제가 에베레스트 칼라파타르 코스를 갈 때 그곳 최종 높이가 한 5600정도 돼요. 베이스 캠프보다 한 300 높죠. 거기 갈 때 한 4000 지점에서 고수에 걸려서 한 3일 굉장히 고생했습니다. 꼼짝 못하고 누워 있었고, 그런 경우 보통 일반적으로는 내려와야 되는데 우리 지난 50년의 개발시대가 제게 가르친 것은 포기하면 안 된다는 것이기 때문에,(웃음)

사실 내려와서 쉬어야 되는데 기다렸다가 굉장히 고생하고 올라갔던 것이 제일 위험하고 어려웠구요. 안나푸르나 갔을 때는 그동안은 그렇게 높이 안 올라갔기 때문에 고생은 없었어요. 이번에도 큰 코스는 아니었고, 다만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대부분의 트래커들이 고개를 못 넘고 포기했어요. 눈이 한 1m 50cm 정도 쌓여서 체력소모가 많았죠.

박인규 : 저희는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하면 전문 산악인만 가는 줄 알았더니, 요즘은 일반인들도 트래킹 코스를 많이 가는 것 같아요

박범신 : 그럼요. 시즌이 오면 사람이 많아서 못 갈 정도니까...

박인규 : 우리나라 북한산 정도 됩니까?

박범신 : 그렇습니다. 많이 오죠. 엄홍길씨가 올라가는 것은 정복하고 탐험하는 모험이고, 저 같은 사람이 산을 걷는 건 일종의 마음의 순례죠. 히말라야나 티벳 불교에서 유명한 성자 중에 밀레르파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길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법의 절반을 이룬 것이다. 순례하는 동안 만이라도 죄를 짓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많은 신을 믿는 사람들은 그런 길을 떠나는 데에 익숙하죠.

저도 히말라야를 가다 보니 북한산 올라갈 때하고는 조금 느낌이 달라죠. 8천년봉들이 만년 빙하가 둘러쳐진 밑을 걷는다는 것. 그 만년 빙하의 산들은 저희들 눈에는 초월적인 불멸의 세계로 보이죠. 우리가 걷고 있는 곳은 유한한 세계이고, 우리가 보고 있는 곳은 무한한 어떤 불멸의 세계처럼 보여요. 여러 가지 인간 본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어떤 의미에서 자기 안으로의 여행이죠 트래킹을 한다는 건. 일단 산 속으로 들어가면 열흘 걸어가면 열흘 걸어나와야 되니까요 아파도.

우리 사회가 어떤 의미에서 너무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지만 약간 미쳤다는 생각이 듭니다. 약간 미쳐서 과부하 돼서 살고 있지 않나, 다시 말해 100볼트 플러그에 200볼트 전기제품을 꽂아서 사는 것처럼. 그런데 히말라야 가면 그런 것에서 해방되죠. 정보로부터 해방되고 휴대전화도 신문도 없고. 누가 찾아오는 법도 없으니까. 거기를 걷는다는 건 산을 높이 올라간다는 개념보다 저희는 그런 순례하는 마음으로 대자연 속에서 그런 마음으로 걷는 거죠.

박인규 : 이른바 속세를 떠나 좀 경건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겠군요.

박범신 : 예. 그런 마음으로 걷습니다.

박인규 : 그 중에서도 특별히 안나푸르나를 좋아하시는 이유는 어떤 겁니까?

박범신 : 제가 트래킹 여행기.. 사색여행기 책을 한 권 냈었는데 '비운이 향기롭다'라는 책입니다. 그건 안나푸르나 코스가 아니라 에베레스트 칼라파트르 갈 때 제가 생각한 것을 쓴 책이고, 제 소설 중 나마스떼라는 책이 있는데, 남자주인공이 바로 안나푸르나 일주 코스 마르파라는 마을에서부터 서울로 오는 이야깁니다.

특히 안나푸르나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산세가 정말 깊고도 아기자기해요. 그래서 반하죠. 정말 뛰어나게 생긴 어떤 사람을 만나는 기분으로 걸을 수 있구요. 특히 다울라기리 밑에 지나가다 보면 광폭이 1km 이상 넓은 하상지역을 지나가는데 그럴 때는 다울라기리가 거의 직벽으로 한 5천m 올라서 있기 때문에 그걸 세계에서 가장 깊은 계곡이라고 해요. 그런 대자연의 웅원하고도 아기자기한 맛을 안나푸르나가 잘 보여주고 있고, 특히 그쪽은 티벳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지역이라 티벳 문화가 어쩌면 지금의 티벳보다 더 생생히 살아있는 곳이죠. 그런 또 다른 문화를 경험할 수도 있구요.

박인규 : 학교 졸업하고 초등학교 선생님 하시면서 산을 많이 다니셨다던데, 한국에서도 산을 많이 다니셨나요?

박범신 : 제가 67년, 68년 2년을 무주에 있었죠. 처음 문학을 시작한 곳인데 거기서 초등학교 교사로 있었죠. 제가 21, 22살 때였습니다. 거기가 적성산과 덕유산 사이에 있는 학교에요. 그 60년대 후반에는 전기도 안 들어왔고 차도 안 들어오고. 그런데 피가 뜨거운 21살 젊은이가 거기 가 있으니까 유배 당하는 기분이더라구요. 정말 답답하고 외로웠어요. 기운을 어디 쓸 데가 없으니까 산을 많이 다녔죠. 적성산이라고 유명한 안국사가 있는 산인데 지금은 차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만, 그때는 아주 오지산이어서 인적이 없었어요. 매주 일요일에 산에 갔고. 저는 산을 자주 정기적으로 찾는 건 아닌데 서울에 올라와서도 늘 산 밑에 살아왔던 것 같아요.ㅜ군들, 우리나라 사람은 다 산에게 은혜를 입죠. 산을 안 올라가더라도 산에 의지해서 살아가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박인규 : 어떻습니까.. 히말라야를 90년부터 다니시고 한 7차례 갔다 오셨는데..... 약간 단순무식한 질문이긴 한데 샌생님께서 쓰시는 글, 문학작품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세요?

박범신 : 문학작품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보다 제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뭔가 젊을 때 생각했던 가치의 우선순위 같은 것하고, 조금 나이 먹고 히말라야 다니면서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의 우선순위 같은 게 좀 변화하죠. 젊을 때는 욕망을 따라서 살았던 것 같구요 나이 먹으면서 히말라야에 자주 가다 보니까 영혼의 내밀한 목소리를 듣게 되고, 그래서 삶을 대하는 태도 자체에 변화가 오죠.

박인규 : 말씀 듣고 보니 저도 한 번 가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산을 주제로 한 주제나 에 등산을 다니시다 보니까 관련해서 글도 쓰신 걸로 아는데 산을 주제로 한 소설이나 에세이든지... 이미 쓰고 계시지만 쓰실 계획은 없습니까?

박범신 :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나마스떼라는 소설은 네팔 청년의 이야기였고 산을 주제로 한 건 아니구요. 비운이 향기롭다는, 트래킹 여행기를 하나 썼습니다. 최근에는... 제가 작년에 티벳을 갔거든요. 티벳 하면 카일러스라고 수미산의 모델이라고 알려진 성산이 있어요.

박인규 : 수미산이라면 불교에서 말하는...

박범신 : 예. 맞습니다. 제석궁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 성산인데 그 트래킹을 했죠. 그때도 한 5600m 여행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주 다니다 보니까 본격적인 산악인 소설을 하나 쓰고 싶어요. 우리나라는 굉장히 산악인 강국이거든요.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산악인만 해도 세 명이나 됩니다. 일본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산악인이 천만 명이 넘는다는데 산악 소설이 본격적으로 쓰여진 건 제가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번 산악인들의 모험을 소설로 쓸까 하고 준비 중에 있습니다.

박인규 : 산악인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시려면 앞으로도 히말라야에 자주 가셔야겠네요.

박범신 : 산악인을 자주 만나야 되겠죠?

박인규 : 히말라야 가시게 되면 반드시 동반한다든가 하는 산친구라고 할까요? 동행하시는 분들이 있으신가요?

박범신 : 아니요. 동행하는 분들이 다르죠. 재작년에는 석달 동안 제가 네팔에 있었는데 그때는 두 달 동안을 혼자 다녔어요. 혼자 수천km를 걸었죠. 눈물 나대요 혼자 다니니까. 그리고 후반부 한 달은 동행자도 있었고, 그때는 나마스떼라는 소설 나온 지 얼마 안 돼서 소설 독자와 함께 가는 여행을 어떤 신문사에서 기획해서 함께 걸었고. 그때그때마다 동행은 다릅니다.

박인규 : 이미 히말라야에는 자주 다녀오셨기 때문에 저 같은 초심자들은, 말씀 들어보면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비용이 얼마나 들지 가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를 것 같아요. 약간의 기본 가이드랄까, 이렇게 하면 잘 다녀올 수 있다.

박범신 : 여행사를 통해서 가면 한 열흘 쯤 트래킹 한다고 칠 때 한 200여 만원 하는 것 같아요. 그런 것보다 혼자 배낭 지고 가셔도 되거든요. 한국 음식점도 많고 하니. 현지에서 정보를 들으시고, 트래킹은 그냥 마음을 구름처럼 생각하고 흘러다니는 거니까, 그렇게 가신다면 여비는 많이 안 들 거라고 봐요.

박인규 : 혼자 가도 현지에서 의사소통이나 이런 데서 큰 문제는 없나요?

박범신 : 예. 나도 영어도 잘 못합니다. 그래도 그냥 눈빛과 몸짓으로 하면 되고, 걸어다니는 곳마다 마을이 있어요. 마을에는 여관과 음식점들이 있고. 네팔 사람들 다 순박하고 친절하거든요. 큰 어려움은 없을 겁니다.

박인규 : 올해는 이미 다녀오셨고 내년에 또 가실 계획이 있으신가요?

박범신 : 여름엔 거기가 우기라고 해서 비가 자주 내립니다. 그래서 설산들이 잘 안 보이고 하니까 여름은 비철이죠. 또 거머리가 길에 많이 있어요. 그래서 거머리와의 전쟁도 벌여야 되기 때문에 보통 트래킹이 4월쯤이면 대개 끝납니다. 9월부터 트래킹 시즌이 시작되죠. 가장 좋은 계절은 10, 11, 12월 무렵이고 1,2 월은 눈이 많아서 어렵구요. 내년 겨울에 또 가야지요. 가야 될 것 같아요

박인규 : 이번에 찍으신 다큐 프로그램은 아직 방영이 안 됐죠?

박범신 : 안 됐습니다. 아직 날짜는 정해지지 않은 것 같아요. 아마 4월 초에 방영이 될 것 같습니다.

박인규 : 한 번 기다렸다가 보겠습니다. 작가 분을 모셨는데 산 얘기만 하면 그럴 것 같아요. 93년도인가 한때 절필을 하셨어요. 머리에 총을 들이대도 한 줄도 안 나온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당시 왜 그렇게 힘드셨어요?

박범신 : 한 3년... 글쎄요 중년을 넘기면서 새로운 사춘기가 왔습니다. 제가 73년에 데뷔하고 80, 90년대 전반기까지 소설을 아주 많이 썼습니다. 깊은 우물이라고 할지라도 물이 고일 새 없이 계속 두레박질을 하면 마지막엔 흙탕물 나오기 십상이죠. 어떤 상상력의 고갈을 느끼면서 또 중년, 갱년기였던 시기와 그런 것들이 맞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굉장히 무력해지고 우울해지고, 특히 문학의 문제에서 지금까지 내가 했던 문학.... 그 방식으로는 더 나아가면 뭐라고 할까요, 업그레이드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소설을 기술로 써내는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작가로서 내가 그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쩌면 유명 작가로서 만들어 온 어떤 기득권 같은 것을 다 내다 버리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해서 한 3년 절필했습니다.

박인규 : 예전에 비해 문학의 위상이랄까... 시도 소설도 마찬기지고 예전보다는 많이 안 읽는 것 같다는 얘기들이 있는데요..

▲ ⓒ프레시안

박범신 :
문학이 90년대 전반기까지만 해도 호황이었죠. 대중들의 기대도 높았고. 그런데 90년대 중반 넘어서면서 인터넷 들어오고 영상매체가 폭발적으로 발전하면서 문학이 시장에서 밀려났죠. 지금은 흔히 활자매체의 위기, 한국 문단의 위기, 소설의 위기 이런 말들이 많이 돌고 있습니다. 그만큼 책이 안 팔리고 독자들도 좋은 문학에 대한 열망 같은 게 거의 없어 보여요.

그러나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져 죽어서 마침내 연꽃으로 부활하고 아버지 눈을 뜨게 하는 것처럼, 문학이라는 건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정체성에 대한 발언을 할 수 있는 예술 장르기 때문에, 소수자의 예술 장르가 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문학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고 봐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시장이 옛날만 못하다든가 하는 걸 문학적인 위기라고는 생각 안 합니다. 좋은 작품이 계속 안 나오는 게 위기일 수는 있겠죠.

박인규 : 정체성 말씀을 하셔서 여쭤 보는 건데, 요즘 정치를 보거나 사회를 보면 어떤 목표나 방향을 잃어버린 것 같은, 예를 들면 80년대는 민주화다 이런 게 있었는데. 요즘은 우리 사회 전체가 나아갈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그런 과도 관련이 있는 거 아닙니까?

박범신 :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우리가 너무 과부하 돼 있어서, 아마 어느 나라든지 자본주의에서는 욕망과 경쟁을 피할 순 없겠지만 이렇게 극심한 욕망의 폭발과 경쟁을 경험하기는 세계적으로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우리나라처럼. 그래서 아까 좀 조숙하게, 우리가 조금 미쳐서 사는 게 아니냐 본 정신으로 사는 게 아니지 않나. 이 안에서 살고 있으면 자기가 약간 과부하 되고 제정신으로 안 살고 있다는 걸 사실 잘 몰라요. 히말라야 가서 두 주일만 걸으면 누구나 다 그걸 생각하게 됩니다. 너무나 사소한 것에 너무나 자기의 전 역량들을 걸고 살았다는 느낌. 이런 것들을 정말 행복해지기 위해선 해결해 가야지요. 그런데 무엇보다 지도 그룹이랄까, 정치가도 물론이겠지만 지도 그룹이 이 부분을 매우 심각하게 느끼고 잘 해 나가면 국민들이 더 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그동안 주로 작가로서 활동해 오셨는데 최근에 감투를 하나 쓰셨어요. 서울문화재단 이사장..

박범신 : 예. 그건 감투가 아닙니다. 문화재단이라는 건 문학, 예술활동을 지원하는 단체에요. 예산을 좀 따다가 문학, 예술단체에 나눠주는 일이죠. 거기 대표가 따로 있습니다.

박인규 : 사실 저희가 안호상 대표를 한 번 모셨습니다.

박범신 : 예. 이사장은 별로 하는 일이 없죠.

박인규 : 그래도 이사장님께서 방향이랄까 이런 걸 제시하시는 거 아닙니까?

박범신 : 예. 예산 결산, 심의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일이라고 해서, 별로 할 일은 없고. 오세훈 시장이 굉장히 문화시장이 되고 싶어 하는 분입니다. 그리고 문화적인 감수성을 잘 갖고 있어서 그런 분들을 문화예술계에서 활용해야 한다고 할까.... 활용한다고 하면 오 시장은 또 기분 나쁠지 모르겠는데

박인규 : 아니요, 더 좋아하실 겁니다. 공복이시니까

박범신 : 예. 활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좀 역할을 맡아 달라고 해서 맡았는데, 아까 말씀대로 크게 하는 일은 없어요. 다만 문화예술이 지금까지는 이를테면 우리가 좋은 공연 하나를 보기 위해서 국립극장이나 예술의 전당으로 와야 되지 않습니까. 저 개인적으로는 문화 예술의 훈향이 골목골목, 에스컬레이터 같은 걸 타고 소외된 계층의 골목길까지도 문화가 스스로 찾아가는 시스템 같은 걸 만드는 데 서울문화재단에서 좀 기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박범신 이사장님이 계시니까 기대를 좀 해보겠습니다. 박범신 작가, 하면 영원한 청년작가라는 별명도 있으시고 본인 스스로도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이제 연세는 이순이 넘으셨어요. 물론 요즘 60도 청춘이라고는 합니다만.... 앞으로의 작가활동이랄까 본인의 인생계획이랄까. 마지막으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박범신 : 생물학적 나이는 작가에겐 사실 중요하지 않구요. 요즘은 사실 소설을 많이는 못 쓰고 있는데 제가 청년작가라는 호칭으로 불리고, 그 호칭을 거부하지 않고 있는 것은 저는 죽을 때까지 그냥 현역작가로 남고 싶습니다. 현역이라는 느낌이 강한 작가의 이미지로 가고 싶고. 그래서 그렇게 불리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현역작가답게 문학현장에서 단편부터 큰 소설까지 계속해서 써 갈 생각입니다

박인규 : 우리 사회가 워낙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데 이런 사회에서 뭔가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작품 많이 쓰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박범신 : 뭘 준비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우리 시대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씨를 초대해 그가 히말라야 산을 찾는이유와 최근에 맡게 된 서울문화재단 이사장 활동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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