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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반전행동은 성전(聖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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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반전행동은 성전(聖戰)입니다"

팔레스타인과의 대화 <34>

당신의 고양이 샴세흐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나의 개 '나라'를 떠올립니다. 온몸이 흰 털로 덮여 있던 나라는 누군가 버리려는 것을 데려다 키웠고, 1년쯤 뒤에 나의 첫 시집이 나오던 날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5개월 뒤, 태어난 지 5개월 된 강아지가 우연히 내게 왔습니다. 그 개월 수가 같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어쩌면 나라가 죽은 날과 그 강아지가 태어난 날이 같을지도 모른다는, 그래서 '봄'이라고 이름 붙인 그 강아지와의 만남을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이 당신의 샴세흐로부터 느낀 의미심장한 시간적 일치를 나 또한 느낀 것입니다.
  
  햇수로 5년째, 봄이는 나라의 사진이 걸린 방에서 다른 개 두 마리와 함께 잘 지내고 있습니다. 분단국가 한국에선 몇 년에 한번씩 전쟁 발발에 대한 소문들이 떠돕니다. 대개 보수정당들의 선거용이었던 터라 이젠 양치기 소년의 고함쯤으로 들리기도 하는데, 드물게 그 소문의 신빙성이 높은 경우에 어떻게 피난을 가야 할까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나의 개 세 마리를 어떻게 데리고 무사히 이동할까 하는 것입니다. 그 난리통에 애완동물이란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고, 결국 개들은 버려질 것입니다.
  
  나는 이웃마을에서 이미 그러한 개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전쟁은 아니지만, 전쟁을 위해 들어설 미군기지 터를 닦는다고 250여 가구가 살던 한 마을을 통째로 내쫓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행여나 외신을 통해 들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그 시골 마을의 이름은 '대추리'입니다. 300만 평이 넘는 갯벌을 가래와 수레로 피땀 흘려 옥토로 만들어 가을이면 크게 수확을 한다고 하여 붙은 이름입니다.
  
  지금 그곳에는 이주를 앞둔 45여 가구만이 남아 있고, 적막한 골목길에는 버려진 개들만이 돌아다닙니다. 4년에 걸친 힘겨운 싸움 동안 원통함과 절망과 슬픔을 안고 하나둘씩 떠나간 집들이 떼놓고 간 개들입니다. 시골 사람들의 정서로는 마당에서 키우던 개를 아파트와 같은 실내에서 키운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남은 가구에서 음식이라도 챙겨주지만, 약 보름 뒤 대추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 그 개들의 운명은 죽음과 아주 가까워질 것입니다.
  
  나는 당신이 작년 가을,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실에서 한국 작가들과 만난 날을 기억합니다. 나 역시 그 자리에 함께하고 싶었지만, 대추리에 숨어 들어가 사흘째 날밤을 새우고 있었습니다. 봄에는 10여 대의 미군 헬기와 2만 명이 넘는 한국 군인과 전투경찰들이 그 넓디넓은 논에 철조망을 치고 마을 주민들이 손수 지은 학교를 부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연행되고 통곡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구가 또 마을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군데군데 생긴 빈집들을 철거하겠다고 전투경찰과 철거 전문 용역들이 들어온다고 했습니다.
  
  그 철거를 막겠다고 첩보영화에서처럼 야밤을 틈타 논두렁을 기어서 들어온 사람들도 있었고, 유골함을 들고 장례차로 위장하거나 주민의 승용차 트렁크에 숨어 들어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사흘을 기다리다 당신이 작가회의를 찾은 그날 드디어 빈집 철거가 강행되었던 것입니다. 인권운동가들이 쇠사슬을 몸에 두르고 지붕 위로 올라가 10여 채의 집을 겨우 지켰고, 많은 사람들이 굴삭기 앞에서 용역들과 몸싸움을 벌였습니다. 우리의 무기는 늘 맨몸이었고, 싸움은 늘 처절했습니다.
  
  대추리의 고통과 슬픔은 팔레스타인의 고통과 슬픔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전쟁광 미국의 야욕으로 피투성이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 원인은 같습니다. 그러나 한국 내에서도 팔레스타인 이야기보다 대추리 이야기를 더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적어도 신문의 국제면을 읽는 사람이라면 팔레스타인이나 이라크나 레바논 사정은 알 것입니다. 한국의 언론은 자국 내의 전쟁 관련 사건조차 다루지 않습니다.
  
  친미정권을 둔 덕분입니다. 사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도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얼마만큼 이야기를 해야 될까 난감합니다. 이 글이 당신에게 전해질 날조차 기약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외국 작가들이 한국에 머무는 동안 대추리를 한 번이라도 방문하기를 소망했으나, 단 한 명 베트남의 시인 찜짱만이 다녀간 것이 지금도 안타까움으로 남습니다.
  
  당신과 당신의 동료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아직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글을 쓰듯이 우리는 대추리에도 사람이 살고 있으며 한국 내의 미군기지가 이곳으로 집결하는 것은 한반도의 평화를 넘어 세계 평화에도 직접 영향을 미친다는 진실을 알리기 위해 글을 썼습니다. 화가들은 그림을 그렸고, 가수들은 노래를 불렀습니다. 한 달 동안 서울시 한복판에서 수백 명의 문화예술인들이 돌아가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공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천문학적인 자금과 막강한 물리력으로 무장한 미국과 한국 정부의 힘을 당해낼 수 없었습니다. 곧 사라지게 될 그 마을에는 우리의 시와 그림과 노래가 쓸쓸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남은 45여 가구가 인근 마을로 함께 이주하게 된 것입니다. 50여 년 동안 한 마음으로 살아 온 주민들은 생명과 평화의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성스럽고 처절하게 싸웠고, 마을도 사람도 갈가리 찢기고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간신히 원래의 5분의 1만이 다른 터에서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예술인들은 대추리에 있는 작품들을 새로 조성될 마을에 옮겨가기 위해, 그 눈물겨운 예술 투쟁의 과정을 역사에 남기기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다. 지도상에는 이제 원 대추리가 아닌 새 대추리가 새겨질 것이고, 새 대추리는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와 인권을 증언할 역사관이 될 것이며,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인 전쟁 반대를 위한 우리의 새로운 전초기지가 될 것입니다.
  
  2년 전, 나는 한국에서 자카리아 모하메드와 아부 하쉬하쉬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그때만 해도 당신들의 고통과 슬픔에 대해 절감하지 못했고 전쟁 또한 나에겐 피상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본격화된 대추리의 투쟁에 동참하면서 나는 전쟁이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특히 내 또래인 아부에게 많이 미안했습니다. 부디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전 세계가 탐욕과 광기에 휩싸인 미국식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 있는 한, 우리는 평화로울 수 없으며 우리의 안녕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늘 서로를 걱정하며 살아야 합니다. 당신과 당신의 고양이가 헤어지지 않기 위해, 내가 나의 개와 헤어지지 않기 위해.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www.palbridge.org)'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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