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차 한미 안보정책구상(SPI) 회의가 이틀 일정으로 7일 서울에서 시작된 가운데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을 미군기지 이전비용으로 전용하려는 한미 양국의 협의에 대해 시민단체가 강하게 제동을 걸고 나섰다.
시민단체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는 이날 오전 서울 국방부 청사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이 기지 이전비용 10조 원에 주한미군에 대한 한국의 지원금인 방위비분담금을 포함시키는 것은 불법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미국 고집 못 꺾으면 94% 부담?
이는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이 지난달 18일 "미2사단을 평택으로 옮기는 비용의 50% 가량이 방위비분담금에서 집행될 것"이라고 언급한 데 따른 반발이다.
시민단체들은 한국 예산인 방위비분담금을 미국의 필요에 따른 미2사단 이전에 쓰는 것은 '이전을 요구한 측에서 비용을 분담한다'는 원칙에 어긋날 뿐 아니라 2003년 한미간에 체결된 연합토지관리계획(LPP) 협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국방부는 '방위비분담금은 미국에 준 것이므로 미국돈'이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방위비분담금을 미군기지 이전비용에 쓸 경우 리언 라포트 전 주한미군사령관이 지난 2005년 밝힌 '미군 부담 6%'가 현실화되고 나머지 94% 가량을 한국이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평통사는 기자회견문에서 "미국은 기지이전 사업비 약 10조 원 중 4조5000억 원에 대해서도 한국 부담을 강요하고 있다"며 "자국이 부담키로 한 미2사단 이전비용을 한국이 지원하는 방위비분담금(추산 2조 원)을 불법적으로 전용해 사용하겠다고 밝히고 있다"고 지적했다.
평통사는 "미국이 강요하고 있는 이 비용은 이미 한미 간에 체결된 용산기지이전협정과 연합토지관리계획(LPP)개정협정에 미국이 부담키로 명시되어 있는 것"이라며 "미국의 요구는 이들 협정을 위반한 불법"이라고 비난했다.
이 단체는 '방위비분담금은 미국돈'이라는 우리 국방부에 대해서도 "미국의 불법적이고 얼토당토않은 요구에 사실상 굴복하고 있다"며 "굴종적 행태"라고 비난했다.
시민단체들의 이같은 지적에 따라 국방부는 이번 SPI 회의에서 방위비분담금 결정 방식을 기존의 총액 기준 협의 방식에서 항목별 소요를 따져 비용을 정하는 '소요충족방식' 등으로 바꾸는 방안을 미국 측에 타진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은 소요충족 방식으로 바꾼다 하더라도 방위비분담금의 4대 항목인 인건비, 군사시설 건설비, 연합방위증강사업비, 군수지원비 중 건설비와 연합방위증강사업비를 기지이전에 쓸 수도 있다는 입장을 고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지이전 시점 문제 돌파구 찾을까
이번 회의에서는 또 3800억 원에 이르는 용산기지 전술지휘통제체계(C4I) 이전 비용을 누가 얼마나 낼 것인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용산기지 이전비용을 내기로 한 한국이 당연히 전액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한국이 전술지휘통제체계의 기존 장비를 이전하되 재사용이 불가능한 장비는 900만 달러 내에서 대체장비를 제공한다'고 규정한 용산기지이전협정대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군기지 이전의 시점도 중요한 쟁점이다. 양국은 애초 2008년까지 기지이전을 완료하기로 했으나 한국은 주민들의 이주 지연, 성토작업, 공사 등에 드는 시간을 고려할 때 4~5년 가량 늦춰지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시기를 늦추려고 기지 이전에 소극적이라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이와 관련해 벨 사령관은 지난달 "평택기지 이전사업 중단(지연)에 맞서 싸우겠다"고 했고 SPI 미국측 수석대표인 리처드 롤리스 미 국방부 부차관보는 한국 정부가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고 강력히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번 회의에서는 작통권 환수에 대비해 유엔군사령부(UNC)의 정전관리 기능을 한국군에 이관하는 문제와 주한미군이 담당해 온 연합방위 임무를 추가로 한국군에 이양하는 문제도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평통사는 6일 국방부에 질의서를 보내 "정부는 유엔사를 존속시키되 그 기능과 권한을 순전히 정전협정 유지 기능에 국한하려는 수세적이고 소극적인 입장"이라며 "이런 입장으로는 유엔사를 고리로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과정과 통일과정에 최대한 개입해 자국의 이익을 챙기려는 미국의 의도를 막아내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평통사는 이어 "유엔사 해체와 이를 대체할 기구의 구성 문제를 (한국이) 주동적으로 제기해 나감으로써 미국의 기도를 원천 봉쇄하는 협상전략을 세울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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