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대화가 단순한 대화에 그쳐서는 안 된다."
"대북 지원을 한국이 혼자 떠맡는 상황은 없다."
우리 정부 당국자가 5일째를 맞고 있는 베이징 6자회담에서 한국 대표단이 견지하고 있는 세 가지 원칙을 공개했다.
이 당국자는 첫째 원칙인 '단순한 동결 불가'와 관련해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가동 중단하는 것, 그야말로 스위치만 내려서 동결하는 상황으로 끝나면 안 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한국과 미국이 북한 핵시설의 동결(freeze)이나 가동중단(cease)이 아닌 폐쇄(shut down), 봉인(seal)을 원한다는 뜻이며, 나아가 핵시설을 돌이킬 수 없게 파괴시키는 불능화(disabling)까지도 추구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회담 첫날 밤 중국이 돌린 합의문서 초안에는 핵시설을 60일 이내에 폐쇄한다는 표현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동중단을 고집하는 북한은 폐쇄조치로까지 나아간다면 대북 에너지 지원의 일반 기준인 중유 연간 50만t 보다 더 많은 지원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미국은 역시 '많은 이행조치에는 많은 지원, 적은 조치에는 적은 지원(more for more, less for less) 원칙에 따라 상응조치로 주어질 에너지 양을 차등화하고 있고 '중유 50만t에서 100만t 내외 지원' 사이에서 협상이 진행되는 것으로 보인다.
테러지원국 해제 등 구체 대화 필요하다는 뜻
북미가 단순한 대화만을 해서는 안 된다는 두 번째 원칙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이번 회담이 타결되면 북한과 미국이 더 본격적인 대화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그냥 얘기만 하고 마는 대화보다는 결과 지향적인 대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이 제시한 초안에는 2005년 9.19공동성명의 이행을 위한 5개의 워킹그룹(실무회의)을 구성하자고 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중에는 북미 관계정상화를 다루는 그룹이 있다.
우리 대표단은 이번에 합의가 되고 워킹그룹이 가동되면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한 것을 삭제하는 등 '대북 적대시정책'으로 표현되는 각종 제재와 정책들을 해소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이다. 이 원칙은 미국의 행동변화를 촉구하고 설득하는 측면이 큰 것으로 해석된다.
'덤터기'는 없다?
대북 에너지 지원에 대한 세 번째 원칙에 대해 이 당국자는 "언론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우리가 대북 에너지 지원을 혼자 하거나 대부분 떠맡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 방향으로 교섭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원칙은 지원의 부담을 한국에 떠넘기려는 미국, 일본 등을 견제하는 동시에 현재 한국 언론에서 난무하고 있는 '덤터기설'을 차단하기 위한 측면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북한이 핵폐기 초기조치를 수용할 경우 제공될 에너지에는 중유 외에 전력 등 다른 에너지원도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각국이 처한 사정에 따라 다른 형태의 에너지 형태도 조합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6자회담 우리 측 수석대표인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11일 이와 관련해 "기본적으로 5개국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게 대전제"라면서 "우리가 다 떠맡으면 6자회담을 할 필요가 없다. 결정이 되면 우리가 혼자 지원을 한다고 해도 다른 나라들이 가만 안 둘 것이다"고 말했다.
북한은 현재 상응조치로 받을 에너지의 양에 관해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이날 외교소식통을 인용해 "조선(북)은 에너지 지원을 통해 미국의 정책전환 의지를 가려보는(평가하는) 현재의 원칙적 입장을 고수해 나갈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신문은 이날자 다른 기사에서 "외신들은 조선에 대한 지원을 양적인 측면에서만 취급함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는 보도를 되풀이 하고 있다"며 '명분 중시' 입장을 강조했다.
회담 종료 오리무중
한편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오늘(12일)이 마지막 날"이라며 빠른 합의를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 정부 당국자는 "각국간 논의가 더욱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심도 있게 진행됨에 따라 회의는 내일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고 말했다.
12일에도 각국 수석대표들은 양자 및 다자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힐 차관보와 북한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도 회담 시작 후 두 번째로 양자협의를 가졌다.
정부 당국자는 합의문 문안의 최종 조율을 위한 6개국 수석대표회의 일정이 잡히지 않았다고 전한 뒤 "회담이 언제까지 진행될 것이라는 데 대한 의장국 중국의 언급도 아직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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