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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개혁 없이 개혁은 이뤄질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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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자기개혁 없이 개혁은 이뤄질 수 없어"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1/29] 장편소설 '유림' 펴낸 작가 최인호씨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1967년 등단한 이후.. 별들의 고향, 잃어버린 왕국, 해신, 상도 등 숱한 화제작을 발표한 우리 시대 대표적인 작가 최인호씨가 3년여에 걸쳐 쓴 장편소설 '유림'을 완간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유교하면.. 여성차별이나 가부장적인 위계질서 등 과거의 낡은 유산으로 여겨지곤 합니다만.. 작가 최인호씨는 유교야말로.. 혼란한 우리 사회를 바로세우는 깊은 가르침을 전한다고 주장하는데요.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작가 최인호씨를 초대해.. 요즘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지.. 또, 유교가 우리 삶에 어떤 가치와 방법을 제시하는지.. 얘기 나눠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작가 최인호씨입니다! 최인호씨는 1945년 서울 출생으로.. 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63년 단편 '벽구멍으로'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입선됐고.. 1967년 단편 '견습환자'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주요작품으로는 소설집 '타인의 방', '잠자는 신화', '명가'를 비롯해.. 장편소설 '별들의 고향', '도시의 사냥꾼', '잃어버린 왕국', '상도', '해신' 등이 있으며..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가톨릭문학상, 불교문학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인규 : 우선 6권이나 되는 장편소설을 탈고하신 것 축하드립니다.

최인호 : 감사합니다.

박인규 : 3년 동안 쓰셨다는데 한 짐 내려놓은 것처럼 후련하시겠어요.

최인호 : 그렇죠. 지난 3년 동안 제게 아주 무거운 짐이었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네요. 아득한데 제가 쓴 소설 중에서도 가장 긴 소설이에요. 지금까지는 5권짜리가 제일 많았는데 6권짜리를 냈더니 굉장히 체중 오버된 아이를 낳은 것 같아서, 요즘 산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박인규 : 산후조리 중이신가요? 노익장이라고 하더니, 갈수록 필력이 더 좋아지시는 것 같습니다.

최인호 : 네.. 저는 평생 동안 글을 써 왔는데 요즘이 더 글 쓰는 맛이 있고 재밌고 행복합니다.

박인규 : '유림' 하면 사실 요즘 세태로는 제목 자체가 케케묵었다는 느낌이 드는데, 긴 소설입니다만 간단히 어떤 내용인지 설명을 좀 해주시죠.

최인호 : '유림'에 대한 구상은 사실 17년 전부터 했거든요. 그때 '길 없는 길'에서 불교, 원효라는 사람을 통해서 불교를 쓰는데 그때 우리 민족의 피 속에는 불교뿐 아니라 유교가 분명히 있다. 이 유교를 내가 파헤치지 않으면 우리의 민족성, 정체성을 밝힐 수 없다고 생각했죠. 17년 동안 줄곧 생각해 온 것은 아까 말씀하신 식으로 '과연 지금 이게 왜 필요한가, 내가 유림을 쓴다는 게 올바른 태도인가' 하는 내적 필연성을 찾는 과정이 오래 걸렸어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쓸 이유가 없거든요. 이 사회에서 과연 왜 유림이 필요한가. 한때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베스트셀러도 나왔죠. 저는 그 말도 유니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다가, 아 그렇구나.. 우리가 지정학적으로 중국 옆에 있는 동양 3국 중 하나라면 2500년 동안 우리 의식을 지배해 온 유교에 대해서는 파헤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그래서 유림.. 유교의 숲이라는 뜻이겠죠. 그래서 공자, 맹자, 주자, 그러한 학문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왔거든요. 그래서 우리나라가 낳은 이퇴계, 이율곡... 특히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 그 사람들이 왜 해동의 유교의 완성자인가. 그리고 우리나라가 이퇴계라는 위대한 사상가를 갖고 있거든요. 그분에 대한 영광과 선비정신을 오늘날 우리가 유산으로 물려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이 나와서 김수환 추기경께서 저한테 격려를 해주셨어요. 자네가 유림에 대해서 썼는데 유교라는 게 정말 어떻게 보면 낡은 유산 같지만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 지켜나가야 할 유산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이 이 소설의 주 테마입니다.

박인규 : 원로작가라고 하나요? 최인훈씨의 '회색인'이나 '서유기' 등의 작품을 보면 19세기 이후 서양문명에 압도당한 우리 민족을 한탄하면서 그래도 우리가 살 길은 불교나 유교 아니냐는 말씀을 한 대목이 있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2000년 동안 우리의 정신적 유산이었던 유교를 되살리는 게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지금 많은 한국사람들은 유교 하면 뭔가 케케묵은 것. 남녀칠세부동석, 아니면 군자, 소인.... 뭔가 요즘 민주시대에는 안 맞는다고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교를 지금 이 순간 되새기고 상기해야 될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최인호 : 요즘 우리나라의 큰 문제는 여러 가지 있겠습니다만, 첫째는 가정의 해체라든가. 이건 참 큰 일이에요. 그 다음 교육의 부재. 우리나라의 교육은 정말 괴롭거든요. 이게 우리나라가 전 아이들이, 요즘은 태어날 때부터, 7살 때부터 과외공부를 실제로 많이 해요.

박인규 : 7살이 아니라 요새는 두 살부터 시작합니다.

최인호 : 그래서 요즘은 전 국민이 아이들 과외공부를 시키기 위해서 사교육비를 지출하구요.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교육은 100명이 있으면 그 중 한 사람의 난 사람이 되는 교육이념이거든요.

박인규 : 한 명의 난 사람과 99명의 못난 사람을 만드는..
▲ ⓒkbs 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최인호 : 못난 사람. 그래서 99명의 좌절자를 만드는 거죠. 사실은 실제적으로 우리들이 보면 알지만 성적이 그 사람의 행복지수와는 관계 없거든요. 이건 말해 봐야 소용 없는 얘긴데, 오히려 우리의 교육과 이념은 한 사람의 난 사람이 아니라 100사람이 다 될 수 있는 '된 사람'이라는 교육이념으로 가야 되거든요. 그래야만 우리 교육이념이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오늘날의 유교가 우리에게 주장해 온, 말하자면 부모에게 효도하고.. 제가 이 얘기하는 자체가 너무 낡은 것 같은 느낌이지만, 그러나 우리의 목마름을 치유하는 건 술이 아니고 결국은 물이거든요. 물이라는 진리는.... 영원하게 우리의 갈증을 채워주는 건 술이나 커피나 콜라가 아니고 물인 것처럼. 우리가 사람답게 사는.. 우리가 가족적으로서 평화, 사랑을 되새기는 것은.... 효, 그리고 서로 예의를 지키는 것. 우리 민족이 옛날에는 동방예의지국 아니었습니까. 서로 예의와 신의를 지키고, 나라에 충성하고 하는 유교적 덕목이, 제가 보기에는 그건 낡은 유산을 끌어오는 게 아니라 재발견하는 게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제가 이번에 '유림'을 썼는데, 저로서는 굉장히 끝나고 나니까 마음이 흐뭇하네요. 지금은 책도 그렇습니다. 처세술적 책이나 실용주의적인 책들이 많이 나가고 있어요. 무슨 얘기냐면 사람들이 너무 실용적인 것에 가치를 두고 있거든요. 그건 결과적으로 흘러가는 거품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결국 잘났건 못났건 이 세상에 태어났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라는 것은, 우리가 깊이 통찰해야 되는 어쩔 수 없는 숙제죠. 우리가 그런 의미에서는 오히려 지금 이 시대에 자기 존재에 대해서 깊이 사색하고 묵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가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유림'이라는 책 1권을 보면 조광조의 개혁정치의 실패를 다루고 계십니다. 사회를 제대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 정치가 굉장히 중요한데, 요즘 정치에 대한 비판도 굉장히 많으세요. 어떤 인터뷰에서는 우리 사회가 춘추전국시대 같다고 하셨는데.

최인호 : 예. 춘추전국시대라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지금 우리 사회의 정치판 어떻게 보십니까?

최인호 : 유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두 가지 역할을 했어요. 하나는 정치이념으로 활용됐거나, 그렇지 않으면 학문적.... 유교적 학문으로 가서 하나는 퇴계를 낳았고, 그 다음에는 정도전이나 그렇지 않으면 제가 썼던 조광조라든가 그런 정치이념으로 나갔거든요. 그런데 공자도 아시다시피 13년 동안 어떻게 보면 자기 스스로 한탄했어요. 상갓집 개처럼 벼슬 한 자리 하려고 그렇게 돌아다녔어요. 그렇게 춘추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태평세대를 만들려고 노력했거든요. 제 생각에 오히려 퇴계의 위대함은.... 이름이 퇴계입니다. 물러선다는 뜻인데, 오히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조광조의 개혁의 실패는 전 그렇게 봅니다. 우리나라에 사림파나 훈구파가 있어서 유교이념으로 개혁파냐, 아니면 수구파냐.. 이렇게 나가는데. 지금도 우리 정치에서 제일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박인규 : 진보냐 보수냐.

최인호 : 개혁하는 사람은 제일 먼저 생각할 것은 자기 자신의 개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없는 한, 자기 스스로의 개혁하려고 하는 자의 주체가 개혁되지 않으면 그 개혁은 공염불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을 개혁하고 제도를 개혁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건 공자도 못했습니다. 우리가 개혁하려면, 정말 이 사회가 갖고 있는 불균형... 우리 사회의 어떤 춘추전국시대거든요 지금이. 그걸 개혁하려면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이렇게 말하는 나가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게 사실은 가장 요원하면서도 가장 확실하면서, 가장 정확한 방법 아닌가 싶어요. 조광조의 개혁의 실패가 바로 그런 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조광조가 개혁에 성공했을 때 같은 동지였던 친구가, 그 분을 참 좋아하는데.. '나는 두렵다. 가라앉는 배에 타고 있는 것처럼 생각돼서 두렵다'는 말을 했거든요. 그렇지만 조광조는 우리나라가 낳은 위대한 정치적 성리학자입니다.

박인규 : 저는 한 가지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게.. 20대 때 이미 문력을 날리신 분이고, 그 당시에 '별들의 고향'이라든가 '타인의 방'은 대단히 감수성이 도시적이고 현대적이라고 느꼈는데 언제부턴가 '해신', '상도', '길 없는 길'을 쓰시고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정서랄까 정체성을 찾는 쪽으로 바뀌신 것 같아요. 혹시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 궁금합니다.

최인호 : 저는 서울에서 자랐기 때문에 현대소설이 저의 본령인데, 언제부턴가,... 제가 의도적인 건 아니었어요.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게, 사실 제가 역사소설을 쓸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왜냐면 어렵거든요. 쓰려고 하면.. 자료조사도 해야 되고. 무슨 옷을 입었는가, 방안 풍경을 묘사하려고 하면 이걸 어떻게 해야 되지? 길거리를 가려고 해도 어떻게 해야 되지? 이런 게 있었는데,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이상하게 역사 쪽에 관심이 있게 됐구요. 또 하나는 종교 쪽.... 불교라든가 유교에도 관심이 있게 됐는데, 그 결정적인 계기는 아마 제 생각에는 87년도에 제가 카톨릭에 귀의했었거든요. 제가 종교적인 그런 건 아니고, 저로서는 굉장한 충격이었는데 '햄릿'에 보면 햄릿이 자기 친구인 '호레이쇼'에게 그런 말을 하거든요. '호레이쇼야, 이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단다.' 하는 말이 있는데,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더 많이, 영혼이 더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후부터는..... 왜 쓸 수 있었나 하면, 가령 예를 들어서 광개토대왕이 1600년 전의 인물이지만 그 카톨릭에 귀의하지 않았다면 그냥 1600년 전 과거의 인물로 느꼈겠죠. 그런데 카톨릭에 귀의하고 나니까 현재적 인물로 다가오더라구요. 그래서 쓸 수가 있었어요. 용기를 내서 쓸 수도 있고, 이번에도 2500년 전의 공자가 그때의 공자가 아니라 바로 내 곁의 인물로 느껴지고. 이퇴계 선생도 마찬가지로 동시대를 사는 인물로 느껴지더라구요.

박인규 : 장보고라든가 개성상인, 광개토대왕, 유림, 경허 스님. 이런 훌륭하신 인물들을 추적하시면서 혹시 한국인의 원형질이랄까, 한국인에 대한 어떤 재발견도 하셨을 것 같은데.. 새로운 느낌 같은 건 없었습니까?

최인호 : '유림'을 쓰면서 아까 말씀드린 대로 내가 이걸 왜 써야 되나를 굉장히 고민했는데,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천 원짜리 화폐에는 이퇴계 선생이 있죠. 또 오천 원짜리에는 이율곡 선생이 있습니다. 화폐에 나온 사람은 그 시대의 우리를 대표하는 인물이거든요. 최근에 아이러닉한 일이 있었지만 새 돈이 나온다고 하니까 한국은행에서 장사진을 치지 않았습니까? 그분들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화폐가치만 따지고 있었지, 말하자면 천민상업주의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있는 인물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를 알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이걸 쓰기 전에 우리 아들한테 물어봤습니다. 너 이퇴계 선생 아느냐. 안다 이거예요. 그 사람이 뭐로 유명하냐. 대학교 시험 볼 때 나오는 이기이원론. 그게 뭐냐. 모르겠는데요.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이퇴계 선생입니다. 다름 아니고 그분의 이기이원론이라는 건 유교에서 탁월한 형이상학적인 이퇴계 선생님이 갖고 있는 최고의 진리거든요. 최소한 제일 고민되는게 그걸 어떻게 쉽게, 어려우면 안 되죠. 어떻게 사람들이 쉽게 그걸 알고 이퇴계 선생이 이런 사람이구나, 그리고 그분의 선비정신을 우리가 본받아야 되겠다라는 걸 쓰기 위해서... 사실은 이 소설을 쓸 때 제일 고통스러운 것은 그 부분이 제일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저는 자부심은 가질 수 있어요. 이퇴계 선생의 이기이원론만큼은 굉장히 쉽게, 재밌게. 그리고 건방진 생각인데 어느 정도 정확하게 그분의 사상을 묘사했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어느 글을 읽다 보니까, 케인즈가 그런 말을 했다는데.... 사상과 예술을 자급자족하지 못하는 나라는 살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고 하더라구요. 이황의 높은 사상을 우리들이 알 수 있게 했다는 데에 자부심을 느끼신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최근 장편소설 '유림'을 완간한 작가 최인호씨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보다 보니까 작품활동 하신 지가 올해로 만 40년이 되셨어요. 제가 지난주에 가수 윤형주씨를 초대해서 70년대 청년문화에 대해서 얘기 나눴는데요, '어제 내린 비'라는 노래를 취입하기 전날 여관에서 인호형과 함께... 그런 말씀도 하시던데. 어떤 인터뷰 보니까 최인호씨 스스로가 그 당시 청년문화의 괴수로 찍혔다. 그런 말씀도 하셨어요. 그 당시를 돌아보시면 그 당시 본인의 역할이랄까요? 어떤 생각이 드세요?
▲ ⓒkbs 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최인호 : 우리나라에서는 70년대가 참 특별했어요. 경제산업화가 막 시작됐고, 아마 제가 알기로는 1억불 수출을 달성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는 가장 암울했던 시기인 것 같습니다. 유신이 막 진행됐고. 말하자면 전태일씨가 분신자살하기도 하고 노사갈등이 일어나기도 하고. 산업사회가 시작되고 이런 때였어요. 사실 그때는 저는 나이가 젊으니까, 청년문화라는 게 등장했습니다. 뭐냐 하면, 저는 누가 시켜주지도 않았는데 저는 괴수가 됐대요. 처음에는 기수였죠. 좋은 의미로. 그래서 제가 별들의 고향을 쓴 거죠. 26살 때 쓰면서 신문에 연재하면서 제가 딴 욕심은 부리지 않고 신문에 연재하는 거니까 그저 많은 사람들이 소설을 읽고 주인공 이름쯤 하나는 기억할 수 있는 소설을 쓰겠다 그랬죠. 그런데 이게 갑자기 나와서 영화가 50만 명이 들고 신드롬이 일어나고 책이 한 100만 부가 나갔어요. 그러면서 제가 걱정이 되더라구요. 내가 소모성, 혹은 전혀 나와는 뜻밖에. 그때 나는 단편소설 위주로 나가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자꾸 부작용이 생기겠다... 왜 그랬는가, 이유 중 하나는 너무 정치적으로 암울하니까, 이런 것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정치적인 것에 대해서 걱정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혹시 이러한 청년문화라는 것이 지식인들의 의식을 갉아먹을 수 있는 당의정식.... 건강하지 못한 당의정식 문화로 오해받을 수....저는 시대를 좀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요. 이렇게 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러면서 체제 쪽에서는 퇴폐주의자로 몰리고 반체제 쪽에서는 기회주의자 내지는 회색분자로 몰리게 되더라구요. 그런 현상이었죠 그게. 그래서 결과적으로 참 모처럼 좋은 현상이었어요. 청년문화라는 게 좋은 현상인데 결과적으로는 사회적 현상에 의해서 활짝 꽃피지 못하고 좌절되고 말았죠.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이건 안 되겠다 해서 그 다음에 영화로 많이, 의도적으로 많이 갔죠.

박인규 : 최근에 어떤 인터뷰를 보니까 다시 '별들의 고향'을 봤더니 징그럽다는 표현을 썼다는 것 같은데 어떤 의미입니까?

최인호 : 그 징그럽다는 건 뭐냐면.... 제가 26살 때 그걸 썼거든요. 징그럽다는 게 신문에 나왔는데, 다른 뜻이 아니고... 제가 쓴 글을 저는 잘 안 봐요. 그런데 그걸 지금 읽으니까 제가 징그럽다는 게... 26살 난 젊은 녀석이 뭘 안다고 여성의 심리를 미주알고주알 아는 것처럼. 그리고 제일 미안하게 생각하는 게 경아를 26살에 죽였거든요. 그 당시에 제가 그걸 쓸 때 집사람이 그랬어요. 당신 여성심리를 잘 아는 것 같은데 참 모른다고 하더라구요. 난 굉장히 기분이 나빴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까 너무 여성의 심리를 모르면서 뭐 여성의 심리를 굉장히 섬세하게 묘사하는 것처럼 묘사를 했더라구요.

박인규 : 젊은날의 치기 같은 게 보인다는 말씀이시군요...

최인호 : 경아한테 미안하죠. 26의 예쁜 아가씨를 도시의 골목에서 수면제를 먹고 죽게 만들어서, 아 내가 나쁜 놈이로구나. 작가로서 참 나쁜 짓을 했구나. 그래서 그 작품을 보면 좀 징그럽고 겸연쩍다는 뜻이었습니다.

박인규 : 최인호씨는 문단에서 알아주는 악필이시고, 요즘 전부 워드프로세서로 글을 쓰시는데 아직도 펜으로 쓰신다고 들었어요. 펜을 고집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십니까?

최인호 : 저는 컴퓨터를 못 쓰지는 않을 거예요. 기계치는 아니니까. 몇 번 트라이는 하다가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제가 좀 고집이 세요. 이어령 선생님이 저보고 그러더라구요. 너 왜 아직 컴퓨터를 안 쓰냐. 이게 피아노 치는 것 같은데..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선생님, 나는 피아노 치는 것보다 사랑하는 여인을 껴안는 게 더 좋습니다. 그런데 이 원고지를 놓으면 정말 껴안는 것 같아요. 그런 마음의 자세가 생겨요. 그리고 결정적인 건, 요즘은 심사위원 잘 안 하는데 옛날에 심사위원 하면서 보면 컴퓨터로 쓴 글을 금방 알겠더라구요. 컴퓨터 냄새가 나요. 마치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듯이 매끈매끈하고 개성이 없고, 말하자면 속도감만 있고. 뭔가 깊이가 없고, 읽히긴 하는데 뭐랄까요 자극성이 많은 무엇처럼.

박인규 : 하긴 컴퓨터 자판이 워낙 빨라서 쓰다 보면 자판 속도에 생각하는 게 따라간다는 말도 있더라구요.

최인호 : 제가 보기에는 좀 극단적인 얘기지만 자기의 의식 없이 자판이 혼자 춤추는.... 마치 분홍신을 신은 여자는 자기 의지와 상관 없이 춤을 추듯이..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젊은 작가들에게 가능하면 그런 얘길 해요. 육필로 써라. 물론 고통스럽지만 그게 좋고 정리는 컴퓨터로 해라. 그런 얘길 하죠.

박인규 : 깊이 있는 사고를 위해서... 최인호씨께서는 카톨릭에 귀의하신 지 20년이 되셨는데, 그동안 불교에 관한 책도 쓰시고 이번에 유교에 관한 책도 쓰셨는데 아직 기독교에 관한 책은 안 쓰신 것 같아요. 혹시 앞으로 작품계획은 어떤 게 있으신지 마지막으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최인호 : 그것도 오래 전부터 갖고 있는 건데요, 저는 카톨릭 신자로서 지저스 크라이스트에 대해서 소설을 쓰려고 합니다. 그래서 한 2년 뒤에는 이스라엘을 가려고 하는데, 그것도 한 15, 16년 전부터 갖고 있는 소재인데, 작가는 참 그게 행복해요.

박인규 : 쓸 게 많다..

최인호 : 그것보다 머릿속에 두면 그 소재들이 점점 자라요. 그래서 숙성하죠. 지저스 크라이스트라는 사람도 내가 그 사람에 대해서 쓰는 것은 아니고, 우리나라가 낳은 사상가가 하나 있어요. 그분을 통해서 소위 우리나라에도, 우리 민족에게 불교적인 것 있고 유교적인 게 있다면 최근에는 기독교적인 요소도 있거든요. 그런 요소를 한 번 그 사상가의 눈을 통해서, 생애를 통해서 지저스 크라이스트를 한 번 제 나름대로 그려보고 싶고. 감히 건방지게 생각한다면 20세기에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얘기했거든요. 그게 20세기 최고의 유행어인데, 제가 감히 얘기한다면 신은 죽었다. 그런데 21세기에 이르러 다시 부활하였다라는 메시지로서 쓰고 싶습니다.

박인규 : 혹시 그분이 누구인지는 밝히시기 어렵습니까?

최인호 : 곤란할 것 같아요. 너무 오래된, 숙성된 그 분이기 때문에요.

박인규 : 혹시 이제 노년에 든 성숙한 남성으로서 연애소설을 다시 한 번 써보시고 싶은 생각은 없으시니까?

최인호 : 그거야 꿈이죠. 제가 연애하고 싶듯이 작가의 최고의 기쁨은 연애소설이에요. 그래서 한 번, 뭐랄까.... 너무 웃지 마세요.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여자가 이 책을 보면 연애하고 싶어지고 자기의 첫사랑을 상기하는, 그런 연애소설 한 번 쓰고 싶어요.

박인규 : 쓰시고 싶은 게 많아서 아주 행복하시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기대해 보겠습니다.

최인호 :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최근 장편소설 '유림'을 완간한 작가 최인호씨와 함께 요즈음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지, 유교가 우리 삶에 어떤 가치와 방법을 제시하는지 말씀 나눠봤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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