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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남성들, '자식 키우는 재미' 뺏긴 줄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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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대한민국 남성들, '자식 키우는 재미' 뺏긴 줄도 모른 채..."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2/09] 동물행동학자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 (하)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진정한 과학자는 실험실에서 벗어나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동물행동학자 최재천 교수는.. 21세기는 학문의 경계를 뛰어넘는 통합 학문의 시대라며 통섭의 원리를 주장하는데요. 학문 간 벽을 허물고 통합적으로 사고해야만 더 크게 발전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실제로 자기 자신도 실험실 밖에서 연구하는 현장형 학자이자..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참여형 학자로.. 그동안 인문학적 틀 속에 갇혀 있던 호주제 폐지에 대해 생물학적인 접근을 시도해.. 큰 성과를 이루기도 했는데요.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어제에 이어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최재천 교수를 초대해.. 그가 강조하는 통섭의 원리는 무엇인지.. 또, 과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여성운동과 우리 사회의 현실은 어떤지..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동물행동학자 최재천 교수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인규 : 어제에 이어서 모셨습니다. 원래 서울대에 계시다가 이화여대로 옮기셨어요. 우스갯소립니다만 동물행동학적으로 여학생들이 많아서 옮기신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는데, 옮기신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최재천 : 변신을 한 번 해볼 만한 나이가 됐다고 생각했고, 뭔가 새로운 프로그램을 이화여대에서 제가 펼치는 데 도움을 주겠다고 해서, 우리나라 생물학이 근래 몇 년 동안 굉장히 빠른 속도로 발달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조금은 불균형발달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 실험실에서 하는 생물학. 이른바 분자생물학 분야죠. 그 분야만 너무 지나치게 빨리 뛰고 있고, 야외에서 하는 생물학. 저는 큰 생물학이라고 이름 붙이는데 그 부분이 너무나 발달이 저조해서요. 생물학은 물리, 화학이랑 달라서 분석만 해서는 좀 곤란하거든요. 결국은 복합적인 생명현상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쪼개고 쪼갠 다음에 이걸 다시 또 붙어요.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나 영국의 발달된 생물학은 언제나 이 두 분야가 같이 가거든요. 큰 생물학을 한 번 발달시키는 계기를 마련해 보려고 제가 모험을 한 번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영어로 해서 좀 뭐하지만 말하자면 생물학이 너무 마이크로 쪽으로만 가니까 마크로 쪽도 좀 해야겠다는 건가요?

최재천 : 맞습니다.

박인규 : 작년에 가실 때 정운찬 서울대 총장이 굉장히 속쓰려 하셨다던데...

최재천 : 많이 섭섭해 하셨는데 마지막으로는 저한테 대한민국 교수사회를 위해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나라는 너무 교수들이 붙박이로 앉아있다 보니까 오히려 교수 처우가 별로 좋지 않잖아요. 외국은 교수들이 많이 옮겨 다니는데 그러면서 속말로 하면 교수들 몸값이니 처우니 연구설비 등이 좀 더 좋아지리라고 생각되신다.. 그런 생각을 갖고 가면 보내주신다. 그래서 떠났습니다. (웃음)

박인규 : 언론에서 보니까 이화여대에서 굉장히 큰 집무실을 갖고 계시다. 250평이다 하던데요..

최재천 : 보도가 잘못 됐네요. 그래도 큽니다. 100평 정도를 쓰고 있으니까요

박인규 : 통섭원이라는 연구소 이름을 쓰셨어요. 통섭이라는 말은 우리나라에서 잘 안 쓰던 말인데 불교에서 쓰던 말로 알고 있고. 어떤 의미입니까?

최재천 : 제가 제 지도교수님의 책 '실리언스'라는 책을 번역하면서 그 말을 도대체 어떻게 번역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제깐에는 만들었어요. 한자 '통'자 중에서 제일 좋을 것 같은 '통'자와 '섭'자 중에서도 골라서 '통섭'.. 큰 줄기를 잡는다는 의미의 통섭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는데, 만들고 정말 며칠 후에 어디 가서 발표를 하다가 불교학 하시는 동국대 교수님이 저한테, 그게 원효대사의 화엄사상 설명할 때 자주 쓰셨던 한자를 정확하게 쓰셨다... 카피라이트 문제가 영..... 저는 처음에는 모르고 만들었는데, 그래서 한 10초 동안 기분 나빴습니다. 아.. 내 것이 아니네.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원효대사님이 만든 말인데 좋은 말임에 틀림 없구나 해서 아주 좋았습니다.

박인규 : 통섭이라는 건 이른바 분과학문의 경계를 넘자는 걸로 아는데.. 예전에는 학제간 연구라는 말이 있었고. 학제간 연구와는 다른가요?
▲ ⓒkbs 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최재천 : 어떻게 보면 학제간 연구죠. 그런데 구태여 강조해서 설명한다면 학제간 연구하자고 해서 우리 참 많이 해봤거든요. 여러 사람들이 해봤는데, 다 해보고 나서는 정말 학제간 융합을 이뤄 봤느냐, 아닌 것 같아요. 대개 서로 다른 분야에 있는 분들이 자기 꼭지 하나씩 써가지고 마지막에 보고서 쓸 때 책임연구자한테 제출하면 책임연구자 선생님이 콱 찍어서 제출하고 끝났어요. 학문간의 허물기나 섞기가 거의 안 이뤄졌다는 거죠.

그래서 저는 말꼬투리 잡는 건지 모르지만 학제간 연구를 영어로 'interdisciplinary'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해보고 나니까 inter는 별로 못하고 multi. 다학문적 유희만 자꾸 하고 말더라. 저희는 이제는 trans라는 말을 붙여서 범학문적 접근을 이제 해야겠다. 학문과 학문 간의 경계가 무너짐은 물론이고 학문과 학문이 만나서 녹아서 새로운 학문으로 거듭나는 경험들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 21세기 학문은 그리 밝지만은 않을 것 같다. 그런 뜻에서 제가 통섭을.. 제가 얼마 전에 비빔밥에 비유를 해봤는데요, 여러 가지 나물들을 섞고 고추장도 섞고 참기름도 뿌리면 아주 독특한 맛이 나잖아요. 누가 비비느냐에 따라서 다 맛이 다른데.. 그래서 제가 나름대로 좋은 비유를 했구나 했는데 어떤 분이 제 글을 가져다가 더 발전시켜서 비빔밥이 아니라 김치라고 설명하시더라구요. 비빔밥은 기껏해야 섞어 놓은 것에 불과하고 김치는 발효가 된다는 거죠.

박인규 : 전혀 새로운 것이 나온다.

최재천 : 녹아서 정말 발효돼서 새로운 맛이 나온다. 그래서 김치라고 하시라고 하더라구요. 아이고 좋습니다.. 그랬어요.

박인규 : 어쨌든 학문간의 벽을 허물고 커다란 진리랄까 진실을 알기 위해서 합동작업을 한다는 의미인 것 같은데, 실제로 통섭을 위해서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일반인들이나 학계에서도 관심이 많을 것 같아요. 생긴 지는 1년 밖에 안됐지만 지금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 소개해 주시죠.

최재천 : 이제 한 6개월 된 셈입니다. 저희가 지난 9월 2일에 개원심포지엄을 하고 시작했으니까요. 통섭원은 그렇게 대단한 큰 건물을 갖고 있고 대단한 조직을 가진 기구는 아니구요, 한 마디로 얘기하라면 학문사랑방. 조금 더 앞으로 욕심은 내고 있는데, 발전시킨다면 궁극적으로는 저는 고려시대 때부터 만들어졌던 집현전을 한 번 부활시키는.. 집현이잖아요. 학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는 거죠.

학문 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게 옛날에는 아리스토텔레스나 다빈치나 우리나라 같으면 정약용 선생님 이런 분들이 학문의 경계를 염두에나 뒀습니까? 다 했었죠. 그런데 그때는 지식의 양이 그렇게 방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 사람이 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이제는 절대 다빈치나 다산 선생은 절대 다시 태어나지 못합니다. 그 많은 지식의 양을 어떻게 감당합니까.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얼마 전부터는 깊게, 전문화 하는 방향으로 일을 했잖아요. 그런데 전문화 하고 나니까 옆에 전문화 한 사람이랑 얘기가 안 되는 거죠.

결국은 깊이 파기 위해서 처음부터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방법을 찾아야 되는데 얼마 전 신문에서 가야금 명인 황병기 선생이 우리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하신 걸 읽었어요 '우물을 깊게 파려면 넓게 파라' 그런 말이 있답니다. 듣자마자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김장독 묻을 때 김장독 둘레를 보고 그만큼만 딱 파고 들어갑니까? 절대 아니죠, 넓게 파죠. 저희가 전문화 하는 과정에서 무슨 우를 범했나 하면, 처음부터 좁게 파고 들어가니까 어느 정도 들어가서는 파기가 무지하게 힘들어지더라는 거죠. 혼자서 그 안에 들어가서 파는데 몸 비벼지고 안 파지는 거죠. 넓게 시작해야 되는데, 문제는 혼자서는 넓게 시작해 봐야 도저히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넓게 파되 여럿이 같이 파자. 결국은 학문 간에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개발하고 그래서 서로 얘기하면서 학문 간 장벽을 낮추면서 함께 깊은 우물을 파고 들어가자. 이게 바로 통섭원의 기본취지입니다. 누구든 지식을 원한다면 다 모여보자는 겁니다.

박인규 : 호주제 폐지할 때 증인으로 나오셔서, 사람 빼고 모든 생물의 족보는 여성 위주다. 그런 말씀을 하셔서 호주제 폐지에 상당히 기여하셨죠. 상도 받으셨죠. 전향을 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최재천 : 사실 좀 부끄러운데요, 여성친화적이거나 그런 데 앞장설 만한 인물이 못 되는데, 그냥 저는 처음에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이런 얘기를 그야말로 제가 이번에 낸 '인간과 동물' 책의 근간이 된 강의 중에 얘기했던 것 같아요 EBS에서. 동물 세계를 제가 굉장히 오랫동안 자연계에서 관찰했는데, 거긴 그냥 암컷의 세계다. 왜? 암컷이 번식의 주체니까. 수컷들만 모여 사는 종이라는 건 있을 수도 없고 암컷이 암컷을 낳는 과정 속에서 수컷이 필요한 경우에는 수컷이 생겨나는 경우도 곁다리로 있는 건데, 수컷이 주도권을 잡는 동물은 아무리 둘러봐도 사실 없다.

물론 수컷이 암컷 여럿 거느리는 것처럼 보이는 동물도 있지만 거기서도 사실 잘 파고 들어가 보면 긴 세월 주체세력을 이루는 건 또 암컷이다. 동물들은 호적을 정리할 이유가 없지만 만약 그런 게 있다면 거기의 호주가 수컷일 이유는 절대 없는 것 같다. 이런 얘기를 평범하게 했는데, 그게 여러 남성 동료들을 굉장히 기분 나쁘게 했더라구요. 그래서 공격을 좀 많이 받기 시작했는데, 전화 받기가 겁나던 시절에 받긴 받아야 되니까 가끔 전화를 받으면 대성통곡하시는 분들도 계셨어요. 도대체 이렇게 속 시원한 얘기를 들어본 적 없다면서, 몇 분들의 전화목소리에 이건 해야 되는 일이구나. 그래서 용기를 내서 글도 더 쓰고 책도 급기야는 내고. 그랬는데 마지막에는 그렇게 법정에까지 서게 된 거죠. 어떻게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습니다.

박인규 : 제가 어렸을 때 어떤 책에서 보니까 남자가 여자에 대해서 자랑할 수 있는 건 근육의 힘 빼놓고 다 열등하다.. 이런 말도 있었어요.

최재천 : 구태여 우열관계를 따질 건 없습니다. 수컷이 더 잘하는 게 분명히 있고 암컷이 더 잘하는 게 있고. 다만 역사를 놓고 보면 생물이란 모름지기 번식을 통해 재생산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재생산의 주체가 암컷이어서 어쩔 수 없이 세상의 주체는 암컷이다. 그 이론 밖에는 뭐..

박인규 : 이른바 남성답다는 거. 여성답다는 거. 남성성, 여성성이 유전자에 의한 탁월한 것인지, 아니면 사회적으로 길들여져서 그런 건지. 그걸 어떻게 봐야 되는 겁니까?

최재천 : 두 개가 다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집에서 강아지 여러 마리 키워 보시면 아시겠지만 확실히 수놈과 암놈 행동하는 게 좀 다르고. 유전적인, 유전자 수준에 이미 수컷으로 길들여질 수 있는 성향들이 어느 정도 돼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죠. 좀 전에 말씀하신 것처럼 수컷들이 근육의 힘이 강한 게 대체적으로 거의 모든 종에서 맞는 얘기고. 그래서 옛날 우리 조상들도 결국은 수렵과 채집을 하기 시작한 건데, 수렵을 여성들이 더 잘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게 남성의 직업이 된 거고. 여성들은 집 주위에서 견과류를 채집하는 일을 맡게 된 거니까요.

다만 그런 후에 우리가 문화적으로 지나치게 남성성과 여성성을 너무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했던 것. 저희 집에 강아지가 분양을 못해서 다 기르고 있는데요. 네 마리가 태어났어요. 세 마리가 암컷이고 한 마리가 수놈인데 수놈이 자기 여자형제들 누듯이 오줌을 눠요. 뭐냐 하면 우리가 상당 부분 환경적으로 키워 주는 면이 분명 있다는 거죠. 제가 그녀석 보고 그렇게 누라고 한 적 없어요. 그런데 주변에서 다 그러니까 자기도 그렇게 누고 있는데, 모르죠 언젠가는 자각을 해서 수놈처럼 누게 될지는 모르지만,

결국은 사회가 남성성과 여성성을 강조하고 강요하는 면도 분명 있다. 그래서 저는 섹스와 젠더는 분명히 다를 수 있다. 남성으로 태어나도 여성적 성향을 갖고 상당히 그런 면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을 택해서 일할 수 있는 것도 분명 있는데, 우리는 어려서부터 '야, 사내아이가..' 이렇게 하면서 사람을 키우기 때문에

박인규 : 그런 것을 터부시 할 필요는 없다..

최재천 : 그렇죠. 제 생각엔 절대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최 교수님께서는 여성운동이 잘 돼서 여성이 해방되면 진짜 덕 보는 건 남성이라는 말을 하셨어요. 많은 남성들은 남성의 권위를 무너뜨린다고 비판을 하실 것도 같은데.... 그게 어떤 의미인지 설명해 주시죠.

최재천 : 우리 사회의 남성들의 모습을 그려보겠습니다. 새벽같이 자는 아이 얼굴 보고 나갔다가 또 밤에도 일 있고 술자리 있고 해서 들어오면 또 자고 있죠. 자식하고 대화도 없이 자식을 키우고. 이 세상에 생물로 태어난 이유가 뭐냐고 저보고 물으면, 새끼 낳으려고 태어난 거거든요. 이게 생물의 기본 임무에요.

아무리 거창한 인생의 의미를 따진다고 해도 그건 다 2차적인 거구요 모름지기 생물로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자식 낳기 위해서거든요. 그게 바로 DNA가 우리를 만든 이유입니다. DNA를 복제해 내기 위해서. 그런데 그 자식을 키우는 권리, 재미를 대한민국 남성들은 뺏긴 줄도 모르고 반납하고 사는 겁니다,

만일 여성시대가 오면 여성들이 다 활개치고 남성들은 다 어디 쭈그리고 앉아 있어야 되는 시기냐, 이건 아니거든요. 남성과 여성이 함께 활동하는 시긴데 제가 생각하는 아주 이상적인 여성시대의 가족의 모습은 남편도 3일, 부인도 3일씩 직장을 나가고. 부인이 직장 나가는 날은 남편이 집에서 부인 도시락도 챙겨 주고 아침에 아이들 학교 보내고. 학교 보내고 나서..

이 얘기 잘못 하면 제가 주부들한테 혼납니다. 그런데 상당수 주부들은 요즘 사실 편한 분들도 계십니다. 웬만큼 다 해 놓고 가시고는 11시쯤 친구들과 카페에 모여서 친구들과 잡담도 하고 찜질방도 같이 가고 하시잖아요. 우린 왜 그러면 안 됩니까? 우리도 3일 집에 있는 시간 생기면 아이들 보내 놓고 우리끼리 모여서 산에도 가고 저녁에 한 3,4시 전에만 집에 와서 저녁상 보고 아이들 돌봐주고 아이랑 지내고. 이게 나쁜가요?

박인규 : 말씀 듣고 나니까 저도 굉장히 억울하단 생각이 드네요.

최재천 : 절대로 나쁜 게 아닙니다. 우리가 오히려.. 조금만 남성들이 손을 놓으면 되거든요. 여성들이 짐을 같이 들어 주겠다고 저렇게 아우성을 치고 계신데, '그래요 같이 듭시다'라고만 하면 되는데.. 모든 걸 뺏기나 걱정들을 하시는데 뺏기는 게 아니라 같이 한다고 생각하시구요. 물론 재정적인 문제가 걱정되시겠지만 그건 우리가 함께 논의해 가면 사회가 풀어낼 거구요.

두 사람이 3일씩 나가서 일하면 월급이 두 배는 안 되겠지... 저는 오히려 월급이 둘 둘 합해서 반 반 해서 1이 되지는 않을 것 같구요, 왜냐면 3일 집에 있어도 집에서도 일을 할거거든요. 그러니까 두 사람이 그런 식으로 일을 하면 1.5배는 될 겁니다. 그러면 가정도 더 풍요롭고 주말에는 다 같이 모여서 가족적인 분위기도 만들 수 있고. 이걸 왜 우리 남성들이 반대하느냐, 저는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된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박인규 : 말씀 듣고 보니 우리가... 남성들이 이른바 사회생활이란 것에 너무나 지나치게 비중을 두고 있는데, 어떤 생물로서의 본능이랄까 그것에 충실하는 게 더 행복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최재천 : 그렇죠.

박인규 : 최근 우리 사회에서 고령화 사회라는 말들을 많이 해요. 그건 바라보기 나름인 것 같은데, 그걸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장수화 사회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고령화 사회라고 하면 뭔가 부담이 많이 늘어난다는 느낌이 많고. 제 주위에도.. 제가 이제 갓 50이 넘었는데 벌써 은퇴한 친구들도 많아서 참 걱정이 되긴 합니다. 최 교수께서는 인생 이모작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인생 이모작이라는 게 말하자면 50 넘어서는 다른 걸 해보자는 건가요?

최재천 : 그렇죠. 50 전후가 여성들의 경우에는... 사회에서 폐경, 폐경 하는데 저는 그게 어감이 안 좋아서 '완경'이라고 하자고 하는데..

박인규 : 갱년기라는..
▲ ⓒkbs 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최재천 : 우리 인간 여성은 참 이상한 동물이어서, 평생 쓸 난자를 미리 정해서 태어나거든요. 그걸 다 쓰신 거예요. 더 이상 아이를 낳고 싶어도 못 낳는 거죠. 대충 한 50 전후해서 동물학자로서 제가 얘기하면 번식기가 대충 끝납니다. 그리고 나서 사는 인생은 자식 없이 사는 인생이죠. 물론 자식이 내 둥지에 없는 인생인데... 저는 아직 아이를 끼고 있는데, 그렇게 자식을 떠나보낸 분들은 다 그 인생이 무지하게 다르다고 얘기하시더라구요. 옛날에는 그 인생이 참 짧았잖아요. 그래서 환갑잔치도 해드리고 했는데. 환갑을 맞이하는 분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데 지금은 그 인생이 엄청나게 길어진다는 거죠. 그런데 그걸 준비 안하고 잉여인생으로 하고 적당히 소일하면서 죽는 날만 기다리지.

그런데 앞으로 인생 100세 시대가 올 거구요, 120 시대가 올 겁니다. 그런데 난자는 다 떨어졌거든요. 그러면 번식기는 50년 전으로 변화가 없는데 번식후기는 50년, 잘못하면 100년, 잘못하면 150년까지 늘어납니다. 그걸 준비 안하고 적당히 죽을 날만 기다린다? 지겨워서 못 기다리죠.

준비를 철저히 해서, 보기 나름이죠. 관점의 변혁을 좀 일으키자는 거죠. 어영부영 소극적으로 제2의 인생을 맞지 말고 적극적으로, 적어도 한 40대 초반 정도부터는 제2 인생에 대한 준비를 아주 조직적으로 착실하게 해서 살아보자. 싫건 좋건, 본인이 원하건 안 원하건 대한민국의 웬만한 사람은 앞으로 제2 인생을 30,40년 살아야 합니다. 평균수명 때문에. 준비해서 살자. 인생을 아예 이모작 하자. 제가 그걸 주장하고 있는 겁니다.

이게 굉장히 생물학적인 문제기 때문에 그렇거든요. 이 세상 모든 동물 중에서 우리처럼 고령화 하는 동물은 아무도 없습니다. 도대체 뭐하자고 번식도 안 하면서 이렇게 오래 살겠다고 버티냐. 무지하게 재밌는 진화적인 현상이거든요. 그걸 저는 연구하면서 결국은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는 건 생물학적 배경이 있으니까 그걸 인식하고 문제를 긍정적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한 번 풀어보자는 거죠.

이게 앞으로 이런 일이 얼마나 심각하게 벌어질 거냐에 대해서는 제가 얘기 안 해도 워낙 많은 사람들이 지금 얘길 해놔서, 굉장히 심각한데. 우리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서 너무 소극적이란 생각이 저는 듭니다. 그래서 이 시한폭탄이 터지기 전에 빨리 준비해야 되는데 시간이 얼마 없어요. 2020년이 되면 65세 이상 노령인구가 15세 미만 어린이 인구보다 많아지는 역전현상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사실은 2020년은 지금부터 13년 남았으니까 시간 좀 있네 하시겠지만 통계청 자료를 들여다보시면 중요한 인구는 그 중간 인구거든요. 15세부터 64세. 즉 노동인구라고 부르는 인구. 이 노동인구 자체가 2016년, 지금으로부터 9년 후면 노동인구 자체가 줄어든답니다.

박인규 : 절대적으로요..

최재천 : 그렇죠. 돈 버는 사람 숫자가 줄어드니까 큰일이죠. 9년 남은 일입니다. 그런데 9년 다 기다리면 문제에 부딪힙니다. 그러니까 9년 남은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부터 준비해도 5,6년. 기껏해야 7년 남은 문제.. 시간이 없습니다.

박인규 : 혹시 통섭원 같은 데서 우리 사회의 50대 이상의, 능력은 있지만 일할 기회가 없는 분들을 위한 방안을 만들 수는 없을까요?

최재천 : 아마 저희들이 논의할 겁니다.

박인규 : 교수님도 사실 교수님 기준에 따르자면 인생 이모작기에 들어가신 건데, 말씀 들어보니까 앞으로 하실 일이 굉장히 많긴 합니다만... 앞으로 계획 같은 걸 간단히 말씀해 주시죠.

최재천 : 제가 서울대학교에서 이화여대로 옮기면서 사실 서울대학에 있을 때 여러 가지 일도 했지만 조직을 운영해 보는 일은 안 해봤거든요. 그냥 혼자서 제 일만 하고 저만 혼자 바삐 돌아다닌 건데, 이화여대로 와서 통섭원도 만들고 통섭원과 함께 갈 위생학 연구센터라는 것도 만들고. 이화여대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큰 생물학을 할 수 있는 교육연구기구인 에코과학부라는 학부를 따로 만들어서 이번 3월부터 또 시작입니다. 여러 가지 일을.. 또 자연사 박물관 관장 일도 하고 있고. 너무 모자를 여러 개 한꺼번에 써서 정신이 없는데요. 그 모든 게 어떻게 보면 다 통섭입니다. 다 연결돼 있는 일이라서 제가 인생 이모작 차원에서, 저는 사실 어떻게 보면 큰 변신을 하고 있는 거죠. 그 전에는 혼자 제 일만 했다면 작년부터는 제 주변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터전을 마련하는 일에 제가 제 시간을 투자하기로 했다... 드디어 사회에 환원하는 차원으로 들어간 거니까. 제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화두는 결국 환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박인규 : 예.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최재천 :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최재천 교수와 함께 얘기 나눠봤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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