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쌀·비료 지원에 대한 이재정 통일부 장관의 말실수가 이면합의 논란을 촉발시키면서 이 장관의 설익은 태도가 모처럼 훈풍을 타고 있는 남북관계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세 판단을 정확히 하고, 신중하지만 적극적인 행보를 취해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 2.13합의 이행의 선봉장이 되어야 할 통일부 장관이 그렇잖아도 2.13합의가 탐탁찮은 세력에게 공격의 빌미만 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면합의' 쓰고 싶은 이들 존재 몰랐나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북한에 쌀 40만 톤과 비료 30만 톤을 제공키로 '합의'했다고 말했다가 10분 뒤에 '그것은 북한의 요구사항'이라고 말을 바꾼 2일의 해프닝은 그 결정판이었다.
쌀·비료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량과 방법은 하위 회담인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협위) 혹은 적십자 채널에서 협의되기 때문에 장관급회담 공동보도문에는 그 내용을 담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작년 4월 제18차 장관급회담 때 이종석 당시 통일부 장관은 종료 직후 기자회견에서 "비료 20만 톤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던 것과 같이 장관급회담에서 지원에 대한 합의를 보는 것은 의례적인 일이다.
당시에도 이 내용은 공동보도문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처럼 '이면합의' 논란이 나오지는 않았는데, 쌀·비료 지원은 원래 그렇게 하는 것이라는 이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독 이번에만 이면합의 의혹이 나오는 것은 '북핵과 남북관계의 병행 발전'을 그토록 강조하던 정부가 2.13합의가 나오기도 전에 북측에 장관급회담을 위한 접촉을 제의하면서 사전 시나리오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고, 2.13합의 이행도 되기 전에 대규모 지원을 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그 어느 때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성과를 선전하기에 급급했던 이 장관의 조급한 태도와 그에 따른 말실수는 '이면합의'라는 말을 쓰고 싶어 했던 일부 언론과 야당에 좋은 '먹잇감'을 던져 준 것이었다.
설익은 발언 거듭…'이재정의 입은 가볍다' 이미지만 만들어
이 장관의 오락가락하는 발언이 문제가 됐던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이 장관은 지난달 21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장관급회담에 가면) 여러 회담의 가능성에 대해 논의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애매한 말을 했다. 이는 남북정상회담을 논의할 수도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었고, 정상회담에 대해 극도의 경계심을 나타내고 있는 한나라당을 불필요하게 자극했다.
지난 1월 2일 신년사에서 "북한의 빈곤에 대해 같은 민족으로서 책임을 감수해야 한다"고 했던 것도 쓸데없는 논란을 낳은 발언이었다. 그 말은 정부가 대규모 대북 지원을 검토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을 하기에 충분한 것으로 당시의 정부 방침과도 어긋나는 것이었다.
이에 이 장관은 "장기적 논의가 필요하다"며 "같은 민족으로서 도덕적 책임감을 강조한 것"이라고 해명했는데 이같은 잦은 해명이 '이 장관의 입은 가볍다'는 이미지를 굳히는 데 단단히 한 몫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남북관계 전문가는 "이 장관에 대한 공격은 2.13합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측의 정치공세 성격이 강하다"고 전제하면서도 "하지만 조그만 실수도 논란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통일부 장관 때문에 남북관계가 발목 잡힌다는 말만은 듣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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