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팔레스타인 지성인들이 자신들이 역부족이라고 느낌으로써 시작되었다. 그들의 방법과 행위는 길거리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 힘이나 영향을 미치기에는 너무 약했다. 나 자신도 시나 글이 중요하다고 느낄 수 없었으며 보다 쓸모 있는 행동을 하고 싶었다. 오슬로 협정으로 팔레스타인 정부에게 통치권이 이양됐던 서안지구를 다시 점령하려는 이스라엘의 위협이 고조되면서, 나는 상상 속에서 펜 대신 총을 쥔 나의 모습을 보았는데 당연히 총 뒤편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그러면 스스로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지식인들은 이런 방식으로 연루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나 또한 내면화했던 것이다. 생각의 괴리는 자아의 괴리가 된다. 그러므로 나는 이런 식의 연루를 왜 자신이 용납하지 못하는지 성찰해보았다. 먼저 햄릿이 떠올랐다. 햄릿은 전적으로 옳은 듯한 일을 하라고 자신을 설득하고 추궁하지만 막상 때가 오면 머뭇거린다. 그게 내 모습은 아닐까? 나는 몇 달 동안이나 그 주제를 맴돌았지만 완전히 방향을 잃고 인식론적 배경을 밝혀내지 못했다.
어느 저녁 나는 술을 마시고 귀가하다가 가까이 살면서도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네 집에 들렀다. 이야기가 이야기를 낳고 한 잔이 또 한 잔으로 이어지다보니 내가 집에 가기가 너무 늦어버렸다. 나는 친구네 집에 쓰러져 잤으며 다음 날 아침 창으로 들어오는 밝은 햇살에 깼다. 그 날 안에 마쳐야 할 일이 있으므로 나는 친구네 집에서 서둘러 나왔다. 라말라 시내를 몇 백 미터나 걸었으나 행인 한 명, 차 한 대 눈에 띄지 않았다. 시계가 없으므로 나는 시간이 일러서 그런가보다 했지만, 하늘에 뜬 해를 보니 대충 열 시는 됐을 것 같았다.
불현듯 우리가 점령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우리가 점령당한 사실을 실감하기 위해 자신에게 크게 그 말을 해주어야만 했다. 그리고 친구네 집으로 돌아갔다. 일어나서 텔레비전을 보던 친구는 화를 내며 나를 맞았다. 내가 밖에 나간 건 미친 짓이라고 했다. 나는 친구에게 우리가 점령당했느냐고 물었으며 그는 그렇다고 답했다. 즉각 우리는 텔레비전 화면에 빨려들어 몇 시간 동안이나 한 마디도 하지 않고 텔레비전만 보았다.
오후부터 나는 점령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차마 인정할 수가 없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저녁 무렵에는 많이 취했으며 내가 상상했던 방식으로 현실을 대면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빠졌다. 죽음의 에너지가 내 정신의 씨실과 날실을 낱낱이 풀어헤쳤다. 간신히 체면을 지킬 만한 라말라의 소극적 저항은 나로 하여금 팔레스타인판 햄릿이라는 테마를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왜냐하면 라말라는 팔레스타인의 문화 중심지라서 지성인들이 대개 거기 살기 때문이었다. 어둠이 깔렸을 때 나는 지성인과 저항자 둘 다가 될 수 없다면 내가 지성인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쉽게 점령당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나는 심장에 대고 맹세했다. 나는 어디든 내가 가고 싶은 데로 갈 것이며, 언제든 내가 원할 때 갈 거라고. 그들이 내 머릿속을 정복할 만한 정신적 군대를 만들어 냈을 때만 굴복할 거라고.
그 날 밤부터 나는 맹세를 지켜 도시 반대편에 사는 친구를 방문하러 갔다. 그리하여, 그럼으로써 비로소 나는 자신이 덴마크의 햄릿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햄릿이라고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금지된 여행을 할 때마다 나는 만약 총에 맞아 죽지 않고 이스라엘 군인에게 잡힐 만큼 운이 좋다면 그들 앞에서 연기할 독백을 준비해두었다.
이를테면 이럴 것이다. 한 군인에게, 또는 내가 아주 운이 좋아서 한 장교에게 심문을 받게 되고 그가 묻는다.
"통행금지라는 거 몰랐나?"
그러면 나는 그들의 말로 답한다.
"너희가 땅, 바다, 하늘을 점령할 수 있을지라도 이것만은 (내 머리를 가리키며) 점령할 수 없다. 나는 너희의 점령에 동의한다는 계약서에 서명을 한 적이 없으니까, 내가 너희에게 되도록 순종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게 비정상이다. 너희 사령관은 팔레스타인 달력에서 어느 날이라도 지워버릴 수 있겠지만, 그래도 그는 내가 이 뜻밖의 휴가를 사용하지 못하게 막을 수는 없다. 내가 자유를 꿈꾸는 것마저 막을 수는 없다."
나중에 나는 이렇게 썼다:
팔레스타인의 햄릿은 행동이 가득 찬 벽장을 바라본다. 그리고 아마 총이 아닌 언어를 택할 것이다. 그는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만년필 보충잉크들을 총알이라도 되는 듯이 만지작거리면서 폐허를 걸을 것이다. 재 속에서 다시 날아오를 불사조를 위해 춤추고 노래할 것이다. 희망이 사라진 순간 자신을 희망의 태풍이라 부를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으르렁거리는 탱크 소리에 맞서 니체의 '정신의 자유로움'1)을 읽고 있다. 그러면서 눈물 한두 방울을 흘릴지도 모른다.
필자 주
1)니체 '선악을 넘어'의 한 장.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www.palbridge.org) 기획·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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