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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英, '이라크유전 개발권 넘겨라' 압력"

이라크정부 '석유법' 초안 심의중...'석유전쟁' 현실화

이라크 정부가 미개발 유전에 대한 장기적 통제권을 서방의 다국적기업에 넘기도록 하는 내용의 '석유법'을 통과시키도록 영국과 미국으로부터 압력을 받고 있다고 영국의 <옵저버>가 25일 보도했다.

이라크 정부가 의회에 제출하기 위해 준비중인 석유법 초안을 입수한 <옵저버>는 미개발 유전을 국가 소유로 유지하면서도 석유 시추에 관한 독점적인 권한을 이른바 '개발 계약'을 통해 외국 사기업에 양도하고 그 권한을 30년 이상 연장할 수 있다는 내용이 그 법에 포함되어 있다고 밝혔다.

엑손모빌이 이라크 석유 결정권 가질수도

이와 관련해 미국의 외교문제 전문 웹사이트인 '포린 폴리시 인 포커스(FPIF)'는 지난 22일 내전으로 불안정한 상황에 있는 이라크에서 유전 관련 입법은 긴급한 사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법안이 추진되는 것은 조지 부시 미 행정부와, 해외 석유 기업,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압력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FPIF는 석유법의 모든 조항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라크의 경제적 안정과 발전보다는 해외 석유 기업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조항들이 있다며, 이라크의 주권과 재정 안정, 민주주의 등에 해로운 조항이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새 석유법에 따르면 미개발 유전에 대해서는 이라크 국영 석유기업(INOC)이나 이라크의 민간기업에 개발 우선권을 주지 않고, 해외 기업들도 동등하게 입찰에 참여하도록 되어 있다. 특히 해외 기업이 개발권을 따낼 경우 이라크 기업을 하청업체로 둘 필요도, 벌어들인 돈을 이라크에 재투자할 필요도 없게 되어 있으며, 이라크 노동자들을 고용할 의무도 없다.

이 법은 또 '이라크 연방 석유·가스 위원회'를 만들어 유전 개발 관련 계약에 관한 최종 결정권을 주도록 하는 한편, 해외 석유 기업 관계자들이 의결 정족수에 대한 제한 없이 이 위원회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예컨대 석유 기업인 엑손모빌의 경영자가 이라크의 석유와 가스에 관한 계약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가질 수 있어 자원에 관한 국가의 주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위원회는 석유 개발 및 생산과 관련해 프랑스, 중국, 러시아 등과 맺었던 과거의 계약을 바꿀 수도 있게 되어 있다. 또 INOC나 외국 기업 혹은 국내 기업 등 계약자들이 석유 생산 단계에서의 결정까지 할 수 있게 되어 있어 이라크 정부와 석유수출국기구(OPEC) 등 국제기구와의 관계 역시 심각하게 훼손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

전문가들은 나아가 이 법이 이라크 중앙 정부의 힘을 약화시키고 자원에 관한 중대한 정책 결정권을 지방자치단체에 넘김으로써 이라크를 시아-수니-쿠르드 세 개의 독립국가로 분할하는 씨앗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 미국과 영국이 이라크 석유 개발권을 해외 다국적기업에 넘겨주는 법안을 통과시키라고 이라크 정부를 압박한 것은 이라크 공격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를 다시 증명한 셈이다. ⓒ연합뉴스

석유 노동자 저항 거세질 듯…또 하나의 불안 요소

<옵저버>에 따르면 킴 하월스 영국 외무차관은 이라크 정부가 석유법의 문구에 대해 영국의 석유 대기업들과 협의해오고 있다고 시인했다.

하월스 차관은 앨런 심슨 영국 노동당 의원의 질의에 대한 서면답변에서 "이라크 정부와 영국 석유 기업간의 협상에는 이라크가 생각하고 있는 계약의 방식까지 망라되어 있다"고 밝혔다.

이 신문은 그러나 이라크의 석유 노동자들이 세계 2위의 매장량을 자랑하는 이라크의 석유 자원은 이라크 정부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석유법의 내용이 정치적으로 커다란 폭발력을 가졌다고 전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결성된 석유 노동자 조합의 지도자인 하산 주마 마와드 알 아사디는 최근 "역사는 이라크의 부와 이라크인들의 운명을 제멋대로 주무르는 이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 이라크 정부가 미국과 영국의 압력에 못 이겨 석유법을 통과시킨다면 강력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는 경고다.

영국의 반전운동가들도 이라크가 내전으로 내몰리고 있고 이라크정부 역시 무기력한 처지에 있기 때문에 이라크 정부가 해외 석유기업과의 협상에서 취약한 입장에 처해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국의 반전단체의 '빈곤과의 전쟁(War On Want)'의 핵심 활동가인 루스 태너는 "이라크는 점령 상태에 있고 국민들은 끝없는 불안과 심각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며 "그러나 영국 정부의 지원 하에 다국적기업들은 이라크의 석유 자원통제권을 빼앗으려 한다"고 비난했다.

영국 엑세터 대학의 이라크 경제 전문가 카밀 마흐디는 미국과 영국을 비난하며 "석유법에 관한 모든 아이디어들은 외부의 압력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석유법에는 부정부패를 차단하거나 정부의 통제권을 약화시키는 것을 막는 보호장치도 없다"고 지적했다.

앨런 심슨 영국 노동당 의원은 이에 대해 "이라크 전쟁이 대량살상무기 때문이 아니라 (석유의) 대량 생산 수단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라며 "이는 점령국들에 의한 전리품 나눠갖기 사기극"라고 비난했다.

이라크의 현재 석유 생산량은 하루 200만 배럴로 전쟁 전보다 다소 낮다. 미국과 영국은 이라크가 석유 생산량을 확대하려면 해외 투자를 긴급히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전단체 관계자들은 다른 모든 중동 국가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석유를 생산한다며 이라크도 석유 산업을 통째로 외국기업에 맡기기보다는 스스로의 힘으로, 즉 외국 돈을 차입하고 석유 판매 대금으로 그 빚을 변제하는 방식으로 석유자원을 개발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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