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공동시장 회원국 정상들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나아갈 길은 통합 외에는 다른 길은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역내 약소국들의 산업구조를 개선해 수출산업 경쟁력을 강화시킨다는 데 한 목소리를 냈다.
이번 리우 정상회담은 그동안 브라질을 포함한 중남미 각국이 대선 등으로 미뤄왔던 통합논의를 가시화한다는 점에서 중남미 언론들의 관심을 집중시켰었다.
현지의 정치평론가들은 이번 남미공동시장 정상회담이 경제적인 통합 측면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뤄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남미공동시장 위원회는 그동안 문제점으로 지적돼왔던 지역간 경제 불균형 해소를 위해 약소국가로 분류돼왔던 파라과이와 우루과이에 7000만 달러 상당의 경제원조를 결의했다. 이 자금은 양국의 극빈자 구호 프로그램과 중소기업 지원, 광우병 퇴치기금, 도로포장사업 등에 지원될 예정이다.
또한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과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양국 국영석유회사(Pdvsa와 Petrobras) 주도로 중남미대륙을 관통하는 대(大) 가스관 공사 착공을 합의하고 우선적으로 5000Km 구간공사를 오는 2009년 초 착공한다는 의향서(MOU)를 교환했다.
이에 따라 양국의 Pdvsa와 Petrobras는 컨소시엄 형태의 공사책임자를 선정해 금년 말까지 공사 착공을 위한 자금확보와 환경파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공사방안 등 기본계획을 확정하게 된다. 이들은 이어 오는 2008년 말까지 기본 설계를 마치고 2009년 1월 베네수엘라와 브라질 국경에서 동시에 공사를 시작한다는 데 합의했다.
총 230억 달러가 소요될 이 가스관 공사는 4년 정도가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베네수엘라 남부를 출발한 가스관은 브라질을 거쳐 우루과이-파라과이-아르헨티나-칠레를 최종목적지로 삼고 있다.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이어 중남미 국가들의 금융시장 독립을 위해 남미은행 창설을 서두르자고 제안하면서 베네수엘라는 이를 위해 1차적으로 40억 달러를 출자하겠다고 약속했다.
차베스의 남미은행 창설 제안에 대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어 IMF(국제통화기금)를 대신하는 남미은행 설립 역시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차베스와 룰라, 키르츠네르 등 중남미 정상 3인방은 베네수엘라 개발은행, 브라질 개발은행, 아르헨티나 국립은행 실무진들로 구성된 남미은행 창설팀을 발족시키기로 합의했다.
한편 관심을 모았던 남미공동시장 국가간 무역대금 결제의 탈(脫)달러화 실행은 파라과이와 우루과이의 반대로 무산됐다. 하지만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계획대로 금년 중반부터 이 제도를 정착시킬 예정이며 베네수엘라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의지를 나타냈다.
그러나 당초의 예상을 뒤엎고 남미공동시장 정상들이 볼리비아의 정회원 가입을 승인한 것은 의외의 결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볼리비아 정부가 안데스공동체(Can)회원국 자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볼리비아가 안데스공동체를 탈퇴하지 않은 채 남미공동시장의 정회원 자격을 가지게 된 것은 남미공동시장이 타지역과의 자유무역에 대해 개방적으로 문호를 개방했다는 의미로 비쳐질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물론 볼리비아가 남미공동시장의 정회원이 되기까지는 6개월이라는 시간이 있지만, 이는 아직까지도 미국과 자유무역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파라과이와 우루과이가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할 수 있는 명분을 부여해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베네수엘라는 남미공동시장 정회원자격을 위해 안데스공동체 탈퇴를 선언한 바 있다.
에너지와 금융기관, 낙후된 산업건설 등을 축으로 본격적인 경제통합을 목전에 두고 있는 남미공동시장은 남미국가들의 경제, 정치, 문화의 대통합을 목표로 지난 1991년 창설돼 그동안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주도로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미국이 미주 전체 대륙의 경제통합을 추진하고 나서자 한때 와해될 위기를 맞기도 했었다.
특히 지난 2005년 11월 아르헨티나의 마르델 쁠라따에서 개최된 제4차 미주 정상회의에서 미주자유무역지대(FTAA)의 창설이라는 목표를 가진 미국은 남미공동시장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파라과이와 우루과이를 부추기고 브라질까지 다독거리는 모양새를 취했었다.
당시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가 적극적으로 농산물 보조금을 문제삼아 미국의 FTAA에 대응한 반면, 룰라 브라질 대통령은 어정쩡한 태도로 일관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더욱이 미국의 FTAA 밀어붙이기가 차베스의 완강한 저항과 마르델 쁠라따에 모인 중남미 민중회의 지도자들의 측면지원으로 좌절되자 룰라와 부시 미 대통령은 정상회담이 끝나기 3시간 전에 브라질의 수도 브라질리아로 날아가 보란 듯이 단합을 과시해 정상회담장의 좌파 정상들로부터 눈총을 받기도 했었다.
룰라는 최근까지도 파라과이와 우루과이가 칠레의 경우처럼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는 것에 동조하는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다른 중남미 국가들에 비해 미국시장 의존도가 높은 브라질로서는 어쩌면 차베스나 남미공동시장보다는 미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 룰라가 처한 입장이란 평가도 나온다.
또한 브라질 야당들과 보수언론들의 반차베스 정서도 룰라의 발목을 잡고 있다. 나아가 중남미 최대국가인 브라질이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에게 통합의 주도권을 빼앗길 수 없다는 명분도 룰라가 차베스의 독주와 통합의지에 제동을 걸 수밖에 없는 속내다.
리우에 간 차베스는 여느 때와는 달리 목소리를 낮추고 "룰라 대통령이 그 어느 때보다 더 통합의지가 확고하다"면서 경제적인 통합에 주력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그는 에너지를 축으로 한 경제통합과 남미은행 창설을 통해 금융권 통합을 노리면서 약소국들의 기간산업 발전 지원을 전력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차베스는 이번 리우 정상회담장에서 룰라를 자극하는 정치적인 발언을 자제하고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차베스는 표나지 않게 중남미 정상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해 새로운 공동체 구성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타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이 주도하고 있는 '아메리카를 위한 볼리바리안 대안(ALBA)' 국가들과 안데스공동체, 자신을 지지하는 남미국가들을 하나로 묶어 남아메리카 국가공동체(CASA)를 발족 시킬 새로운 구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차베스의 이번 구상은 지난 11일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 취임식을 통해서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 오르테가 대통령은 차베스가 추진하고 있는 ALBA 가입을 천명하고, 차베스의 중남미통합 의지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차베스가 주축이 된 ALBA국가는 베네수엘라, 쿠바, 볼리비아, 니카라과 등 4개국이 됐으며 에콰도르가 여기에 합류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이들 5개국 정상들은 중남미의 완전한 통합과 민중들의 권리를 되찾는 강력한 신사회주의 운동을 펼쳐나가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차베스가 몇 년 동안 공을 들인 볼리바르 혁명이 남미공동시장에서는 지지부진한 반면 중미권에서는 좌파들의 무더기 집권으로 본격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차베스는 남미공동시장 국가들이 자신의 의도대로 적극적으로 통합의지를 보이지 않자 ALBA국가들을 중심으로 반미기치를 내걸고 정치와 경제, 문화 통합의 고삐를 바짝 조이고 있는 반면 남미는 1차적으로 에너지와 금융 등 경제적인 통합을 목표로 하는 정책적인 궤도수정을 한 것으로 보인다.
차베스는 지난 18일 리우 도착 당시 현지 기자들로부터 '파라과이 대통령이 지적한 것처럼 남미공동시장 통합논의에 신사회주의 사상을 접목시킬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나는 파라과이 대통령이 언급한 것처럼 사상논쟁으로 남미공동시장을 '오염'시키지 않겠다. 하지만 남미공동 시장은 새로운 판을 짜야 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었다. 당분간 남미에서는 신사회주의를 향한 정치노선보다는 경제통합에 주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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