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동물행동학자 최재천 교숩니다! 최재천 교수는 1954년 강원도 강릉 출생으로.. 77년 서울대 동물학과를 졸업하고 90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하버드대 전임강사를 거쳐 92년 미시간대 조교수가 됐고.. 1994년 귀국 후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해부터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 교수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인규 : 워낙 스타 과학자시긴 합니다만. 이번에 모시게 된 건, 책을 내셨어요. '최재천의 인간과 동물'이라는 책인데, 원래는 EBS에서 강연하신 걸 묶은 거라고 들었습니다. 2000년도에 강의하셨는데 책이 좀 늦었네요.
최재천 : 예. 게으르다 보니 좀 시간이 걸렸습니다.
박인규 : 동물행동학이라는 건 아시는 분들은 알지만 최재천 교수께서는 동물행동학을 인간의 세계에 접목시켜서 설명해 주셔서 대중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는데, 동물행동학이 뭔지 간단히 설명을 해주시죠.
최재천 : 제가 동물행동학을 인간에 접목시키는 게 자꾸 이상한 듯이 얘기들을 하시는데, 그걸 잘못 들으면 인간은 동물이 아니라는 얘기처럼 들려서 그거 아니라고 얘길 해야 될 것 같네요. 인간도 분명 동물이죠. 만일 동물이 아니라면 식물이인가? 무생물인가? 할 텐데..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의 행동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 동물행동학인데요, 사실 따지고 보면 동물의 모든 생리현상의 결과로 나타나는 최종 작품이 어느 동물이든 행동이거든요. 여기서 행동은 단순하게 몸의 움직임을 나타낼 수도 있지만 생각도 행동의 일부고, 감정도 행동의 일부고. 그렇기 때문에 동물의 행동학은 상당히 범위가 넓은 학문입니다. 우선 굉장히 흥미진진하구요.
박인규 : 저희들은 보통 인간행동학과 동물행동학은 다른 거라고 생각하는데, 결국 한 가지라고 볼 수 있는 건가요?
최재천 : 제 생각에는... 만약에 종교를 믿고 계시는 분들한테는 좀 섭섭한 얘길지 모르지만, 인간만 신이 특별하게 따로 제작해 낸 작품이라면 문제가 다르겠지만 인간도 다른 많은 동물들과 함께 지구에서 오랜 세월 진화해 온 결과물이라는 걸 인정한다면, 다른 동물이 걸어온 길이나 우리가 걸어온 길이나.. 끝에 와서 마지막 갈려 나온 짧은 기간만 서로 다를 뿐 굉장히 오랜 역사를 우리는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동물의 행동을 들여다 보다 보면 그 안에 인간의 그림자가 언제나 보이게 마련입니다.
박인규 : 요즘은 하도 실용적 지식을 강조하는 시대라서, 동물행동학 배워서 실용적으로 남는 게 뭐냐는 분들도 있는 것 같아요. 이번에 나온 책을 보니까 까치 말씀을 하시면서, 한전에서 까치가 전봇대 위에 집을 지으니까 정전사고가 많이 생겨서 까치 잡는 데만 연간 400억을 쓴다고 말씀하시고. 특히 영국에서는 나비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 동물행동학을 이용했다. 우리는 아직 동물행동학을 이용해서 까치의 폐해를 줄이기 위한 일을 하지 않는 모양이죠?
최재천 : 그렇죠. 사실 제가 여러 해 전부터 한전 분들과 이런 얘기를 해 왔습니다. 그분들도 인식을 하고 저를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고 결과를 얻고 싶은 생각은 있는데 우리나라의 예산구조 자체가... 제가 원하는 건 1년에 어느 정도씩 저를 후원하면서 한 10년 정도 기다려 주면 괜찮은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하는데, 거기서는 예산을 한 해 단위로 책정해야 되기 때문에 곤란합니다.
박인규 : 10년이 길긴 하네요..
최재천 : 3년 얘기했다가 제가 결과를 못 내면... 왜냐면 학문에 따라서 숨이 길고 짧은은 게 있잖아요. 실험실 안에서 온갖 장비를 동원하는 물리학이나 화학에서는 순간적으로 실험 결과가 나올 수 있죠. 하지만 까치를 연구한다. 까치한테 가서 나 논문 써야 되니까 빨리 해달라고 할 수도 없고, 걔네들이 보여주는 걸 우리는 끊임없이 기다려서 결과를 내야 되는 건데.
저는 이런 얘길 하고 싶어요. 만약에 동물행동학 빼놓고 이 세상 모든 학문은 결국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 하는 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죠. 그렇게 수천 년 우리가 학문을 했는데 인간이란 무엇인가 누가 물으면 답을 갖고 있는 학자가 한 분이라도 계신가요? 없잖아요. 이렇게 오래 연구하고도 인간이란 한 동물을 아직 이해 못하고 있는데 왜 까치를 연구하는 저한테는 왜 3년 동안 까치를 이해하라고 요구하느냐. 그래서 저는 까치 연구를 아주 장기적으로 할 생각으로 시작해서 금년에 꼭 10년쨉니다. 앞으로 수십 년, 수백 년 계속 할 생각입니다. 그래야 아마 조금은 이해할 겁니다.
박인규 : 이 방송 들으시고 한전 계신 분들이 차제에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모르겠네요. 하긴 예전에 공자님 말씀도 '안다는 것은 사람을 안다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더라구요. 책 얘기로 돌아가자면, 가장 중요한 게.. 요즘 인간세계에서도 워낙 교육문제에 관심이 많으니까, 동물들도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게 많다면서요?
최재천 : 예. 우린 생각에 동물이 과연 배울 능력이 있느냐, 그래서 사실 한 3,40년 전에는 저희 학자들도 학회에서 동물이 배운다는 얘길 잘못 하면 두들겨 맞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동물세계의 학습능력에 대한 증거는 엄청나게 많습니다. 다만 우리처럼 학교가 있다든가, 제도가 없을 뿐이지 다 각자 알아서. 어떻게 보면 다 사교육인 셈이죠.
박인규 : 홈스쿨링이네요.
최재천 : 그렇죠. 대부분은 선생님이 부모고. 가끔 가다가는 다른 동물도 됩니다. 대표적인 예가, 새들의 경우는 수컷이 자기 태어난 지역을 떠나서 다른 지역으로 대개 옮아갑니다. 새로운 지역에 가서 익숙해져야 되는데 그 동네 말투를 배워야 돼요. 엉뚱하게 남의 동네 말투를 거기 가서 지껄이면 전혀 인기 없습니다. 그 동네에서 그 동네 사투리를 배워야 되는 거죠. 경상도 지방에서 태어났는데 지리산 너머 전라도 쪽으로 갔을 때 그쪽에서 말투가 다르다. 혼자서 옛날 경상도 말투를 아무리 써도 암컷이 나를 안 좋아하면 나만 손해죠, 대부분의 젊은 새들이 이주한 동네에 가서 그 동네에서 가장 잘 나가는 아저씨, 암컷들한테 인기 좋은 아저씨 옆에 가서 그 아저씨 노래하는 스타일을 배웁니다. 그럴 경우에는 스승님을 찾아가는 격이죠. 홍길동이 스승님 찾아가는 격으로. 그래도 학교는 아직 없죠,
박인규 : 책을 보니까, 교육에 대해서.... 배우는 사람이 배우고자 하는 것만 가르쳐서는 교육이 아니다. 가르칠 사람이 가르칠 내용을 가르치는 게 더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어떤 의미입니까?
최재천 : 이 얘기는 잘못 하면 논란의 대상이 되리라 생각하는데요, 요즘 하도 교육이 소비자 위주 교육이라는 얘길 하고 있고. 소비자 속에는 학생들까지 껴 넣어서 아이들이 재밌어 하는 것만 가르치자. 저는 이걸 근본적으로.. 물론 재밌게 가르쳐야 한다는 점에는 저도 동의하고, 저도 재밌게 가르치기 위해서 무지하게 노력하는 대표적인 사람 중 하난데. 어미새가 자기 새끼새가 재밌는 것만 가르쳐 달라고 해서 나는 법을 안 가르쳐 줄 리는 절대 없잖아요. 날아 나와라, 자기가 먼저 날아보고 건너편 나무에 가서 앉아서 날아오라고.. 그 새끼가 날다가 밑으로 뚝뚝 떨어지는데, 그걸 보고 '되게 재미 없나보다. 우리 그건 힘드니까 하지 말자.' 이렇게는 절대 안 한다는 거죠.
교육이라는 건 교육학자 분들이 저를 야단치실지도 모르지만 교육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사회가 새로 사회에 진입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되느냐를 가르치는, 그 중에는 방법도 있지만 예의도 분명 있을 거고.. 너희가 여기 들어와서 우리말도 듣고 화합해야 한다는 것도 가르쳐야 되는. 그걸 우리가 인성이라고 얘기하잖아요. 저는 오히려 교육은 기본적으로 일방적인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르치는 쪽에서 가르침을 받아야 되는 쪽에 가르쳐야 될 것을 분명히 가르치는 게 교육이지, 배우는 쪽에서 나 이런 거 배우고 싶은데... 그건 전 사실 교육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피교육자에게 너희들이 이 사회에서 제대로 살려면 최소한 이건 배워야 한다. 이걸 가르치는 게 중요하다. 그러자면, 사회로 돌아오자면, 어떤 게 중요한가에 대해서... 새들은 쉽겠지만. 나는 법, 잡는 법, 하지만 인간 사회는 좀 어렵지 않습니까?
최재천 : 전체적인 것에 제가 가이드라인을 드리기는 어려운데, 이런 얘기는 드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의 대표적인 대학이라고 하는 하버드와 예일을 비교해 보면, 하버드는 적어도 하버드에 왔으면 이 정도는 배워 나가야 된다는 식으로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기본 프로그램을 갖고 있습니다. 두 학교는 10년에 한 번 정도씩 그것에 대해서 논의를 거치는데, 전통을 결코 놓지 않고 둘이 전혀 다른 전통을 유지하는데요. 예일은, 우리가 뽑아 놓은 학생이면 이미 어느 정도 그런 걸 고를 만한 눈을 가진 아이들이다. 기본이 돼 있으니까, 어느 정도 알아서 하게 자유를 더 많이 주는 편이에요. 과연 어느 학교가 더 잘하고 있느냐. 저로서는 판단을 못하는데 그렇다고 해도 차이는 있어도 결국 거기까지 가는 데까지는 두 학교 다 기본을 갖추고 아이들이 들어갔다는 거죠.
이게 우리말로 수능이잖아요. 수학능력. 우리 아이들은 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고 갑니다. 그럼 기본은 다 갖췄어야 되는데 실제로 가르쳐 보면 수능이 안 돼 있는 아이들이 들어와 있죠. 문과 이과를 이상하게 나눠 놔서 문과 학생이 이과에 가면 전혀 못 따라오고. 지금 우리나라의 경우는 수학능력이 시험은 보이는데 전혀 안 돼 있는 상태로 대학에 들어온다. 그 점을 저는 얘기하고 싶은 겁니다. 어느 정도 기본적으로 가르쳐야 될 것은 재미와 상관없이 반드시 가르쳐야 되고. 물론 가르치는 사람에게는 아이들이 재밌게... 귀에 쏙쏙 들어가게 전달시켜야 할 의무가 있는 거죠.
박인규 : 재미는 두 번째 문제다. 이번 책을 보면 동물들이 정치도 하고 전쟁도 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특히 개미 연구를 오래 하셨기 때문에. 실제로 정치와 전쟁 같은 게 많이 있는 겁니까?
최재천 : 저는 개미 중에서도 제일 오래 연구한 개미가 중남미 산꼭대기에 사는 아즈텍 개미인데요. 이 친구들은 처음에 나라를 건설할 때... 대개의 경우에는 여왕 혼자 자기 나라를 건설하는 게 통례인데, 굉장히 경쟁이 심한 사회. 나라를 세울 만한 땅이 부족한 데에서는 몇 마리의 여왕개미가 동맹을 맺어서 나라를 세웁니다. 그런 데가 거의 대부분 이깁니다.
한 마리의 여왕개미가 길러낼 수 있는 일개미 숫자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혼자서 한 달 동안 5마리 키웠다. 그런데 4마리 여왕개미가 합심해서 20마리 키워 냈다. 그러면 20마리 키운 데서 뚫고 들어와서 5마리 키운 나라 초토화 시키면 그냥 끝나거든요. 그런 경우에 같이 합심을 하는데, 저는 그 당시 세계 최초였는데 종이 서로 다른 개미들 간에도 여왕개미가 연합을 해서 같이 키우더라구요.
이게 어느 수준이냐면, 오랑우탄과 우리가 이웃나라를 정복하기 위해서 일단 한 집 살림을 차려서 새끼를 같이 키우는 격입니다.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는데, 어찌 됐건 동맹 맺은 놈들이 이기니까. 그런 정도인데, 마지막 가서는 거의 예외 없이 일단 평정이 어느 정도 된다 싶으면 여왕개미들 간에 싸움이 벌어져요. 한 개미가 남아야 됩니다. 저희가 관찰해 보면 안정적인 조직.. 좀 평안한 조직에서 보면 확실한 지도자가 있고 아래 피지배자 계급들이 있는 데가 확실히 안정적입니다.
박인규 : 약간 짓궂은 질문일지 모르지만, 남한의 정치체제를 보면 박정희 시대 확고한 지도자가 있었고. 그 뒤에 양김시대는 반대 세력의 구심점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름대로 정치가 민주적이지 않았을지는 몰라도 안정적이었다. 요즘에는 그야말로 백가쟁명 시대라는 말씀도 하시는데 요즘 정치판을 보시면 어떤 생각 드세요?
최재천 : 우리는 너무 짧은 기간 동안 민주주의를 배우고 세우고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어찌 보면 이런 것도 다 필요한 과정이겠지요. 박정희 대통령 같은 분이 영원히 있었으면 지금 모두가 다 숨막혔을 거고, 그 분이 잘한 일도 분명 있고 못한 일도 분명 있고. 아마 지금 정치하시는 분들도 나름대로 애쓰시는 점이 있겠죠. 결과가 별로 안 좋아서 다들 이렇게 투덜투덜하고 있는 것 같은데. 결국 이런 과정을 거쳐서 가야 되는데, 제가 생각할 때는 동물사회에서 이런 걸 보면 길게 봐야 되는 점이 참 안타까운데요.
동물사회에서도, 동물들이 우리보다 길게 보느냐. 걔네들이 무슨 능력이 우리보다 탁월해서 길게 보겠습니까. 다만 지금 살아남은 동물들, 지구의 수억 년 역사 속에서 자연선택돼서 살아남은 동물들은, 보니까 대부분 느긋한 동물들입니다.
너무 눈앞의 이익만 보는 동물들은 잠시 흥행했겠지만 오랜 세월동안 거쳐서 퇴보했구요. 결국은 길게 바라보고, 당장은 큰 이득이 없더라도 길게 본 동물들이 살아남아 있어요. 우리 인간이 과연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까. 굉장히 지금 잘 나가는 동물이죠. 사실은 우리가 지구상에 존재한 게 20만 년 밖에 안 되죠. 최고 막내입니다 거의. 20만 년 동안 무지하게 잘 나가는 것처럼 하지만, 저는 20만 년 더 못 사는 쪽에 돈을 거는 사람인데요. 그렇게 하고 가면 어쩌면 아무도 기억 못하는 종일지도 모릅니다. 그냥 한 때 반짝했다가 가는.
박인규 : 지금 혼란스럽다 뭐하다 해서 실망할 게 아니라 길게 느긋하게 보고 준비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겠군요.
최재천 : 예. 그러려면 우리가 다 공부 좀 해야지요. 너무 성급하게 나가서 운동만 하지 마시고
박인규 : 그러면서도 동물행동학이 필요한 이유를 말씀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교수님께서는 '개미제국의 발견'이나 EBS 강의 등을 통해서 적당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스타과학자가 되셨는데. 물론 최 교수님의 학문적 성과도 있겠지만 학문의 내용을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흥미롭게 잘 설명하셨어요. 그런 것들은 어떻게 보면 단순히 해당 학문에서의 능력보다는 이른바 인문학적 배경이나 소양이 좀 작용했다고 보세요?
최재천 : 귀국하고 동물에 대한 얘기를 짤막짤막한 글로 써달라고 어디서 부탁하길래 그걸 시작해 봤는데, 첫 글을 쓰는데 일주일을 잠을 못 잤습니다. 도대체 미국에 가서 배운 글쓰기는 과학적 글쓰기인데, 논문 쓰는 글쓰기인데 미국적 글쓰기는 결론부터 얘기하거든요. 내가 발견한 게 뭐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게 뭐다.... 하고 설명해야 되는데 네가 흥미로우면 계속 읽어라. 이건데, 어려서부터 제가 꼴에 글쟁이 되겠다고 배운 문학적 글쓰기는 중요한 걸 아껴야 되잖아요. 흥미를 유발하고 변죽 울려 가면서 끌고 와야 되는데 그 두 개가 완벽하게 충돌하는데 미치겠더라구요.
못 쓰겠다 못 쓰겠다.. 한 일주일 밤을 꼴딱 새고 겨우 마감해야 되니까 써냈는데, 그래도 의외로 참신한 글이다. 이래서 글 요청을 또 하고, 쓰다 보니까. 어떻게 보면 저는 어려서 꿈을 다 이룬 셈이죠. 밖에 나가서 놀고 싶었는데 지금도 놀러 다니고 있고 글 쓰고 싶었는데 글 쓰고 있고. 그 두 개가 저한테는 하나도 버릴 게 없이 어찌 보면 잘 맞아 떨어져 줬다. 굉장히 행복한 사람입니다 제가.
박인규 : 최근에 인문학의 위기 얘기들을 많이 해요. 거기에 덧붙여서.. 황우석 사태가 났을 때 인문학자들이 그 부분에 대해서 좀 뭔가 얘기했으면 좋겠는데, 인문학자들은 자연과학은 모르는 분야다. 그건 과학자들이 알아서 해야지, 이런 얘기들을 많이 했다고 해서. 요즘 인문학이 사회현상에 대해서 발언해야 되는, 그런 데 대해서도. 최교수님도 학자 중 한 분으로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최재천 : 인문학의 위기만은 아니잖아요. 이공계의 위기라는 얘기 몇 년째 듣고 있고. 결국 학문의 위기입니다. 학문 자체의 위기죠. 대한민국은 어떻게 하면 공부 안 하고... 하여간 요행 바라고 사는 이상한 사회분위기가 만들어져 가고 있는데. 저는 공부하지 않으면 이 나라는 끝장이라고 떠들고 다니거든요.
아무 가진 것 없는 나라가 여기까지 온 이유는, 50년 만에 전쟁 폐허에서 세계 11대 대국이 된 건 오로지 공부의 힘이다. 교육제도 별로 좋지 않은데도 어쨌든 죽어라 공부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늘 갖고 있는데. 인문학의 위기다, 이공계의 위기다.... 저는 모든 학문의 위기인데, 특히 인문학의 위기라고 얘기하면, 위기라고 하시면서 여전히 인문학 하시는 선생님들이 얼마 전에 하신 얘기는 자연과학기술로 황폐화 된 인성을 복구해야 되고.. 그러시더라구요. 그것만 제가 꼬투리를 좀 잡았습니다. 이제 제발 그런 얘기 그만 하시고. 누가 황폐화 시켰는지는 모르겠는데, 들어오셔서... 밖에서 자꾸 그 얘기만 하지 마시고 들어오셔서 자연과학자들과 손잡고 황폐화된 인성을 좀 건져 주세요. 멀쩡한 척 앉아서 자꾸 황폐화 됐다고 그러지 마시구요.
인문학은 제 생각에는... 제 지도교수님도 그러졌지만 어차피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학문을 대변하는 건데 이 두 학문이 앞으로 어떤 형태로든 만나지 않으면 학문의 미래는 없다. 바로 그거거든요. 그러려면 자연과학자도 인문학적 소양을 쌓아야 되지만 인문학 하시는 분들은, 물론 어렵겠지만 자연과학을 배우셔야 됩니다. 21세기에 자연과학을 모르고 살아가는 건 언어도단이거든요. 인문학 하시는 선생님들, 세상 탓만 하지 마시고 자연과학 공부 시작하십시오. 함께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얘기 힙니다 저는.
박인규 : 이공계 위기 말씀하셨으니까 여쭤보고 싶은데.... 황우석 박사가 막 뜨니까 심지어 초등중학생들도 나도 생명공학을 하겠다. 최재천 교수님도 어떻게 생각하면 많이 뜨셨으니까, 나도 최재천 교수처럼 동물학을 해야겠다는 학생들이 생길 것도 같아요. 꼭 이공계를 가라는 게 아니라, 지금 중고등학생들, 어떤 학문을 할까 하는 학생들에게 네가 학문을 어떻게 고르는 게 제대로 고르는 거다. 예를 들어 요새 한의대, 법대가 뜨는데 과연 그게 좋은 건지 개인적인 경험에서 조언해 주시죠.
최재천 : 어떻게 보면 내가 활동할 때가 지금부터 언제냐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잘 나가는 분야가 과연 내가 사회에 뛰어들었을 때도 계속 잘 나가는 분야일까. 적어도 20년은 내다 봐야 되거든요. 20년 후에도 대한민국에서 의사가 제일 좋은 직업일까. 변호사가 제일 좋은 직업일까. 이미 두 직업에 계시는 분들은 별로 좋지 않다는 걸 대개 아십니다.
그런데도 왜 이런 일이 벌어지나. 저는 이건 부모님들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들은 20년 전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20년 전의 시장구조를 머릿속에 넣어 놓고. 즉 40년 격차가 있는 자기 자식한테 무슨 직업을 택하라고 요구하시는데, 제발 손 떼시라고 저는 얘기하고 싶구요. 아이들이 더 잘 압니다. 아이들의 느낌이 더 느낌이 더 확실합니다. 요즘 아이들하고 얘기해 보면 별의 별 직업을 다 구상하는데, 제 생각에는 오히려 그게 맞으면 맞았지 우리가 생각하는 무슨 직업.. 20년 후에는 그 직업의 경계 자체가 불분명해질 텐데... 그걸 아이들한테 강요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고.
그런 점에서 과한 얘기를 하나 붙이면, 지금 이공계와 인문학 위기라고 하는데 이 두 학문이 계속 위기면 대한민국 망합니다. 반드시 위기에서 벗어나게 돼 있습니다. 정부도 분명히 투자할 거고 모든 사람이 노력해서 이 위기에서 건져낼 겁니다. 건져내지 않으면 죽으니까. 건져내고 나면 그때는 다른 데 가 계신 분들은 줄 긴 데 가서 경쟁하고 계시고, 인문학이나 자연과학에 와서 줄 선 학생들은 줄이 짧아서 아주 유리합니다. 적성에 안 맞는데 오지는 마세요. 적성은 맞는데 부모님이 '거기 가서 네가 굶으려고?' 그 얘기는 부모님한테 제가 그랬다고 하고 과감히 뛰어드십시오.
박인규 : 적성이 우선 중요하고 길게 바라봐야 하고. 오늘 제가 느낀 건 뭐든지 좀 길게 바라보고 일을 해나가는 게 중요할 것 같다. 그런 말씀 같습니다. 오늘 말씀은 여기서 마무리 짓고 내일 다시 한 번 이어서 말씀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최재천 교수와 함께.. 동물의 세계를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인간의 참모습은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 나눠봤습니다. 최재천 교수와의 말씀은 내일도 이어집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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