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남주 성공회대 중국학과 교수는 17일 보내온 '한반도브리핑'에서 중국의 협력이 필요한 미국의 입장 때문에 북핵 문제에 있어 중국이 나름대로 주도적인 역할을 할 공간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특히 중동 문제에 발목이 잡힌 미국의 난처한 입장이 이같은 상황을 심화시키고 있고, 따라서 북한도 이같은 상황을 활용해 현 부시행정부 임기 내에 핵폐기 논의에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편집자>
지난해 북한의 핵실험 직후 미국의 한 관리는 북핵문제와 관련한 중국과 미국의 협력을 강조하며 중미관계가 최근 들어 가장 좋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도 중국과 미국이 북한에 압력을 가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방침에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추측과, 이에 따라 한반도가 새로운 격랑에 빠져드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가 확산됐다.
하지만 중국은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이라는 원칙을 고수했고, 12월에 6자회담이 재개되면서 이러한 추측과 우려는 상당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다른 결과였다고 해서 중미관계가 협력구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전제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사실 6자회담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회담의 모멘텀이 계속 살아있는 것은 중국과 미국의 협력구도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중·미 협력구도를 미국이 주도하고 있고, 북핵문제와 관련한 중미협력은 곧 중국이 미국의 강경책에 기울어지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경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현재의 중미관계 현실을 올바르게 반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중·미 협력구도를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란 과제에 건설적으로 활용하는 노력을 제약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중국의 협력을 필요로 하는 미국
현재의 중·미의 협력구도는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적극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이 과거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그 이유는 최근 중미관계의 발전은 미국이 중국에 대해 협력적 태도를 취하면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군사·경제적 측면에서 미국이 중국에 대해 우위를 점하고 있다. 중국은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정치·사회적 안정을 우선적인 과제로 삼고 있으며 이를 위해 미국과의 협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에 따라 최근까지 중미관계의 변수는 주로 미국에서 출현했다. 미국이 협력적인 태도로 나오면 중미관계가 안정되고, 적대적으로 나오면 갈등국면으로 진입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잠재적 경쟁국으로 간주하는 중국과의 협력을 추구하는 것은 중국의 도움을 필요로 할 경우이기 때문에 중미협력은 경제·군사적 힘의 분포와 관계없이 미국이 주도하는 관계가 아니라 중국도 미국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관계가 되었다.
최근 양국의 협력 관계를 보면 이러한 특징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2000년 선거운동에서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했기 때문에 부시 행정부 출범 직후에는 양국 사이의 갈등이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그러나 9.11 테러 이후 미국 대외정책의 초점이 반테러전선으로 이동하면서 중국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됐다. 중국은 이에 적극 호응하면서 현재의 협력무드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구도는 부시 대통령 재임 중에는 커다란 변화가 없을 뿐만 아니라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 상황이 계속 엄중해지고 있고, 부시가 추가파병이라는 마지막 도박을 시도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미군의 추가파병은 이라크 내에서 군사적인 위험을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이라크 시아파들과 이란과의 관계단절을 추구하면서 이란과의 갈등을 증폭시킬 것이기 때문에서 중동 정세 전체의 불안정성을 증가시킬 것이다.
따라서 지구적 차원에서 미국의 지위가 커다란 타격을 받는 상황을 피하고 이라크 문제 해결에 힘을 집중시키기 위해 미국은 다른 강대국들, 특히 경제적으로 부상하고 있고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 미국의 이익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지역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중국의 협력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중미 협력의 긍정적인 영향
이러한 상황은 북핵문제에서 중국이 나름대로의 주도적 역할을 모색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미사일발사에서 핵실험으로 이어지는 국면에서도 외교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원칙을 계속 밝혔고, 제재로만 달려간 것이 아니라 북한을 6자회담으로 복귀시키기 위한 중국의 역할을 존중했다. 이에 따라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에서 일단은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이라는 구도로 나아갈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미국이 북핵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중국에게 넘겨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군사적 옵션은 뒤로 미루었지만 북한의 2차 핵실험 등으로 사태가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협상국면을 유지하는 한편, '맞춤형 봉쇄'를 추진하며 북한 체제의 약화·붕괴를 유도하려는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을 버리지 않고 있다.
최근 미국이 대(對)이란 정책에서 경제적 제재와 심리적 타격을 통한 체제의 약화와 붕괴를 촉진하기 위해 더 세밀하게 조율된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는 것도 미국이 소위 '악의 축' 국가들에 대해 군사적 옵션을 제외하더라도 그 나라들에 미국이 굴복했다는 인상을 주는 직접대화보다는, 다른 봉쇄전략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또한 군사적 옵션을 포기한 미국이 추구하는 새로운 전략은 다른 국가들, 특히 중국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마카오 은행 방코델타이시아(BDA)에 대한 제재에 간접적으로 중국을 끌어들인 것이나, 최근 중국 국영석유기업의 대규모 이란 투자에 대해 제동을 걸고 나선 것 등이 그같은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여기에는 위조지폐, 돈세탁, 유엔 제재결의안 등 중국도 거부하기 어려운 국제규범이 명분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핵문제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어느 정도의 변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라크와 중동 문제에 상당한 힘을 기울일 수밖에 없어 북핵문제에서는 상황의 안정적 관리와 외교적인 문제 해결을 중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미 6자회담이 재개되는 과정에서 북한과 양자대화를 갖기도 했고, 핵포기에 따른 대가에 대한 논의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추상적인 차원이기는 했지만 부시를 비롯한 고위 책임자들의 입에서는 대북 안전보장과 관련한 언급도 이어졌다.
중국의 탕자쉬안 국무위원과 미국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최근 거의 비슷한 시기에 1월 말 6자회담 재
개 가능성을 내비쳤다는 점도 중국과 미국 사이에 상당한 협의가 계속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16일 북·미 6자회담 수석대표들의 베를린 회동도 있었다.
이처럼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한 매우 작지만 의미 있는 계기들은 만들어지고 있으며 중미 사이의 협력구도를 고려하면 당분간은 이러한 변화가 지속될 가능성은 높다.
부시 임기 내 해결이 중요한 이유
문제는 최근 나타나고 있는 작은 변화의 계기를 어떻게 의미 있는 변화로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인가이다.
앞서 살펴본 상황의 변화는 미국에서 새로운 정부가 등장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부시의 임기 내에 문제해결을 추구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새로운 미국 행정부가 등장한다고 해서 북한에 대한 정책이 우선순위로 다루어지거나 더 온건한 정책을 택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미국의 새 정부는 오히려 중미관계, 대중동 정책 등에서 변화를 추구해 대북정책의 불확실성을 증가시킬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한반도 문제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국과 미국 사이의 관계가 안정되어 있고, 외교적 '실적'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은 부시의 임기 내에 문제의 해결을 추진하는 것이 더욱 현실성이 있는 전략이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북한은 클린턴 행정부 시절 문제해결의 기회를 상실한 교훈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막연하게 시간을 끌 경우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만 가중시키고, 이는 결국 핵무기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북한도 새로운 대화국면에 보수적인 태도보다는 능동적인 태도로 임할 필요가 있다.
남한의 경우 올해 대선이라는 정치일정이 있는 관계로 대응에 어려움이 적지 않으나 실기를 해서도 안 되는 만큼 현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한 집중력과 적극성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 북핵문제와 관련해 구체적인 진전이 있을 경우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한반도 내외의 상호작용을 거치며 만들어진 변화를 뒤로 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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