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하원에서 정유업계의 보조금을 대폭 줄여 에탄올 등 재생에너지 개발에 투자토록 하는 법안이 18일 통과됐다. 지난 몇 십년간 행정부에 대한 갖은 로비를 통해 석유관련 세제와 보조금 제도를 쥐락펴락해 오며 '빅 오일(Big Oil)'이란 별명이 붙은 정유업계가 민주당이 주도하는 하원에서 일격을 당한 것이다.
업계의 대대적인 반발과 부시 행정부의 반대 등을 감안할 때 상원 인준 전망은 밝지 않지만 석유위주로 재편돼 온 기존 정책과 상충되는 이 법안이 하원에서 통과된 것 자체만도 미국 에너지 정책의 전환을 예고하는 의미있는 신호로 여겨진다.
정유업계에 지원되던 보조금 140억 달러 재생에너지 투자로
하원 의장인 낸시 펠로시 민주당 의원의 대표발의로 이날 통과된 '무공해 에너지 법(Clean Energy Act)'은 그간 정유회사들이 무상으로 이용해 온 유정에 사용료를 부과하고 석유시추업자들에 대한 연방정부의 보조금을 폐지하는 것을 그 골자로 하고 있다.
석유 시추업자들에 대한 세금감면혜택(76억 달러 규모)을 폐지하고 공공소유인 멕시코와 알라스카 연안의 유정 사용료(63억 달러 규모)를 정유업계에 확실하게 물리겠다는 것이다. 공화당이 의회를 주도했던 2004-2005년 회기에 통과됐던 정유업계 지원 방안을 백지화한 것이다.
법안 통과로 돌아온 140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과 사용료는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보전을 위한 신기술 개발 자금으로 쓰인다. 총 기금의 절반 이상이 에탄올 연료 개발에 지원될 계획이다.
일단은 법안 통과에 대한 정유업계의 반발이 만만찮다. 석유 관련 기업들만을 겨냥한 불공정한 세금 징수란 이유에서다.
당장 정유업계는 원유 한 배럴 마다 '보전비'를 붙여 유정 사용료 부담액을 소비자에게 부담시키거나 아예 새로운 시추 작업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며 법안 인준권을 쥐고 있는 상원을 위협하고 나섰다.
정유업계를 대변하는 미국 정유 연구소(API)의 마크 키베 세제담당 연구원은 "의회가 정유업계에 추가부담을 요구한다면 기업들은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며 "결국 국내 생산량과 고용에 악영향을 미치고 석유의 해외의존도를 높이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민주당 의석이 공화당보다 한 석밖에 많지 않은 상원에서 법안이 통과를 낙관하기 힘든 것도 인준권을 가진 상원에서는 기업들의 세금부담이 유가 인상으로 직결될 경우 후폭풍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이 법안이 상원에서도 인준을 받을 경우에는 액슨모빌, 핼리버튼 등 메이저 정유회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물심양면으로 정유업계를 지원해 온 조지 부시 대통령이 거부권을 사용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여전히 연간 600억 달러 보조 받는 석유산업
그러나 이 법안이 실제로 통과돼 유정 사용료가 징수되고 정부 보조가 깎인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연방 정부가 석유업계에 베풀고 있는 보조금 혜택은 다른 에너지 산업 대비 최고 수준이다. 정유업계 다음으로 많은 혜택을 받고 있는 원자력 산업보다도 4배나 많은 규모다.
환경단체 '지구의 벗'이 최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번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정유업계는 향후 5년간 연간 600억 달러 규모의 정부 보조금과 감세혜택을 받을 수 있다.
세제 혜택을 줄이면 해외 의존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경고도 현재 미국의 석유 자급률이 0.2%에 불과한 실정을 알고 들으면 그저 '앓는 소리'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이날 하원에서 민주당뿐 아니라 공화당에서도 적지 않은 지지를 받아 264대 163으로 통과된 것도 석유업계 편향으로 편성됐던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미국 사회 내의 일반적인 평가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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