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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이미 합의…논의가 2%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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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남북정상회담 이미 합의…논의가 2% 넘친다"

[기고] 남북관계의 '빈곤'과 정상회담 논란의 '과잉'

남북정상회담 논의가 우리 사회에서 가열되고 있으나 정작 정상회담을 할 주역들은 조용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시종일관 정상회담은 시기상조라고 말하고 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도 별다른 언급이 없다.

2000년 6.15 공동선언에서 남과 북은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청하였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했다"고 약속했다. 남과 북은 6.15 공동선언의 이행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2차 정상회담의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6.15 선언 이후 7년이 지나는 동안 2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근접한 적은 2차례가 있었다. 첫 번째는 김대중 정부 시절이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2월 5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측의 제안으로 이르쿠츠크에서 김대중, 김정일, 푸틴(러시아 대통령)의 3자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방안을 논의했으나 무산됐었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이 남쪽으로 내려와야 한다, 서울에 오지 못하면 제주도나 휴전선 가까이라도 와서 해야 한다며 내가 (러시아측의 제안을) 거절해 진전이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처럼 당시 정상회담에 합의하지 못했던 이유는 개최장소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여정부에 들어와서도 정상회담의 필요성에 대한 말은 무성했다. 실제로 정상회담 개최를 남북이 합의한 적도 있었다. 2005년 6월 17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과 면담했을 때이다.

정동영 장관은 지난해 12월 26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정상회담 개최를 합의했던 상황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설명하였다. 이 때의 합의는 6.15 선언 이후 정상회담에 대한 남북 양쪽의 공식적인 첫 번째 합의였다.

'빠른 시일'에 남북 정상회담 열기로 합의

6.15 공동선언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이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시기와 장소를 명기했다. 정동영 장관이 김정일 위원장과 합의한 내용은 '적절한 시기'를 '가능한 빠른 시일 내'로, 회담 장소를 '서울'이 아닌 '김정일 위원장이 선택하는 제3의 장소'로 변경한 것이라고 한다.

그로부터 두 달 후 김기남 북한 노동당 비서를 단장으로 한 북측 대표단은 8.15 통일대축전을 위해 서울을 방문했다. 이때 김기남 비서는 현충원을 방문해 남측 여론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당시 북측 인사들은 또 남측과 정상회담에 대한 후속협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현 정부 들어 정상회담 개최에 가장 근접한 시기는 바로 이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후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이 채택되어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은 더욱 무르익었으나, 미국이 북한의 위조지폐문제를 제기하며 9.19 공동성명이 이행되지 않음으로써 정상회담 논의도 실종되고 말았다.

정동영 전 장관은 2005년 당시 정상회담에 대해 북측과 협의한 사실을 여러 차례 공개했다. 장관 재임중이던 2005년 12월 28일에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6.17 (김정일) 면담에서 2차 정상회담을 제기해 대화를 나눴고 개최 원칙에 합의"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그동안 정상회담에 대한 남북의 논의는 비교적 투명하게 공개된 셈이다.
▲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났던 2005년 6월 남북정상회담은 사실상 합의가 된 것이었다. ⓒ연합뉴스

정상회담, 항상 열려 있어

정동영 전 장관이 정상회담에 대해 김정일 위원장과 합의했다는 사실은 정상회담 개최와 관련해서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첫째, 6.15 공동선언에 이어 다시 한번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합의했다는 그 사실 자체다. 이는 정상회담은 여전히 살아 있는 과제지만, 현재의 정세 때문에 땅 밑에 잠복해 있을 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여건만 무르익으면 정상회담은 언제든지 열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정세가 변하면 정상회담에 대한 남북의 합의는 다시 표면 위로 올라설 것이다.

셋째, 2005년 남북 최고위급의 특사가 서울과 평양을 공식 방문한 가운데 정상회담을 논의했으므로 정상회담을 추진할 수 있는 통로는 이미 확보되어 있다는 점이다. 정상회담은 조건만 성숙된다면 실무적으로는 쉽게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넷째,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국제정세가 긍정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남북 사이에서 정상회담을 약속했지만, 대북 금융제재 문제처럼 미국의 대북정책이 강경해지자 남북의 합의가 이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남북정상회담은 여전히 살아 있는 상태다.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고, 한반도의 평화에 대해 합의하며, 민족 공동의 번영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현 정부에서 남북이 이미 정상회담에 대해 합의했다는 사실도 그것이 여전히 살아 있는 상태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에 막힌 남북관계

하지만 정상회담은 희망한다고 해서 이뤄질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다. 분위기가 무르익어야 추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아무런 조건 없이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만 한다고 해서 그것을 통해 얻고자 하는 목적이 달성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상회담을 열기 위해서는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의 미묘한 관계에 대한 전략적 고찰이 필요하다. 그에 대한 고려가 없는 정상회담은 '사진 찍는' 정상회담이 돼버릴 것이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는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북미관계가 남북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례는 무수히 많이 있다.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그해 10월에는 북한의 조명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과 미국의 울브라이트 국무장관이 워싱턴과 평양을 교차로 방문했다. 그로써 북미관계는 급물살을 탔으나 부시 행정부 취임과 '악의 축' 발언은 그 물살을 바꾸어 놓았다.

2001년 3월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해 부시 대통령과 회담했다. 그 회담은 부시 대통령의 대북 강경정책을 확인케 해준 만남이었고 그 결과는 곧바로 남북관계로 이어졌다. 북한은 그해 3월초로 예정됐던 5차 남북장관급회담을 중단시켰다. 그 후 6개월 동안 당국간의 남북관계는 단절되고 말았다.

그 후 2002년 10월 미국의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가 북한을 방문해 고농축우라늄(HUE) 문제가 불거지면서 2차 북핵위기가 발생하였다. 이 여파는 남북관계에도 크게 미쳤다. 2003년 1월에 김대중 대통령의 특사로 북한을 방문한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수 없었을 정도였다.

한반도에서 냉전체제가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본질이 바로 북한과 미국의 정치군사적 대립이기 때문에, 북미간의 대립은 남북관계에 큰 영향을 미쳐 온 것이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현주소

남북관계가 북미 간의 적대적 대결을 완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면 좋겠지만, 남북관계가 북미관계를 압도하면서 발전할 수 없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서로'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서로 엉켜서 발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북핵 2.13 합의 이후 북미관계가 두드러지게 변화하면서 전반적으로 한반도 냉전구조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그러나 2.13 합의 이후 북미 간에 열리는 대화는 아주 초보적인 것일 뿐이다.

남북관계를 보더라도 철도·도로 연결에 대한 합의가 아직도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북한에 대한 쌀·비료 지원과 같은 인도적 조치들도 독자성을 갖지 못하고 2.13 합의 이행과 연계되어 있다. 아직 작년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전으로 남북관계가 완전히 복원되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즉 북미관계의 변화에 남북관계가 끌려가는 모습이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발전하는 상황은 아니다.

따라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 위해서는 △북미관계가 보다 성숙되어 한반도 주변의 정세가 안정되고, △남북 사이에도 정상회담을 개최할 정도로 대화와 협력이 진전되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이 충족된다면 남북정상회담의 개최는 북핵문제를 푸는 데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 것이며, 남북관계를 공존공영의 확고한 반석 위에 올려놓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기와 상황'

그러나 아직 조건이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으므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상회담 논의는 '2%' 넘치는 것일 뿐이다.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고 했다. 정상회담은 여론몰이로 개최되는 것도 아니고, 정치쟁점으로 만들어서 좋을 것도 없다. 정상회담은 시기와 상황이 중요하다. 정상회담에 대한 논의를 과열시키는 순간부터 정상회담은 무지개가 되어버린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점점 멀어져만 가는 무지개. "더 나아지기 위해 애쓸수록 우리는 좋은 것을 망치는구나"라는 리어왕의 독백이 떠오른다.
▲ 최고 동맹국인 미국도 모르게 추친했던 북일정상회담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연합뉴스

2002년 9월 북일정상회담이 이뤄질 때 북한과 일본은 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비밀접촉을 여러 차례 했다. 일본은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에도 접촉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을 미국에 알린 것은 공식 발표 사흘 전이었다.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을 추진하던 일본 관리들은 "도중에 정보가 새어 나가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모두 파산이다. 미국도 방해하려들 것이다"고 생각했다. (후나바시 요이치, <김정일 최후의 도박>, 47쪽) 일본과 같은 미국의 동맹국가도 북일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방해할까봐 철저히 보안을 유지했던 점은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거듭 말하건대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대해서는 이미 광범위한 합의가 되어 있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정상회담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는 여론이 반대여론에 비해 월등히 많다. 이처럼 정상회담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크기 때문에 실제로 그것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비공개적으로, 그리고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 물론 정상회담 개최를 남북이 최종적으로 결정한 후에는 공개적이고 초당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당연하다.

따라서 이제는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과열된 논의를 식히고, 차분한 마음으로 앞으로의 정세변화에 대비하는 것이 우선이다. 북미관계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남북관계를 한 차원 더 끌어올리고, 2.13 합의를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부시 대통령이 작년 11월에 하노이에서 언급한 남북미 3자 종전선언과 같은 조치에서 진전이 생기면, 남북정상회담은 당연히 열리게 될 것이다.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자는 것이 아니라 조건을 무르익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보야! 문제는 미풍(美風)이야

남북정상회담이 대선에 악용되는 또 다른 북풍(北風)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세를 변화시키는 것은 북풍이 아니라 태평양 건너편에서 불어오고 있는 미풍(美風)이라는 사실이다.

2.13 합의 이후 온갖 낙관적인 시나리오들이 나오고 있다. 북미수교를 비롯해, 남북미 종전선언, 남북미중 4개국 정상회담 등 각종 정상회담의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그 중 어느 하나도 확정된 것은 없지만, 이러한 낙관적인 예측들의 진원은 미국의 대북정책 전환이라는 점에 다시 한 번 주목해야 한다. 북미관계가 변화하면 남북관계는 필연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김영삼 정권 때에는 북한이 남한을 배제하는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 정책을 구사한다며 북한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래서 1994년 제네바 합의를 비롯해 북미합의를 할 때는 항상 남북대화를 해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되기도 했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한다면 앞으로 북미관계가 변화하는데 남북관계가 뒤따르지 않을 경우, 오히려 우리의 운명을 다루는 과정에서 우리가 소외된다고 질책해야 마땅할 것이다. 지금은 북풍을 염려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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