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2월 하순 개헌안 발의를 공언하고 있는 가운데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여야 4당 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개헌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열린우리당 초선 의원 모임 '처음처럼' 주최로 열린 이날 토론회는 노 대통령의 4년 연임제와 원포인트 개헌 제안 이후 처음 열린 국회 토론회라는 점에서 주목됐으나 각 당의 상반된 입장을 확인한 것에 만족해야 했다.
"올해가 '원포인트 개헌' 적기"
민병두(열린우리당), 이낙연 의원(민주당)은 '원포인트 개헌'을 위해 여야의 조속한 개헌논의 착수를 종용했다.
민 의원은 '2단계 개헌 방법론'을 제안했다. 그는 "1단계로 2007년에 4년 연임제, 동시선거에 한정한 개헌을 하고 2단계로 18대 국회 중반에 개헌특위를 설치해 전면적인 개헌 논의를 하자"고 주장했다.
그는 "현 시기부터 권력구조 개편과 함께 국민적 공감대가 넓은 토지 공개념 등을 포함한 전면적인 개헌 논의를 개시해 조속히 합의되는 내용을 포함해 2007년에 개헌하는 방안도 있다"며 "이 경우 국회가 개헌안을 발의해 선거법 등 부수 법안도 함께 처리하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민 의원은 또한 "대통령 임기 단축이 필요 없는 2007년 개헌과 임기단축이 불가피한 2012년 개헌 중 어떤 것이 현실적인지 판단해야 한다"면서 "임기 단축을 약속하지 않고 '다음 대통령이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명박, 박근혜 예비 후보의 말은 진정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이낙연 의원은 "국회에 개헌특위를 구성해야 한다"며 "노 대통령이 발의하기 이전에 국회가 먼저 발의하거나 최소한 노 대통령의 발의안을 심의하기 위한 기구라도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월 임시국회 벽두에 국회 내 개헌특위 구성을 위한 5개 정당 원내대표 회담을 열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개헌의 정치적, 경제적 부담을 퇴임 대통령이 지고, 차기 대통령은 그런 부담 없이 경제와 안보 등에 치중하는 것이 옳지 않느냐"며 "(이번 정부에서 못하면) 차기 정부 또한 개헌을 하지 못할 공산이 크다"고 주장했다.
"차기 대선 후보가 개헌 내용 공약으로 제시해야"
그러나 박형준 의원(한나라당)은 "이번 대선에서 개헌은 핵심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며 "대선 후보로 하여금 개헌 공약을 내놓고 국민 심판을 거쳐 차기 정권에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노회찬 의원(민주노동당)도 "5당 대표 및 대선주자가 '2009년 일괄개헌'을 약속하고 대선 후보들은 개헌 내용을 공약으로 제시하고 국민 검증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노 의원의 이같은 주장은 노 대통령의 개헌 제안에 정략이 깔렸다는 의심에서 출발했다. 박형준 의원은 "대통령의 개헌 제안도 고도의 정치적 행위"라며 "진정성을 믿어달라는 호소만으로는 부족하며 의도와 관계없이 정략적인 요소가 다분하다"고 비판했다.
박 의원은 "아무리 명분이 좋아도 타이밍이 안 좋으면 그만인 것 아니냐"며 "70%의 국민이 개헌 시기를 차기 정부로 생각하고 있는 민심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여권의 해체 경향 속에서 개헌 발의가 무슨 의미 있느냐"며 "정계개편의 소용돌이 속에 개헌 추진은 여권 결속용의 정략적으로 읽힐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했다.
노회찬 의원은 "노 대통령의 제안은 국민의 합리적 토론을 배제할 뿐만 아니라 여당조차 모르는,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비밀스런 방식이었다"며 "이는 노 대통령이 원하는 것은 개헌이 아니라 개헌 정국임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낙연 의원은 "설령 노 대통령이 의도를 가졌다 해도 그것을 실현할 힘이 이미 없고 개헌은 정치권이 하기 나름인 것 아니냐"며 "굳이 노 대통령의 의중을 의심할 이유는 없다"고 반박했다.
"임기 맞추기 필요한가?"
이들은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맞춰야 할 필요성이 있느냐'의 문제에서도 첨예하게 대립했다.
민병두 의원은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매년 두 번씩 재보궐 선거를 치르고 있는 상황"이라며 "동시 선거를 하면 국정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순수 선거관리비용만 매번 1000억 원 씩 절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낙연 의원도 "동시 선거는 국회 다수당이 대통령 당선자를 낼 가능성을 높여 국정을 더 안정시킬 수 있다"며 "국회의 견제기능이 약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으나 민주주의의 성숙 정도에서 앞서가는 의원내각제는 모두 국회 다수당이 행정부를 장악하는 입법-행정 융화구조"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형준 의원은 "지금의 개헌 논의는 내용이 협소하며 문제를 내고 '오(○), 엑스(X)'로 답하라는 식"이라며 "대통령 임기와 국회의원 임기를 일치시키는 것은 바람직한 개헌 방향도 아니"라고 비판했다.
노회찬 의원은 "동시선거는 보수 독점적 양당체제를 강화시키고 결국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선거가 자주 열려 국정안정에 도움이 안 된다는 주장도 학문적으로나 실증적으로 증명된 바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여소야대 때문에 국정안정이 어렵다'고 하지만 2004년 열린우리당이 선거에서 과반수를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었음에도 국정운영의 무능력 때문에 정책의 연속성이나 국정안정은 이루지 못한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4년 연임제 절대선인가?"
대통령 임기 제도를 5년 단임제에서 4년 연임제로 바꿔야 하느냐는 문제에서도 입장이 갈렸다.
민병두 의원은 "5년 단임제는 집권 초기의 준비기간, 중반의 극한 대립, 종반의 레임덕과 대통령의 탈당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며 "4년 연임제 개헌에 대해 여야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주장했다.
이낙연 의원은 "4년 중임제라면 공약 이행 여부의 중간 검증을 선거를 통해서 하게 된다"며 "세계적 추세인 매니페스토의 거의 완결판인 셈"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박형준 의원은 "권력구조의 문제가 왜 연임제만 있느냐"며 "87년 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권력구조의 문제는 엄밀한 진단 위에서 한국 정치의 생산성과 안정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다뤄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회찬 의원은 "한국 정치개혁을 위해 가장 절실한 것은 '4년 연임 임기일치' 개헌이 아니라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즉 정당 득표율만큼 의석수를 차지하는 선거구제를 도입하는 것"이라며 "한국 정치는 진보 성향의 유권자와 소외계층을 포함해 사회적 갈등과 요구가 폭넓게 대표되는 방향으로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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